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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8화

신판(神判)의 마스터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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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도산지옥 무죄

칼날이 사라진 바닥에 박덕순이 한 발을 내디뎠다.

나졸의 창이 앞을 가로막았다.

“자리로 돌아가라. 석방 명령은 없었다.”

박덕순의 발끝이 멈췄다. 바닥에는 긴급 보호 조치라는 붉은 글자가 남아 있었다. 그 위에 선 사람은 여전히 죄수였다.

나는 창대를 손으로 밀지 않았다. 귀마를 올려다봤다.

“불효와 유기 혐의에 대한 결정을 내려 주십시오.”

귀마가 멈추었던 판결봉을 거두었다.

“그토록 관할을 따지더니 잊었느냐. 도산지옥은 날붙이와 폭력의 죄를 다룬다. 불효의 최종 심판은 이곳의 일이 아니다.”

그가 서리에게 손짓했다.

“해당 법정으로 다시 보내라. 명부는 그대로 붙인다.”

서리가 접수 기록 옆에 새 종이를 댔다. 윗줄에는 박덕순의 이름이 적혔고 그 아래로 불효라는 두 글자가 따라왔다.

이대로 문을 나가면 창끝만 바뀔 터였다.

“접수 당시의 사건 표제를 읽어 주십시오.”

귀마의 손가락이 멈췄다.

“또 처음부터 하자는 거냐?”

“처음 맡으신 일의 끝을 요구하는 겁니다.”

서리가 내 시선을 받았다. 그는 새 종이를 내려놓고 오래 들춰 모서리가 해진 기록을 읽었다.

“박덕순. 불효죄 예비 심문 대상. 도산지옥 임시 회부.”

“이 예비 심문에서 무엇을 결정하십니까?”

귀마가 나를 노려봤다.

“회부할 죄목이 있는지 가린다. 네가 판관의 직무까지 정할 셈이냐.”

“그 직무를 마쳐 주십시오. 조사해서 성립하지 않은 죄목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나는 서리의 붓 아래 적힌 불효 두 글자를 가리켰다.

“회부 혐의에 대한 판단과 도산지옥의 본심판은 다릅니다. 여기서 벌할 권한이 없다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니 본심판은 각하하십시오. 그 전에 이 심문에서 무너진 혐의를 명부에서 거둬 주십시오.”

박덕순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창끝 앞에서 보따리를 고쳐 안았다.

귀마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

“아이에 관한 말은 들었다. 병든 시어미는 어찌할 것이냐?”


서리가 펼친 명부의 첫 줄에 귀마의 손톱이 닿았다.

“병든 시어미를 돌보지 아니하고 집을 버리고 도주함. 이 문장까지 보호 전환 이송표로 지울 수 있느냐.”

“그 이송표는 아이에 관한 기록입니다. 시어머니에 관한 근거를 따로 보겠습니다.”

나는 박덕순에게 곧바로 질문하지 않았다.

“돌보지 않았다는 행위와 시각을 읽어 주십시오.”

서리의 붓끝이 명부 위를 오갔다.

“집을 떠났다는 기재뿐입니다.”

“시어머니가 어디에 홀로 남겨졌습니까?”

“따로 적힌 장소는 없습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사람은요?”

서리는 명부 뒷면과 접수 기록까지 펼쳤다. 방치한 모습을 보았다는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제출된 기록에는 없습니다.”

귀마가 법상을 두드렸다.

“망자가 제 입으로 반대쪽으로 뛰었다고 했다. 그것보다 분명한 증거가 필요하냐?”

“이웃들이 시어머니를 리어카에 태웠다는 진술도 같이 했습니다. 떠난 방향만 떼어 내면 구조를 나눠 맡긴 행동이 방치로 바뀝니다.”

귀마의 시선이 박덕순에게 꽂혔다.

“그래서 네 시어미가 무사했느냐?”

그녀의 손가락이 보따리 매듭을 파고들었다. 입술이 벌어졌다가 닫혔다.

나는 반박하려던 숨을 삼켰다. 박덕순이 나를 보지 않고 귀마를 보고 있었다.

“그 뒤는 못 봤습니다.”

목소리가 작았지만 법정 끝까지 닿았다.

“같이 갔어야 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도윤이를 업고 돌아섰을 때도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를 태운 리어카는 움직이고 있었고 제 등에 업힌 아이는 숨을 못 쉬었습니다.”

그녀가 천천히 매듭에서 손을 뺐다.

“어머니를 길에 두고 온 것은 아닙니다.”

귀마가 코웃음을 쳤다.

“끝내 모른다는 소리군.”

“모르는 이후를 죄로 채우지 마십시오.”

나는 명부를 접으려는 서리의 손 앞에 빈 첨부란을 펼쳐 두었다.

“시어머니의 이후 행방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방치가 입증된 것은 아닙니다. 이웃에게 인계했다는 진술을 뒤집을 근거부터 내놓으셔야 합니다.”

귀마가 이송표를 밀었다.

“아이도 이름 없는 기록뿐이다.”

“그 아이의 생사를 판결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명 아동이라는 글자가 등잔 아래 드러났다. 박덕순의 시선이 그 위에서 한참 머물렀다.

“도윤 군의 이름을 이 기록에 확정해서 넣을 증거는 아직 부족합니다. 하지만 보호를 맡겼다는 박덕순 님의 진술에는 번호와 재표식 기록이 부합합니다. 길 위 아사를 단정한 정정본에는 그 결론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습니다.”

나는 두 문서를 떨어뜨려 놓았다.

“아이를 찾을 일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죄도 남겨 둘 수는 없습니다.”

박덕순이 털신을 내려다봤다. 이어 스스로 고개를 들었다.

“살아 있다고 써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녀의 엄지가 꽃자수 위를 한 번 지나갔다.

“제가 버렸다는 글자를 거둬 주세요.”


귀마가 판결봉 끝을 서리의 기록대에 댔다.

“재난 중 사정을 참작하여 형을 면한다. 그렇게 적어라.”

서리가 형이라는 글자를 쓰기 전에 내가 입을 열었다.

“무슨 죄의 형입니까?”

법정이 조용해졌다.

“판관님께서 추가로 제출하실 유죄 근거가 있습니까?”

귀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없다면 무죄입니다. 형만 면하면 이분의 명부에는 죄인이라는 표기가 남습니다.”

“끝까지 내 입으로 듣겠다는 것이냐.”

“이분이 자기 이름 아래서 읽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나는 박덕순의 접수 기록과 새 호송 문서를 나란히 두었다.

“예비 심문에서 조사한 불효·유기 혐의는 무죄로 확인하고 회부를 취소하십시오. 도산지옥 본심판은 관할 없음으로 각하하십시오. 형벌 분류와 구금도 함께 해제해야 합니다.”

팔찌는 조용했다. 귀마의 답을 대신해 줄 빛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잿빛 눈이 방청석으로 향했다. 누구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서리는 붓을 든 채 기다렸다.

길어진 침묵 끝에 판결봉이 울렸다.

“망자 박덕순.”

그녀가 보따리를 끌어안았다.

“예비 심문에 회부된 불효 및 유기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무죄로 확인하여 해당 회부를 취소한다.”

서리의 붓이 움직였다.

“도산지옥의 본심판은 관할 없음으로 각하한다. 이 사건에 따른 형벌 분류와 구금을 해제한다.”

나는 판결이 끝난 뒤 손목을 들었다.

“방금 선고한 처분 전부를 기록하십시오.”

신판 팔찌에 붉은 선이 돌았다. 허공에 뜬 문장들은 귀마가 말한 순서대로 판석 가장자리에 새겨졌다. 새 장을 펼치는 소리가 났다.

서리가 붉은 기록과 명부를 번갈아 보며 줄을 그었다. 불효와 유기 두 죄목 옆에 무죄가 적혔다.

나졸이 창을 내렸다.

박덕순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내 말에 그녀가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저 종이는요?”

나졸의 다른 손에는 아직 새 호송 문서가 있었다. 명부가 정정되는 동안 그대로 쥐고 있던 종이였다.

나는 문서를 가리켰다.

“같이 고쳐 주십시오. 출구에서 다시 붙들리지 않도록.”

서리가 자리에서 내려와 그 종이를 받아 들었다. 불효 기재에 취소선을 긋고 귀마의 인장을 찍었다.

“판결 등본도 교부해 주십시오.”

귀마의 턱이 굳었다.

“기록은 법정에 남는다.”

“원본은 남기십시오. 당사자는 어떤 결정으로 풀려났는지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귀마는 서리에게 턱짓했다. 서리는 새 종이에 처분을 옮겨 적었다.

그가 사건 묶음 위에 종결이라는 표지를 얹자 박덕순이 손을 뻗었다.

“도윤이 찾는 일도 끝납니까?”

표지는 두루마리에 닿기 전에 멈췄다.

“회부는 끝났습니다. 행방을 확인해 달라는 요구는 남겨야 합니다.”

나는 이미 보전된 이송표와 정정 전후 기록을 짚었다.

“이 문서들은 지우거나 갈아 끼우지 마십시오. 무죄 결정과 아이의 행방 조회 미종결을 덧붙여 주십시오.”

귀마가 낮게 말했다.

“이 법정이 네놈의 기록고인 줄 아느냐.”

“판관님께서 보전을 명한 자료입니다.”

그는 불편한 표정으로 손을 거두었다.

“보전은 유지한다. 조회 요구는 별도로 남겨라.”

서리가 봉인 끈에 작은 종이를 달았다. 박덕순은 글자가 다 적힐 때까지 바라봤다. 그제야 자기 이름이 있는 등본을 두 손으로 받았다.


검은 문턱 앞에서 박덕순이 한 번 더 멈췄다.

문을 지키는 나졸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나는 대신 종이를 내주지 않았다. 박덕순이 등본을 펴는 동안 곁에 서 있었다.

나졸은 인장을 확인했다. 이어 취소된 호송 문서와 대조하고 통로 한쪽을 비켰다.

“일반 심판 대기는 오른쪽 회랑이다.”

그녀가 발을 옮겼다. 이번에는 아무도 팔을 잡지 않았다.

회랑의 긴 의자에 앉자 박덕순은 보따리를 무릎 위에 놓았다. 털신을 감싼 천을 걷고 눌린 신코를 손가락으로 조금씩 폈다.

꽃자수가 바깥을 향했다.

“늘 밑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녀가 신코를 매만지며 말했다.

“남들이 보면 물을까 봐요. 아이는 어디 있느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박덕순은 등본을 접어 털신 옆에 넣었다. 무죄라는 두 글자가 접히지 않도록 종이 끝을 다시 폈다.

“이제 보여 줘도 되겠어요.”

그 말이 끝나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는 서둘러 손등으로 털신을 가렸다. 젖지 않은 꽃자수를 확인하고 나서야 자기 뺨을 닦았다.

나는 기다렸다.

그녀가 다시 종이를 내밀었다.

“성함도 여기 있네요. 강한결.”

변호인 칸에 작은 글씨로 적힌 이름이었다.

“저 사람들한테도 말해 줘야겠어요.”

그녀가 옆자리 망자에게 등본을 펴 보였다. 그는 명부를 무릎 밑에 숨긴 채 앉아 있었다.

“말을 해도 돼요. 이분이 들어 주셨어요.”

회랑 뒤쪽에서 같은 이름이 들렸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망자가 대기 중인 노인에게 낮게 말하고 있었다.

“직접 들었어. 판관이 무죄라고 했어. 저 사람이 변호인이래.”

노인이 박덕순의 종이를 바라봤다. 다른 망자도 제 명부를 품에서 꺼냈다.

나는 그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무릎을 굽혔다. 칼날에 베였던 다리가 뒤늦게 떨렸다. 이태가 팔꿈치를 받쳤다.

“앉아요. 듣는 데 다리까지 쓸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 의자 끝에 앉았다. 벌어진 손바닥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이태가 망자들에게 한 번에 다가오지 말라고 손짓했다. 그들 사이에서 목깃을 움켜쥔 청년 하나가 나왔다.

“강한결 변호인님.”

청년의 손에 든 회부표가 떨렸다. 그는 박덕순을 한 번 바라보고 내 앞에 종이를 내밀었다.

“저도 제 명부를 볼 수 있습니까?”

나는 내밀어진 종이를 받았다. 이름보다 먼저 죄목이 눈에 들어왔다.

원한귀.

“회부 이유를 들으셨습니까?”

청년이 쥐고 있던 목깃을 놓았다. 천 아래로 칼에 찔린 자국이 드러났다.

“저를 찌른 사람을 찾아 달라고 했습니다.”

청년이 회부표의 죄목을 손끝으로 눌렀다.

“그랬더니 이걸 주더군요. 원한을 버리지 못한 죄라고.”

그의 손끝이 종이 아래로 떨어졌다.

“제가 죽었는데 벌도 제가 받아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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