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는 천마였습니다

2화: 빚을 받는 계산대
은표는 카운터 위에서 차갑게 빛났다.
강무진은 그것을 집지 않았다. 먼저 노인의 옆구리를 봤다. 회색 셔츠 옆선이 피와 빗물에 젖어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걸음을 버틴 사람의 숨이 짧았다.
“앉으십시오.”
“빚부터 받으시오.”
“피가 먼저입니다.”
노인은 카운터를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무진이 카운터 옆의 접이식 의자를 꺼내 놓자 한참 뒤에야 그 위로 몸을 내렸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노인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가늘게 떨어졌다.
무진은 카운터 아래 구급함을 열었다. 소독약과 거즈를 꺼내면서도 노인의 옷에는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한경수요.”
“상처는 누가 냈습니까.”
경수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은표를 무진 쪽으로 밀었다. 오래된 마교의 문양은 피에 젖어 반쯤 지워져 있었다.
“이걸 받으시오. 내가 숨겨 둔 마지막 돈이오.”
“여기서는 쓸 수 없습니다.”
“천마님은 빚을 받으러 오신 것 아닙니까.”
왼손바닥의 흉터가 한 번 뜨겁게 뛰었다. 장부 인장이 은표가 아니라 경수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었다.
무진은 은표를 손끝으로 밀어 경수 앞에 돌려놓았다.
“내가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들어왔습니다.”
경수의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그 말이 더 무섭구려.”
“마교 문양을 어디서 봤습니까.”
노인은 무진의 왼손을 보았다. 장갑도 끼지 않은 손등 위로 오래된 흉터가 드러나 있었다.
“그 표를 가진 사람은 하나뿐이라고 들었소.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에 장부를 새긴 사람. 내게 그 말을 한 사람은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
무진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이상 묻지 않았다. 낯선 이름 하나로 경수의 말이 갑자기 진실이 되지는 않았다.
“상처부터 보겠습니다. 벗기 어렵다면 셔츠를 조금만 들어 올리십시오.”
경수는 잠시 망설이다 셔츠 끝을 들어 보였다. 옆구리에는 칼날보다 둔한 물체에 얻어맞은 듯한 멍과 찢긴 상처가 있었다. 깊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씻지 않으면 곪을 자리였다.
무진은 거즈에 소독약을 적셨다.
“따갑습니다.”
“이 정도야.”
“참는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경수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무진은 상처 주변을 닦고 압박 붕대를 감았다. 전장에서 이런 상처는 뒷줄의 병사가 알아서 버티는 것으로 끝났다. 여기에는 작은 구급함과 설명서가 있었다.
그는 컵라면 하나와 생수병을 카운터 위에 놓았다. 전자레인지에 물을 데운 뒤 종이컵에 따라 건넸다.
“먹고 말씀하십시오.”
“값은 은표로 내겠소.”
“오늘은 받지 않습니다.”
“왜.”
“지금 당신은 손님이 아니라 다친 사람입니다.”
경수는 김이 오르는 컵을 내려다봤다. 굳은 손이 젓가락을 잡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은 뒤에야 그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무진은 휴대폰을 꺼냈다. 연주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다.
‘부상 손님이 와서 구급함 사용했습니다. 상황 보며 신고하겠습니다.’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무진 씨 혼자 무리하지 말고 문 잠가요. 필요한 건 전화. 다치지 말고요.’
무진은 화면을 잠시 보았다. 필요한 건 전화라는 말은 칼을 뽑으라는 명령보다 낯설었다. 그만큼 정확했다.
경수는 면을 반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나는 차를 몰았소.”
무진은 계산대 옆 메모지와 펜을 꺼냈다. 손님이 결제를 기다릴 때 쓰는 물건이었다.
“어디로 갔습니까.”
“재개발 구역 근처요. 낡은 세탁소 뒤에 지하로 내려가는 철문이 있었지.”
경수의 눈이 컵라면 국물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일자리 알선이라 했소. 당일에 백만 원을 준다고. 사람 셋을 태워서 그 문 앞에 내려 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지.”
“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탔습니까.”
“그랬소. 적어도 차에 오를 때는.”
경수는 손가락으로 종이컵 옆면을 구겼다.
“다들 급해 보였지. 보증금이 밀렸다는 여자도 있었고 병원비가 필요하다는 남자도 있었소. 나는 그 돈을 받고 운전대를 잡았어.”
무진은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돌아왔습니까.”
“둘은.”
경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하나는 사흘 뒤 길에서 봤소. 내 차 번호를 물어보더군. 내가 운전한 차인데도 기억을 못 했어. 자기 이름을 말하다가 멈추고는 그냥 도망갔소.”
“나머지 한 사람은요.”
“돌아오지 않았소.”
점포 안의 냉장고 모터 소리가 커진 듯했다. 무진은 섣불리 위로하지 않았다. 사라진 사람에게 섣부른 확신은 가장 값싼 거짓말이었다.
“누가 시켰습니까.”
“검은 마스크에 장갑을 낀 남자였소. 나보다 젊었고 말투는 사무적이었지. 운전만 하면 된다고 했어.”
“차 번호나 만난 시간은 기억납니까.”
“적어 뒀소.”
경수는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피에 젖은 손수건과 동전 몇 개 사이에서 작은 황동 열쇠가 나왔다. 납작한 번호표에는 ‘성북환승 18’이 새겨져 있었다.
“운행 시간과 차 번호 일부. 내 휴대폰도 거기 넣었소. 겁이 나서 역 보관함에 숨겼지.”
“왜 지금까지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사람을 실어 날랐으니까.”
경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문을 알고도 돈을 받았어. 경찰에 가면 나도 끝장이오.”
“그럴 수 있습니다.”
경수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무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해야 합니다. 사라진 사람을 찾으려면.”
“천마님이 직접 찾아가면 되지 않소.”
“나는 지금 가게를 비울 수 없습니다.”
무진은 근무표를 보았다. 새벽 일곱 시까지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 사람의 빚을 갚겠다고 맡은 자리를 비우는 것은 또 다른 빚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당신이 한 일은 당신의 말로 남아야 합니다.”
경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벌을 받으라는 말이군.”
“살아 있는 사람을 찾자는 말입니다.”
그때 경수의 손등이 굳었다.
유리문 너머 골목에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와이퍼가 느리게 움직였다. 번호판 앞자리는 빗물에 가렸지만 운전석의 사람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저 차요.”
경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를 찾는 놈들이오.”
무진은 자동문 잠금 버튼을 눌렀다. 출입문 옆 안내등이 붉게 바뀌었다.
“신고합시다.”
“안 돼. 나까지 끝장이오.”
“이미 피하고 있었습니다.”
경수는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옆구리를 움켜쥐고 다시 주저앉았다. 붕대 가장자리에 다시 붉은 점이 번졌다.
“그들이 묻는 건 장부만이 아니오.”
“무엇을 찾습니까.”
“영수증을 든 아이.”
무진의 시선이 경수에게 향했다.
“언제 들었습니까.”
“오늘 밤. 차에 태워 주면 빚을 없애 준다고 했소. 아이가 뭘 들고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냥 종이 조각이라더군.”
경수는 자기 말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숨긴 것을 더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 숨길 곳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무진은 휴대폰으로 112를 눌렀다. 부상자가 있고 낯선 차량이 점포 밖에서 대기 중이며 진술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천마도 은표도 마지막 문도 말하지 않았다.
통화를 마치자 경수가 물었다.
“정말 나를 넘기겠소.”
“당신을 병원에 보내고 경찰에게 말하게 하겠습니다.”
“그게 갚는 길입니까.”
“지금은 그렇습니다.”
경수는 오래 말이 없었다. 승합차의 헤드라이트가 젖은 유리문에 희미하게 번졌다. 무진은 CCTV 화면을 켜고 차량이 들어온 시간과 보이는 번호를 메모했다. 02:01, 73가로 시작하는 검은 승합차.
경수는 은표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대신 황동 열쇠를 무진에게 내밀었다.
“이건 맡아 주시오. 내가 겁나서 말 바꾸면 열어 보시오.”
무진은 열쇠를 받았지만 손안에 꼭 쥐지는 않았다.
“당신이 직접 열어야 합니다.”
“겁이 나면?”
“그럼 겁난다고 말하십시오. 도망치지 말고.”
경수는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차 불빛이 골목 끝에 번질 무렵 승합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급하게 달아나는 차가 아니었다. 누군가 다음을 기다리기로 정한 듯한 움직임이었다.
경찰은 경수의 말을 들으며 신원을 확인했다. 무진은 구급함을 사용한 시간과 승합차가 멈춘 시간만 차분히 설명했다. 경수는 중간에 두 번 입을 다물었지만 끝내 자신이 운전한 일을 말했다.
구급대원이 들것을 펼쳤다. 경수는 오르기 전 카운터 위의 컵라면을 보았다.
“값은.”
“다음에 내십시오.”
“다음이 있을까.”
“있게 만드십시오.”
경수는 웃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들것이 유리문 밖으로 나가고 순찰차가 골목을 비추는 동안 무진은 열쇠를 근무복 주머니에 넣었다.
점포가 다시 조용해졌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무진은 유리문 너머를 확인한 뒤 잠금을 풀었다. 젖은 헬멧을 쓴 배달 기사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강무진 씨 맞죠? 카운터에 맡겨 달라네요.”
“누가 보냈습니까.”
“저도 몰라요. 퀵 접수만 받았어요.”
발신인 칸은 비어 있었다. 기사는 서명을 받은 뒤 골목으로 사라졌다.
무진은 상자를 계산대 안쪽으로 가져왔다. 칼로 테이프를 뜯지 않고 손가락으로 접힌 부분을 풀었다.
안에는 칼날 없는 빈 검집이 들어 있었다.
낡은 끈 아래에는 짧은 메모가 끼워져 있었다.
‘받지 못한 빚.’
검집 안쪽에는 검은 모래가 조금 묻어 있었다. 비에 젖지 않은 마른 모래였다.
무진이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왼손바닥의 장부 인장이 다시 뛰었다.
카운터 위에는 경수의 컵라면 뚜껑과 발신인 없는 검집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는 문을 잠그고 CCTV 화면의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