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후 이혼 도장부터 찍었습니다

5화: 아스테리아의 시작
상점 문은 절반쯤 열리다 바닥에 걸렸다.
마리가 어깨로 밀려 하자 아리아드네가 팔을 잡았다. 문 아래로 녹슨 못 끝이 비죽 나와 있었다.
"손 다쳐. 주인에게 공구를 빌리자."
해가 기울어 가는 골목에 마차가 멈춰 있었다. 중앙 대로에서 두 번 꺾어 들어온 곳이었다. 벗겨진 간판에는 찻잎 모양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을 사시려고요?"
마리가 깨진 창 모서리를 바라보았다.
"앞의 가게는 유리도 멀쩡하던데요."
"그 가게 뒤에는 계단이 열두 개 있어. 짐 한 상자 옮길 때마다 사람을 더 써야 해."
아리아드네는 주인에게 빌린 집게로 못을 뽑아 창틀에 올렸다. 치맛자락을 걷고 문턱을 넘었다. 손님이 앉았을 자리보다 안쪽 창고부터 살폈다. 바닥은 길보다 높았고 벽에는 물이 번진 자국이 없었다.
전생에 이 골목의 운송 청구서를 수없이 결재했다.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창고와 수레를 돌리지 못해 짐꾼을 두 배로 쓰는 가게를 숫자로 외우고 있었다.
그때는 남의 비용을 줄이느라 익힌 지식이었다.
"찻잎을 보관하던 방이오."
노인이 묵직한 도구함을 내려놓았다. 레만이라는 상점 주인이었다. 무릎을 굽히다 얼굴을 찡그린 그는 계산대에 기대 숨을 골랐다.
"이젠 사다리 오르는 것도 힘들어서. 겨울이 깊어지기 전에 딸한테 가려고 하오."
그의 옆에서 모피 깃을 세운 중개인이 열쇠 꾸러미를 흔들었다.
"창고에 위층 방까지 딸린 건물입니다. 육백 골드면 거저죠. 어느 가문 앞으로 계약서를 써 드릴까요?"
"제 앞으로 쓰세요."
"그럼 보증해 주실 가문은요?"
아리아드네는 대답 대신 창고 끝의 문을 열었다. 바깥에 쌓인 판자에 막혀 손바닥만 한 틈이 생겼다. 그 너머로 수레바퀴 자국이 보였다.
"이 뒤가 공동 하역 통로인가요?"
중개인이 다가왔다.
"예. 하지만 지금은 물건이 쌓여 있어서…… 보증인부터 말씀해 주시면 가격은 제가 잘 맞춰 보겠습니다."
"외상으로 사겠다고 한 적 없어요."
아리아드네는 문을 닫지 않은 채 손을 내밀었다.
"통로 사용권이 표시된 도면부터 주세요. 살 수 있는 가게인지 확인해야 돈을 내죠."
중개인의 열쇠 흔드는 소리가 멎었다.
"담보와 체납 확인서도 준비해 주세요. 아침에 다시 오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환전소 직원이 환어음 세 장에 지급 도장을 찍었다.
천 골드와 칠백 골드와 오백 골드. 직원은 발행인과 아리아드네의 서명을 대조한 뒤 수수료 십 골드를 뺀 영수증을 내밀었다.
이천백구십 골드.
누구에게도 돌려줄 필요 없는 사업 자금이었다. 아리아드네는 항구 지분 증서를 서류철 안쪽에 그대로 두었다. 당장 큰돈으로 바꿀 수 없어도 주기적으로 수익이 들어오는 자산이었다.
두 사람은 여관에서 묵고 아침에 짐을 모두 마차에 실어 나왔다. 숙박비는 따로 지닌 금화 주머니에서 치렀다. 마리가 빈 어음 봉투를 반듯하게 접었다.
"세 장 다 바꾸셨네요."
"쓸 곳을 나눠 두면 돼."
두 사람이 다시 상점에 도착했을 때 레만은 도면과 권리 증서를 꺼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아드네가 요구한 등록소 확인서에는 담보와 체납이 없다는 표시가 찍혀 있었다.
그녀는 도면의 경계선부터 짚었다. 후문을 나서면 공동 통로였고 짐을 내릴 때 이용할 권리가 매매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오백이십 골드를 드리죠."
중개인의 손이 계약서 위에서 멈췄다.
"어제 육백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창 두 장과 문 수리에 육십. 후문 판자와 폐기물 치우는 데 이십을 잡았어요."
"낡은 건물을 보러 오셨으면서 수리비를 전부 빼시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수리를 끝낸 뒤 육백에 파세요. 저는 다른 곳을 보겠습니다."
아리아드네는 서류를 돌려주었다. 마리도 짐가방을 들었다.
"잠깐."
레만이 중개인의 팔을 눌렀다.
"오늘 돈을 다 줄 수 있소?"
아리아드네는 환전소에서 가져온 봉인 주머니를 계산대에 올렸다.
"이전 증서에 서명하시면 전액 지급합니다. 수리와 정리는 제가 맡을게요. 여기 적힌 창고 선반도 포함해서요."
레만은 벽에 걸린 달력의 동그라미를 엄지로 문질렀다.
"딸애가 모레 데리러 온다는데 더 끌 수도 없겠구려."
그가 계산대 밑에서 포장해 둔 찻잔 꾸러미를 꺼냈다. 가게를 접을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그렇게 합시다."
중개인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나 매도자가 직접 계산대로 끌어당긴 계약서를 되가져가지는 못했다.
양측이 매매 증서에 서명하고 중개인이 입회란을 채웠다. 레만은 받침 종이에 올린 금화를 세 번 세었다. 돈이 맞자 중개인에게서 열쇠를 받아 아리아드네에게 건넸다.
"뒤쪽 문은 들어 올리면서 열어야 하오. 경첩이 내려앉았거든."
아리아드네는 마리와 함께 창고로 갔다. 문을 들어 올리자 이번에는 판자를 밀어낼 만큼 틈이 벌어졌다. 둘이 판자 더미를 안쪽으로 옮기자 바깥에서 기다리던 짐마차를 바로 댈 수 있었다. 마리는 남은 나뭇조각을 쓸어 난로 옆에 모았다.
"마른 건 땔감으로 써도 되겠어요."
아리아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을 불러 치우려던 이십 골드는 운영비에 보탤 수 있었다.
"상자를 여기서 내리면 되겠어요!"
마리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아리아드네는 차가운 열쇠를 손안에서 굴렸다. 펠른의 열쇠보다 작고 거칠었다. 그 어느 문을 열어도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상업 등록소의 서기가 서류 한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상호가 비어 있습니다."
매매 증서에는 아리아드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새 사업체의 이름을 쓰는 칸만 하얬다.
그녀는 펜촉을 잉크에 담갔다. 이름 뒤에 붙이던 가문의 성을 떠올리는 손이 잠깐 멎었다.
아무도 다음 글자를 재촉하지 않았다.
아스테리아.
오래 마음속에만 두었던 이름이 빈칸을 채웠다.
"아스테리아 상단. 대표자는 아리아드네. 맞습니까?"
"맞습니다."
서기는 가문의 문장을 요구하지 않았다. 매매 당사자의 신원 서류와 납부액을 확인한 뒤 소유권 이전을 기록하고 상단 등록증을 내주었다. 건물과 상단의 등록 비용 십 골드가 검은 장부의 두 번째 지출 칸에 들어갔다.
마리는 새 등록증을 두 손으로 받았다.
"정말 이름이 생겼어요."
상점으로 돌아온 뒤 두 사람은 창을 열고 먼지를 털었다. 마리는 입구에 내려 둔 옷가방을 들고 계단 아래의 좁은 벽장부터 열어 보았다.
"여기면 제 이불이 들어가겠는데요."
아리아드네의 손에서 걸레가 멈췄다.
"위에 방 두 개 있잖아. 햇빛 드는 쪽 써."
"아리아드네 님께서 쓰셔야죠."
"나는 창고 쪽 방이 편해. 뒤로 짐이 들어오는 게 보여."
마리는 벽장 문을 놓지 못했다. 누구의 시중도 들지 않는 방을 자기에게 주겠다는 말을 선뜻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리아드네는 빗자루를 세워 두고 계산대 뒤에 종이를 펼쳤다.
"새로 맡길 일도 있어. 창고에 들어오고 나가는 물건을 적어 줘. 처음에는 내가 옆에서 알려 줄게. 월급은 삼 골드. 방과 식사는 별도야."
"월급까지 주실 필요는 없어요. 저 때문에 가게에 쓸 돈이 줄면……"
"물건 하나 잘못 세면 거래가 틀어져. 네가 맡아 주면 내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에는 값을 치러야지."
마리는 손바닥의 먼지를 앞치마에 문질렀다.
"숫자를 빨리 쓰지는 못해요."
"빠른 것보다 틀리면 바로 말해 주는 게 좋아. 숨기지만 않으면 돼."
마리가 종이를 당겼다. 작고 단정한 서명이 급여 조건 아래에 남았다.
아리아드네는 같은 내용으로 한 장 더 써서 마리에게 주었다. 자신도 이제 다른 사람의 하루를 맡는 사람이 되었다. 그 무게를 남에게 떠넘길 생각은 없었다.
남은 돈은 세 몫으로 나눴다. 수리비 육십 골드. 마리의 급여를 포함한 생활비와 운영비 육백 골드. 그리고 첫 투자에 쓸 천 골드.
당장 수입이 없다고 사람에게 약속한 돈부터 빼 쓰지는 않을 것이다.
마리가 씻어 온 나무판에 아리아드네가 상단 이름을 적었다. 마른 잉크를 확인하고 두 사람이 함께 문 옆에 걸었다.
비싼 문장도 금장 테두리도 없었다.
마리는 골목까지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밖에서도 잘 보여요. 상단주님."
처음 듣는 호칭에 아리아드네가 고개를 들었다. 마리가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그녀도 작게 웃었다.
"그럼 안에 책상부터 만들자."
오후의 빛이 계산대 끝에 닿았다.
아리아드네는 판자를 닦아 만든 책상에 지도를 펼쳤다. 등록소에서 폐광 공매 목록을 요청하자 서기가 묶어 준 공고들도 그 옆에 놓았다.
상점만으로는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 팔 물건을 가져와야 했다.
전생의 그녀는 완성된 보석을 비싸게 사들였다. 납품 날짜가 다가오면 원석 주인이 부르는 값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원석이 나오는 땅부터 산다.
아리아드네의 손끝이 지도 북동쪽을 따라 올라갔다. 붉은 산맥. 철이 다 떨어졌다며 채굴업자들이 떠난 비탈에 작은 표시가 세 개 있었다.
마리가 공고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광산도 사시려고요?"
"살 수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야."
"여기는 폐광이라고 적혀 있어요."
"철을 캤던 곳이니까."
에테르.
그 이름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일 년 뒤 마력 자원의 수요가 폭증했을 때 그녀가 대조했던 원산지 기록에는 이 산맥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철광석이 끊긴 갱도 아래에서 붉은 보석이 쏟아졌다. 쓸모없다고 치운 돌이 제국의 마력등과 마법 설비에 들어갔다.
광산을 사도 탐사와 채굴에는 돈이 든다. 보석이 팔릴 때까지 버틸 자금도 있어야 했다. 아리아드네는 운영비 봉투가 닫혀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마리가 세 번째 공고를 펼치다 눈살을 모았다.
"이것만 마감 날짜가 붉은색이에요."
아리아드네가 종이를 받았다.
붉은 산맥 제3 폐광. 최저 매각가 팔백 골드.
기억 속 원산지 번호와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그 아래 붉은 글씨에서 멎었다.
입찰 마감은 12월 6일 정오. 유찰 시 갱구 폐쇄.
오늘은 12월 5일이었다.
아리아드네는 창밖으로 저물기 시작한 골목을 보았다. 전생에 검토한 것은 원산지와 운송 기록이었다. 이 매각 공고를 읽는 건 처음이었다.
접수처는 오늘 다녀온 수도 상업 등록소였다. 그녀는 공고에 적힌 구비 서류를 옮겨 적고 투자금에서 팔백 골드를 따로 세어 두었다. 아직 누구에게도 지급하지 않은 돈이었다.
"마리. 내일 등록소 문이 열리면 바로 가야겠어."
"문을 막아 버린대서요?"
"그래."
아리아드네는 새 등록증을 공고 위에 올려놓았다.
오늘 얻은 이름으로 내일 살 것을 정했다.
"닫히기 전에 우리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