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주선의 유령 승객

1화: 빈자리의 한 끼
백준은 새벽 배급표에서 지워진 한 사람의 식사를 발견했다.
수송선 노마의 식당은 지구 시간으로 오전 다섯 시에 문을 열었다. 승객들은 깨어나지 않았지만 냄새는 환기구를 타고 생활 구역으로 흘렀다. 준은 빵 반죽에 효모를 섞고, 재수화한 양파와 감자를 작은 팬에 볶았다. 장거리 항해에서 따뜻한 냄새는 식사보다 먼저 사람들을 깨웠다. 오늘 메뉴는 감자수프와 보리빵. 정원 수확량이 줄어 우유 대신 분말 단백질을 썼다.
식당에는 승객 112명이 등록돼 있었다. 준은 인원수대로 그릇을 내놓고, 식사 후 남은 배급을 계산했다. 그런데 식탁 끝의 30번 자리만 빈 그릇에 숟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수프가 비어 있었다. 그는 장부를 확인했다. 30번 자리의 배급은 30년 전에 중단됐다. 그날 사고로 좌석 주변의 공기가 빠져나갔고, 세 명이 사망했다. 이후 좌석과 통로는 봉인됐다.
“또 없어졌어요?” 재한이 조리실 문에 기대어 물었다.
“누가 먹은 거죠?”
“기계가 흘렸겠지.”
“기계는 숟가락을 쓰지 않아요.”
재한은 장부를 덮었다. 그는 배급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한 끼의 손실이 반복되면 승객 전체의 양을 줄여야 했다. 준은 그릇을 버리지 않고 무게를 쟀다. 수프는 312그램 줄었고, 테이블 위에는 젖은 자국이 남았다. 식당 환기구는 건조했다. 누군가 그릇을 옮겼거나, 좌석 쪽에서 음식을 가져갔다.
준은 카메라 기록을 열었다. 영상에는 자기만 보였다. 식당을 준비하고, 식사를 내고, 빈자리를 돌아본 뒤 그릇을 치우는 모습. 그러나 재생 시각은 그가 30번 자리 앞을 지나갈 때마다 4초씩 건너뛰었다. 시스템 로그에는 영상 손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카메라를 덮고 직접 식당에 남기로 했다.
다은은 항법실 교대가 끝나고 들어왔다. 그녀는 빵 대신 물을 먼저 마셨다. “오늘 궤도 계산에 이상한 흔적이 있어요. 노마가 목적지에서 0.02도 벗어났어요.”
“그 정도면 자동 보정되지 않나요?”
“자동 보정은 어제의 항로를 기준으로 해요. 그런데 우리가 어제 어디에 있었는지가 기록마다 달라요.”
준은 30번 좌석을 가리켰다. “여기도 장부마다 달라요.”
다은은 좌석 봉인 표식을 살폈다. 테이프가 안쪽에서 밀린 것처럼 살짝 올라와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자 준이 말렸다. 좌석은 압력 구획과 연결돼 있어 무단 개방하면 식당 전체를 폐쇄해야 했다. 다은은 말없이 손을 거뒀다. 항법사인 그녀는 시스템을 믿지 않으면서도 규칙을 지켰다. 한번 선체가 손상되면 되돌릴 방법이 없었다.
준은 수프 냄새를 맡았다. 국물에는 후추와 양파, 그리고 레몬 껍질 향이 섞여 있었다. 레몬은 배급표에 없었다. 30번 자리에만 조금씩 사라지는 식사가 있다면, 누군가 자기 몫을 여기로 옮기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재한에게 레몬을 누가 썼는지 물었다. 재한은 조리실 재고에는 없다고 했다.
그날 밤, 준은 조리대에 보리빵 한 조각과 물컵을 놓았다. 식당 조명을 낮추고 30번 좌석을 바라봤다. 20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잠깐 눈을 감았다. 금속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빵은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한쪽에는 아주 작은 손자국이 묻어났다.
준은 의자 아래를 확인했다. 그곳에 낡은 조리표가 끼어 있었다. 날짜는 30년 전, 사고 당일. 메뉴에는 ‘레몬 보리죽’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메뉴는 준의 누나가 마지막으로 조리한 음식이었다. 그는 누나가 어떤 맛을 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장부에는 조리 담당자가 삭제돼 있었다.
“이걸 누가 남겼죠?” 준이 중얼거렸다.
“네 누나가요.”
다은이 뒤에서 답했다. 그녀는 항법 기록을 한쪽 손에 쥐고 있었다. 오늘 궤도 편차를 과거 사고 좌표와 겹쳐 봤더니, 노마가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재한도 조리실에서 나왔다. 그는 조리표를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만해. 그날 기록은 끝났어.”
“누나가 여기서 일했어요?”
재한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조리표를 잡으려 했지만 준이 먼저 집어 들었다. 종이 가장자리에 검은 얼룩이 번졌다. 냉동 구역에서 나오는 기름처럼 묽은 흔적이었다. 좌석 밑에는 숨겨진 통풍구가 있었다. 봉인 벽면에서 공기가 아주 약하게 흘렀다.
준이 통풍구에 손을 대자 차가운 공기가 손끝을 스쳤다. 다은은 항법 기록을 보여 줬다. 노마는 30년 전 사고가 난 좌표로 천천히 방향을 틀고 있었다. 조종 명령은 입력되지 않았고, 자동항법은 현재 경로를 정상이라고 판정했다.
재한은 조리표를 돌려달라고 했다. 준은 왜 누나의 메뉴가 30번 자리 아래에 있는지 묻었다. 재한은 그날 누나가 승객 한 명에게 음식을 가져갔으며, 그 뒤 좌석이 봉인됐다고 말했다. 사고 기록에는 그런 승객이 없었다.
“그럼 한 명이 명단에서 지워진 거네요.” 다은이 말했다.
“그 사람은 죽었어.” 재한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죽은 사람을 다시 불러내면 배가 위험해져.”
준은 빈 그릇을 다시 놓았다. 수프 대신 물을 채웠다. 식당의 압력계가 한 번 흔들렸다. 봉인된 좌석 너머에서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가 났다. 누구도 좌석을 열지 않았다. 그때 인터콤이 켜졌다. 녹음된 안내가 아니라, 숨을 고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레몬을 조금만 더 넣어 줘.”
준은 그 목소리를 알았다. 어린 시절 누나가 그에게 알려 준 조리법에서 들었던, 기억보다 먼저 몸에 남은 목소리였다.
준은 밤 근무가 끝난 뒤에도 조리실을 떠나지 않았다. 빈자리의 식사는 누구 몫에서 빠졌는지 알아야 했다. 배급표는 승객마다 열량을 계산해 하루 단위로 지급한다. 하나가 사라지면 다음 날 누군가의 그릇이 조금 작아진다. 그는 식판을 싣는 카트를 저울에 올렸다. 30번 자리의 그릇은 총중량이 312그램 줄었고, 수저는 제자리였다. 누군가는 국물을 마시되 그릇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준은 식당을 청소하는 수진에게 카메라 기록을 보여 줬다. 그녀는 그 시간에는 식당에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영상에는 준이 지나갈 때마다 4초가 지워졌다. 수진은 재생 화면을 멈추고, 천장 조명에 찍힌 그림자를 가리켰다. 한 사람의 그림자가 아니라 두 개였다. “누군가 안쪽에서 불을 가렸나 봐요.”
둘은 좌석 앞에 서서 손전등을 천천히 움직였다. 봉인 테이프가 붙은 틈 사이로 손가락 하나가 드나들 정도의 공기가 흘렀다. 준은 조리용 온도계를 그 틈에 넣었다. 안쪽 온도는 외부보다 3도 높았다. 압력 차이는 작았지만, 30년 동안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 안에 생명체가 있다면 산소나 음식이 다른 경로로 공급돼야 했다.
수진은 안전 경보를 울리자고 했다. 준은 그러면 좌석이 자동 격리되어 공기 흐름이 끊길 수 있다고 말했다. 둘이 논쟁하는 사이, 식당 한쪽에서 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청소 카트 위에 있던 것이었다. 수진이 돌아서자, 빈자리의 수저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금속이 접시를 긁는 소리는 작았지만, 주변의 식탁을 모두 울렸다.
“누가 거기 있어요?” 수진이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준은 자신이 만든 보리빵을 좌석 앞에 놓았다. “먹고 싶으면 가져가요. 다만 내일 누군가 몫에서 빼지 않도록, 누가 먹는지 알아야 해요.”
잠시 뒤 빵이 사라졌다. 그는 빈 접시를 치우지 않고, 그 자리에 물컵을 하나 더 놓았다. 수진은 그 모습을 찍지 않았다. 기록을 남기면 누군가 좌석을 강제로 열 수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청소 기록에 ‘테이블 30, 미확인 열원’이라고만 적었다. 그 한 줄은 백업에 남지 않아도 다음 근무자에게 전달될 것이다.
새벽 점검을 위해 재한이 돌아왔다. 그는 테이블의 빈 접시를 보자 주방 서랍에서 오래된 메뉴표를 꺼냈다. 그 메뉴표는 지아가 쓰던 것이었다. 재한은 준에게 보여 주지 않으려 했지만, 준은 종이에 적힌 누나의 서명을 알아봤다. ‘백지아.’ 그 이름 아래에는 30번 자리와 같은 필체로 ‘레몬은 마지막에 넣기’라고 적혀 있었다.
“당신은 왜 그걸 숨겼어요?”
재한은 메뉴표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날 이후로 이 배에서 지아를 언급하면 사람들이 위험을 떠올렸어.”
“누나가 위험을 만든 게 아니라, 위험한 사람을 도우러 간 거잖아요.”
“그 사람을 살렸다면.” 재한의 시선이 빈자리에 머물렀다. “왜 그 뒤로 한 번도 답이 없었겠니.”
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다음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냄비에 물을 올렸다. 식당의 불이 밝아지자 30번 좌석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아주 작은 숨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누군가 기침을 참는 소리였다.
준은 그릇 가장자리를 자세히 살폈다. 레몬 향은 국물에서 난 게 아니었다. 오래된 나무 수저 손잡이에 껍질 기름이 배어 있었다. 그 수저는 누나가 쓰던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조리실에 보관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서랍을 열어 보니 자리가 비어 있었다. 누군가 조리실에 들어와 수저를 가져갔다. 그 순간 식당의 출입 기록은 또다시 4초 비었다.
“누가 열쇠를 갖고 있죠?” 다은이 물었다.
재한은 출입 카드를 회수하겠다고 했지만, 준은 카드를 건네지 않았다. “이걸 잠그면 누군가 안에 갇혀요.”
“확인되지 않은 사람 때문에 전 승객을 위험에 두지 마.”
“확인할 방법을 찾겠습니다.”
준은 자리 아래의 통풍구를 손전등으로 비췄다. 안쪽에 작은 빛이 반짝였다. 그는 금속 집게로 종이를 꺼냈다. 누나의 손글씨였다. ‘배고픈 사람에게 먼저 물어볼 것.’ 준은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누나는 음식을 건네기 전 언제나 상대가 원하는 것을 물었다. 그는 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 채 오랫동안 조리법만 따라 했다.
준은 접시에 따뜻한 물과 빵을 새로 놓았다. “이름을 말하고 싶지 않아도 돼요. 오늘은 먹고 싶은 걸 말해 줘요.”
잠시 뒤 수저가 움직였다. 빵은 반으로 갈라졌고, 한쪽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