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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7화

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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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펠른 공작가의 균열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은 이른 아침이었다.

펠른 공작가 저택 주방 후문 앞 자갈마당에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물건을 내릴 수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수레를 막아섭니까!"

수석 시녀 베라가 앞치마를 움켜쥔 채 핏대를 세웠다. 마차 위에 걸터앉은 중년 상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수도 식료품 길드 대표 상인 모렐이었다.

모렐은 두꺼운 양가죽 외투 깃을 여미며 곰방대를 털었다.

"공작부인의 공인 서명이 들어간 결재 전표가 없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짐을 부립니까?"

"공작부인이라니! 그 여자는 사흘 전에 제 발로 나갔소! 지금 공작가의 안살림은 집사님과 내가 맡고 있단 말이오!"

창문 틈으로 주방 하녀들이 숨죽여 고개를 내밀었다. 조리장도 밀가루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안절부절못했다. 모렐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니까 물건을 못 내린다는 겁니다. 길드와 계약서를 쓴 당사자는 펠른 공작가가 아니라 아리아드네 부인의 개인 신용 보증이었습니다."

"뭐라고요?"

"석 달 동안 밀린 식자재 외상 대금만 칠백 골드요. 부인께서 매달 개인 계좌에서 현금을 결제해 주셨기에 믿고 납품했던 거지 공작가의 문장을 믿은 줄 아십니까?"

모렐이 고삐를 바짝 당겼다.

"부인이 떠났으니 그 보증도 끝났소. 밀린 칠백 골드를 정산하고 오늘치 백오십 골드를 현금으로 내놓지 않으면 소금 한 바가지도 부려줄 수 없습니다."

"이, 이런 무례한 자가 있나! 당장 공작님께 일러 감옥에 처넣겠어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황실 상법상 대금 지급 능력이 없는 곳에 납품을 거부하는 건 상인의 정당한 권리니까요."

모렐이 마부석을 치자 짐마차가 방향을 틀었다. 뒤따르던 땔감 장수와 채소 상인들도 일제히 수레를 돌렸다.

베라는 새파랗게 질려 안주인의 서재로 달려갔다.

사흘 전 아리아드네가 두고 간 은빛 열쇠 꾸러미가 주머니 속에서 잘그락거렸다. 베라는 벽장에 감춰진 일상 지출 금고 앞에 서서 열쇠를 꽂아 돌렸다.

진주 목걸이를 빼돌렸다며 모함하려 했을 때도 아리아드네는 당당하게 열쇠를 넘겼었다. 그때만 해도 베라는 안주인이 나가면 금고의 돈을 제 뜻대로 주무를 수 있으리라 믿었다.

철컥.

무거운 철문이 열렸다.

그러나 베라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환호가 아니라 경악에 찬 비명이었다.

금고 안은 휑뎅그렁했다. 바닥에는 누렇게 바랜 영수증 묶음 몇 개와 빈 가죽 자루만 뒹굴었다. 금화는커녕 은화 한 닢조차 없었다.

베라의 다리가 풀렸다.

"돈이…… 왜 한 푼도 없어?"

금고 바닥에는 아리아드네의 단정한 필체로 적힌 쪽지 한 장만이 놓여 있었다.

[가문 정규 운영비 잔고: 0골드. 본 금고는 전 공작부인의 사비로 충당되었으므로 혼인 해소와 함께 사적 자금 지원을 전면 중단함.]


공작가 집사실의 공기는 얼음장 같았다.

집사 헤런은 책상 위에 쌓인 청구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리아드네가 남긴 회색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안주인의 가계부 따위 손쉽게 정리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장부를 열어본 순간부터 손이 덜덜 떨렸다.

쿵쿵.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정원사와 마구간지기들의 대표가 들이닥쳤다.

"헤런 집사님! 오늘이 하인들 급여일인데 금고가 비어 월급을 못 준다는 게 사실입니까?"

"기한을 며칠 조정하는 것뿐이다! 당장 일터로 돌아가라!"

헤런이 책상을 내리치며 호통을 쳤지만 목소리 끝이 심하게 갈라졌다.

"매달 7일이면 부인께서 직접 한 사람씩 불러 급여를 주시고 격려금까지 챙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나가자마자 월급이 끊긴다니요!"

"공작가의 일이다! 푼돈 떼먹히지 않을 테니 썩 물러가라!"

헤런이 가까스로 하인들을 밀어내고 문을 잠갔다. 문 너머에서 원망 어린 웅성거림이 복도 멀리 퍼졌다.

헤런은 식은땀을 훔쳤다. 벨리온 은행 계좌 잔고 증명서에는 붉은 마이너스 표시가 선명했다.

공작가의 정규 금고는 이미 석 달 전부터 바닥나 있었다. 선대 공작 시절부터 누적된 사치와 방만한 영지 관리로 인해 펠른 공작가는 겉만 번지르르한 빈껍데기였다. 아리아드네가 개인 지참금과 환어음, 무역 배당금으로 이 모든 적자를 틀어막고 있었던 것이다.

탁탁.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헤런이 고개를 들었다. 전령 하나가 붉은 봉인이 찍힌 편지를 내밀었다. 헤스티아 백작이 보낸 긴급 서한이었다.

[공작 각하. 배은망덕한 아리아드네 년이 친정을 파문하고 도망쳤소. 대부업자들이 공작부인의 이름을 믿고 빌려준 사채 5천 골드를 당장 갚으라며 저택을 에워싸고 있소! 펠른 가문이 대신 변제하지 않으면 혼인 전 공작가가 진 빚과 약조를 사교계에 전부 폭로하겠소!]

"미친……."

헤런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가문 금고는 비어 있는데 친정은 5천 골드를 물어내라며 협박하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색 서류철 맨 뒷장에는 굵은 붉은 글씨로 12월 14일이라는 날짜가 박혀 있었다.

'북부 운송조합 차입금 이자 1,200골드 납부일.'
'벨리온 은행 대출 갱신 심사일. 미납 시 가문 담보권 실행.'

앞으로 정확히 일주일 뒤였다.

그때까지 수천 골드의 현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펠른 공작가는 파산 선고를 받게 된다.

헤런은 서류철과 청구서 뭉치를 끌어안고 비틀거리며 집무실로 향했다.


펠른 공작의 집무실은 웅장했다.

벽난로에서는 고급 장작이 타닥거리며 불꽃을 피워 올렸고 카일론 펠른은 창가에서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칠흑 같은 흑발 아래 드리워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오만했다.

사흘 전 아리아드네가 이혼 서류를 던지고 나갔을 때만 해도 카일론은 닷새도 못 버티고 돌아와 무릎 꿇을 것이라 확신했다.

사교계의 냉대와 생활고를 겪고 나면 제 발로 돌아와 용서를 빌 터였다. 그때가 되면 두 번 다시 허튼소리를 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복종시킬 셈이었다.

똑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각하! 헤런입니다. 긴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와."

문이 열리자 헤런이 사색이 되어 들어왔다. 그 뒤를 따르던 베라는 바닥에 엎드렸다.

"각하, 저택의 식자재 공급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상인 길드가 외상 대금 칠백 골드와 오늘치 대금을 현금으로 내놓지 않으면 납품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인들도 급여 미지급으로 동요하고 있습니다."

카일론이 차갑게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식자재 상인이 공작가를 거부해? 하인 급여 금고의 돈으로 정산하면 될 것 아닌가."

"그, 금고가 비어 있습니다, 각하!"

베라의 울먹임에 카일론의 눈이 매섭게 가늘어졌다.

"아리아드네가 공금을 횡령해서 나갔단 말인가!"

"아닙니다, 각하!"

헤런이 절규하듯 장부를 펼쳤다.

"공작가의 정규 계좌는 혼인 전부터 마이너스였습니다! 선대 각하의 부채로 가문 금고는 진작에 바닥나 있었습니다!"

카일론의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지난 석 달 동안 연회가 열렸고 최고급 요리가 올라왔다!"

"그 모든 비용을 공작부인께서 메우고 계셨습니다!"

헤런이 붉은 장부를 짚었다.

"부인께서 지참금과 개인 무역 배당금을 털어 매달 적자를 메우셨습니다. 상인들을 만나 단가를 깎고 납기를 연장하며 가문의 체면을 지탱한 건 공작부인이셨습니다!"

카일론의 호흡이 멎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장부를 넘겼다. 아리아드네의 단정한 글씨로 적힌 대납 내역들이 빼곡했다.

'주방 식자재 대금 650골드 아리아드네 개인 자금 대납.'
'하인 45명 급여 135골드 개인 금고에서 전액 지급.'
'외벽 보수비 200골드 전액 대납.'

카일론이 당연하게 마셨던 최고급 와인도 그가 걸쳤던 고급 의전복도 전부 그녀의 피땀으로 치러진 것이었다.

숫자 하나하나가 카일론의 뺨을 후려치는 듯했다.

"그 여자가…… 혼자서 이 돈을 다 냈다고?"

"예, 각하. 부인은 위자료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사적 지원을 끊고 나갔을 뿐입니다. 부인이 손을 떼자마자 우리는 물 한 모금도 공짜로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카일론은 멍하니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에게 매달리던 나약한 여자라 여겼건만 쓰러져가는 공작가를 홀로 떠받치고 있던 것은 아리아드네였다.

"그리고 각하, 오는 12월 14일 북부 운송조합 차입금 이자 1,200골드를 납부해야 합니다. 내지 못하면 은행이 영지와 저택을 압류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정확히 7일 뒤였다.

탁-!

카일론의 손에서 장부가 떨어져 내렸다. 그가 믿어왔던 공작가의 영광과 오만했던 세계에 거대한 균열이 갈라지고 있었다.


정오의 햇살이 수도 중앙 상업 지구 뒷골목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스테리아 상점 안에서는 경쾌한 대패질 소리가 울렸다. 향긋한 대패밥 냄새가 차가운 실내에 은은하게 퍼졌다.

"상단주님, 이쪽 기둥에 덧대목을 대면 겨울 동안 끄떡없겠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노련한 목수가 나무를 매만지며 말했다. 젊은 목수는 바닥에 흩어진 못과 공구를 가지런히 정리했다.

아리아드네는 책상에 기대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창문 두 장과 뒷문 경첩을 손봐 주시고 다음 주에는 붉은 산맥 제3 갱도로 가서 버팀목 보강 작업을 진행해 주세요. 눈이 더 쏟아지기 전에 배수로를 정비해야 합니다."

"예, 상단주님. 일정대로 자재를 준비해 두겠습니다."

아리아드네는 검은 장부를 펼치고 계약금 10골드를 꺼내 목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남은 투자 잔여금과 수리 예산 안에서 한 치의 낭비도 없이 진행되는 명확한 지출이었다. 장부의 숫자는 흐트러짐 없이 정확했다.

마리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홍차 두 잔을 들고 다가왔다.

"상단주님, 따뜻한 차 드세요."

"고마워, 마리."

아리아드네는 찻잔을 감싸 쥐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늘은 12월 7일이었다.

지금쯤 펠른 공작가의 저택은 발칵 뒤집혀 있을 것이다. 식자재 납품 거부와 하인들의 동요, 텅 빈 금고를 마주하고 사색이 되었을 카일론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펠른 공작가를 유지하던 힘은 유서 깊은 가문의 핏줄 따위가 아니라 자신이 쏟아부었던 피땀과 치밀한 장부였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지옥은 12월 14일, 벨리온 은행의 차입금 만기가 도래하는 날에 펼쳐질 터였다.

"상단주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세요?"

마리가 묻자 아리아드네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바람의 냄새가 상쾌하다고 느끼고 있었어."

그녀의 시선이 골목 너머 제국의 거대한 돔 건물을 향했다.

수도 중앙 경매장.

제국 굴지의 대상인들과 귀족들이 진귀한 자원을 거래하는 그곳에서 머지않아 새로운 기회가 열릴 터였다.

펠른의 몰락을 디딤돌 삼아 아스테리아의 깃발을 더 높이 세울 완벽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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