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16화: 명령하는 손
바닥 세 칸이 검게 벌어진 채 멎었다.
세 번째 사람은 지후의 손에 옷깃을 잡힌 채 뒤로 넘어져 있었다. 그의 운동화 끝이 닿을 뻔한 칸 아래로 차가운 공기가 올라왔다. 금속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한 번 더 울렸다.
짤랑.
뒤쪽에서 기침이 터지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벽 쪽으로 물러났다.
검은 관 세 개가 캡슐 아래에서 수축했다. 정민이 들어간 관도 그중 하나였다.
설아의 캡슐에서 물이 먼저 빠졌다. 뚜껑이 열리자 설아는 비틀거리며 나와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지후는 세 번째 사람의 옷깃을 놓지 않은 채 손전등을 들었다. 손가락 감각이 늦게 따라왔다. 빛이 통로 끝이 아니라 바닥의 벌어진 틈을 비췄다.
“발을 떼지 마십시오.”
짧은 말이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서로의 등을 밀고 있었다.
“뒤로 가야 해요.”
“앞으로 붙어야지. 여기 계속 있으면 다 같이 떨어져!”
두 목소리가 겹쳤다. 발목을 다친 남자가 벽을 짚고 몸을 돌리려 했다. 그의 발밑에서 먼지가 가늘게 흘러 틈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설아가 물통을 두드렸다.
톡.
지후가 그녀를 봤다.
설아는 손가락으로 통로 중앙을 가리킨 뒤 물통 바닥을 짚었다. 물결은 왼쪽 가장자리가 아니라 벌어진 세 칸보다 안쪽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녀가 젖은 손가락으로 바닥에 글자를 썼다.
가운데
잠시 뒤 한 글자를 더했다.
세 번
통로 중앙에서 낮은 진동이 한 번 지나갔다. 열린 세 칸의 가장자리가 아주 조금 떨렸다.
“설아 씨가 본 건 가운데에서 시작하는 진동입니다. 세 번 반복될 때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걸 어떻게 믿어!”
상철이 소리쳤다.
그는 통로 입구와 사람들의 등을 번갈아 보았다. 정민이 캡슐 안에 있는 동안 줄을 붙잡을 사람이 없었다. 상철은 그 빈자리를 보자마자 앞으로 반 걸음 나왔다.
“지후, 네가 바닥을 읽는다고 사람들 발까지 묶어 둘 거냐. 정민이 있었으면 벌써 줄 세웠어.”
말이 끝나자 상철의 발밑 홈에서 붉은 빛이 번졌다. 지후 쪽으로 향하던 빛과 비슷한 선이 상철의 발끝까지 이어졌다.
[통제 의존 반응 감지]
[판단 대상 분산 실패]
사람들의 시선이 지후에게 몰렸다.
“뭘 해야 해요?”
“지후 씨가 말해 주세요.”
옆구리를 다친 여자가 물통 든 남자의 팔을 붙잡은 채 지후를 보았다.
지후의 손목이 뜨거워졌다. 모든 발의 방향을 정하면 다음 판정에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줄이 무너진다.
“본 것을 말하십시오.”
지후가 손전등을 아래로 내렸다.
“누가 먼저 가는지는 정하지 않습니다. 왼쪽에서 바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본 사람부터 말하십시오.”
발목을 다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세 번째 칸이 열릴 때 먼지가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발자국은 없습니다.”
“오른쪽은요?”
지후가 묻자 옆구리를 다친 여자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물러나면서 오른쪽 벽에 어깨가 닿았어요. 바닥은 안 움직였어요.”
“그럼 오른쪽이 안전한 거지?”
누군가가 말했다.
설아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물통 표면의 물결이 가운데로 모였다가 갈라졌다.
“안전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후가 말했다.
“오른쪽 바닥은 아직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상철이 비웃었다.
“말장난이군. 결국 누구도 못 움직이게 만들잖아.”
그는 발목을 다친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너부터 벽에 붙어. 한 명씩 지나가면 된다.”
남자의 무릎이 굳었다. 상철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바닥의 붉은 선이 꿈틀거렸다.
지후는 상철의 손목 대신 남자의 발끝을 비췄다.
“상철 씨. 당신이 지금 하는 건 지시입니까? 선투입입니까?”
상철의 표정이 굳었다.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거다.”
“그럼 그 사람이 본 걸 먼저 말하게 하십시오.”
지후는 상철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손을 놓고 자기 구역에서 볼 수 있는 걸 말하세요. 당신이 먼저 움직이면 방은 이전 선택과 같은 것으로 기록할 겁니다.”
상철은 이를 악물고 손을 놓았다.
[보류 기록 반응]
[유사 선택 감지]
[반복 선택 미확정]
붉은 선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짙어지지도 않았다.
“봐라.”
상철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이게 지후 방식이야. 지후가 시키고 정민이 손으로 누르는 구조. 정민이 빠지니까 이제 지후가 말로 묶는군. 이게 독재가 아니면 뭐냐?”
몇 사람이 움찔했다.
지후는 반박하지 않았다. 정민은 몸으로 사람을 멈췄고 지후는 손전등과 목소리로 순서를 정했다. 덕분에 살아남았지만 사람들은 이제 멈추라는 신호가 없으면 자기 발을 믿지 못했다.
지후는 설아가 적은 순서표가 남은 상자를 통로와 사람들 사이에 밀어 놓았다.
“독재라고 생각한다면 각자 맡을 구역을 말하십시오. 제가 전체의 발을 정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맡을지는 여러분이 정하십시오.”
지후는 왼쪽과 오른쪽을 나눠 가리켰다.
“왼쪽은 발목 다친 분과 상철 씨가 봅니다. 먼지와 판을 나눠 보세요. 오른쪽은 옆구리 다친 분과 물통 든 분이 맡으십시오. 발과 벽 진동을 나눠 보세요.”
발목을 다친 남자가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먼지를 보겠습니다. 상철 씨는 판을 보세요.”
상철은 잠깐 망설이다 대답했다.
“좋아. 판은 내가 본다.”
옆구리의 여자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 발을 볼게요. 물통 든 분은 벽 진동을 확인해요.”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자리를 바꿨다. 지후를 보던 시선이 두 줄로 갈라졌다.
[역할 단위 분산 확인]
[통제 의존 반응 감소]
통로 중앙에서 진동이 다시 일어났다.
한 번.
열린 세 칸의 금속판이 안쪽으로 미끄러졌다.
두 번째 진동 뒤 식기가 흔들렸다. 상철이 손을 들었다.
“왼쪽 앞 판이 내려갑니다.”
발목 남자가 먼지를 확인했다.
“새 틈은 아직 안 열렸어요.”
세 번째 진동이 왔다.
통로 가운데의 판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앞서 열린 세 칸의 금속판은 반대로 올라와 좁은 발판을 만들었다.
설아가 물통을 두드렸다.
톡.
그녀는 발판 옆 벽에 붙은 가느다란 띠를 가리켰다. 띠 위의 먼지가 다른 방향으로 누워 있었다.
지후가 말했다.
“설아 씨가 본 건 벽 가장자리의 먼지 방향입니다. 발판이 아니라 그 띠가 움직이지 않는 구역입니다.”
상철이 판을 살폈다.
“다음 진동 뒤에 띠의 잠금이 풀릴 거다.”
물통 든 남자가 통을 벽에 대고 고개를 들었다.
“벽 안에서 낮은 소리가 두 번 올라와요.”
지후는 두 사람의 말을 나누어 들었다.
“판이 움직인 뒤 잠금이 풀리는 순서일 수 있습니다.”
그때 정민의 캡슐에서 물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푸른 물이 바닥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뚜껑이 열리자 정민은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한쪽 무릎을 댔다.
지후가 다가가려 하자 정민이 손을 들었다.
“내 발은 내가 확인할게요.”
그녀는 발목을 굽혔다 펴고 왼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손끝은 떨렸지만 움직임은 따라왔다.
“통로는요?”
“각자 본 걸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상철이 끼어들었다.
“지후가 명령을 나눠 줬지. 결국 네가 위에서 정한 거야. 정민도 늘 그랬고. 누가 움직이면 손부터 뻗었잖아.”
정민은 상철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팔꿈치 안쪽을 눌렀을 것이다.
“맞아요.”
사람들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나는 손을 대야 할 때와 말만 해야 할 때를 나누지 못했어요. 누군가를 막으면 당장은 살 수 있었지만 그 뒤에는 다들 내가 잡아 줄 때까지 발을 멈췄어요.”
“들었지? 지후가 사람을 길들이고—”
“당신 말이 전부 맞다는 뜻은 아니에요.”
정민이 끊었다.
“당신이 사람을 민 것도 사실이고 지금 손을 대지 않으면 반복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잡지 않게 할 겁니다.”
정민은 발목 남자와 옆구리의 여자를 가리켰다.
“상철 씨가 누군가를 밀려고 하면 두 사람이 동시에 손목을 막아요. 나 혼자 제압하지 않겠습니다.”
상철이 비웃었다.
“내가 그걸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아?”
“받아들이지 않아도 두 사람이 보고 있습니다.”
정민은 상철의 손을 보지 않고 통로를 보았다.
“위험한 선택을 반복하는 손과 움직임을 먼저 보는 눈은 같은 사람 안에 있을 수 있어요. 하나를 없애는 대신 둘을 따로 감시해야 합니다.”
상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 번째 진동이 통로 아래를 훑었다.
“지금입니다.”
정민이 먼저 말했다.
“왼쪽 판이 내려가고 벽 가장자리 잠금이 풀려요. 안에서 들은 건 잠금이 풀리는 간격뿐입니다.”
상철이 판을 확인했다.
“맞아. 두 걸음 동안 유지된다.”
발목 남자가 먼지를 보며 손바닥을 낮췄다.
“한 명씩. 발판 말고 벽 띠.”
두 줄의 말이 충돌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지후의 허락 없이 한 명씩 벽 가장자리를 건넜다.
설아가 끈을 당겼다. 통로 가운데의 물결이 오른쪽으로 꺾였다는 신호였다. 지후는 상철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상철은 이미 판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두 사람을 막았다.
“아직 안 돼. 가운데가 내려간다.”
지후가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자 가운데 판 아래에서 어둠이 움직였다. 금속판 하나가 뒤집히며 식기 여러 개가 아래로 떨어졌다.
짤랑, 짤랑.
사람들이 움찔했지만 아무도 뒤로 뛰지 않았다.
정민이 상철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오른쪽 간격 유지. 마지막 사람은 내가 봅니다.”
정민은 두 생존자에게 각각 손을 내밀었다. 한 손으로 한 사람의 팔꿈치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벽을 짚었다. 누구도 끌어당기지 않았다.
상철이 먼저 벽 가장자리를 건넜다.
“여긴 움직이지 않는다.”
발목 남자가 먼지를 확인하고 손을 들었다.
“한 명.”
마지막 두 사람이 건너왔다.
통로 끝에 닿자 지후의 손목 열이 손가락까지 번졌다. 손전등을 든 손이 잠깐 처졌다.
정민이 그의 손목을 잡으려다 멈췄다.
“벽에 기대요. 제가 앞을 볼게요.”
“정민 씨가 앞을 보는 건 명령입니까?”
“아니요. 내가 볼 수 있는 위치라서요.”
정민이 대답했다.
“각자 할 수 있는 걸 하는 겁니다.”
통로 끝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문 안쪽에는 긴 식탁 네 개와 사람 수보다 적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은색 식기와 뚜껑이 닫힌 접시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문틀 위에서 검은 글자가 번졌다.
[제4라운드 준비]
[무언의 식당]
[입장 후 발화 금지]
그 순간 식당 안쪽에서 의자 하나가 뒤로 끌렸다.
끼이익.
도윤이 회복 캡슐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귀 옆을 누른 채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방 안에서 난 소리예요.”
지후가 그를 보았다.
“확실합니까?”
도윤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식당 천장과 바닥을 번갈아 살폈다.
“반사된 소리인지 아래 진동인지 나눠야 해요.”
그는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손바닥을 그 옆에 댔다.
“의자 소리 뒤에 바닥 진동이 늦게 왔어요. 소리가 벽을 타고 돌아온 건 아니에요.”
상철이 식탁을 노려봤다.
“말하지 말라잖아. 이제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정민이 상철의 앞을 막지 않았다.
“입장 전까지는 말할 수 있어요.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는 안 됩니다.”
설아가 끈을 문턱에 살짝 던졌다. 끈 끝이 안쪽으로 넘어갔지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식탁 아래에서 금속이 아주 작게 떨렸다.
이번에는 누구도 지후에게 다음 발을 묻지 않았다.
각자 맡은 곳을 보고 있었다. 상철은 식탁과 의자의 수를 세었고 도윤은 바닥에 손을 댄 채 늦게 오는 진동을 기다렸다.
지후는 그 모습을 확인한 뒤 문 안으로 한 발을 옮겼다.
식당 안쪽의 의자 하나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