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악녀는 다이아몬드로 복수한다

2화: 피 묻은 바위의 푸른 결
세레나는 차가운 물속에서 숨을 토해냈다.
젖은 흙과 피 냄새가 목구멍을 막았다. 이마 한가운데는 망치로 두드려지는 듯 욱신거렸고 갈비뼈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날카롭게 찔렸다.
눈을 뜨려 했지만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았다.
부서진 나무가 등 뒤를 누르고 있었다. 왼쪽 다리 위에는 마차 좌석의 잔해가 걸쳐 있었다. 발목을 움직여 보자 감각은 남아 있었다.
세레나는 손가락부터 움직였다.
오른손.
왼손.
그리고 발끝.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닌 듯했다. 대신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머릿속에서 번개가 터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코트 안쪽을 더듬었다. 젖은 천 아래로 단단한 종이와 차가운 금속이 차례로 닿았다.
파혼서와 채무 승계서.
어머니의 은빛 브로치.
사라진 것은 없었다.
"으…… 으으……."
바로 앞에서 낮은 신음이 들렸다.
세레나는 눈썹을 타고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냈다. 깨진 창문 너머로 몸을 틀자 앞좌석 아래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마부 한 명이 잔해에 하반신을 깔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얼굴은 빗물과 흙으로 뒤덮였고 한쪽 팔은 이상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마차 밖에서는 다른 마부의 목소리도 말의 울음도 들리지 않았다.
"들립니까?"
마부의 눈꺼풀이 가늘게 떨렸다.
"아가씨……."
"말은요?"
"모릅니다…… 고삐가……."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기침했다.
세레나는 몸을 일으키려다 이를 악물었다.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그때 마차 지붕 위에서 돌이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다.
스르륵.
암벽에서 떨어진 자갈이 깨진 지붕을 때렸다. 발밑의 마차 바닥이 아주 조금 내려앉았다.
이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세레나는 마부를 바라보았다. 그를 두고 빠져나가면 자신은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잔해를 잘못 밟는 순간 마부의 몸은 더 깊이 눌릴 터였다.
"움직이지 마세요."
"저를 두고 가……."
"그건 제가 판단합니다."
세레나는 부서진 창틀 쪽으로 몸을 밀었다. 왼쪽 다리 위의 나무가 살을 파고들었다.
손을 뻗어 젖은 암벽을 짚는 순간이었다.
어둠이 갈라졌다.
회색과 갈색뿐이어야 할 바위 위로 가느다란 색의 선들이 번졌다. 붉은 결은 낡은 천에 꿰어진 실처럼 얽혀 있었다. 그 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암벽 깊숙한 곳까지 이어졌다.
세레나는 숨을 멈췄다.
번개의 잔상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 뜬 뒤에도 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푸른 선은 바위 표면에 맺힌 빛이 아니었다. 암벽 안쪽으로 촘촘하게 파고든 광물의 맥이었다.
선들이 모이는 곳마다 작은 흰 점이 박혀 있었다. 빗물에 씻긴 투명한 결정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세레나는 손을 뗐다.
색의 결이 흐려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푸른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다시 손을 뻗어 암벽을 누르자 색이 돌아왔다.
두 걸음.
세 걸음.
세 걸음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바위는 다시 젖은 회색 덩어리가 되었다.
세레나는 비에 젖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광석을 쥐여주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에 속지 마라. 돌의 진짜 숨결은 겉면이 아니라 가장 깊은 틈새에 숨어 있는 법이란다.
그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세레나는 다시 암벽에 손을 대었다.
이번에는 푸른 맥 아래로 검붉은 결이 기어가는 것이 보였다. 검은 가루가 뭉친 곳에서는 붉은 결이 끊겨 있었다. 푸른빛도 그 주변에서 탁하게 일그러졌다.
그 부분을 오래 바라보는 순간 관자놀이가 쪼개질 듯 아팠다. 속이 뒤집히며 혀끝에 쇠 맛이 번졌다.
세레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저건…… 안 돼."
무엇이 안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검은 가루 가까이에서 바위를 읽는 일은 위험하다는 본능이 선명했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 다시 암벽을 바라보았다. 푸른 맥과 붉은 균열이 갈라지는 지점을 찾았다.
마차의 무게를 받치는 암반은 한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왼쪽 위의 붉은 결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오른쪽 아래의 푸른 결은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부서진 차축을 오른쪽 아래에 받치면 지붕이 더 내려앉지 않을 것이다.
세레나는 차축 쪽으로 기어갔다. 무릎이 젖은 나무 조각에 긁혔지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차축은 무거웠다. 두 손으로 들어 올리려던 그녀는 곧 힘을 거두었다.
대신 바닥에 떨어진 마차 널빤지를 차축 아래로 밀어 넣었다. 널빤지 끝을 어깨로 누르자 금이 간 나무가 휘었다.
"조금만……."
마차가 끼익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세레나는 남은 힘을 모두 실었다. 널빤지가 차축을 받치고 나서야 다리를 누르던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
그녀는 다리를 빼고 마부에게 다가갔다.
"팔을 움직일 수 있습니까?"
"오른팔은……."
"그럼 이 끈을 잡으세요."
세레나는 끊어진 마구끈을 마부의 가슴 아래로 통과시켰다. 젖은 가죽이 피 묻은 옷에 달라붙었다.
"제가 끌어낼 겁니다. 돌이 내려오면 손을 놓지 마세요."
"아가씨가 먼저 나가야……."
"제가 정합니다."
세레나는 창문 너머 암벽에 손을 댔다.
푸른 결이 다시 번졌다. 너무 가까운 탓에 색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붉은 균열은 지붕 위를 가로질렀고 검은 가루의 결은 그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안전한 순간은 길지 않았다.
세레나는 눈을 감고 셋을 셌다.
하나.
둘.
셋.
"지금입니다."
그녀는 마구끈을 잡아당겼다. 마부가 신음하며 몸을 끌어올렸다.
발목이 잔해에 걸렸다. 세레나는 널빤지 끝을 틈에 끼워 넣고 온몸으로 밀었다. 한 번으로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세요."
두 번째로 힘을 주자 나무가 갈라졌다.
마부의 다리가 빠져나왔다. 동시에 마차 지붕에서 큰 돌 하나가 떨어졌다.
쾅!
세레나는 마부의 머리를 끌어안고 몸을 낮췄다. 돌이 등 위를 스치며 바닥에 박혔다.
"이제 기어가세요."
마부는 제대로 걷지 못했다. 세레나는 그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치고 부서진 창문 쪽으로 밀었다.
창문 밖에는 암벽에서 튀어나온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두 사람이 눕기에는 좁았지만 빗물이 쏟아지는 마차 아래보다는 나았다.
세레나는 마부를 먼저 끌어올렸다. 손바닥이 돌에 쓸려 살갗이 벗겨졌다.
마부가 평평한 바위에 쓰러지자 세레나도 뒤따라 기어 나왔다.
밖으로 나온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빗물이 얼굴을 씻었다. 이마의 피가 눈가와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마부는 숨을 쉬고 있었다.
세레나는 그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자신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색이 흐려졌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서로 섞여 회색으로 뭉개졌다.
세레나는 눈을 감고 손등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돌의 상태를 읽는 감각은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완전히 껐다 켜는 힘은 아니었다. 가까이 닿으면 밀려들었고 오래 붙잡고 있으면 몸이 먼저 한계를 알렸다.
"아가씨…… 도망치셔야 합니다."
마부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위쪽 길은요?"
"무너졌습니다."
세레나는 마차가 처박힌 암벽을 바라보았다.
빗물이 흙을 씻어내며 바위 틈새를 넓히고 있었다. 그 틈 안에서 작은 투명한 조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레나는 한 걸음 다가갔다.
세 걸음 안이었다.
푸른 결이 다시 선명해졌다.
이번에는 넓은 맥이 보였다. 푸른빛은 한 줄기가 아니었다. 암벽 안쪽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모이며 깊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손톱만 한 결정 하나가 빗물에 씻겨 나왔다.
세레나는 손을 뻗어 조각을 집었다.
차가운 결정이 손바닥 위에서 미끄러졌다. 표면은 거칠었지만 안쪽은 맑았다. 번개가 칠 때마다 투명한 면 안에 푸른빛이 잠깐 머물렀다.
다이아몬드 원석.
세레나는 보석 세공 수업에서 보았던 결정면을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드러난 각과 탁하지 않은 중심은 단순히 반짝이는 돌과 달랐다.
정확한 가격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손톱만 한 돌 하나로 십만 골드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레나는 조각을 소매 안쪽의 찢어진 안감에 넣었다. 브로치와 서류가 있는 주머니와는 다른 곳이었다.
그때 검은 가루가 묻은 틈이 눈에 들어왔다.
확인하려고 몸을 굽히자 검은 결 주변의 푸른빛이 한순간에 뒤틀렸다.
속이 울렁거렸다.
색이 무너지고 귀 안쪽에서 날카로운 이명이 솟았다. 세레나는 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이번에는 완전히 눈을 감았다.
검은 광석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저것이 다이아몬드 맥과 함께 있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했다.
암벽 안에는 빛나는 원석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푸른 맥을 병들게 하는 듯한 검은 것이 섞여 있었다.
멀리서 뿔나팔 소리가 들렸다.
한 번.
잠시 뒤 두 번.
폭풍을 가르며 말발굽 소리가 이어졌다. 사라진 마차를 찾는 신호였다.
루메인 쪽에서 사용하는 변경군의 신호일지도 몰랐다. 북부 변경공 카시안 루베른의 병사들이라면 이 험한 산길을 지나갈 수 있었다.
곧 횃불이 보였다.
"사고 현장을 수색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나!"
굵은 목소리가 빗속에서 울렸다.
세레나는 부상당한 마부를 바라보았다. 그를 숨길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들어온 작은 원석과 암벽 속의 푸른 맥까지 알려줄 이유도 없었다.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피 묻은 얼굴을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한 명은 살아 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말은 똑똑히 나갔다.
횃불이 가까워졌다.
세레나는 소매 안쪽의 작은 결정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구조받는 것과 가진 것을 빼앗기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그녀는 바위 속 푸른 맥의 위치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살아남은 뒤 지켜야 할 첫 번째 자본은 이미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