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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15화

죽음의 방을 탈출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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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흔적을 읽는 사람

톡.

톡. 톡.

톡. 톡. 톡.

도윤의 손가락이 유리 안쪽을 칠 때마다 간격이 짧아졌다.

사람 목소리. 기계 소리. 벽 뒤 소리.

처음 정한 뜻을 순서대로 되짚는 신호였다. 그런데 마지막 세 번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 관이 먼저 조여 들었다. 캡슐 옆 벽이 아주 낮게 울렸다.

공중의 숫자는 01:02를 가리키고 있었다.

[세 번째 회복 대상 합의 제한 시간: 01:02]
[미합의 시 우선도 기록에 따라 자동 배정합니다]

검은 홈 가장자리의 붉은 빛이 지후 발밑으로 기었다.

[자동 배정 예측]
[대상: 강지후]
[사유: 판단 역할 집중]

박상철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봐. 방도 지후라고 하잖아. 손목도 저 모양이고."

정민이 상철 앞을 막았다.

"문구를 읽지 말고 당신이 본 걸 말해요."

"내가 본 건 손이 망가진 놈이야."

상철의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발밑 홈도 붉게 물들었다. 지후 쪽으로 향하던 빛과 가는 선 하나로 이어졌다.

같은 답을 말한 것이 아니라 같은 답을 빌린 반응이었다.

도윤의 손이 멎었다.

그 짧은 정적 사이로 벽 안에서 목소리가 스쳤다. 물에 젖은 종이를 찢는 소리처럼 뭉개진 말이었다.

"...판단을 맡긴 대상..."

다른 목소리가 곧바로 이었다.

"...우선도 기록..."

지후는 벽을 보지 않았다. 방이 손목의 열과 다리의 상처만 세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충분했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

누가 그 말을 자기 판단처럼 되풀이했는지.

그 기록 끝에 가장 많은 판단을 떠맡은 사람을 회복시킨다면 그건 치료가 아니었다. 다음 방을 위해 누구를 잠시 빼둘지 고르는 방식이었다.

지후는 손목을 한 번 굽혔다. 관절 안쪽이 뜨겁게 당겼다.

자신이 회복이 필요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빛이 시키는 대로 캡슐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그때 설아가 유리 안쪽 바닥에 손바닥을 댔다.

푸른 물이 손등을 스치며 검은 관 쪽으로 흐르다가 한 번 꺾였다. 설아는 물결이 꺾인 곳을 가리키고 정민의 발을 보았다.

그리고 유리에 손가락으로 짧게 썼다.

정민이 자기 운동화를 내려다봤다.

오른발 뒤꿈치가 바닥에서 아주 조금 떠 있었다. 왼쪽 다리에 체중을 몰아 둔 탓이었다. 문을 붙잡았던 왼팔은 몸 옆에 내려와 있었지만 손끝이 일정하게 떨렸다.

설아는 다음 글자를 썼다.

잡는 손

지후가 그녀의 글씨를 읽고도 바로 말하지 않자 정민의 눈이 설아에게 갔다.

설아는 손가락으로 정민의 왼팔을 가리켰다. 그 뒤 캡슐 밖의 사람들 쪽을 가리켰다. 회복자가 빠질 동안 누가 줄을 잡을 것인지 묻는 손짓이었다.

지후는 그제야 물었다.

"정민 씨가 문을 열 때 어느 팔을 썼습니까."

"왼팔이요."

옆구리를 다친 여자가 대답했다. 그는 정민의 팔을 오래 봤던 모양이었다.

"지금은 컵도 제대로 못 들어요. 아까 물통 뚜껑을 놓칠 뻔했어요."

정민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 걸을 수 있어요."

설아가 유리를 두 번 두드렸다.

톡. 톡.

기계 소리라는 약속은 아니었다. 정민의 말이 끝나기 전에 물결이 다시 꺾인 지점을 알리는 두드림이었다.

지후는 설아가 쓴 첫 글자와 두 번째 글자를 떠올렸다.

발. 잡는 손.

"걸을 수 있는 것과 사람을 잡아 세울 수 있는 건 다릅니다."

이번에는 지후가 아니라 설아의 유리 위 글씨를 보고 말한 것이었다.

박상철이 코웃음을 쳤다.

"정민까지 들어가면 누가 사람들 통제해. 결국 지후가 또 시키겠지."

"그러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말해요."

정민이 받았다.

그녀는 상자 위 순서표를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젖은 손가락으로 한 줄을 적었다.

정민 - 줄 통제 / 회복 중: 좌우 두 명이 간격 유지

"나 없이도 줄은 만들 수 있어요. 왼쪽은 발목 다친 남자와 당신이 서요. 오른쪽은 저 여자와 물통 든 사람이 보고요."

상철의 표정이 굳었다.

"내가 왜."

"당신이 줄 밖으로 나가면 제일 먼저 밀리는 사람이 생기니까요."

정민의 대답은 건조했다.

상철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거리를 두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지후는 정민을 보지 않고 바닥의 홈만 보았다.

"후보를 고르지 마십시오. 정민 씨가 빠진 동안 자신이 할 일을 말하세요."

발목을 다친 남자가 먼저 손을 들었다.

"왼쪽 간격은 셀 수 있어요. 뛰지는 못하지만 벽 붙어서 서 있을 수 있습니다."

물통을 든 남자가 말했다.

"오른쪽은 내가 봅니다. 손은 멀쩡해요. 밀리는 사람 있으면 잡을 수 있어요."

옆구리의 상처를 누르던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사람 얼굴 말고 발만 볼게요. 넘어지기 전에 먼저 말할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상철이 순서표를 노려봤다.

"내가 왼쪽에 서면 지후는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요."

설아가 유리에 손바닥을 붙였다.

푸른 물결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흔들렸다. 지후가 그녀를 보자 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지후가 들어가면 이 방이 지후에게 몰린 판단을 그대로 기록한다는 뜻이었다.

상철은 한참 말이 없었다.

"난 왼쪽에 선다."

그가 마침내 말했다.

"다음 길 바닥이 꺼지면 내가 먼저 빠지고 싶진 않으니까."

그 말은 모범 답안과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홈은 지후 쪽이 아니라 순서표 아래에서 늦게 빛났다.

다른 홈들도 하나씩 흰색으로 변했다.

[독립 근거 확인]
[세 번째 회복 대상: 최정민]
[합의 편향도: 안정]

정민은 순서표를 남은 사람들에게 넘겼다.

"제가 안에 있는 동안엔 각자 자기 줄만 봐요. 누가 지시 기다린다고 멈추면 그 자리가 비어요."

그녀는 지후에게도 묻지 않고 세 번째 캡슐에 누웠다. 투명한 뚜껑이 닫히고 푸른 물이 천천히 차올랐다.

세 개의 검은 관이 같은 순간 수축했다.

벽 아래의 흰 선이 갈라졌다. 빈틈에서 먼지 없는 통로가 드러났다.

[회복 대기실 통과 조건 충족]
[다음 통로 개방]

지후가 통로로 다가가려 하자 설아가 유리를 두드렸다.

톡.

그녀는 손바닥을 물속 바닥에 다시 댔다. 물결은 열린 통로 쪽으로 퍼졌다가 왼쪽 가장자리에서 가늘어졌다. 벽 아래에는 길게 긁힌 자국도 세 줄 나 있었다.

설아는 왼쪽을 가리킨 뒤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긁힌 줄 세 개라는 뜻이었다.

지후는 그녀에게 가까이 갔다.

"본 것만 말해요. 안전한지 말하지 말고."

설아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녀는 유리에 손가락을 댔다.

물결 작음

긁힘 셋

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아 씨가 본 건 두 가지입니다. 왼쪽 바닥에서는 물결이 작습니다. 벽 아래에 긁힌 자국이 세 줄 있습니다."

"그럼 왼쪽이 안전한 거지?"

상철이 말했다.

설아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러나 고개는 끄덕이지 않았다.

지후가 먼저 답했다.

"아직 모릅니다. 확인할 사람은 왼쪽을 밟지 말고 가장자리 먼지를 봅니다."

발목을 다친 남자가 벽에 손을 짚고 통로 앞에 섰다. 그는 신발 끝으로 먼지에 닿지 않는 곳을 짚었다.

"왼쪽 세 줄은 안쪽으로 끌려가 있어요."

상철이 그 옆에서 말했다.

"끌려간 흔적이면 누가 지나간 거겠지."

첫 번째 남자가 왼쪽 가장자리에 발을 올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 번째 사람이 뒤를 이었다. 바닥은 조용했다.

설아의 눈에 조심스러운 빛이 돌아왔다.

세 번째 사람이 발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통로의 먼지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뒤집혔다.

설아가 물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긁힌 자국은 신발 밑창이 남긴 흔적이 아니었다.

바닥이 열릴 때마다 안쪽으로 끌려 들어간 금속판의 자국이었다.

"멈춰요!"

설아가 유리를 세게 두드렸다.

톡!

지후가 세 번째 사람의 옷깃을 잡아챘다. 손목 안쪽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손을 놓지 않았다.

사람은 뒤로 넘어졌다. 그가 밟으려던 바닥 세 칸이 검게 갈라졌다.

아래에서 차가운 공기가 솟았다.

짤랑.

어둠 속에서 금속 식기가 맞부딪혔다.

설아는 유리 안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잘린 운동화 끈은 지후 손가락에 감긴 채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이번에는 유리에 이렇게 썼다.

내가 틀림

지후는 통로의 열린 틈을 살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설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도 다음에는 결론 말고 흔적이 누구 것인지부터 보세요."

지후는 통로 가장자리의 먼지를 손전등으로 비췄다. 첫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이 남지 않았다. 세 번째 칸이 열릴 때 밀려난 먼지만 벽 아래에 가늘게 쌓여 있었다.

설아가 그 움직임을 따라 눈을 옮겼다. 틀린 흔적을 본 탓에 손끝이 떨렸지만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캡슐 안의 물결이 멎는 순간을 기다렸다. 물은 왼쪽이 아니라 통로 가운데에서 먼저 흔들렸다. 바닥이 아니라 더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직일 때 생기는 파문이었다.

설아는 손가락으로 가운데를 가리켰다. 이번에는 안전하다는 손짓을 하지 않았다.

설아는 숨을 고른 뒤 물속 바닥을 다시 짚었다.

이번에는 긁힌 자국이 아니라 물결이 시작되는 곳을 찾았다.

통로 아래 어둠에서 의자를 끄는 소리가 길게 났다.

다음 방에서는 누군가가 이미 식탁을 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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