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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계를 뒤흔든 오트쿠튀르 디자이너5화

사교계를 뒤흔든 오트쿠튀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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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숨을 쉬는 푸른 선

문이 열리자 채권 대리인이 서류부터 내밀었다.

“직접 확인하시면 제 방문을 이해하실 겁니다.”

리엔은 급히 걸친 겉옷을 여미며 문틈을 어깨로 막았다. 마레나는 조금 전 벗겨 둔 가봉 드레스 위로 덮개를 펼쳤다. 소매 안에 숨긴 천 조각의 가장자리가 팔을 간질였다.

서류의 제목은 매각 예정 섬유류 감정 의뢰서였다. 감정 기관 자리에 셀레스트 하우스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어머님의 옷을 손보고 계신다지요. 담보 가치를 보존하려면 전문가가 봐야 합니다.”

“감정을 의뢰한 사람은 누구죠?”

대리인이 손끝으로 인장을 두드렸다. 리엔은 종이 아래쪽의 빈칸을 짚었다.

의뢰인. 베르네가의 소유자 서명.

“제 동의를 받으러 오셨군요.”

“협조하지 않으시면 훼손 우려도 함께 보고해야 합니다.”

“그 보고에 제가 무슨 물건을 훼손했는지도 쓰세요. 확인하지 않은 물건까지 적지는 마시고요.”

대리인은 펜을 내민 채 기다렸다. 리엔은 받지 않고 별첨을 넘겼다.

낡은 커튼. 식탁보. 붉은 리본 묶음, 별도 확인.

맨 아래에는 구매 담당의 방문 보고를 옮겼다는 작은 글씨가 있었다. 리엔은 소매 안의 천 조각을 누르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리본까지 감정할 가치가 있나요?”

“제가 작성한 목록은 아닙니다. 서명하시면 담당자가 설명할 겁니다.”

리엔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의뢰하지 않겠습니다. 통지용 부본은 두고 가세요.”

대리인은 빈 서명란을 한 번 더 보더니 서류철을 닫았다.

“만기에는 이런 절차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날짜는 알고 있습니다.”

구두 소리가 멀어지자 집사가 대리인이 남긴 부본을 작업대 위에 놓았다. 리엔은 창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고 열쇠를 맡아 주세요. 누가 언제 들어가는지도 적어 두시고요.”

문을 잠근 마레나가 부본의 마지막 항목을 읽었다. 곧 허리띠에서 붉은 리본을 꺼냈다.

“저걸 찾는 거였을까요?”

“리본을 목록에 올린 건 확실해. 안에 든 것까지 아는지는 몰라.”

리엔은 천 조각의 잘린 가장자리를 살폈다. 푸른 실은 겉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문장. 지금 당장 창고의 상자를 모두 뒤집고 싶었다.

그러나 작업대에서는 실크 한 폭이 반쯤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레나가 얼른 받아 올렸다. 리엔은 천 조각을 빈 바늘갑에 넣었다.

“리본도 따로 보관해 줘. 먼저 옷을 끝내자.”

창문이 밝아지고 있었다. 무도회까지 남은 밤은 이제 두 번이었다.


리엔은 실크 몸판과 치마 여덟 폭의 안쪽에 차례로 실표를 달았다. 연결 순서와 결 방향을 표시한 뒤 시침을 풀었다.

마레나가 보강층과 은사 테이프를 걷어 냈다. 겨우 세운 옷이 다시 납작한 조각들로 돌아갔다.

“모양을 잡아 놓고 또 뜯으니 아깝네요.”

“이대로 적시면 마직과 실크가 서로 다른 만큼 줄어. 다시 맞출 수 있게 표시해 둔 거야.”

푸른 염료석은 얕은 접시 위에 올려 두었다. 물속에는 실만 담갔다. 리엔은 각 폭의 솔기 여유분을 조금씩 적셔 방향을 비교했다.

같은 시간 동안 처리했는데 한쪽은 맑은 청색이고 반대쪽은 멍처럼 자줏빛이 남았다.

리엔이 접시 쪽으로 손을 옮기자 마레나가 두 조각을 나란히 놓았다.

“여기 보세요. 이쪽은 결 표시가 반대예요.”

리엔은 손을 멈췄다. 치마 양옆에 들어갈 조각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재단되어 있었다. 나란히 놓은 모양만 보고 같은 방향으로 실을 대면 결이 어긋났다.

“돌을 더 쓰기 전에 잡았네.”

푸른 실의 방향을 바꾸고 약한 온기를 흘렸다. 남아 있던 붉은 기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물을 빼고 기다린 뒤 마른 끝을 비교하자 두 조각의 색이 가까워졌다.

“이제 치마부터 물들이자. 한 폭씩 건네줘.”

젖은 실크는 들면 무게로 늘어났다. 마레나가 밑에서 넓게 받치는 동안 리엔은 결을 따라 천을 폈다. 손끝에 흐르는 온기가 조금만 강해져도 가장자리부터 팽팽해졌다. 그때마다 손을 떼고 기다렸다.

치마 여덟 폭에 맞춰 몸판까지 물들였을 때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염료석의 푸른빛은 처음 꺼냈을 때보다 옅어져 있었다.

리엔이 천에 싸서 서랍에 넣자 마레나가 그 손을 바라보았다.

“한 번 더 전부 물들이기는 어렵겠죠?”

“그러니 마른 색을 확인하기 전에는 잇지 않을 거야.”

맑은 물로 헹군 실크를 그늘에 펼쳤다. 천이 마르는 동안 두 사람은 보강층의 풀린 가장자리를 감췄다. 어머니의 옷에서 떼어 둔 작은 걸쇠는 실로 감아 거친 부분을 덮었다.

리엔이 보강 띠를 정리하다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선이 둘로 겹쳐 보였다. 마레나도 같은 자리에 두 번 바늘을 꽂았다.

“마를 때까지는 바늘 내려놓자.”

리엔은 의자 두 개를 창가로 옮겼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햇빛이 작업대 끝까지 와 있었다. 식은 빵을 나눠 먹는 동안에도 마레나의 시선은 실크로 향했다.

두 사람은 마른 천 위에 젖은 흰 조각을 눌렀다. 문질러도 푸른색이 묻어나지 않았다.

몸판 아래로 치마 여덟 폭을 놓자 하나의 깊은 청색이 이어졌다. 오래 눌렸던 주름은 남아 있었다. 리엔은 그 흔적이 안으로 접히도록 선을 맞췄다.

새 천처럼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는 보라색 낡은 드레스로 보이지 않았다.


마레나는 실표를 따라 본봉을 넣었다. 바늘이 사선으로 나갈 때마다 왼손으로 아래 천을 조금씩 밀어 주었다. 리엔은 반대편에서 보강층을 붙이고 솔기 안에 은사를 물렸다.

첫 촛불이 다 타고 두 번째 촛불이 절반으로 줄었을 때 드레스가 다시 어깨에 걸렸다.

리엔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 가슴 아래를 지나던 선이 부드럽게 따라왔다. 마레나의 어깨가 내려갔다.

“이제 앉아 보세요.”

리엔이 의자에 몸을 내리는 순간 오른쪽 갈비뼈 아래가 당겼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숨을 줄였다. 거울 속 허리선은 여전히 반듯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옷을 살리기 위해 입은 사람이 먼저 움직임을 줄이는 것.

리엔이 다시 일어섰다.

“오른쪽 밑단을 조금 더 걷어 볼게.”

마레나는 무릎을 꿇었지만 가위를 집지 않았다.

“밑단은 바닥에 닿지 않았어요. 여기부터 봐도 될까요?”

그녀의 손끝이 가슴 아래 보강 띠를 눌렀다. 리엔이 앉으려 하자 짧게 고정된 실이 팽팽해졌다. 허벅지 위로 펼쳐진 치마가 겉감을 당기자 안쪽 띠까지 아래로 끌려왔다.

“가봉할 때는 이만큼 떠 있었어요. 본봉하면서 간격이 없어졌어요.”

마레나는 손가락 한 마디보다 좁은 틈을 가리켰다.

리엔의 입술이 달싹였다. 양쪽 띠의 길이는 똑같았다. 서 있을 때 보기 좋도록 자신이 맞춘 길이였다.

“오른쪽도 왼쪽에 맞추자고 한 건 나야.”

리엔은 그 위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몸에 입힌 옷이라 거울만으로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마레나의 손과 겹쳤다.

“벗을게. 네가 표시해 줘.”

“제가 풀어도 돼요?”

“어디가 당기는지 찾았잖아.”

옷을 다시 눕힌 뒤 마레나가 짧은 고정 땀을 끊었다. 보강 띠를 조금 옆으로 옮기고 겉감 사이에 여유를 남겨 이었다. 리엔은 천을 받쳤다. 이번에는 손의 위치를 정한 쪽이 마레나였다.

“조금만 아래로요. 네. 그대로 잡아 주세요.”

매듭 하나를 끝낸 마레나가 입술에 문 실을 놓았다.

“이번엔 제가 됐다고 할 때까지 앉았다 일어나셔야 해요.”

“몇 번이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는 숨을 줄이지 않았다. 팔을 들고 몸을 비틀어도 오른쪽 갈비뼈가 눌리지 않았다.

리엔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마레나는 그 침묵을 불안하게 지켜보다가 리엔의 배 위로 편히 포개진 손을 보았다.

“안 당겨요?”

“응. 더 앉아 있고 싶을 만큼.”

마레나가 소리 없이 웃었다.

밑단은 바로 자르지 않았다. 리엔은 드레스를 넓게 받쳐 걸어 두고 마레나를 먼저 쉬게 했다. 자신도 바늘을 내려놓았다.

이튿날 아침에는 왼쪽 치맛자락이 손톱 너비만큼 내려와 있었다. 두 사람은 늘어진 부분을 표시한 뒤 다시 입혀 수평을 맞췄다. 잘라 낸 가는 실크 끝이 손바닥에 고였다.

마레나가 밑단을 안으로 말아 감치는 동안 리엔은 목선 안쪽과 겨드랑이의 거친 실밥을 정리했다. 드러날 은사 끝은 부드러운 실크 속에 접었다. 걸쇠를 세 번 여닫았고 마지막 시침실을 모두 뽑았다.

더 뜯어야 할 곳이 없었다.


무도회 전날 오후의 빛이 창문으로 들었다.

리엔은 완성된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다. 어깨에서 내려온 푸른 선이 허리를 지나 치맛자락으로 흘렀다. 갈비뼈를 좁히는 끈도 허리를 밀어 올리는 쇠도 없었다.

실크는 손등을 대면 서늘했다. 몸을 돌리자 깊은 청색의 접힌 면에서 청록이 열렸다. 사선 사이에 숨은 은사는 빛을 받는 순간에만 가늘게 드러났다.

마레나가 뒤에서 옷자락을 정리하려다 손을 멈췄다. 리엔이 이미 제자리로 돌아선 뒤였다. 치마는 한 박자 늦게 가라앉았다.

“뒤에서 잡아 주지 않아도 되네요.”

리엔은 바닥에 떨어진 실타래를 직접 주웠다. 허리를 굽혔다 펴는 동안 목선도 어깨도 제자리에 있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실 거예요?”

“내가 재단하고 네가 함께 꿰맸다고.”

“하우스 이름을 물을 텐데요.”

리엔은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하우스도 간판도 아직 없었다. 옷은 있었다.

“우선 우리 이름부터 있어야지.”

리엔이 옷을 벗는 동안 마레나는 작은 천 조각을 잘랐다. 리엔은 그 위에 이름을 적었다. 제작 리엔 베르네. 그 아래 봉제 마레나 콜트.

마레나가 제 이름 위에 손가락을 가져갔다가 잉크가 마르기 전에 멈췄다.

“여기 쓰면 아무도 못 보잖아요.”

“이 옷을 고치는 사람은 보겠지.”

마레나는 천을 똑바로 폈다. 그리고 가장 작은 바늘을 골랐다. 드레스 안쪽에 이름표를 다는 네 귀퉁이의 땀은 유난히 촘촘했다.

작업대 한쪽에는 초대장과 채무 통지서가 겹쳐 있었다. 리엔은 둘을 나란히 놓았다. 무도회 당일 정오라는 숫자는 옷을 완성했다고 바뀌지 않았다.

마레나는 초대장을 보다가 걸린 드레스로 시선을 돌렸다.

“입구에서 코르셋을 입고 다시 오라고 하면요?”

리엔은 걸쇠를 마지막으로 만져 보았다. 고쳐 단 보강 띠와 겉감 사이로 손가락이 무리 없이 들어갔다.

“누가 그런 명령을 내렸는지 물어야지.”

“모두 보는 앞에서요?”

리엔은 초대장을 집었다.

“그래. 이 옷을 입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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