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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30화

천마신교의 수석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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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피로 빚는 자들

혁련광은 약병을 밀어냈다. 막 되찾은 침이 마르는지 입술을 여러 번 훑었다.

“교주님의 주화입마도 그 술 때문이라는 뜻입니까?”

준우의 물음에 노인의 손이 멎었다.

“오래된 병이다. 병 하나를 보고 뿌리까지 알 수는 없지.”

노인은 조금 전보다 깊은 어둠 속으로 등을 묻었다. 더 묻는다고 입을 열 사람은 아니었다.

준우가 약병을 설아에게 돌려주었다.

“그럼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을 알려주십시오. 저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표식이 있습니까?”

혁련광의 손톱이 현무암 탁자를 긁었다.

기울어진 잔 하나. 잔 밑으로 갈라진 세 줄의 금. 금 끝에 매달린 세 방울.

“옛날에 본 놈의 등에 이것이 있었다. 같은 표식을 쓴다면 숨겼을 것이다.”

설아가 종이를 대어 자국을 옮겼다. 준우는 잔 밑의 세 방울을 한동안 바라보다 일어섰다.

그들이 술성에 닿았을 때 기둥 두 개가 새로 서 있었다. 망치 소리 사이로 물을 찾는 목소리와 노칠의 기침이 들렸다.

위철이 수감 석실 열쇠를 들고 달려왔다.

“약병을 지녔던 놈이 아침부터 떱니다. 죽을 쑤어 줘도 안 먹고 술만 달랍니다. 상처 때문인가 싶어 의원을 불렀습니다.”

“술은 주셨습니까?”

“아직입니다. 허락 없이 물건을 넣지 말라 하셔서.”

준우는 새로 세운 기둥 너머의 양조 천막을 보았다. 끓인 청련근 물을 옮기는 시종들이 오가고 있었다.

“검사할 물과 그릇은 저쪽에서 가져오지 마십시오. 포로의 옷과 씻은 물도 석실 밖으로 빼지 말고요.”

위철의 낯이 굳었다.

“술에 퍼지는 병입니까?”

“아직 모릅니다. 모르는 채로 섞는 것부터 막겠습니다.”

문이 열렸다. 눅눅한 돌 냄새 아래에서 단내가 올라왔다.

술을 받지 못한 포로의 숨에서 덜 삭은 엿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사내의 두 손은 벽 고리에 묶여 있었다. 볼은 움푹 꺼졌고 팔뚝의 힘줄은 팽팽했다. 굶은 뺨과 팔뚝에 선 힘줄이 어울리지 않았다.

설아가 의원에게 종이를 펼쳐 보였다.

“등에 이런 상처가 있었습니까?”

“끌려왔을 때 숨이 가빴습니다. 호흡을 살피고 손목의 출혈부터 막았습니다. 등은 그을음 아래 멍처럼 보여 화상 연고를 덮었지요.”

의원은 사내의 등을 다시 살폈다.

“저것을 새긴 자국이라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준우가 사내의 어깨 뒤로 시선을 옮겼다. 연고를 바른 등이 젖어 있었다. 땀이 고르게 흐르지 않았다. 왼쪽 견갑골 아래 작은 부분만 마른 채 검게 들떠 있었다.

“저곳을 씻어 주십시오.”

의원이 끓여 식힌 물에 천을 적셨다. 검댕과 기름이 닦여 나가자 세 갈래로 갈라진 자국이 드러났다.

설아가 종이를 나란히 댔다.

갈라진 잔과 세 방울. 손톱으로 그린 선보다 촘촘했지만 모양은 같았다.

사내가 몸을 비틀었다.

“살가죽을 벗겨도 말은 안 한다.”

“벗길 생각 없습니다.”

설아가 사내의 손목 곁에 섰다. 의원은 다른 쪽 손목의 맥을 짚고 고개를 끄덕였다.

준우는 탁자에 검붉은 약병을 놓았다. 뚜껑은 열지 않았다.

“이 병을 압니까?”

사내의 눈이 약병에 박혔다. 바로 다음 순간 목덜미의 핏줄이 튀어나왔다.

철컥!

쇠사슬이 벽을 때렸다. 호위가 칼을 반쯤 뽑았고 설아가 사내의 손목을 눌렀다. 돌바닥에 떨어진 사슬이 차갑게 울렸다.

준우는 설아의 등 뒤로 물러났다. 사내의 살갗이 달아오르면서 단내가 짙어졌다.

“기운이 어디서 솟습니까?”

설아의 물음에 의원이 목덜미를 짚었다.

“맥이 먼저 치솟았습니다. 힘을 쓴 뒤부터 속이 빈 듯 떨어집니다.”

사내가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 전 팽팽하던 팔뚝이 축 늘어졌다.

호위가 약병을 가리켰다.

“한 모금 먹이면 입을 열지 않겠습니까?”

준우가 병을 거두었다.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먹이면 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놓칩니다.”

“그럼 저놈이 죽도록 두시겠습니까?”

“상처를 돌보는 일은 계속합니다. 저 병을 다시 먹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준우가 물사발을 밀었다. 사내는 눈을 감은 채 사발을 밀어냈다. 의원은 억지로 먹이지 않고 입술에 젖은 천을 댔다.

“그것으로는 안 돼. 속이…… 안 찬다고.”

“저 술을 마시면 찹니까?”

사내의 혀가 입술을 핥았다.

“칼이 가벼워져. 종일 짐을 져도 숨이 안 차고. 그런데 밤이 되면 뼛속까지 비어. 두 모금으로는 모자라…….”

그는 말을 끊고 준우를 노려보았다. 이미 내뱉은 말을 도로 삼킬 수는 없었다.

준우는 시종에게 그 말 그대로 적으라고 했다. 의원이 살핀 맥의 변화는 그 아래 다른 줄에 적게 했다.

결박에 쓸린 손목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의원이 천을 대려 하자 준우가 유리접시를 내밀었다.

“떨어진 피만 받아 주십시오. 새 상처는 내지 마시고요.”

검붉은 방울에서 쇠 냄새가 났다. 그 뒤로 약한 단내가 따라왔다.

약병에 남은 것과 닮은 계열의 단내였다.

의원이 상처를 씻고 헝겊을 감았다. 설아는 결박을 상처 위에서 옮긴 뒤 고리가 느슨해지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물은 손 닿는 곳에 두십시오. 다시 맥이 떨어지면 바로 부르시고요.”

준우가 병을 천으로 가리자 사내의 시선이 천 위에 붙었다. 힘이 빠진 뒤에도 그 눈은 병을 놓지 못했다.


분리한 검사 석실의 탁자에는 접시 세 개가 놓였다.

준우는 약병 바닥의 침전을 가느다란 유리침으로 떠서 두 접시에 같은 양으로 나눴다. 셋째 접시에는 끓여 식힌 물만 부었다. 접시 밑에 서로 다른 먹점을 찍었다.

설아가 물을 담은 바깥 옹기에 손을 댔다. 손등보다 조금 따뜻한 물이었다. 그 안에 작은 옹기를 넣고 첫째와 맹물 접시를 얹었다. 둘째는 서늘한 돌판에 두었다.

“기운을 넣지는 말아 주십시오. 온기만 보겠습니다.”

주방에서 곡주를 살필 때처럼 준우가 모래시계를 뒤집었다.

모래가 반쯤 내려갔을 때 따뜻한 접시 가장자리에서 작은 기포가 맺혔다. 검붉은 침전이 부풀어 젖은 가죽처럼 들렸다. 달착지근한 냄새 끝에 시큼한 뒷내가 붙었다.

돌판 위 접시는 조용했다. 맹물에도 거품은 없었다.

준우는 두 시료의 자리를 바꿨다.

따뜻해진 둘째 접시에 거품이 솟았고 식은 첫째 접시는 느려졌다. 침전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았다.

준우는 표면의 기포를 걷어 내고 더 기다렸다. 작은 거품이 다시 가장자리에 모였다.

설아가 포로의 피를 받아 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저 피에서도 자랍니까?”

“향만 닮았습니다. 피에서 자라는지는 아직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준우가 접시 옆에 시간을 적었다. 과실도 곡식도 넣지 않은 찌꺼기에서 거품이 되풀이되었다.

온기로 기체가 빠져나온 것인지 발효가 이어진 것인지 더 지켜봐야 했다. 그는 그 차이도 기록에 남겼다.

그는 포로의 마른 팔과 팽팽한 힘줄을 떠올렸다. 술을 달라던 소리도.

“몸이 따뜻하면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배 속에서 술을 빚는다는 뜻입니까?”

“그렇다면 술덧 대신 피가 들고 땔감 대신 그 사람의 내공이 들겠지요.”

설아의 손이 검집 위에서 굳었다.

“그래서 힘이 솟다가 몸이 마르는 것인가.”

준우는 기록의 마지막 줄 앞에 ‘추정’ 두 글자를 붙였다.

“가능성입니다. 무엇을 먹는지까지 알아낸 것은 아닙니다.”

그는 유리 덮개를 덮었다. 칼이 가벼워진다던 목소리가 귀에 남았다. 그 대가로 사내는 제 몸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식히면 끊을 수 있겠습니까?”

설아가 물었다.

준우는 차가운 돌판 위에서도 남아 있는 침전을 가리켰다.

“느려진 것뿐입니다. 사람의 속을 이 돌판처럼 만들 수도 없고요.”

설아는 더 차갑게 하려던 손을 거두었다.

약병과 접시마다 별도의 봉랍이 씌워졌다. 포로의 피도 다른 상자에 넣었다. 시종이 기록의 사본을 만들 때까지 준우는 탁자 곁을 떠나지 않았다.

멀리 망치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 묶인 사내의 손이 떠올랐다. 저 손이 불을 질렀다. 그가 죽일 뻔한 사람들이 바깥에서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준우는 의원에게 포로의 맥과 열을 밤에도 살펴 달라고 청했다. 방화 지시자를 묻는 심문은 몸이 가라앉은 뒤로 미뤘다. 치료한다고 불을 지른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병을 열어 목구멍에 붓는 일만큼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밤 독고성 앞에 놓인 것은 술잔이 아니라 종이였다.

준우가 낙인의 그림과 검사 기록을 펼쳤다. 약병은 밖의 호위에게 맡겨 두었다.

독고성은 세 방울이 매달린 잔을 내려다보았다.

“대장로가 이것을 안다 하더냐.”

“그분이 그린 그림과 포로의 등에 남은 자국을 대조했습니다. 약병의 침전은 체온 정도의 온기에서 거품을 냈습니다. 포로는 마실수록 더 필요해졌다고 말했습니다.”

독고성이 종이의 마지막 줄을 손끝으로 눌렀다.

‘체내 발효와 내공 소모 가능성. 추정.’

“내 병도 이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비교할 것이 필요합니다. 교주님께서 드셨던 술과 발작이 시작된 때를 알아야 합니다.”

독고성의 손이 종이에서 떨어졌다. 그는 어둠이 고인 창을 바라보았다.

“어릴 적 신공을 익힐 때 붉은 약주를 받았다.”

준우는 붓을 들었다. 설아도 조용히 한 걸음 다가왔다.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한 번 마시면 손이 뜨거워지고 다음 날에는 막히던 초식을 넘겼지. 달았다. 단맛 뒤에…… 쇠 냄새가 남았다.”

독고성은 빈 손을 쥐었다 폈다.

“수련을 그친 밤에도 속이 비었다. 밥으로는 채워지지 않아 다시 잔을 찾았다. 어느 때부터 화기가 솟았는지는 기억이 엉켜 있다.”

준우의 붓끝이 잠깐 멈췄다.

포로가 했던 말과 너무 가까웠다. 가까운 만큼 빈 곳을 제 짐작으로 채우기 쉬웠다.

“닮은 점이 있습니다. 같은 술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당시 약주를 들인 기록부터 찾겠습니다.”

독고성이 낮게 웃었다. 웃음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남이 먹인 술 탓이라 하면 내 손도 깨끗해지는가.”

준우는 붓을 내려놓았다.

“교주님을 낫게 하는 일과 죽은 분들을 기억하는 일은 함께 해야 합니다.”

독고성의 시선이 빈 잔자리로 내려갔다.

“소운. 하운.”

입술 사이에서 두 이름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약주 기록을 보아라. 내 것이라고 덮어 둔 장부도.”

설아가 고개를 숙였다. 준우는 관찰 기록 아래에 독고성이 말한 내용을 옮겼다. 그 옆에는 ‘교주 본인 기억’이라고 적었다.

독고성이 책상 끝의 서찰을 끌어왔다. 무림맹의 인장으로 봉한 초청장이었다.

“오늘 낮에 왔다. 천하의 술 빚는 자들을 한곳에 모으겠다더군.”

그가 봉인을 뜯었다.

낙양. 천하제일주 대회.

준우의 눈이 참가자를 청하는 줄에서 멈췄다. 술성에서 새로 올릴 지붕 아래에도 지켜야 할 입들이 있었다. 낙양 성 안에는 얼마나 많은 잔이 돌고 있을까.

독고성이 낙인의 그림을 초청장 위에 얹었다.

갈라진 잔의 세 방울이 낙양 두 글자를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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