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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침묵까지 통역하겠습니다3화

당신의 침묵까지 통역하겠습니다

당신의 침묵까지 통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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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증언의 온도

은별은 수정 합의안을 바로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회사가 외부에 정정문을 내기 전에, 본인이 문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현우는 그 조건을 전달했다. 회사는 영상 속 동료의 얼굴과 이름을 가리는 편집을 하겠다고 답했지만, 사과 문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희는 장비 조작 책임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회사 변호사가 조정실에서 말했다. “다만 원만한 해결을 위해 치료비와 임금은 지급하겠습니다.”

은별은 수현을 바라보고 말했다. “원만하게 끝내려면 누구에게 원만한지 물어야죠.”

수현이 통역했다. 회사 변호사는 노트를 덮었다. 현우는 준비해 온 문서에 손을 얹었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은별이 먼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저는 합의하고 싶어요. 돈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영상이 편집됐다는 사실을 빼고 끝내면, 다음 직원도 그 영상을 보게 될 거예요.”

회사 측은 재판을 계속하면 시간이 걸린다고 압박했다. 은별은 잠시 창밖을 보고, 이어서 조건을 제시했다. 외부 공지에 “제출된 영상이 사고 전후의 전체 장면을 포함하지 않았다”고 쓸 것. 본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적을 것. 안전 교육은 작업자 모두가 근무시간에 받게 하고, 통역 자료도 제공할 것. 동료의 개인 정보는 공개하지 않을 것.

현우가 다시 종이에 적었다. 이번에는 ‘공개 정정’을 줄이지 않았다. 회사 변호사는 결재가 필요하다며 조정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은별은 수현에게 말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너무 욕심내는 것 같나요?”

수현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먼저 은별이 원하는 질문이 통역인지, 개인 의견인지 확인했다.

“통역은 여기까지입니다. 개인 의견을 물으시는 거라면, 제 생각을 말해도 될까요?”

은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욕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조건마다 얻을 수 있는 것과 감수해야 할 게 다르니, 무엇을 양보하지 않을지 본인이 정하면 됩니다.”

“그게 제일 어렵네요.”

“저도 제 침묵을 언제 지켜야 하는지 늘 어렵습니다.”

은별은 잠시 수현의 손을 보았다. “법정에서 말을 옮길 때는 침묵도 옮겨요?”

“기록에는 통역 중단이나 답변 보류를 표시합니다. 침묵의 이유는 제가 적지 않아요.”

“좋아요. 이유는 제가 말할게요.”

회사가 돌아왔을 때, 수정안은 일부만 받아들여져 있었다. 정정 공지는 내부 게시판과 외부 고객 안내문에 동시에 내기로 했지만, “편집본이 전체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표현은 “일부 장면이 포함되지 않았다”로 바뀌었다. 은별은 문장을 다시 읽고 수현에게 확인했다.

“이건 책임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죠?”

“네. 사실 범위만 인정합니다.” 현우가 설명했다.

“제가 원하는 말보다 약하지만, 영상이 전체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남네요.”

회사 측 변호사는 합의 조건을 검토하는 동안 은별에게 따로 제안을 건넸다. “정정문은 외부 고객에게 보내지 않고 내부 교육 자료로만 쓰면 어떻습니까? 그러면 치료비를 이번 주에 지급할 수 있습니다.”

은별은 현우를 쳐다보지 않고 직접 수현에게 말했다. “저는 그 제안을 듣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은 제가 여기 있는 이유를 돈으로만 바꾸고 있어요.”

현우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회사 변호사는 조건을 설명하려 했지만 은별이 손을 들었다. 수현은 재판장을 향해 잠시 발언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정실에는 어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제가 합의할지 말지는 치료비 액수만 보고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은별은 수어로 말했다. “하지만 치료비는 필요해요. 회사가 공개 정정을 거부하면, 임시 지급을 먼저 받고 절차를 계속할 수 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현우는 바로 법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먼저 은별에게 설명을 더 들어도 되는지 확인했다. 그가 허락을 받은 뒤에야, 합의 일부를 분리해 치료비를 먼저 지급하고 책임 표현에 관한 쟁점은 남기는 방법이 가능한지 재판부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회사 측은 당장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내부 검토를 요청하며 30분을 달라고 했다.

조정 담당 판사는 합의 조건을 다시 정리해 주었다. 치료비를 먼저 지급하더라도 남은 쟁점에 대한 권리가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별도 문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회사 측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고, 현우는 가능한 범위를 확인하겠다며 잠시 멈췄다. 은별은 문장을 다시 읽고 “제가 서명한 뒤에도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주세요”라고 요청했다. 판사는 지급 기한과 확인 절차를 합의안에 넣을 수 있다고 답했다. 현우는 그제야 은별의 요구를 서면으로 작성했다. 그는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고 결론 내리지 않았다. 대신 문서를 그녀 쪽으로 돌려놓았다.

은별은 휴정 중 복도에 나가 혼자 손을 털었다. 긴장으로 손가락이 굳어 있었다. 수현은 물을 가져왔지만 바로 건네지 않고 눈으로 물었다. 은별이 고개를 끄덕이자 컵을 내밀었다.

“방금 그 말을 법정 기록에 남기고 싶어요?”

“네. 제가 치료비가 필요한 것도, 그게 전부가 아닌 것도요.”

수현은 돌아가 기록 정정을 신청할 문장을 준비했다. 현우는 그 문장을 자신이 대신 쓰지 않았다. 그는 은별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원하는 표현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은별은 임금 지급과 안전 교육 조건을 받아들이고, 문구는 법원 기록에 별도로 남기자고 했다. 현우는 조정 합의서에 당사자의 책임 인정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적었다. 은별은 천천히 읽고, 수현은 어려운 법률용어를 통역했다. 그녀는 문장마다 멈춰 질문했다. 아무도 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마지막 서명란 앞에서 은별의 손이 멎었다.

“제가 서명하면 이 사건이 끝나요?”

“이 조정 절차는 끝납니다. 안전 교육과 지급 약속은 이행 여부를 확인해야 해요.” 현우가 말했다.

“약속을 어기면요?”

“기록을 근거로 다시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그럼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단계로 가는 거네요.”

“네.”

은별은 서명했다. 현우도 서명했다. 회사 변호사는 종이를 가져가려다 은별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현은 그 모습을 보고 통역석에서 손을 내렸다. 아무도 그녀를 대신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조정실 밖에서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윤은 그들 사이에 있었지만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그는 은별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은별이 그를 발견하고 손짓한 뒤에야 거리를 좁혔다.

“기사를 써도 됩니다. 제 이름은 빼 주세요. 회사가 정정문을 낸 뒤에요.”

“알겠습니다. 문구를 먼저 보여 드릴까요?”

“아니요. 사실을 틀리면 제가 정정 요청할게요. 제 말을 미리 다듬지는 마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윤은 조건을 메모하고 그녀가 떠날 때까지 녹음기를 켜지 않았다. 수현은 현우에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현우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제가 들고 가면 될까요?”

“네.”

그녀가 봉투를 내밀자 그는 조심스럽게 받았다.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현우는 같이 타자고 묻지 않았다. 수현이 먼저 버튼을 눌렀다.

“오늘 저녁에 식사하실래요?” 그가 물었다. “사건 이야기는 하지 않고요.”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요?”

“노력하겠습니다.”

“노력 말고 규칙을 정해요. 사건 이야기가 나오면 제가 멈추자고 할 거예요. 그때 변명하지 않기.”

“알겠습니다.”

“그럼 저녁은 먹겠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둘은 나란히 들어갔지만 서로의 어깨는 닿지 않았다. 현우는 층 버튼을 눌러도 되는지 물었고, 수현은 1층을 눌러 달라고 했다. 작은 질문 하나가 그날의 계약처럼 느껴졌다.

일주일 뒤 회사는 정정 안내를 게시했다. 영상이 전체 장면이 아니었다는 문장이 들어갔고, 작업자 교육 일정이 공지됐다. 은별은 게시물을 확인한 뒤 치료비 지급 내역을 수현에게 보여 주지 않았다. 대신 도윤에게 기사를 써도 된다고 다시 연락했다. 기사에는 은별의 이름과 회사가 가린 동료의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현우는 수현과 약속한 식당에서 사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들은 메뉴를 고르고, 각자의 퇴근 시간을 물었다. 수현은 일에 관해 말하지 않는 대신 자신이 통역 준비를 위해 하루 전부터 잠을 줄이는 버릇을 고치고 싶다고 했다. 현우는 바로 해결책을 제안하지 않고 왜 고치고 싶은지 물었다.

“제 목소리도 쉬어야 하니까요.”

“그럼 다음 주에는 법정 없는 저녁을 잡을까요?”

“제가 일정을 보고 답할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이 다음 약속을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대답을 빼앗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수현의 책상 위에 새 통역 의뢰서가 놓였다. 사건명은 ‘야간 근무 조정 분쟁’. 증인란에는 현우의 이름이 신청인 대리인으로 적혀 있었다. 사건 설명에는 ‘통역이 필요한 신청인이 진술 중 답변을 멈춘다’고 쓰여 있었다.

수현은 의뢰를 바로 받지 않았다. 먼저 신청인에게 통역 방식과 준비 시간을 확인해 달라고 담당자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사건은 제가 통역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의뢰인의 동의와 배정 절차를 먼저 확인해 주세요.”

그는 곧 답했다.

“네. 의뢰인에게 먼저 묻겠습니다.”

수현은 의뢰서를 접지 않고 책상 위에 펼쳐 두었다. 침묵이 다시 찾아오더라도, 이번에는 누가 기다릴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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