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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싶은 마교 교주2화

퇴근하고 싶은 마교 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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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장부에는 목숨값이 없다

출근한 지 반 각도 되지 않아 진무연의 찻잔 옆에 자백서가 놓였다.

죄를 인정한다는 문장 아래로 손도장을 찍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정작 죄를 지었다는 사내는 문턱에 무릎을 꿇은 채 자기 손가락을 감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물증을 갖추었습니다."

도천악이 붉은 수염을 쓸었다. 그의 뒤로 들어온 두 장로가 집무실의 빈 의자를 차지했다. 아침 햇살이 의수의 마디에 걸렸다.

무연은 자백서 밑에 깔린 명단을 넘겼다.

백삼십 명. 이름과 순서는 그대로였다. 다만 맨 위의 '역적'이 '회계 부정 혐의자'로 바뀌어 있었다.

'잠을 자고 나면 사람이 좀 달라질 줄 알았더니.'

종이만 달라졌다.

"양곡방 하급 회계관 강필. 장부에는 은 이천 냥이 있어야 하는데 금고에는 천사백 냥뿐이었습니다. 육백 냥을 빼돌린 것입니다."

도천악이 얇은 명세서를 밀었다. 맨 아래에 붉은 글씨로 '차액 육백 냥'이 적혀 있었다.

"먼저 이놈에게 공범을 불게 하시지요. 명단의 나머지도 따로 가두면 입을 맞출 수 없습니다. 자백을 받은 뒤 교주께서 처형을 재가하시면 됩니다."

무연은 문턱을 보았다.

강필의 소매 끝은 먹으로 검었다. 등 뒤로 묶인 두 손을 허리 밑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혈풍대 무인이 그를 일으켜 책상 앞으로 끌었다.

"엄지를 내라."

강필이 고개를 저었다. 무인이 그의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자 사내의 목이 움츠러들었다.

"집에는…… 제가 돌아가서 말하면 안 되겠습니까?"

무인은 대답하지 않고 오른손을 잡아당겼다. 도천악의 시선이 숫자에서 강필의 엄지로 옮겨 갔다. 인주 그릇이 달각거렸다.

"끈부터 푸시오."

무인의 손이 멈췄다.

"교주님. 달아나면……"

"문 앞에 백야호법이 서 있습니다."

설백하가 한 걸음 다가왔다. 무인은 즉시 강필의 손을 놓았다. 그녀는 쌍도를 뽑는 대신 허리의 작은 칼로 매듭만 끊었다.

강필은 풀린 손을 바라보면서도 허리를 펴지 못했다.

무연이 도천악의 명세서 위에 자백서를 뒤집어 놓았다.

"장부부터 봅시다. 이 종이에 적힌 숫자를 옮겨 온 원장 말입니다."


혈풍대가 증거로 가져온 양곡방 원장을 내려놓자 책상이 둔하게 울렸다.

서진의가 책등의 끈을 풀었다. 책갈피마다 끼운 전표가 부채처럼 벌어졌다. 도천악은 미리 접어 둔 귀퉁이를 철제 손가락으로 눌렀다.

"이천 냥. 여기 있습니다. 글씨도 저놈 것입니다."

"네가 썼느냐."

무연의 물음에 강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썼습니다. 다만 그 아래에……"

도천악의 의수가 책상을 두드렸다.

쿵.

강필의 입이 닫혔다. 무연의 찻잔에서 물결이 번졌다.

무연은 잔을 책상 안쪽으로 옮긴 뒤 벽에 붙어 있던 작은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서 찾게 하시오."

설백하가 의자를 끌어왔다. 강필은 감히 앉지 못하고 가장자리에 엉덩이만 걸쳤다. 입술이 하얗게 말라 있었다.

"쓸 줄 아는 손을 망가뜨리면 다시 가르쳐야 합니다. 그동안 장부는 누가 쓰고."

무연이 붓을 건넸다.

강필은 붓대를 쥐었다가 놓쳤다. 먹물이 엄지 옆에 떨어졌다. 사내는 그것을 닦지도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원장을 넘겼다.

"이 줄입니다. 군수방 운송비 육백 냥. 정산 전이라 잔액과 따로 적었습니다."

서진의가 몸을 기울였다.

원장의 총액 아래에는 '현은 천사백 냥, 군수방 미정산 육백 냥'이라고 적혀 있었다. 얇은 명세서에는 총액과 현은만 옮겨져 있었다.

"군수방으로 갔다는 증거는?"

도천악이 웃었다.

"제 장부에 제 손으로 적으면 그만입니까? 이런 식이면 누구든 빠져나갈 수 있지요."

강필이 묶음 사이에서 손바닥만 한 전표를 꺼냈다. 모서리는 닳았으나 붉은 인영은 선명했다.

서진의가 전표를 창가로 가져갔다.

"군수방 인수증입니다. 육백 냥. 장부와 날짜가 같습니다."

그가 자기 서류철에서 인장 견본을 펴 나란히 놓았다. 테두리 아래의 작은 이가 두 종이에서 똑같이 빠져 있었다.

"인영도 등록된 것과 일치합니다."

도천악의 뒤에 앉은 장로 하나가 목을 길게 뺐다.

무연은 두 종이의 붉은 사각형을 번갈아 보았다.

"가져간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적은 사람부터 죽이자는 겁니까?"

"군수방의 일은 군수방에서 따질 것입니다. 우선 양곡방의 부족분을……"

"같은 육백 냥입니다."

무연이 자백서를 원장 옆으로 밀었다.

"이 사람 목을 베면 여기에 은자가 돌아옵니까?"

강필의 손에서 붓이 굴렀다. 이번에는 서진의가 떨어지기 전에 받았다.

도천악은 자백서를 집어 들지 않았다.

"교주께서는 저놈이 결백하다고 믿으십니까?"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돈을 받은 사람도 부르라는 겁니다."

무연은 인수증의 이름 아래를 짚었다.

"실제로 썼는지 확인하십시오. 지출을 허락한 사람도 함께. 이 처형 청원은 반려합니다."

서진의가 빈 종이에 인수자 이름을 옮겼다. 그 옆에 '지출 결재자'라고 쓴 뒤 이름 칸은 비워 두었다.

"군수방의 지출 명령서를 받아야 이 칸이 채워지겠군요."

강필은 한동안 종이를 바라보다가 허리를 조금 폈다.

"저는…… 내일도 양곡방에 나가도 됩니까?"

"오늘 장부부터 맞춰야지. 양곡방에는 네가 여기 있다고 알렸느냐."

"아무에게도 못 알렸습니다."

무연이 설백하를 보았다.

"사람을 보내 주시오. 사고 난 줄 알고 찾으면 또 일이 늘어납니다. 가족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고."

강필은 대답 대신 먹 묻은 엄지를 소매 속에 넣었다. 이번에는 감추는 것이 아니라 꼭 쥐는 모양이었다.


강필을 데리고 서기들이 물러나자 서진의가 다른 장부를 펼쳤다.

"교주님. 저 육백 냥의 행방을 밝혀도 새 수입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운송에 썼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월말의 합계를 짚었다.

"지난달 실제 들어온 돈은 구천 냥입니다. 같은 달 지급해야 할 식량 대금과 운송비와 급료가 일만 이천 냥이고요."

"삼천 냥이 모자란다는 말이군."

"예. 미룬 지급이 다음 달로 넘어갑니다. 장부와 재고의 오차 수만 냥은 별개입니다."

무연은 찻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새는 돈을 막아 봐야 찻집은커녕 밀린 돈부터 갚겠군.'

문밖에서는 강필이 서기에게 자기 책상 위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여섯 번째 창문 아래. 다리가 짧아 나무 조각을 괸 자리라고 했다.

무연은 뒤집힌 자백서를 내려다보았다. 저 사람이 죽었으면 나무 조각의 위치부터 다시 물어야 했을 것이다. 책상이야 새로 놓으면 됐다. 내일도 출근해도 되느냐고 묻던 사람까지 새로 데려올 수는 없었다.

"명단에 적힌 사람들은 각자 장부와 인수증을 총관부에 내게 하시오. 가두지 말고."

도천악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리 숨겨 놓은 증거까지 스스로 바치리라 보십니까? 장로들의 각 부서를 뒤지는 데에는 절차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제출한 범위부터 서명으로 남기겠습니다."

서진의가 장부 목록 옆에 줄을 그었다. 책 이름과 제출자 그리고 도착 시각을 적는 칸이 생겼다.

"못 내는 책은 이유를 쓰십시오. 분실인지 반출인지. 누가 마지막으로 만졌는지도."

무연의 말을 따라 서진의의 붓이 움직였다.

"총관부에서 결재한 문서도 빠뜨리지 말고."

붓이 잠깐 멎었다.

"제 서명이 든 것부터 붙이겠습니다."

무연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서류철을 서진의 쪽으로 돌려주지는 않았다.

"도 장로께서 내신 명세도 누가 무엇을 보고 만들었는지 적어 주시오. 원장의 한 줄이 빠져 있습니다."

도천악의 눈이 좁아졌다.

"본좌에게 죄를 묻는 것이오?"

"문서를 묻고 있습니다."

붓이 도천악 앞에 놓였다.

도천악은 의수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왼손으로 붓을 잡아 자기 이름을 눌러 썼다. 마지막 획에서 종이가 조금 찢어졌다.

다른 장로가 소매 안으로 손을 거두었다.

"이토록 넓게 살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시선은 강필이 앉았던 의자에 머물렀다. 의자를 내주고 손을 풀어 준 뒤 말하게 한다. 한 사람의 답변을 받아 다음 사람의 이름을 적는다.

고문실의 비명보다 조용했다. 그래서 어디까지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서진의는 목록을 훑다 붓끝을 멈췄다.

"가능합니다. 다만 대가가 있습니다. 대조할 서기를 빼면 일상 결재가 밀립니다. 오늘 안에 전부 끝내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안에 끝냅시다. 받을 목록을 정하는 일만."

무연이 책등을 맞춰 밀었다.

"없는 장부를 찾겠다고 있는 장부 쓰는 사람까지 밤새 세워 놓지 마시오. 접수는 해 질 때 닫습니다."

도천악은 종이의 빈칸들을 노려보았다.

무연에게 그것은 내일 다시 묻지 않기 위한 칸이었다. 도천악에게는 이름을 쓰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자리였다.


늦은 오전이 되자 회랑에는 책을 짊어진 사람들이 줄을 섰다.

설백하는 총관부 접수처 앞에 백야대 둘을 세웠다. 서진의는 사람들이 장부를 놓는 즉시 제출표에 표시했다. 강필도 옆에서 군수방 인수금과 대조할 운송책을 골랐다.

"서북 운송 제칠책은 아직인가?"

서진의의 물음에 강필이 받은 책들의 표지를 들춰 보았다.

"검은 천을 댄 책입니다. 지난달 운송 내역을 확인하러 갔을 때 봤습니다. 여기에는 없습니다."

설백하는 그 말을 듣고 회랑을 돌아보았다.

나무 상자를 맞잡은 운반꾼 둘이 줄을 벗어나고 있었다. 상자 위 나무패에 '서북 운송 제칠책'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쪽입니다."

뒤쪽 운반꾼이 어깨를 움찔했다.

"교주님께 직접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설백하는 그들이 향하는 쪽을 보았다. 열린 집무실 창 너머로 무연의 검은 소매가 보였다.

"누구의 지시입니까. 제출표를 보여 주시지요."

운반꾼은 품을 더듬었다.

그 순간 앞의 사내가 상자를 놓았다. 나무 모서리가 돌바닥에 부딪치며 벌어졌다. 두 사람은 서로 반대쪽 기둥 뒤로 몸을 던졌다.

설백하의 손이 쌍도로 갔다.

상자에서 얇은 책 세 권이 미끄러졌다. 그 밑에 철제 활대와 팽팽한 시위가 드러났다. 작은 쇠뇌였다.

"교주님 쪽 창을 닫아라!"

백야대 하나가 집무실로 뛰었다. 다른 하나는 칼집째 든 칼로 시위와 화살 사이를 막았다. 설백하는 두 운반꾼이 사라진 기둥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상자 옆면에는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창을 향해 상자를 들고 서면 뚜껑을 열 필요도 없었다.

'장부를 모으게 하시더니 이것까지 내다보신 건가.'

설백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집무실의 덧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상자 안에 남은 화살촉이 햇빛을 받았다.

구멍 너머로 겨누고 있던 것은 교주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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