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의 등선자(登仙者)

12화: 되돌아오는 칼날
한리는 동부 문턱에서 다리를 접었다가 다시 폈다. 해가 기울었는데도 허벅지의 떨림이 가시지 않았다.
태을봉으로 향하는 길은 북쪽이었다. 지금 걸음을 떼면 비탈 아래에는 닿을 수 있었다. 그다음에 누가 막아섰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계산에서 발이 멈췄다.
"사형. 이것 받으세요."
임영영이 작은 약병을 내밀었다.
"청심초 잎을 걸러 둔 거예요. 쓰라린 데는 조금 도움이 돼요."
"월광초는요?"
"납품할 다섯 뿌리는 그대로 있어요. 이제 겨우 살아났는데 뽑을 수는 없죠."
그녀는 다른 손에 분무 대롱을 들고 있었다. 받침 삼아 괸 나뭇가지가 자꾸 젖어 휜다고 했다. 한리는 약병을 품에 넣고 일어났다. 수선간에서 버리는 쇳조각을 구하면 받침을 바꿀 수 있었다.
혼자 어두운 수로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할 만한 일이었다.
연무장 옆 수선간에서는 숫돌 가는 소리가 났다. 한리가 입구에 닿았을 때 안쪽에서 철검 한 자루가 작업대에 내던져졌다.
"칼끝은 날아갔고 아래에는 금이야. 녹이는 값도 안 나온다."
병기 담당 제자가 손을 털었다.
작업대 앞의 건장한 청년은 검을 집어 들었다. 헝겊으로 감싼 오른손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숫돌만 빌려주십시오. 내일 풀무질을 한 시진 더 하겠습니다."
"쇠를 간다고 갈라진 속이 붙나?"
청년은 고개를 숙인 채 기다렸다. 담당 제자가 기름통을 들며 턱짓했다.
"공구는 제자리에 놔라. 재료는 자투리만 쓰고."
그가 창고로 들어가자 청년은 검을 무릎에 놓았다. 끝이 두 치쯤 없어진 철검이었다. 그는 깨진 날보다 닳아 반질거리는 손잡이를 먼저 닦았다.
한리는 작업대 옆에 선 채 그 손을 보았다. 청년이 손목을 굽힐 때마다 검자루에서 미약한 기운이 거슬러 올라왔다.
`영기 역류 감지`
`반환 지점: 검자루 접합부`
"기운을 빼고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청년의 눈이 한리의 외문 명패에 닿았다가 가느다란 손목으로 옮겨 갔다.
"검을 고칠 줄 아십니까?"
"아직은 모릅니다. 어디서 되돌아오는지 보고 싶습니다."
청년은 작업대 옆 빈자리에서 검을 들었다. 무거운 검이 내려가는데도 어깨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리는 반걸음 옆으로 비켰다.
"이번에는 기운을 조금만 넣으십시오."
검신에 흐릿한 빛이 번졌다. 빛은 검자루 위에서 끊겼다. 청년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늘 여기서 놓칩니다. 쥐는 힘이 모자라서."
그가 다시 손에 힘을 주자 한리는 고개를 저었다.
"기운 없이 휘두를 때는 검끝도 안 떨렸습니다. 기운을 넣을 때만 손이 벌어집니다."
임영영이 대롱을 내려놓고 다가왔다.
"헝겊이 젖었어요. 잠깐 풀어 보세요."
청년은 손을 감춘 채 작업대 옆의 시험용 청죽을 가리켰다. 수리한 날을 시험하도록 같은 굵기로 묶어 놓은 대나무였다.
"이것조차 못 벱니다."
한리는 한 토막을 받침 홈에 세웠다. 청년이 평소의 삼분의 일만 기운을 넣겠다고 말한 뒤 검을 내렸다.
턱.
날이 겉껍질에 걸렸다. 청년의 오른손에서 다시 피가 번졌다.
`입력 대비 유효 전달률: 21%`
`오류: Address Routing Error`
`영류 관측 완료 / 복구 모듈: 경로 교정`
`실행 방식: 수동 / 검신 재생 불가`
한리는 검을 받아 바로 갈지 않았다. 검자루의 감개부터 조금 벗겨 달라고 했다. 청년은 잠시 망설이다 매듭을 풀었다.
납작한 고정쇠 한쪽이 안으로 비뚤어져 있었다. 한리의 시야에 푸른 선 두 줄이 겹쳐졌다. 검 속의 나가는 영류와 돌아오는 영류가 눌린 자리에서 맞물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어제 대련 중에 앞을 막았습니다. 수습 하나가 넘어졌는데 상대가 멈추질 않아서."
"이 검으로요?"
"그때 다른 검은 없었습니다."
청년은 덧붙이지 않았다. 한리는 검자루 밑바닥의 지워진 글자를 보았다.
"손잡이는 바꿔도 됩니까?"
"아버지께 받은 겁니다."
대답은 짧았지만 청년의 손이 검 위를 덮었다.
한리는 손을 거뒀다. 혼자 수로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만한 검수였다. 그의 손과 검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쓸 곳부터 떠올린 자신이 조금 꺼림칙했다.
"고정쇠만 바로잡아 보겠습니다. 사라진 칼끝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이걸로 다시 벨 수 있겠습니까?"
"손으로 되돌아오는 기운은 줄일 수 있습니다. 대신 제가 멈추라면 바로 거두십시오."
청년이 검에서 손을 뗐다.
청년은 수선간에서 쓰던 작은 망치와 쐐기를 꺼냈다. 한리는 그가 건넨 숫돌 모서리로 고정쇠 바깥의 거친 돌기를 갈았다.
쇳가루가 젖은 천에 검게 묻었다.
"실 한 가닥만큼만 넣어 보십시오."
청년의 손에서 흰 기운이 흘렀다. 검자루 위를 지나던 빛이 다시 아래로 꺾였다. 한리가 받친 손끝이 뜨거워졌다.
`경로 교정 실패`
`내측 압착 유지 / 역류 증가`
"거두십시오."
기운이 즉시 끊겼다. 한리는 검을 내려놓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쌌다. 손톱 아래가 욱신거렸다.
겉의 돌기를 깎으면 길이 열릴 줄 알았다. 눌린 고정쇠의 안쪽은 여전히 영류가 지나는 두 홈을 가로막고 있었다.
청년이 검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만두셔도 됩니다."
"잠깐 쉬겠습니다."
한리는 의자에 앉았다. 임영영은 물에 적신 천을 내밀고 약병 마개를 뽑았다.
쓴 추출액이 혀 밑으로 번졌다. 몇 차례 숨을 고르고 나서야 손끝의 화끈거림이 조금 옅어졌다. 하단전은 여전히 텅 빈 주머니처럼 당겼다.
청년이 물었다.
"이렇게까지 할 검은 아닙니다."
"그럼 왜 안 버렸습니까?"
청년은 입을 다물었다. 한리는 약병을 임영영에게 돌려주고 작업대를 살폈다.
"검을 제가 들지 않겠습니다. 받침에 올리고 흔들리지 않게만 잡아 주십시오."
한리는 나무 쐐기를 검자루 아래에 받쳤다. 청년이 감개를 마저 걷고 고정쇠를 붙든 작은 핀을 밀어냈다. 틈이 벌어지자 구겨진 안쪽 모서리가 드러났다.
한리는 거기에 손끝을 댔다.
`교정 지점: 고정쇠 내측 모서리`
`필요 출력: 미세 영기 1회`
`기존 영류 홈 정렬 필요`
기운을 가늘게 밀었다. 돌을 옮기던 때보다 작은 틈이었다. 대신 너무 멀리 움직이면 두 홈 사이의 얇은 벽이 찢어질 수 있었다.
모서리가 실낱만큼 들렸다.
"지금. 아래를 받쳐 주십시오."
청년이 쐐기를 밀어 넣었다. 한리는 기운을 거두고 작은 망치로 고정쇠 옆면을 두드렸다. 한 번 더 치려다가 멈췄다. 검신에 있던 금이 등잔불 아래 반짝였다.
그는 망치를 놓고 숫돌로 튀어나온 부분만 천천히 갈았다. 청년의 이마에서 떨어진 땀이 작업대를 적셨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침내 고정쇠를 제자리에 앉히고 핀을 끼웠다.
임영영이 새 천을 내밀었다. 청년은 손바닥을 감싸고 검자루를 쥐었다.
"이번에도 조금만."
흰 기운이 고정쇠 아래를 통과했다. 검신의 금 앞에서 빛이 잠깐 가늘어졌지만 끊기지는 않았다. 두 치 짧아진 칼끝에 희미한 빛이 맺혔다.
청년의 손가락이 벌어지지 않았다.
한리는 같은 묶음에서 청죽 한 토막을 더 골랐다. 베다 만 것과 나란히 세워 굵기를 맞춘 뒤 받침에 끼웠다.
"아까와 같은 만큼입니다. 더 넣지 마십시오."
청년이 검을 들었다. 같은 발 간격과 같은 호흡이었다.
서걱.
잘린 청죽 윗동이 흙바닥에 떨어졌다. 검은 멈추지 않고 받침 아래 빈 공간을 가르다 청년의 허리 옆에서 섰다.
`입력량: 수리 전 시험과 동일`
`입력 대비 유효 전달률: 65%`
`역류 경로 교정 완료`
`검신 균열 잔존 / 시험 출력 초과 금지`
같은 기운이 세 배 넘게 날에 닿았다. 손을 찢으며 새던 힘이 제 갈 곳으로 돌아갔다.
청년은 잘린 대나무를 들었다. 단면을 만진 엄지손가락이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 검을 들자 한리는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한 번만 더 확인하면."
"금을 없앤 게 아닙니다. 기운이 잘 통하니 전보다 쉽게 부러뜨릴 수도 있습니다."
청년은 숨을 길게 내쉬고 검을 눕혔다.
"내일 식은 뒤 고정쇠를 다시 봅시다. 그때까지 방금 쓴 양을 넘기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는 허리춤의 낡은 주머니를 풀었다. 동전 두 닢이 작업대 위로 굴러 나왔다.
한리는 떨어지려는 동전을 잡아 다른 한 닢과 함께 주머니에 돌려놓았다.
"먼저 분무 대롱을 받칠 쇳조각을 구해 주십시오.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청년이 임영영의 대롱을 보았다. 그는 자투리 쇠가 담긴 상자를 가져와 대롱을 눕혀 보더니 모서리가 둥근 조각 둘을 골랐다. 거친 부분까지 갈아서 건넸다.
"저는 장걸입니다."
"한리입니다."
장걸의 손이 멈췄다.
"서쪽의 물 새는 동부에 사십니까?"
마침 임영영이 마개를 닫은 약병을 돌려주었다. 한리는 그것을 품에 넣다가 멈췄다.
"누가 그걸 물었습니까?"
"낮에 회색 도포를 입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 동부에 새로 든 제자가 한리냐고. 배정청으로 가 보라고 했습니다."
장걸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해 진 뒤에도 밭에서 일하느냐고 묻기에 그것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아는 분입니까?"
한리는 수문 벽을 덮던 흙먼지의 감촉을 떠올렸다. 같은 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뿐 아니라 동부가 비는 시간까지 알아보고 있었다.
"짐작만 있습니다."
장걸이 검을 등에 묶었다.
"내일 검을 가져가겠습니다. 찾아오는 길에 그 사람을 보면 얼굴도 봐 두겠습니다."
"쫓지는 마십시오."
장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출입문 쪽으로 먼저 몸을 돌려 어두워진 길을 살폈다.
한리는 약병을 마저 넣고 서쪽 갈림길을 보았다.
나오기 전에 동부 문을 잠갔다. 안에는 등잔도 켜 두지 않았다.
지금 그 문틈으로 빛이 새어 나온다면 자기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