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자가 된 악신(惡神)의 교주

75화: 받지 않은 귀환
열여섯 번째 두드림이 멎은 뒤에도 항아리 안의 열쇠는 한동안 떨렸다.
카일은 빈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손등의 검은 흔적이 열쇠 고리를 향해 뻗었지만 피부 아래에서 멈춰 있었다.
―이번에는 네가 받으면 된다.
파멸의 별이 속삭였다.
카일은 항아리를 보며 입술만 움직였다.
‘받는다는 말부터 확인하고.’
창고에서 술집 주인이 나왔다. 이름 없는 젊은 인부도 문가에 서 있었다. 밤새 잠들지 못한 얼굴이었다. 손님 두 명은 소리를 듣고 자리를 뜨지 않았다.
카일은 항아리 옆에 쪽지를 펼쳤다.
‘직접 관측: 술집 안의 네 사람.’
‘소리의 횟수: 열여섯.’
‘소리의 발화자와 수령자: 확인 전.’
주인이 쪽지를 읽었다.
“아침이 되면 다시 북쪽으로 가요?”
“문을 열었으니 닫힌 곳도 확인해야 합니다.”
그때 술집 문이 거칠게 열렸다.
북쪽 다리 공사 감독이 젖은 장부를 품에 안고 들어왔다. 어젯밤보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철제 태그와 열쇠를 넘기시오.”
주인이 항아리 앞을 막았다.
“왜요?”
“공사장 물품이오. 보관실에서 나온 이상 공사장에서 회수해야 하오.”
카일은 감독의 장부를 가리켰다.
“그 장부에 3-16이 적혀 있습니까?”
“적혀 있소.”
“사람 이름입니까?”
감독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작업 번호요. 사람과 작업물을 구분하기 위한 번호입니다.”
“그럼 왜 사람을 데려가려 합니까?”
카일은 젊은 인부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이 3-16번이라고 말했습니까?”
“장부에 그렇게 적혀 있소.”
“본인이 적었습니까?”
“글을 모르는 사람이오.”
“그럼 누가 적었습니까?”
감독의 손가락이 장부 표지를 두드렸다.
“서기가 적었지.”
“서기의 이름은요?”
감독은 대답하지 않았다.
카일은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거짓말의 냄새라기보다 책임을 떠넘기려는 사람의 냄새였다.
“3-16은 번호입니다. 번호가 사람의 이름도 아니고 물건의 소유자도 아니라면 그 번호만으로 누구를 받을 권리는 생기지 않습니다.”
“당신이 공사장 일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말을 하오?”
“일을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지만 돈을 누가 받아야 하는지는 봤습니다.”
젊은 인부의 얼굴이 굳었다.
카일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3-16번입니까?”
인부는 손목의 붕대를 내려다봤다. 입술이 몇 번 떨렸다.
“모릅니다.”
“감독에게 데려가져 조사받는 것에 동의합니까?”
“아니요.”
“열쇠와 태그가 공사장 물품인지 확인하는 자리에 같이 가는 것에는요?”
인부는 술집 주인과 손님들을 차례로 보았다.
“누가 제 손을 잡아 끌지 않는다면 가겠습니다.”
카일은 감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으셨습니까. 확인에는 동의했지만 인계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름도 없는 자가 무슨 권리가 있다고.”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남의 권리가 되는 건 아닙니다.”
감독은 항아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주인이 몸을 틀어 손을 막았다. 두 손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일은 손을 들지 않았다. 대신 탁자 위의 쪽지를 가리켰다.
“지금 손을 뻗었다는 사실부터 적겠습니다.”
감독의 손이 멈췄다.
장부 안쪽에서 종이가 찢기는 소리가 났다.
검은 글자가 번졌다.
‘수령자: 확인 전.’
감독이 장부를 덮었다.
“오늘 안에 태그를 가져오지 않으면 이 술집도 공사 방해로 기록될 거요.”
“기록하셔도 됩니다.”
카일은 항아리를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다만 기록하는 사람과 직접 본 사람은 나눠 적으십시오.”
감독은 이를 악물고 문밖으로 나갔다.
주인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정말 괜찮아요?”
“괜찮지 않습니다. 그래서 확인하러 가는 겁니다.”
북쪽 다리 아래의 철문은 아침 안개 속에서 더 작아 보였다.
술집 주인은 열쇠를 들었다. 젊은 인부와 손님 두 명이 뒤에 섰고 감독은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카일은 문 옆에 서서 모두의 위치를 종이에 적었다.
“나는 열쇠를 돌리겠습니다.”
주인이 말했다.
“문 안의 사람이나 물건을 받을 권한은 갖지 않아요.”
“그 말도 적어 둬요.”
카일은 종이에 문장을 옮겼다.
철문이 열렸다.
열여섯 걸쇠는 여전히 벽을 따라 놓여 있었다. 열다섯 개의 번호는 흐릿했고 빈 걸쇠 아래의 세 줄 표식만 검게 젖어 있었다.
벽면의 글자가 다시 떠올랐다.
‘수령 완료: 3-16.’
감독이 다리 위에서 소리쳤다.
“봤소? 그건 사람 번호요!”
“당신은 이 글자를 직접 쓴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카일이 대답했다.
“그러니 표기의 뜻도 아직 확인 전입니다.”
빈 걸쇠에서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검은 선이 젊은 인부의 붕대 감긴 손목으로 뻗었다. 인부의 입이 저절로 열렸다.
“받겠습니다.”
주인이 숨을 삼켰다.
“그가 말했어요?”
“아니요.”
인부는 두 손으로 자기 입을 막았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카일은 걸쇠에서 손목으로 향한 선을 바라봤다. 파멸의 별이 속삭임을 키웠다.
―한 가닥만 먹어. 그러면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있다.
카일의 팔 안쪽이 뜨거워졌다. 밤에 삼킨 얇은 가닥이 아직도 팔꿈치 안쪽을 긁고 있었다.
그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먹지 않겠습니다.”
카일이 말했다.
감독이 비웃었다.
“겁을 먹었군.”
“겁을 먹어서 안 먹는 겁니다. 무엇을 없애는지 모르는 힘은 확인이 아니라 훼손입니다.”
카일은 주인을 보았다.
“당신은 저 선이 인부의 손목에 닿는 것을 직접 봤습니까?”
“봤어요.”
“인부가 받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까?”
“들었지만 그 사람이 말한 건 아니에요.”
“손님들은요?”
두 손님이 고개를 저었다.
“입은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저 사람 목소리와 달랐습니다.”
카일은 그 말을 기록했다. 자신은 종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주인이 읽어 주고 손님 한 명이 옮겨 적었다.
‘발화자: 확인 전.’
‘젊은 인부의 직접 진술: 수령에 동의하지 않음.’
‘확인자: 술집을 여는 사람과 두 손님.’
젊은 인부가 종이를 바라봤다.
“제 말도 적혔습니까?”
“당신이 직접 말한 문장만 적혔습니다.”
“그럼 내가 나가도 됩니까?”
“당신이 나가겠다고 말하면 됩니다.”
인부는 빈 걸쇠 앞에서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나는 이 방의 수령자가 아닙니다. 지금 내 발로 나가겠습니다.”
그가 한 걸음 물러났다.
검은 선이 팽팽해졌다. 손목을 잡아당기던 선은 인부의 발끝 앞에서 멈췄다. 벽면의 글자 일부가 흐려졌다.
‘수령 완료:’
뒤의 3-16은 남아 있었지만 사람의 손목으로 향하던 선은 기록지의 빈 칸으로 미끄러졌다.
그 빈 칸에 새 문장이 떠올랐다.
‘수령자: 없음.’
감독이 다리 난간을 내리쳤다.
“그건 인정할 수 없소!”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른 수령자를 제시하는 일은 다릅니다.”
카일은 위를 올려다봤다.
“당신이 3-16을 사람 번호라고 주장하려면 장부에서 그 사람을 지정한 기록과 지정 권한을 함께 보여 주십시오.”
감독은 장부를 펼쳤다. 3-16 옆에는 작업량과 봉투의 무게만 적혀 있었다. 인부의 이름 칸은 비어 있었다.
주인이 낮게 말했다.
“사람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일에 붙은 번호였군요.”
“아직 그렇게 단정하지 마세요.”
카일은 빈 칸을 가리켰다.
“다만 사람이라고 확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감독을 다리 위에 남겨 둔 채 일행은 마른별로 돌아왔다.
장부는 펼쳐져 있었다. 카일이 보지 않는 사이 누군가가 첫 장을 넘긴 흔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검은 글자가 한 줄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확인 대상: 열쇠와 철제 태그.’
‘수령자: 없음.’
‘기록자: 공동 확인.’
카일은 마지막 줄 앞에서 멈췄다.
‘다음 기록자: 바렌.’
바렌 뒤의 획이 가늘게 흔들렸다. 손등의 검은 흔적이 그 글자를 향해 움직였다.
파멸의 별이 웃었다.
―네 이름이 길을 얻었다.
‘가명이다.’
―장치는 가명과 이름을 구분하지 않는다.
카일은 장부에 손을 대지 않았다. 술집 주인이 그를 보았다.
“이번에는 당신이 적어야 하지 않아요?”
“아니요.”
“당신이 제일 많이 봤잖아요.”
“그래서 더 적으면 안 됩니다.”
카일은 종이를 새로 펼쳤다. 주인이 문장을 읽고 손님이 하나씩 확인했다. 젊은 인부는 자신의 거부 문장 옆에 손가락을 눌렀다.
카일은 마지막 빈 칸에 이렇게 적게 했다.
‘바렌의 수령 동의: 확인 전.’
주인이 그 문장을 읽다가 눈을 들었다.
“본인이 확인 전이라고 적어도 돼요?”
“내가 동의했다고 말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럼 이 기록은 누가 책임져요?”
카일은 잠깐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다면 책임질 사람을 하나 만들었을 것이다. 그 이름을 앞세워 나머지 사람들이 뒤로 숨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하면 나머지 손은 깨끗해 보였다.
하지만 장치는 바로 그 빈틈을 먹고 있었다.
“각자 본 만큼 책임집니다.”
카일이 말했다.
“주인은 열쇠를 들고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손님들은 소리와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인부는 자기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이 기록을 나누자고 제안했다는 사실을요.”
주인이 종이에 손가락을 눌렀다.
손님 둘도 차례로 표식을 남겼다.
검은 선이 기록지의 빈 칸에서 멈췄다. 장부의 ‘다음 기록자: 바렌’ 뒤에 붙으려던 획이 끊겼다.
대신 술집 안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딱.
북쪽에서 들려온 소리와 같았다.
카일은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이었다.
북쪽 다리 아래의 보관실에서 소리가 이어졌다.
한 번.
또 한 번.
열쇠 항아리와 철제 태그는 탁자 위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술집 장부의 빈 이름 칸만 검게 젖었다.
흐릿했던 글자가 떠올랐다.
‘셀레스티알.’
카일의 숨이 멎었다.
그 이름은 이곳의 누구도 알지 못해야 했다. 마른별 사람들은 그를 바렌이라고만 불렀다. 술집 주인은 그의 고향도 본명도 묻지 않았다.
그런데 장부의 검은 획은 셀레스티알 뒤에 새 칸을 만들었다.
‘수령자:’
카일은 의자를 밀어냈다. 손등의 흔적이 장부와 기록지 사이에서 길게 늘어졌다.
―돌아갈 곳을 정해.
이번에는 파멸의 별의 목소리인지 장부가 흉내 낸 목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카일은 장부 옆에 빈 종이를 놓았다. 그리고 술집 주인에게 연필을 건넸다.
“셀레스티알 옆에 적으세요.”
주인이 연필을 들었다.
“뭐라고요?”
“수령 동의. 확인 전.”
연필 끝이 종이에 닿았다.
그 순간 북쪽 보관실에서 열다섯 개의 쇠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카일은 창문 너머 어둠을 바라봤다. 장부의 새 문장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기록자: 셀레스티알—’
마지막 획은 이름을 완성하지 못한 채 멈췄다.
이번에는 술집 전체가 아니라 그 이름 하나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일은 연필을 쥔 주인의 손을 막지 않았다.
대신 아직 쓰이지 않은 동의 칸을 가리켰다.
“그 칸은 비워 두세요.”
그가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고 말했다.
“이름이 있다고 해서 받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