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한 남편이 예언을 속이려 나를 미워한 줄 몰랐다

13화: 성녀의 방문
상회로 돌아와 장갑을 벗자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남아 있었다.
라일라가 물수건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쥐는 대신 출고 장부를 당겨 왔다. 오후에 보내기로 한 향차 두 꾸러미 옆이 비어 있었다. 늘 이 시각에 물건을 받아 가는 배달꾼이 올 때가 다 되어 있었다.
"이건 아직 안 보냈어?"
"법원에서 자산을 움직이지 말라고 해서요."
나는 받아 온 결정문을 펴 놓았다. 대규모 자산 매각. 외부 후견인 지정. 그 두 줄 아래를 손끝으로 짚었다.
"평소 납품까지 멈추라는 결정은 아니야. 주문받은 건 보내자."
인장을 들자 손바닥이 쓰라렸다. 카시안에게서 터져 나왔던 보랏빛이 떠올랐다. 고통은 알아보았다. 그 고통이 누구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인장을 종이에 눌렀다. 오늘 그가 내 판단을 부정했던 목소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창 아래에서 수레바퀴 소리가 멎었다.
라일라가 포장 끈을 놓고 창가로 갔다. 골목을 가득 메운 흰 마차에 황금 태양이 달려 있었다. 이웃 가게 주인들이 문밖으로 나와 모자를 벗었다.
곧 계단에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에블린 폰 로제 영애를 뵙고 싶습니다. 태양 신전의 세라피나입니다."
문밖의 여인은 온화하게 웃었다. 기도회 행렬에서 멀리 보았던 성녀의 얼굴이었다. 그녀 뒤의 사제가 뚜껑 덮인 향로를 들고 있었다.
라일라의 손이 문고리에서 멎었다.
"그 향로는 밖에 두세요."
내 말에 사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성녀님의 축복에 쓰이는 물건입니다."
"여기는 약초를 보관하는 곳입니다. 들어오는 향은 제가 정합니다."
세라피나가 사제를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들었다. 향로가 문밖으로 물러났다.
"주인의 뜻을 따라야지요."
그녀는 빈 의자에 앉았다. 나는 라일라에게 방문 장부를 펴게 했다. 성녀의 시선이 잉크병 위에서 잠시 머물렀다.
"시녀도 함께 듣나요?"
"제 상회의 일을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라일라 몫의 의자를 탁자 옆으로 당겼다.
세라피나는 소매에서 은색 방울을 꺼냈다. 받침 없는 둥근 방울이 탁자에 닿으며 짧은 소리를 냈다.
그녀를 감싼 은백색은 고요했다. 위로의 말에 어울릴 만한 온기는 그 안에서 찾기 어려웠다.
"오늘 각하의 말씀에 상처가 크셨겠습니다."
찻잔 손잡이에 걸었던 손가락이 굳었다.
심리정에는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내게 아팠겠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다. 성녀가 건드린 곳이 정확해서 나는 오히려 잔을 내려놓았다.
"방문하신 용건을 듣겠습니다."
"각하께서 사과하러 오신다면 문을 열어 주실 건가요?"
그 질문과 함께 성녀가 몸을 조금 기울였다. 고요하던 은백색 가장자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녀의 시선은 내 손에 머물렀다. 나는 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지 않았다.
"상회 문을 여는 일과 그분을 용서하는 일은 다릅니다."
"아직 답을 정하지 못하셨군요."
"성녀님께 드릴 답을 정하지 않은 겁니다."
나는 성녀 뒤에 선 사제를 보았다. 향로를 내려놓은 그의 손에는 작은 수첩이 펼쳐져 있었다.
"제가 그분을 기다린다고 말하면 거기에 적으시겠습니까?"
사제가 펜을 멈췄다. 세라피나의 은백색이 잠깐 선명해졌다. 내가 입을 다물자 그 빛도 느리게 가라앉았다.
나는 잔을 옆으로 밀었다. 나를 위로하는 데에는 저 수첩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라피나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방울을 세워 놓은 뒤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발렌티노와 맺은 인연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분에게 돌아가는 길을 안전하다고 여기지 마세요."
라일라의 펜 끝이 종이를 긁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카시안이 죽을 수 있다고 말하던 얼굴이 겹쳐졌다. 두 사람이 같은 위험을 말하는지조차 나는 알지 못했다.
"그 예언을 보여 주세요."
"아무 준비 없이 읽을 수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 목숨에 관한 경고를 하러 오셨잖아요."
성녀는 대답 대신 찻잔을 내 쪽으로 조금 밀었다. 내가 쥐었던 자리에 그녀의 흰 손가락이 닿았다.
"알아야 피할 수 있는 재앙도 있지만 모르셔야 벗어나는 재앙도 있지요."
나는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성소는 법원에 제 혼인을 유지하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그 인연이 위험하다고 하시는군요. 어느 쪽이 신의 뜻입니까?"
"혼인의 보증을 유지하는 것과 두 분이 다시 가까워지는 것은 다릅니다. 성소의 인도 없이 그분께 다가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결혼을 끝낼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느 문을 택하든 열쇠는 성소에 맡기라는 말이었다.
"제가 그분 곁에 갈지보다 성소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세라피나가 소매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영애께서 위험한 짐을 내려놓으시면 됩니다."
종이 위에는 정화 위탁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응하시면 성소는 상회 자산 제한에 관한 이의를 거두고 법원에 의견을 내겠습니다. 각하의 간섭 없이 장사를 이어 가실 수 있도록요."
나는 첫 장을 넘겼다. 성소 봉인이 있는 분쟁 서류의 원본. 개인이 보관 중인 사본의 수량. 각 사본을 맡은 사람의 이름과 주소.
빈칸마다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르타. 의원장. 겁먹은 목소리로 환자 번호를 읽던 사람들.
"장부만 원하시는 게 아니군요."
"불길한 문장이 어디까지 퍼졌는지 알아야 정화할 수 있지요."
문가의 사제가 다가왔다. 그는 탁자 끝에 놓인 붉은 서류철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라일라가 서류철 위에 손을 얹었다.
"아직 인도 지시를 받지 않았습니다."
"소유권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성소에서 보관할 뿐이야."
사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라일라의 어깨가 굳었다. 나는 의자를 밀고 일어나 사제와 그녀 사이에 섰다.
"손을 거두세요."
사제는 세라피나를 보았다. 성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손이 물러났다.
나는 위탁서를 들어 반환 조항을 짚었다.
"정화가 끝난 뒤 돌려준다고 되어 있네요. 끝나는 날은 누가 정합니까?"
"성소가 판단합니다."
"그때까지 제게는 원본도 사본도 없고 증인이 사는 곳은 성소가 알겠군요. 저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세라피나가 처음으로 찻잔을 들었다. 차를 마시지는 않았다. 잔 아래로 드러난 손가락이 유난히 단단했다.
"그 종이 때문에 사람이 다쳤습니다. 더 늘어나기 전에 맡기시라는 겁니다."
"사람을 다치게 한 건 약통에 넣은 재입니다."
내가 서류철을 열자 이름을 가린 환자 기록이 보였다. 병상에 누운 소녀의 작은 손이 생각났다. 그 아이는 내가 대공과 화해하든 다시는 만나지 않든 깨어나야 했다.
"치료에 필요한 기록까지 넘길 수는 없어요."
성녀를 감싼 은백색은 여전히 잔잔했다. 화를 낼 필요도 없다는 듯한 그 고요함 때문에 등줄기가 차가워졌다.
나는 위탁서 마지막 장을 펼쳤다. 발급처에 성소 인연심사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혼인에 붙인 보증도 이곳에서 다룹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법원에서 받아 온 서류를 펼쳤다. 늑대 봉랍 옆의 은빛 테두리가 빛을 받았다. 세라피나는 손가락 하나를 그 봉인 가까이 댔다가 거두었다.
"그 보증이 없었다면 영애의 안전은 더 불확실했을 겁니다."
"저는 그 보증 때문에 자유를 다투고 있습니다. 라일라. 방금 대답을 적어 줘."
펜이 움직였다.
같은 은빛이 느껴진다고 약방 지시문까지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제 물어볼 곳의 이름이 생겼다.
나는 위탁서를 손바닥 아래에 놓았다.
"제안서를 두고 가시겠습니까? 검토한 내용을 기록하겠습니다."
"그러세요. 영애가 숙고하실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제 이혼 서류에 어떤 근거로 보증을 붙였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성소의 발급 기록을 법원 서류와 대조하고 싶어요."
세라피나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혼인 보증을 설명하는 자리라면 각하도 계셔야 합니다. 영애 혼자 들으실 수는 없어요."
입안이 말랐다. 회랑에서 돌아서던 검은 등이 떠올랐다. 이제 내 삶에 끼어들지 말라고 했던 상대를 다시 불러들여야 했다.
"법원 접수홀로 오세요. 내일 오전에 저도 제 서류를 가져가겠습니다."
"성소가 불편하신가요?"
"제 소송이 있는 곳에서 확인하려는 겁니다. 발급을 요청한 사람과 날짜가 있는 기록을 가져오세요."
"혼인 보증의 발급 항목만 준비하겠습니다. 약방 일까지 성소의 기록을 모두 열어 드린다는 뜻은 아니에요."
나는 그 범위를 방문 장부에 적게 했다. 먼저 어느 손이 내 이혼 서류에 닿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다음 질문은 그 뒤에 하겠다.
세라피나의 손가락이 방울을 감쌌다. 이번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각하께도 전하겠습니다. 두 분 앞이라야 분명해지는 것이 있겠지요."
라일라가 방문 기록을 돌려 보였다. 내일 오전. 법원 접수홀. 혼인 보증 발급 기록 대조. 양 당사자 입회.
세라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기록의 마지막 줄을 읽을 때는 문장보다 내 얼굴을 오래 보았다.
나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성녀가 바라는 대답이 무엇이든 그 자리에서 내 상처를 대신 말하게 둘 수는 없었다.
성녀가 일어나자 문밖의 사제가 향로를 챙겼다. 나는 은방울까지 그녀의 소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문턱 앞에서 세라피나가 돌아섰다.
"오늘처럼 서로를 대하실 수 있겠지요? 내일도."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는 계단을 내려갔다.
마차가 떠나자 라일라가 빗장을 걸었다. 서류철의 끈을 쥐었던 손가락에 붉은 자국이 나 있었다.
"무릎을 꿇을 뻔했어요. 사제가 가까이 오니까 저도 모르게."
"그래도 서류를 지켰어."
나는 물수건을 라일라의 손에 얹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다가 방문 장부를 다시 당겼다.
"서류는 한 장도 안 줬다고 적을게요."
"응. 마르타 부인과 의원장께도 서신을 쓰자. 보관인 이름을 요구하는 사람이 올 수 있다고. 보내기 전에 내가 읽을게."
위탁서를 펼쳐 놓고 라일라가 기록을 마쳤다. 나는 그것을 기존 증거와 섞지 않고 별도 봉투에 넣었다.
탁자 옆에는 아직 향차 두 꾸러미가 놓여 있었다. 라일라가 포장 끈을 집었고 나는 출고증을 접어 그 아래 끼웠다. 매듭을 당기자 손끝에 박하 냄새가 묻었다.
아래층에서 배달꾼이 우리를 불렀다. 나는 내려가 꾸러미를 건네고 출고 장부의 빈칸을 채웠다. 성녀의 마차 때문에 길을 돌아왔다는 투정에 라일라가 짧게 웃었다.
나는 장부를 덮지 않았다. 내일 보내야 할 물건도 그 다음 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 성녀는 우리가 얼마나 멀어졌는지 보려 할 것이다.
나는 발급처가 적힌 줄을 다시 읽었다. 그곳에 닿으려면 카시안 앞에 서야 했다.
카시안이 또다시 나를 밀어낸다면 이번에는 그 말을 듣는 성녀의 얼굴부터 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