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알바는 천마였습니다

1화: 새벽의 계산대
나래25 성북점의 유리문이 닫히자 자동음이 짧게 울렸다.
강무진은 계산대 안쪽에 선 채 그 소리를 들었다. 칼집에서 검을 뽑을 때보다 가벼운 소리였다. 그런데도 어깨가 조금 굳었다.
“이게 바코드 찍는 거고.”
서연주가 손바닥만 한 단말기를 들어 보였다.
“이쪽은 담배. 번호 말하면 꺼내 주고. 술은 신분증 확인. 싸움 나면 네가 해결하려 들지 말고 바로 전화해.”
무진은 단말기 화면을 내려다봤다. 숫자와 그림이 줄지어 떠 있었다. 강호의 군량 장부보다 단순해 보였지만 손가락 하나를 잘못 누르면 돈이 사라진다는 설명은 더 위협적이었다.
“외상은 없습니까.”
연주가 잠깐 웃었다.
“없어. 대신 외상 달라는 사람은 많아.”
“거절하면 됩니까.”
“응. 그리고 거절한 뒤에 욕먹어도 너무 마음 쓰지 말고.”
그 말은 이상하게도 명령보다 오래 남았다.
연주는 폐기 바구니를 가리켰다. 날짜가 지난 도시락과 삼각김밥이 투명 봉투 안에 가지런했다.
“이건 정해진 시간 지나면 찍어서 처리해. 그냥 먹거나 주면 안 돼. 재고가 안 맞으면 내가 손해 봐.”
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끼 식사를 버리는 규칙이 아까웠다. 그러나 누군가의 손해 위에 자기 편의를 올리는 방식은 낯설지 않았다. 마교에서도 그런 일은 늘 전쟁의 끝에 남았다.
“여기 폐기 버튼 누른 다음에 상품을 읽히면 돼. 처음엔 꼭 나 불러. 잘못 찍고 취소하는 게 더 귀찮아.”
“알겠습니다.”
연주는 무진의 대답을 듣고도 바코드 스캐너를 다시 그의 손에 쥐여 줬다.
“알겠다는 말 말고 해 봐. 밤에는 손님이 기다려 주지 않거든.”
무진은 도시락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붉은 빛줄기가 바코드를 훑고 짧은 알림음이 났다. 화면에는 낯선 글자들이 바뀌어 나타났다.
그는 그것을 두 번 더 반복했다. 검결을 익힐 때처럼 손가락에 힘을 줄 필요는 없었다. 대신 물건을 놓는 자리와 순서가 있었다.
“누나, 그럼 나 간다.”
출입문 옆에 앉아 있던 유하진이 일어났다. 교복 위에 후드 집업을 걸친 소년은 종이봉투를 연주에게 내밀었다.
“저녁도 못 먹었다며. 김밥 두 줄. 하나는 새 알바 형 거.”
연주는 봉투를 받아 들고 하진의 뒤통수를 가볍게 쳤다.
“늦었어. 집 가서 문 잠그고.”
“알았어. 형도 야간 첫날이면 졸지 마세요.”
하진이 무진을 향해 턱을 들었다. 무진은 봉투 속 김밥을 보았다.
“고맙습니다.”
소년은 그 대답이 어색했는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아, 네.”
하진이 나간 뒤 연주는 시계를 확인했다. 22시 57분이었다.
“세 시쯤 되면 손님 거의 없어. 졸리면 커피 하나 먹어. 단 비상벨 위치는 꼭 숙지하고.”
“점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집. 걸어서 5분 거리야. 문제 있으면 전화해.”
무진은 내내 듣던 말을 되짚었다. 문제 있으면 전화한다. 부하를 부르거나 칼을 들지 않는다.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연주가 문 앞에서 돌아봤다.
“그리고 무진 씨.”
“예.”
“월세 급하다고 무리해서 일하는 거잖아. 손님한테 맞춰 줄 필요 없어. 가게 물건보다 사람 다치지 않는 게 먼저야.”
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물건보다 사람. 그 순서는 강호에서 너무 자주 뒤집혔다.
“지키겠습니다.”
연주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 봐.”
연주가 나간 뒤 점포에는 냉장고 모터 소리만 남았다.
무진은 종이봉투를 계산대 아래에 넣고 진열대로 갔다. 컵라면의 앞면을 가지런히 맞추고 과자 봉지가 튀어나온 자리를 눌렀다. 손님이 지나간 동선은 발자국보다 흐트러진 물건으로 남았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학생 둘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고 나갔다. 택시 기사가 캔커피를 사 갔다. 무진은 카드 단말기의 안내음을 세 번이나 놓쳤다.
네 번째 손님은 생수 두 병과 빵을 올려놓았다. 무진은 빵을 두 번 읽혔다. 화면의 금액이 이상하게 커진 것을 보고 손님이 먼저 눈썹을 찌푸렸다.
“이거 두 개 찍힌 거 같은데요.”
무진은 화면을 보았다. 전장에서 한 번의 판단 착오는 사람 하나의 목숨으로 남았다. 이곳에서는 천오백 원이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의 얼굴은 똑같이 불편해졌다.
“죄송합니다. 취소하겠습니다.”
연주가 적어 준 메모를 펼쳐 버튼 순서를 확인했다. 손님은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두 번째 안내음이 울린 뒤에야 금액이 바로잡혔다.
“됐습니다.”
손님이 카드를 대고 나갔다. 무진은 영수증을 건넨 손을 잠시 내려다봤다. 더 빠르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빠르다는 이유로 확인을 건너뛰면 안 됐다.
그는 메모를 계산대 옆에 다시 붙였다. 이번에는 손님이 잘 보이는 곳이 아니라 자기 눈높이에 맞췄다.
한 시가 가까워질 무렵 폐기 알림이 떴다. 무진은 도시락을 하나씩 읽혀 봉투에 넣고 수량을 세었다. 마지막 도시락을 들었을 때 속이 비어 있는 감각이 올라왔다.
봉투 속 김밥을 떠올렸다. 그는 계산대 아래에서 그것을 꺼냈다.
차가운 김밥 한 줄을 씹으며 유리문 너머를 살폈다. 거리에는 빗물에 번진 가로등만 있었다. 이름을 묻지 않는 손님과 정해진 값을 내는 물건들. 이곳은 전장과 닮지 않았기에 잠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때 유리문 바깥에 비틀거리는 그림자가 멈췄다.
무진은 냉장고 문에 비친 모습을 먼저 보았다. 붉어진 눈. 한 손의 검은 비닐봉지. 다른 손에 든 빈 병.
문이 열렸다.
“맥주 큰 거 두 개.”
남자는 냉장고에서 캔을 꺼내 계산대에 올렸다. 이어 소주병을 하나 더 세웠다.
무진은 물건을 찍었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내가 몇 살로 보여?”
“확인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비웃으며 지갑을 뒤적였다. 카드도 신분증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구겨진 지폐 몇 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걸로 해. 거스름돈은 네가 가져.”
금액은 모자랐다.
“부족합니다.”
“야.”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계산대 위의 캔을 손등으로 밀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탄산이 터지며 바지 끝을 적셨다.
“말귀 못 알아듣냐?”
무진은 호출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물건을 놓고 나가십시오. 계속 그러시면 신고하겠습니다.”
“신고?”
남자가 빈 병을 들었다. 병목이 진열대를 향했다. 유리병이 날아가면 술병 몇 줄이 함께 깨질 각도였다.
무진은 한 걸음 나왔다.
병이 움직이는 순간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엄지로 맥을 누르고 손등을 반 바퀴 돌렸다.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아악!”
병이 바닥에 굴렀다. 무진은 팔꿈치가 꺾이지 않는 자리에서 손을 멈췄다. 남자가 무릎을 굽히자 그를 출입문 쪽으로 돌려세웠다.
“밖으로 나가십시오.”
“놔, 이 새끼야.”
“병을 든 손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치려 했습니다. 영상도 남습니다.”
남자는 무진의 손을 떼어 내려다 몸을 비틀었다. 빠져나오지 못하자 욕설을 뱉고 문밖으로 물러났다.
무진은 손을 놓았다. 남자는 휘청이며 몇 걸음 물러난 뒤 유리문을 향해 침을 뱉었다. 그러나 다시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무진은 그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출입문 안쪽에 섰다. 쫓아가지는 않았다.
문을 잠그고 카운터로 돌아온 그는 CCTV 화면을 확인했다. 시간은 01:12. 떨어진 캔 하나와 젖은 바닥. 깨진 물건은 없었다.
그는 상품 번호와 시간을 메모지에 적었다. 연주에게 남길 짧은 보고도 작성했다. ‘주취 손님 주류 판매 거절. 캔 1개 손상. 인명 피해 없음.’
한 줄 적고 나니 손목에는 아직 미약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이 정도는 무공이라 부를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가슴 안쪽이 불편했다. 강호에서는 이런 자가 칼을 들기 전 끝냈다. 이곳에서는 끝낸 뒤에도 기록을 남기고 문을 잠가야 했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바닥을 한 번 더 닦고 젖은 캔을 폐기 봉투에 넣었다. 손님이 없는 계산대 앞에 서자 이상하게도 자기 자리를 지킨 기분이 들었다.
새벽 한 시 삼십 분이 지났을 때였다.
왼쪽 손바닥의 오래된 흉터가 뜨거워졌다.
무진은 고개를 들었다.
흉터 아래에 숨은 장부 인장이 한 번 뛰었다. 마지막 문을 지나온 뒤로 잠잠하던 기운이었다. 심장과는 다른 박동이 손바닥에서 울렸다.
그는 천천히 손을 쥐었다. 아무 손님도 들어오지 않는 빈 점포에서 장부 인장이 반응할 리 없었다. 살아 있는 약속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었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문 앞에 노인이 서 있었다. 젖은 회색 셔츠 소매에서 물이 떨어졌다. 한쪽 옆구리를 감싼 손은 붉었다.
노인은 유리문을 열고 천천히 들어왔다.
무진은 그의 발을 먼저 보았다. 비틀거리는 걸음인데도 발끝이 바닥을 더듬지 않았다. 상처를 참는 사람의 걸음이었다. 노인은 진열대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계산대까지 곧장 걸어왔다.
“다치셨습니까.”
노인이 멈췄다. 탁한 눈동자가 무진의 얼굴을 훑었다. 놀람과 안도가 차례로 스쳤다.
“여기가… 가게라는 곳입니까.”
“그렇습니다. 앉으시죠. 구급함을 가져오겠습니다.”
무진이 카운터 아래로 손을 뻗자 노인이 급히 고개를 저었다.
“상처는 상관없습니다.”
그 목소리는 비에 젖은 종이처럼 갈라져 있었다.
노인은 주머니를 더듬었다. 피와 빗물에 젖은 손가락 끝에서 둥근 은 조각 하나가 나왔다.
그가 은표를 카운터 위에 올렸다.
은표에는 오래된 마교의 문양이 반쯤 지워져 있었다.
무진의 손끝이 멎었다.
노인은 카운터 너머의 그를 올려다봤다.
“천마님.”
장부 인장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 빚을 어디에 갚아야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