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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 없는 세자의 밥상1화

왕관 없는 세자의 밥상

왕관 없는 세자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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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비워 둔 고향 음식

순무를 너무 가늘게 썰면 이가 먼저 서운했다. 유분이는 칼을 세우고 손끝 한 마디보다 조금 짧게 썰었다. 씹을 때 한 번은 아삭해야 했다. 소금을 뿌린 뒤 물을 짜고, 데친 잎을 다져 넣고, 볶은 들깨를 마지막에 섞었다. 메밀 반죽은 얇게 밀면 터졌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반죽의 가장자리를 받치며 여섯 개를 빚었다.

“오늘도 셋은 남겠지.”

박옥련 상궁이 화로 앞에서 말했다. 분이는 대답 대신 만두의 매듭을 하나씩 눌렀다. 순무 마을에서는 세 번 접어 감싼 뒤 끝을 바깥으로 돌렸다. 증기가 빠질 작은 틈이 남았다. 그 틈이 없으면 메밀 껍질이 눅눅해졌다.

“나인은 여섯이라고 적어 갔는데 어제 빈 그릇엔 다섯만 남았습니다.”

분이가 말했다.

“하나는 드셨나 보지.”

“못 드셨습니다. 방 밖에서 기다릴 때 기침만 하셨습니다.”

상궁이 분이의 칼을 봤다. 궁녀가 세자의 식사를 어떻게 아느냐는 말이 나올 줄 알았지만 다른 지적이 먼저였다.

“손끝을 더 접어. 궁에서는 맛보다 네 손이 오래 가야 한다.”

분이는 손가락을 움츠렸다. 여기 온 뒤 칼을 쥔 손에 힘이 자꾸 들어갔다. 이 별궁의 세자는 계승권을 잃었다. 왕관은 다른 이에게 갈 예정인데도 모두 세자라 불렀다. 그는 수라상에 올라간 음식을 거의 먹지 않았다. 주방은 그가 한 입이라도 먹을 만한 상을 매일 새로 준비했다.

분이의 고향 만두는 사흘째 올라갔다. 특별히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었다. 다만 궁 밖 마을에서 보내온 순무를 그대로 남기면 공물이 부실하다는 감사가 내려올 수 있었다. 상궁은 어떻게든 빈 그릇 하나라도 만들라고 했다. 그래서 분이는 매일 그가 먹지 않은 만두 하나가 사라지는 까닭을 알고 싶었다.

최은솔이 상을 들러 왔다. 어린 나인은 찜통 뚜껑을 열자 눈을 깜박였다.

“냄새가 집밥 같습니다.”

“어느 집?”

“그냥, 사람이 사는 집이요.”

분이는 웃다가 만두를 작은 접시에 하나 더 놓았다. 맛을 보라고 하자 은솔은 뜨거운 것을 두 손으로 번갈아 받았다. 들깨가 터지는 소리를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이는 그 얼굴을 보고 오늘의 간이 잘됐음을 알았다.

“세자 저하도 이렇게 드시면 좋을 텐데.”

은솔이 메밀 껍질에 남은 들깨 한 알을 손끝으로 받아먹었다. 분이는 그 작은 동작을 보며 불을 한 뼘 낮췄다. 마지막 한 입까지 고소해야 했다.

은솔이 입을 가리고 말했다. 분이는 상에 올릴 여섯 개를 별도 그릇에 넣었다. 일곱째는 맛을 본 나인의 몫이었다. 장부에는 여섯과 하나를 나눠 적었다. 상궁이 그 기록을 보고 붓을 한번 빼앗았다. ‘조리 확인’이라는 말을 하나 옆에 써 줬다.

세자의 방은 큰 상이 들어가기 어려울 만큼 문지방이 좁았다. 분이는 은솔과 함께 상을 들고 갔다. 이휘는 창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은 거의 펼쳐지지 않았고 그 옆에 놓인 빈 사발만 햇빛을 받았다.

“순무 메밀만두와 맑은 장국입니다.”

분이가 말했다. 이휘는 상이 놓이는 소리를 듣고 책에서 눈을 들었다.

“어제도 같은 말이었지.”

“어제와 달리 순무를 조금 두껍게 썰었습니다.”

“그것까지 말해야 하나?”

“다르니까 말씀드립니다.”

은솔이 옆에서 숨을 삼켰다. 분이는 대꾸가 지나쳤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왔다. 이휘는 만두를 보았다. 들지 않았다. 분이는 고개를 숙이고 방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자 은솔이 그녀의 팔을 잡았다.

“왜 그렇게 말해요? 저하가 화내시면 끝입니다.”

“같다고 하셔서 다르다고 했어.”

“그게 더 무섭습니다.”

두 사람은 복도에서 기다렸다. 방 안에서는 젓가락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휘가 차 한 모금을 마셨고 기침을 한 번 했다. 얼마 뒤 상을 치우라는 말이 나왔다. 분이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만두는 여섯 그대로였다.

세자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주방으로 돌아온 상에는 만두가 다섯이었다.

분이는 은솔을 보았다. 은솔은 상을 내려놓고 곧바로 빈 물통을 들었다. 분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뒷문이라고 답했다. 물은 앞 우물에서 길었다. 분이는 뒤따라가지 않고 찜통을 다시 열었다. 남은 반죽으로 두 개를 더 빚었다. 속은 아직 뜨거웠다.

뒷문 밖에는 어린 짐꾼 둘이 앉아 있었다. 하나는 만두를 먹고 다른 하나는 그 반을 기다렸다. 은솔이 종이로 감싼 작은 조각을 둘째 아이에게 건넸다. 분이는 그 장면을 보고 바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나인이 세자의 음식을 훔쳤다는 말이 되면 아이들까지 잡혔다.

“한 개로 나누면 속부터 떨어져.”

그녀가 말했다. 세 사람이 동시에 돌아봤다. 은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분이는 새로 만든 만두 두 개를 아이들 앞에 놓았다.

“오늘은 이걸 먹어. 상에서 가져온 건 나에게 주고.”

아이 하나가 먹던 만두를 내려놓으려 했다. 분이는 손을 흔들었다. 이미 먹은 것을 빼앗아 어디에 쓸 것인가. 그녀는 아이들이 왜 여기서 일하는지 물었다. 궁 밖 창고에서 짐을 나르며 낮에는 별궁의 공물 수레도 옮긴다고 했다. 품삯은 저녁에 주지만 점심은 따로 없었다.

은솔은 아이들에게 만두를 건네기 시작한 지 나흘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세자가 남긴 떡이었다. 그다음은 죽, 그리고 분이의 만두였다. 세자의 음식이 버려지는 것이 아까웠다는 설명 뒤에 자기 동생 같은 아이들이라는 말이 작게 나왔다.

“저하께서는 아십니까?”

분이가 물었다.

“모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모를 수가 없었다. 방에서 상을 치울 때는 여섯, 돌아오면 다섯. 이휘가 숫자를 세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었지만, 분이는 그가 오늘 책 옆에 둔 빈 사발을 떠올렸다. 먹지 않았으면서 빈 그릇을 하나 남겨 두고 있었다.

그녀는 장부를 들고 세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은솔을 데려가지 않았다. 문밖 군사가 용건을 묻자 조리 확인이라고 했다. 이휘는 이번에는 책을 접고 앉아 있었다.

“장국이 차가웠습니까?”

분이가 물었다.

“따뜻했다.”

“만두 껍질은 어떠셨습니까?”

“먹지 않았다.”

“그럼 빈 그릇 하나를 드신 양이라고 적으면 안 됩니다.”

이휘가 그녀의 장부를 봤다. 분이는 먹은 양과 밖으로 간 양을 다른 칸에 적었다. 세자가 먹었다고 거짓으로 쓰면 나인은 음식을 빼돌리지 않은 것이 되지만 주방의 기록은 틀렸다. 다음 날 누군가 숫자를 확인하면 모든 책임이 은솔에게 갔다.

“왜 지금 말하는가?”

“사람이 먹은 음식과 저하께서 드신 음식은 다릅니다. 저는 만든 음식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휘는 한동안 장부를 봤다. 그는 아이들이 뒷문으로 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은솔을 벌주지 않으려 모른 척했다고 했다. 분이는 그 대답을 듣고 기뻐하지 않았다.

“모른 척하시면 저희가 계속 거짓말해야 합니다.”

“원하면 음식을 더 주라고 명하겠다.”

“저하 몫을 늘려서 밖으로 보내면 낭비한 음식이 더 많아집니다. 배식할 사람 수를 따로 적게 해 주세요.”

세자는 손을 창가로 돌렸다. 밖에서 공물 수레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그의 한 끼에는 수레를 끄는 사람과 상을 나르는 사람이 모두 붙었다. 먹지 않는 것만으로 그 부담을 덜 수는 없었다. 그는 분이에게 붓을 달라고 했다.

장부의 빈 칸에 어린 짐꾼 둘의 점심을 별도로 조리할 것을 적었다. 분이는 그 아래에 ‘오늘 만두 두 개’라고 썼다. 세자의 이름이 허가 칸에 남았다. 나인의 빼돌린 음식이 아니라 수라간의 배식이 됐다.

분이는 방을 나서려다 다시 물었다.

“한 번도 안 드셨으면서 매일 올리게 두신 이유는 뭡니까?”

“그릇이 비면 납품 마을이 문책받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생각보다 오래 그 한 개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를 말하지 않은 친절은 주방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짐이 됐다. 분이는 다음날 한 개는 세자 앞에서 직접 먹어 달라고 했다. 맛이 싫으면 싫다고 적겠다고 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은솔을 불러 빈 사발을 주방으로 돌려보냈다.

주방에서 상궁이 새 기록을 읽었다. 먹지 않은 여섯과 따로 만든 둘. 숫자는 늘었지만 잘못 먹은 사람은 없어졌다. 상궁은 빈 그릇표의 칸을 나누도록 허락했다. 은솔은 세자가 자기를 안다고 듣자 눈을 감고 오래 숨을 쉬었다.

분이는 남은 만두 다섯을 주방 사람들과 나눴다. 상궁은 간이 조금 셌다고 했고 은솔은 그래도 맛있다고 했다. 분이는 속을 따로 먹어 보았다. 아침에 넣은 소금보다 미세하게 쓴 끝맛이 남았다. 그녀는 소금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다. 흰 결정 사이에 아주 작은 회색 알갱이가 섞였다.

“이 소금, 오늘 온 겁니까?”

상궁이 납품표를 내밀었다. 분이 고향의 해안에서 보낸 소금이라고 적혔다. 그 해안 소금은 입에서 이렇게 오래 남지 않았다. 분이는 알갱이를 손바닥에 놓고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소금은 녹았지만 회색의 작은 점토가 남았다.

밖으로 나간 아이 하나가 돌아와 빈 그릇을 내밀었다. 오늘 공물 수레의 끈이 바뀌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평소 바닷바람 냄새가 나는 줄이 아니라 먼지 묻은 삼끈이었다고 했다. 분이는 그릇을 받고 아이에게 저녁 전까지 따뜻한 물을 마시라 했다.

그녀는 주방 장부의 새 면을 폈다. 만두가 사라진 이유를 찾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만두 속으로 들어온 것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야 했다. 분이는 회색 알갱이를 작은 종이에 감싸고 납품표의 산지 옆에 물음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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