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없이 세계 최강 네크로맨서

11화: 정밀 사격 인형
카엘이 제3 심의실의 문을 열자 안쪽에서 차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긴 탁자 중앙에는 바르토스가 앉아 있었다. 그의 뒤에는 로엔 가문의 수습관과 낯선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의 손에는 빛이 바랜 북부 전쟁 기록철이 들려 있었다.
"늦었군."
"통지서를 받은 뒤 준비할 시간이 삼십 분뿐이었습니다. 지각의 책임은 발송자에게 있겠지요."
카엘은 증거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렸다. 엘레나는 곧바로 옆자리에 서서 제출 시각과 봉인 상태를 기록했다.
심의관 하나가 상자를 확인하려 손을 뻗었다.
수습관이 먼저 황동 열쇠를 꺼냈다.
"가문 수습권에 따라 내용물은 인계하면 된다."
카엘은 상자와 수습관의 손 사이에 은판을 세웠다. 얇은 판 위의 퇴로 룬이 푸르게 떠올랐다.
"가문 수습권은 아카데미가 보전한 증거를 임의로 가져갈 권리가 아닙니다. 이 자료는 제출 전에 봉인했고 지금 이 자리에서 심의관에게 직접 열겠습니다."
모르가트 교수가 탁자 끝에서 낮게 말했다.
"보전 절차에 이견이 있으면 내 이름으로 기록하게."
바르토스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절차를 따지는 동안에도 저 영혼은 가문의 자산으로 남아 있다. 카엘은 가문의 금고에서 유출된 매개체를 사적으로 사용했다."
레오노르가 그의 시선을 똑바로 받았다.
"나는 금고에서 나온 적이 없다."
"영혼이 자기 출처를 기억하지 못하면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지."
노인이 기록철을 펼쳤다. 낡은 종이에서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카엘의 손가락이 장갑 안에서 굳었다.
"나는 북부 전쟁의 마지막 겨울에 이 문양을 보았다. 폰 바르크 기사단의 은빛 방패다. 이 프레임의 어깨 장식과 일치한다. 그러니 영혼은 로엔의 보관 대상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어느 전투였습니까?"
엘레나가 물었다.
노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기록에는 전투명이 남아 있지 않다."
"기사단의 지휘관은요?"
"그것도 모른다."
카엘은 은판 계약 증명서를 꺼냈다.
"문양은 출처를 증명할 수 있어도 소유권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무엇보다 이 문서는 레오노르 경이 누구의 물건인지가 아니라 어떤 조건으로 이 몸을 사용하는지 기록합니다."
은판 가장자리의 세각 룬이 차례로 켜졌다. 계약 당사자, 매개체, 퇴로, 거부권. 네 개의 항목이 심의실 위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바르토스가 코웃음을 쳤다.
"가짜 장식이지. 보이지 않는 명령으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카엘은 레오노르를 향해 몸을 돌렸다.
"레오노르 경. 퇴로를 개방하십시오. 심의실의 누구도 경을 붙잡지 않겠습니다. 떠나는 것도 남는 것도 경의 선택입니다."
레오노르는 왼쪽 흉갑 덮개를 열었다. 오프셋 마력 코어의 푸른빛 아래에서 퇴로 룬이 맥박쳤다.
심의관 하나가 은빛 구속 고리를 들어 올렸다.
"검증을 위해 프레임을 분리하겠다. 영혼만 이탈시켜도 선택은 확인할 수 있다."
레오노르의 손이 검자루에 닿았다.
"내 몸을 분리하는 일에 동의한 적은 없다."
"거부할 권리도 계약에 있습니까?"
모르가트 교수가 물었다.
"제7항. 매개체의 훼손이나 강제 분리는 계약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시행하지 않는다."
카엘이 은판을 가리켰다.
레오노르는 퇴로 룬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푸른 빛이 그녀의 손등을 타고 흘렀다.
"나는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몸을 빼앗으려는 자에게 내 선택을 증명할 의무도 없다."
그녀가 덮개를 닫자 심의실에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석 심의관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으로 오프셋 코어의 압력계를 가리켰다.
"자율성을 주장하면서도 코어는 카엘의 설계에 묶여 있군. 그 장치가 명령을 대신하는 것은 아닌가?"
"확인해 보십시오."
카엘은 레오노르의 흉갑에 연결된 측정선을 심의실 측정판에 꽂았다. 압력계의 바늘이 푸른 눈금 안에서 안정적으로 떨렸다. 그는 손가락을 코어 밸브에서 떼고 뒤로 물러났다.
"레오노르 경. 오른손을 들어 올리십시오."
레오노르가 팔을 들었다. 바늘이 한 칸 움직였다.
"이제 내리지 마십시오."
그녀는 그대로 멈췄다. 카엘은 명령을 더하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 레오노르는 잠시 심의관들을 살피더니 자신의 의지로 팔을 내렸다.
"방금 내린 것은 제 선택이다. 카엘은 내 팔을 붙잡지 않았다."
오프셋 코어가 낮은 소리를 냈다. 고출력이 아니었기에 과열은 없었다. 푸른 압력선은 카엘이 손을 뗀 뒤에도 레오노르의 움직임에만 따라갔다.
모르가트 교수가 측정판의 수치를 확인했다.
"의지 파형과 구동 파형이 분리되어 있다. 명령식이라면 나타나야 할 당김 흔적도 없다."
엘레나가 잉크를 찍었다.
"계약 당사자의 자율 선택과 분리 검사 거부를 기록했습니다."
모르가트 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토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상자에서 마리안의 증언서를 낚아챘다.
"상단주의 서명 따위는 위조할 수 있다. 검은 은실도 카엘이 평가용으로 만든 가짜일 수 있지."
엘레나가 청휘석 렌즈를 들었다.
"그럼 지금 확인하죠."
렌즈가 유리병 위에서 맑게 울렸다. 검은 은실의 잔류 파형이 가느다란 선으로 솟아올라 심의실 바닥의 측정판을 향했다.
측정판의 오래된 홈이 검게 물들었다. 곧 평가장에서 기록된 것과 같은 당기는 파형이 되살아났다.
엘레나는 품에서 수정판 사본을 꺼내 측정판 옆에 놓았다. 두 파형의 끝이 같은 간격으로 떨렸다.
"북문에서 나온 표본과 평가장 기록이 같은 계열입니다. 가문식 봉인 공정과도 일치해요."
"누가 사용했는지까지 말할 수 있나?"
"그건 확인할 수 없습니다."
엘레나는 잠시 바르토스를 보았다.
"하지만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서 확인된 부분까지 사라지지는 않아요."
카엘은 검은 은실을 바라보았다. 습격의 지시자를 여기서 단정하면 증거가 아니라 추측이 된다.
"저는 지시자를 특정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가문식 구속 파형이 제 계약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만 제출합니다. 누가 명령했는지는 별도의 조사 대상입니다."
그 말에 모르가트 교수가 심의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평가 중 외부 명령 개입 의혹도 같은 기록에 있습니다. 최소한 연구 자료의 즉시 압수는 보류해야 합니다."
심의관들은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나눴다. 결론은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수석 심의관이 부속 시험실의 열쇠를 꺼냈다.
"독자 계약과 연구 소유권에 대한 판단은 추가 실전 검증 뒤에 내리겠다. 경진대회 예비 심사에서 정밀 원거리 표적 시험을 치러라. 인형이 명령 없이 지정 표적을 선택하고 명중해야 한다."
바르토스가 입꼬리를 올렸다.
"원거리 인형은 아직 만들지도 못했잖나."
"없다면 만들면 됩니다."
카엘이 대답했다.
부속 시험실에는 낡은 마도 총기와 접이식 크로스보우가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금이 간 표적석이 줄지어 서 있었다.
카엘은 총기를 들어 손잡이와 총열의 연결부를 살폈다. 반동 흡수판은 손바닥에만 맞춰져 있었고 조준선 룬은 손잡이 앞에서 끊겨 있었다.
"사격 영혼은 손가락만 움직이면 되는 게 아니에요. 조준선과 발사 순간의 반동을 자기 몸의 일부로 인식해야 합니다."
엘레나가 렌즈를 기울였다.
"반동이 어깨로 가지 않고 총기 전체로 흩어지면 감각 번역이 깨지겠네요."
"발사할 때마다 자기 몸이 찢기는 것으로 느낄 겁니다."
레오노르가 크로스보우를 집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쏘면 되겠군."
"경의 검술 감각은 시위의 장력과 발사각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검으로 화살을 베는 것보다는 쉽지 않나."
카엘은 대꾸 대신 벽면의 표적석 앞으로 걸어갔다. 가장 오래된 표적석은 가슴 중앙에 작은 조준 구멍이 있었다. 주변 돌은 수없이 깎였지만 구멍 안쪽만 유난히 매끈했다.
청휘석 렌즈를 가까이 대자 돌 속에서 약한 진동이 일었다.
딱.
카엘은 손을 멈췄다.
"이 표적석은 단순한 과녁이 아닙니다. 과거 사격 훈련의 충격을 저장하는 보조 매개체예요."
엘레나가 표면의 홈을 훑었다.
"잔향이 남아 있네요."
두 번째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벽 맞은편의 작은 점을 향해 파형이 뻗었다. 누군가 조준 자세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정확한 방향이었다.
카엘은 잔향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직 이름도 조건도 모르는 영혼이었다.
그는 작업용 종이를 펼쳐 총기와 영혼의 몸을 하나로 잇는 새 도면을 그렸다. 총열의 조준선을 눈 대신 영혼의 전면 감각으로 번역하고 반동은 어깨와 흉곽의 완충판으로 분산한다. 손잡이 아래에는 퇴로 룬을 남겼다.
"검이 아니라 조준선이 필요하군요."
바르토스가 문가에서 도면을 노려보았다.
"이번 시험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가치가 있습니다."
카엘은 엘레나에게 도면의 절반을 내밀었다.
"사격 프레임의 반동 측정은 공동 검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원본 감각 번역식의 소유권은 제게 둡니다."
엘레나는 안경을 고쳐 썼다.
"이번에는 제가 반동과 탄도 기록을 맡을게요. 대신 표적석 잔향과의 계약 조건은 함께 작성해요."
"동의합니다."
대탑의 종이 울렸다. 심의관은 오늘 작성된 기록과 원거리 표적 시험을 경진대회 예비 심사 자료로 편입한다고 선언했다.
카엘은 표적석 안쪽을 바라보았다.
딱.
이번 신호는 처음보다 가까웠다. 이름을 잃은 영혼이 오래된 조준 구멍 너머에서 그를 향해 한 발을 재촉하는 듯했다.
카엘은 총기의 빈 손잡이를 쥐었다.
"좋습니다. 다음에는 당신이 조준할 몸을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