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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던전 마수 요리 백과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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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불꽃과 소금풀

축축한 회랑의 입구를 가득 메운 것은 수십 개의 붉은 불빛이었다.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붉은 안광들은 하나같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방금 구워낸 고기 꼬치의 고소한 육향과 기름 냄새가 차가운 지하 기류를 타고 숲 전체로 퍼져 나간 탓이었다.

스스슥.

양치식물 덤불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낸 독침토끼들은 도윤이 처치했던 녀석보다 결코 작지 않았다. 굵은 통나무만 한 몸집에 흑요석 같은 가시침을 등줄기 가득 곤두세운 채 입술을 바르르 떨며 앞니를 부딪치고 있었다.

"……저 녀석들 흥분했어."

리아가 벽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리를 가누지 못해 신음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도윤이 구워준 다리살 꼬치를 남김없이 삼킨 뒤로 창백하던 뺨에는 붉은 혈색이 돌고 있었다.

리아는 자신의 오른 다리를 가볍게 굴려보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발목에 힘이 들어가. 마비가 완전히 풀렸어……."

"다행이군요.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도윤은 나직하게 말하며 셰프 나이프의 칼날을 비스듬히 세웠다.

회랑의 유일한 출구는 무너진 석조 아치 하나뿐이었다. 그 좁은 통로 밖으로 최소 서른 마리가 넘는 독침토끼가 부채꼴 모양으로 겹겹이 진을 치고 있었다.

"독침토끼는 원래 겁이 많은 마수야. 하지만 피 냄새와 기름 냄새를 한꺼번에 맡으면 이성을 잃고 떼를 지어 몰려들어."

리아가 등 뒤의 화살통을 매만지며 낮게 경고했다.

"더 위험한 건 저 녀석들의 사격 방식이야. 무리 중에 덩치가 제일 큰 우두머리가 턱을 딱딱 부딪쳐 신호를 주면 일제히 가시침을 쏘아대. 저 좁은 입구로 나가려다가는 순식간에 고슴도치 꼴이 될 거야."

도윤은 리아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날카로운 눈초리로 회랑 주변을 훑었다.

무너진 천장 틈새로 스며드는 습기.

축축하게 젖은 석벽을 따라 푸른 이끼가 두껍게 덮여 있었고 그 틈새로 지하수가 실개천처럼 가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출구는 하나고 정면 돌파는 자살행위다. 그렇다면 지형과 환경을 이용해야 한다.'

도윤의 시선이 석벽 하단의 갈라진 바위 틈새에 멈추었다.

이끼 틈바구니에서 자라난 낯선 풀잎들이었다. 손바닥만 한 다육질의 잎사귀 표면마다 마치 겨울 서리처럼 하얗고 굵은 결정들이 눈꽃처럼 맺혀 있었다.

도윤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잎사귀 하나를 꺾었다.

바삭.

줄기를 분지르자 차가운 수액과 함께 희고 거친 알갱이들이 손가락에 묻어났다.

"그건 소금풀이잖아?"

리아가 의아한 눈으로 도윤을 바라보았다.

"이끼 숲 바위틈에 흔하게 자라는 잡초야. 탐사자들이 조난당했을 때 염분을 보충하거나 잎을 짓이겨서 긁힌 상처를 소독할 때 쓰기는 해. 하지만 떫고 써서 그냥 씹어 먹을 물건은 아니야."

"소금풀……."

도윤은 손끝에 묻은 결정을 혀끝에 살짝 대었다.

화아악.

머릿속에서 『미각 감정』의 감각이 전류처럼 뻗어나갔다.

단순한 짠맛이 아니었다.

―소금풀(광물성 염분 식물): 석회암 암반에서 스며나오는 고농도 나트륨과 미네랄을 흡수해 줄기 내부에 저장함.

―외부 섬유질: 건조 시 인화성이 강한 질긴 섬유 다발.

―내부 세포낭: 농축된 염수와 광물 결정이 밀집됨. 급격한 고열 또는 끓는 기름과 접촉 시 내부 압력 팽창으로 인한 순간 파열(열적 폭발) 발생.

―연소 연기: 고농도 알칼리 염무(鹽霧). 흡입 시 눈과 호흡기 점막에 강한 자극 유발.

도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이건 그냥 풀이 아니다. 식물성 화약이야.'

소금 결정에 갇힌 수분이 급격한 열을 받으면 내부에서 수증기 폭발을 일으킨다. 주방에서 물기 묻은 굵은 소금을 뜨거운 기름 팬에 잘못 털어 넣었을 때 사방으로 기름과 파편이 튀며 요란한 파열음을 내는 원리와 같았다.

더군다나 이 풀은 줄기 자체가 질긴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는 농축된 광물질 결정이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리아 씨, 화살이 몇 발 남았습니까?"

"넷…… 아니 다섯 발. 하지만 이 숫자로 저 떼거리를 다 잡는 건 불가능해."

"잡을 필요 없습니다. 길만 열면 돼요."

도윤이 빠르게 명령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가진 무기는 칼과 활만이 아닙니다. 불과 소금 그리고 저 녀석들이 가장 질색할 냄새예요."

그때였다.

딱! 딱! 딱!

무리 뒤편에서 마른 장작이 부러지는 듯한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독침토끼 무리가 일제히 등을 둥글게 말며 등줄기의 가시침을 꼿꼿하게 세웠다. 우두머리의 발사 신호였다.

"엎드려요!"

도윤이 소리치며 리아의 어깨를 낚아채 무너진 돌기둥 뒤로 끌어당겼다.

슉! 슈슈슉!

허공을 찢는 섬뜩한 파열음과 함께 수십 발의 검은 침이 빗발치듯 쏟아져 들어왔다.

콰드득! 팅! 팅!

돌기둥 표면에 박힌 가시침들이 돌가루를 사방으로 튕겨냈다. 바닥에 떨어진 침 끝에서 흑자색 독액이 부글거리며 치이익 하는 불길한 연기를 뿜어냈다.

"으…… 진짜 끔찍하게 많네!"

리아가 기둥에 등을 밀착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도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허리를 숙인 채 석벽으로 손을 뻗었다. 셰프 나이프의 칼날이 번개처럼 번뜩이며 벽에 엉겨 붙은 소금풀 다발을 거침없이 베어냈다.

서걱. 서걱.

순식간에 한 아름의 소금풀 덩어리가 도윤의 품에 안겼다.

그는 돌 화덕으로 달려가 꼬치를 만들고 남겨두었던 독침토끼의 복부 지방 덩어리를 꺼냈다. 하얗고 두툼한 굳기름 덩어리였다.

도윤은 나이프로 기름 덩어리를 얇게 저민 뒤 생나무 가지 끝에 소금풀 줄기와 함께 빽빽하게 뭉쳐 감았다. 그리고 덩굴 줄기를 이용해 주먹만 한 공 모양으로 단단히 결박했다.

"마수의 피하지방은 상온에서도 기름이 잘 배어 나오고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온도가 치솟습니다."

도윤은 리아를 돌아보며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 기름이 소금풀을 집어삼키면 줄기 속 수분과 결정이 끓어넘치며 터질 겁니다. 소리와 섬광 그리고 눈을 찌르는 연기가 회랑 출구를 뒤덮을 거예요."

도윤은 세 개의 소금풀 폭탄을 완성한 뒤 길쭉한 횃불 형태의 몽둥이 하나를 손에 쥐었다.

"내가 첫 번째 뭉치를 던져 신호를 주면 리아 씨는 그 틈을 타 우두머리를 찾아내요."

"우두머리를?"

"예. 녀석들은 시각과 후각이 예민합니다. 감각이 마비되고 지휘관이 쓰러지면 무리는 반드시 와해됩니다."

도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확신이 실려 있었다.

리아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활시위에 깃이 바랜 화살 한 발을 메겼다.

"알았어. 딱 한 놈이라면 반드시 맞힐게."

무리 밖에서 두 번째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딱! 딱! 딱딱!

더욱 다급하고 사나워진 박자였다. 녀석들이 기둥 뒤로 접근하며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지금입니다."

도윤은 돌 화덕 속에서 붉게 달아오른 숯덩이에 소금풀 뭉치의 기름 부위를 갖다 대었다.

치이익― 화르륵!

마수의 기름에 불이 붙자마자 사나운 주황색 불길이 소금풀 줄기를 휘감았다.

도윤은 주저하지 않고 어깨를 힘껏 젖혔다. 타오르는 불덩어리가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무너진 회랑 출구의 좁은 병목 지점으로 날아갔다.

툭.

불타는 소금풀 뭉치가 독침토끼 무리의 정중앙에 정확히 떨어졌다.

1초의 정적.

그리고 이어진 것은 지옥 같은 연쇄 파열이었다.

콰과광! 타타타탁!

쩌정―!

마치 수백 발의 폭죽을 한꺼번에 터뜨린 것 같은 굉음이 좁은 석조 공간을 뒤흔들었다.

급격하게 끓어오른 소금풀 줄기가 팝콘처럼 터져 나가며 눈이 멀 것 같은 백색 섬광과 불꽃 파편이 사방 십수 미터로 비산했다.

"키에에엑!"

"크아악!"

야행성 마수들의 붉은 눈동자에 쏟아진 강렬한 섬광은 치명적인 흉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름과 함께 타들어 간 고농도 알칼리 소금 연기가 짙은 백색 안개가 되어 회랑 입구를 가득 메웠다. 예민한 마수들의 코와 기도를 사정없이 후벼 파는 매캐하고 지독한 연기였다.

앞이 보이지 않고 숨조차 쉴 수 없게 된 독침토끼들이 패닉에 빠져 날뛰기 시작했다.

푸슉! 푸슈슉!

방향 감각을 잃은 녀석들이 사방으로 독침을 흩뿌렸다. 빗발친 침들은 서로의 가죽과 살점을 꿰뚫었고 아비규환의 비명이 이끼 숲을 뒤흔들었다.

"통했어……!"

기둥 뒤에서 지켜보던 리아가 탄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크르르르― 쾅!

자욱한 백색 연기 한가운데를 찢어발기며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다른 녀석들보다 몸집이 배는 거대한 독침토끼였다. 얼굴 반쪽에 깊은 흉터가 새겨진 놈은 한쪽 눈을 질끈 감은 채 피투성이가 된 발톱으로 바닥을 박차며 날아올랐다.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녀석은 연기 속에서도 도윤과 리아의 체온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돌진해 오고 있었다. 등줄기에 돋아난 수십 개의 가시침이 시커먼 살기를 뿜어냈다.

"도윤 씨, 피해!"

리아가 외치며 활시위를 턱 끝까지 당겼다.

시위가 팽팽하게 울리며 손끝을 떠났다.

쉬이익!

연기 속을 가른 목제 화살이 허공을 날아올라 돌진하던 우두머리의 남은 오른쪽 눈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캬아아악!"

시야를 완전히 잃은 우두머리가 허공에서 비틀거리며 궤도를 잃었다.

그 찰나의 빈틈을 도윤은 결코 놓치지 않았다.

그는 뒤로 물러서는 대신 몸을 낮게 숙이며 우두머리의 착지 지점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요리사가 거대한 식재료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릴 때처럼 완벽하게 통제된 움직임이었다.

스각!

도윤의 셰프 나이프가 바닥을 긁듯 솟구치며 허공에서 떨어지는 마수의 아킬레스건을 단숨에 베어 넘겼다.

균형을 잃은 거구의 마수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쿠웅!

마수가 몸을 뒤채며 남은 앞니로 도윤의 팔을 물어뜯으려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도윤의 손놀림은 그보다 반 박자 빨랐다.

그는 왼손으로 녀석의 턱밑을 강하게 짓누르고 오른손의 나이프를 쇄골 안쪽으로 비스듬히 찔러 넣었다.

푸욱.

칼날이 경동맥과 심장을 잇는 혈관을 깨끗하게 갈랐다.

마수의 전신이 몇 번의 경련을 일으키더니 이내 힘없이 늘어졌다. 검붉은 피가 돌바닥에 깔린 하얀 소금 가루 위로 흥건하게 번져 나갔다.

"하아…… 하아……."

도윤은 가쁜 숨을 토해내며 칼을 뽑았다.

우두머리가 쓰러지자 연기 속에 갇혀 있던 나머지 독침토끼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끼익! 끾!

겁에 질린 비명을 지르며 흩어진 녀석들은 서로를 짓밟아가며 양치식물 숲 저편으로 꽁무니를 뺐다.

사위를 메우던 요란한 발소리가 멀어지고 축축한 회랑 안에는 오직 탁탁 튀는 소금풀의 잔불 소리만이 남았다.

"이겼어……."

리아가 활을 내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지만 입가에는 벅찬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진짜 해냈어. 그 많은 걸…… 풀이랑 불만으로 다 쫓아냈다고."

도윤은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쓰러진 우두머리의 사체 옆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숨을 고르면서도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슴 포켓의 핀셋과 나이프를 꺼냈다. 우두머리의 거대한 뒷다리살을 발라내고 석벽의 소금풀 줄기를 넉넉하게 뜯어 잎사귀로 단단히 감쌌다.

또한 녀석의 등에서 부러지지 않은 단단하고 긴 가시침 서너 개를 뽑아 챙겼다.

"이 침은 리아 씨 화살촉으로 쓰거나 비상용 송곳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응? 아…… 고마워."

리아가 건네받은 침을 매만지며 도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단정한 하얀 조리복은 그을음과 흙탕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그의 갈색 눈동자는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차분하고 맑았다.

리아가 결심한 듯 입술을 달싹였다.

"저기…… 당신 이름이 뭐야?"

도윤이 고기를 갈무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서도윤입니다."

"서도윤……."

리아는 생소한 억양의 이름을 입안에서 조용히 굴려보았다.

"도윤 씨, 나는 리아 벨이야. 아까 말했듯이 견습 탐사자고."

리아는 활을 어깨에 메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의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마수 고기가 가져다준 생명력이 몸속을 여전히 따스하게 순환하고 있었다.

"고기 냄새랑 소금 터지는 소리 때문에 다른 마수들이 몰려올지도 몰라. 이 회랑은 이제 안전하지 않아."

"이 근처에 몸을 피할 만한 곳이 있습니까?"

"응. 내가 소속되어 있던 파티가…… 아니 예전에 탐사대가 쓰다가 버려둔 간이 피난처가 있어."

리아가 회랑 밖의 어두운 숲을 가리켰다.

"1권역 깊은 쪽에 고대 표식석이 박혀 있는 버려진 안전지대야. 표식석의 결계가 약해지긴 했지만 마수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야. 거기라면 제대로 쉴 수 있어."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배낭 대신 옷자락으로 싼 식재료 꾸러미를 챙겨 들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두 사람은 연기가 잦아드는 무너진 회랑을 벗어나 축축하고 푸르스름한 이끼 숲의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지하의 서늘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숲을 가로지른 지 얼마나 지났을까. 거대한 고사리 덤불 너머로 희미한 푸른빛을 뿜어내는 낡은 돌기둥의 실루엣이 시야에 들어왔다.

버려진 안전지대였다.

하지만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도윤의 눈썹이 잘게 꿈틀거렸다.

푸른 이끼로 덮인 축축한 진흙 바닥 위로 낯선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마수의 것이 아닌 쇠징이 박힌 무거운 가죽 장화의 자국.

그리고 그 발자국을 따라 채 마르지 않은 짙은 핏자국이 점점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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