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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32화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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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취미 회사의 채용 공고

소라가 W&U 랩의 유리문에 종이 두 장을 붙였다.

첫 장에는 들꽃 파일럿 일정이 적혔다. 협력사 세 곳과 매장 세 곳을 돌며 제품 반응을 모아야 했다. 두 번째 장에는 출근 가능한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서은우. 한소라.

“두 장의 두께가 너무 다른데요.”

은우가 말했다.

“제가 그래서 빈칸을 남겼죠. 현장 담당 한 명, 데이터 정리 담당 한 명.”

소라는 빨간 펜으로 빈줄을 그었다.

“매장 문 열 때 찍는 첫 사진이랑 문 닫기 전 남은 용기 수까지요. 같은 날 숫자가 달라지면 이유를 물을 사람도 필요하고요.”

“두 주짜리 파일럿이라도 아침 입고부터 저녁 회수까지 기록하려면 둘이선 못 합니다. 대표님이 매장을 돌면 협력사 연락이 밀리고 제가 수치를 정리하면 매장 전화가 쌓여요.”

은우도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 적힌 공개 약속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았다. 생산자 이름을 확인하는 사람, 반품 이유를 적는 사람, 재사용 용기의 수를 세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은우는 파일럿 예산표에서 광고 집행비를 줄인 칸을 찾아냈다. 그 돈을 검증 인력의 급여로 묶어 두었지만 사람을 구하지 못하면 숫자는 종이 위에만 남는다.

노트북에는 세라가 보낸 짧은 메일이 열려 있었다. 외부 전송 로그 원본을 별도로 보존했고 JH-04 표시명에 연결된 실제 접속자와 수신 계정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은우는 답장을 썼다.

‘조사는 원본 보존 절차대로 진행해 주세요. W&U의 파일럿 자료와 채용 지원 정보는 접근 범위를 분리하겠습니다.’

“그쪽은 세라 변호사에게 맡기고 우리는 사람부터 찾아야겠네요.”

“그전에 제 이름을 여기 적어 주세요.”

소라가 두 번째 종이의 빈칸을 가리켰다.

“이미 적혀 있잖아요.”

“공동창업자로는요. 이제 제 일주일 전부를 여기다 걸겠다는 뜻이에요.”

소라는 가방에서 얇은 정산 파일을 꺼냈다. 이전에 맡았던 외주 원고의 마지막 대금 입금 내역이었다.

“남은 일 다 끝냈어요. 월급과 지분이랑 결정권도 다시 적죠. 친구라서 야근하는 건 오래 못 가요.”

은우는 그제야 소라가 빈칸을 남긴 이유를 알았다. 자신에게 충성을 확인받으려는 게 아니었다. 함께 세운 회사에서 일의 값을 정확히 매기자는 말이었다.

“당연하죠. 급여는 파일럿 예산에서 먼저 떼고 지분은 창업 계약대로 유지해요. 채용 기준은 함께 결정하고요.”

“대표님 급여도 적으세요. 둘이 밤새 일하고 회사 통장만 깨끗하면 누가 오래 버텨요?”

“잔소리도 직무에 넣어야겠네요.”

“제일 잘하는 업무니까 성과급 주세요.”

은우가 웃으며 두 사람의 월 급여와 지급일을 같은 표에 썼다. 소라는 그제야 파일을 덮었다.

“좋아요. 그리고 제 직함은 카피라이터 말고 현장 언어 책임자로 해요. 그럴듯한 말은 나중에 써도 되니까.”

은우가 펜을 건네자 소라는 종이 아래에 자신의 이름을 다시 썼다.


오전 열 시에 올린 채용 공고는 점심 무렵 업계 대화방으로 퍼졌다.

지원서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화면을 잘라 낸 사진이었다.

‘재벌 며느리의 취미 회사에서 경력자 구한다네.’

‘들꽃은 신성에서 맡겨 줬다며? 망하면 다시 본가 가면 되겠네.’

소라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원글은 누가 썼는지 확인 안 돼요. 전달된 것만 벌써 여섯 군데예요.”

은우는 사진 아래의 채용 링크를 눌렀다. 공고에는 ‘대형 브랜드 캠페인 경력 우대’라는 문장이 남아 있었다. 은우가 새벽에 급히 쓴 문장이었다.

“일단 면접부터 보죠.”

오후 첫 지원자는 오지 않았다. 이력서가 가장 좋던 지원자는 십 분 전에 메일을 보냈다. 신성 임원의 가족 회사에 들어가면 다른 거래처와 일하기 어렵겠다는 짧은 사유였다.

다음 지원자는 왔다. 은우는 그의 포트폴리오에 표시한 페이지를 펼쳤다.

“매장 고객 반응을 직접 기록하신 기간이 길군요.”

“그보다 확인할 게 있습니다.”

지원자가 서류를 닫았다.

포트폴리오의 마지막 장에는 고객 항의에 응답한 기록이 빼곡했다. 은우가 찾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어질 대답을 듣기 전부터 아쉬웠다.

“들꽃이 잘되면 신성리테일 정규직으로 옮길 수 있습니까?”

“W&U 채용입니다. 신성리테일은 발주처이고 직원 인사는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럼 신성 직원이 업무 지시를 하진 않나요?”

“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그쪽 경력을 기대하고 왔습니다.”

“그 기대를 채용 공고가 만들었다면 제 책임입니다.”

은우는 고개를 숙였다. 지원자는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지만 다시 앉지는 않았다.

그가 떠난 뒤 소라가 의자를 돌렸다.

“우리를 우회 입사 통로로 본 거네요.”

“우리가 써 놓은 말이 그걸 부추겼을 수도 있어요.”

소라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창업 계약서를 툭 두드렸다.

“나까지 취미로 여기면 곤란한데. 월세는 취미로 낼 수 없거든요.”

가벼운 말투였지만 은우는 웃지 못했다. 자신이 받은 조롱보다 소라가 여기서 쌓을 경력이 한 줄로 지워지는 게 아팠다.

“그 문장이 우리 일의 설명이 되지 않게 할게요.”

“그러려고 둘이 회사 세웠잖아요. 일단 공고부터 제대로 써요.”

은우는 공고의 첫 문장을 다시 읽었다. ‘신성리테일 친환경 브랜드 들꽃 프로젝트 경력자를 모집합니다.’ 회사의 이름보다 발주처의 이름이 앞섰다.

“첫 줄부터 잘못 썼네요.”

소라가 고개를 들었다.

“제일 신나는 브랜드를 하자는 말로 바꿀까요?”

“아뇨. 일의 주체가 누구인지 먼저 써야죠.”

그때 민규가 보낸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력 부족이 일정에 영향을 줄 경우 신성리테일의 운영 인력을 한시 파견할 수 있다는 제안이었다.

은우는 답장을 쓰다 멈췄다. 어제 받은 계약서에는 W&U의 독립 검수 권한이 적혀 있었다. 신성 직원이 기록을 대신 만들면 그 기록을 누가 검증할 수 있을까.


신성리테일 로비에서 지혁은 은우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파견 제안은 민규 과장 판단인가요?”

“인력 부족 가능성을 들은 뒤 제가 검토하라고 했습니다. 계약 상대에게 압박으로 보였다면 철회하겠습니다.”

“철회해 주세요. 우리 검수 기록은 우리 인력이 만들어야 합니다.”

“일정이 급하면 신성 쪽에서 이미 보유한 입고 자료는 받을 수 있습니다. 원본과 제공 시각을 표시하겠습니다.”

“그 자료는 받겠어요. 현장에서 새로 쓰는 조사표는 우리가 만들고요.”

“알겠습니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자 은우는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그리고 채용 지원자 명단은 신성 서버에 올리지 않을 겁니다. 들꽃 생산 자료와도 분리할 거예요.”

“그게 맞습니다.”

“JH-04 조사에는 지혁 씨 계정도 그대로 포함합니다.”

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 변호사가 요구하는 범위만 열겠습니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누구도 지목하지 말라고도 전달하겠습니다.”

은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하루 내내 남들이 붙여 준 이름이 그녀를 따라다녔다. ‘며느리 회사’라는 이름도, 계정 표시명 속 지혁의 이니셜도 사실을 대신할 수 없었다.

“소라가 전업으로 들어왔어요.”

“잘됐군요. 필요한 일이 있습니까?”

“지금은 없어요. 사람을 뽑는 것도 제가 하겠습니다.”

지혁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그 말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서운하세요?”

“조금요. 그래도 맞는 결정입니다.”

은우는 처음으로 웃었다.

로비 밖에서 소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리필숍 운영자가 보내 준 메모가 들려 있었다.

“대표님. 시제품 회수 기록을 부탁했더니 이것까지 적어 주셨어요.”

메모에는 ‘뚜껑이 젖은 손에 미끄러짐’이라는 글씨가 굵게 표시돼 있었다. 그 아래에는 매장에서 반품이 일어나는 순서와 손님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이 적혀 있었다.

은우가 손가락으로 종이의 눌린 자국을 짚었다. 반품 이유를 적는 칸보다 ‘다음에 다시 가져오겠다는 말’ 옆의 여백이 더 많이 채워져 있었다.

“이걸 쓴 분은 누구예요?”

“매장 직원이요. 사장님보다 손님을 오래 만난대요. 기존 리필 용기 기록이라 들꽃 제품 자료로 쓰진 말아 달라고 했어요.”

“그건 지켜야죠. 대신 우리가 뭘 놓치고 있는지는 배웠네요.”

은우는 자신의 공고에 적힌 ‘대형 브랜드 캠페인 경력 우대’를 떠올렸다. 지금 필요한 건 광고상 문구보다 젖은 손으로 용기를 잡아 본 사람이었다.


W&U로 돌아온 두 사람은 채용 공고를 처음부터 고쳤다.

회사명과 급여 범위, 두 주 파일럿 이후의 계약 검토 시점, 주말 근무 시 대체 휴무를 맨 위에 썼다. 현장 담당은 매장별 반품 사유와 용기 회수 과정을 기록하고 데이터 담당은 숫자의 출처를 대조한다고 적었다. 신성리테일은 발주처이며 W&U 직원의 평가와 업무 지시는 W&U가 맡는다는 문장도 넣었다.

“학력란은요?”

소라가 물었다.

“필요 없어요.”

“대형 대행사 경력은?”

“없애요. 대신 현장에서 고객의 말을 듣고 기록한 사례를 받죠.”

소라가 새 질문을 입력했다.

‘손님이 제품을 돌려주었을 때 어떤 말을 들었고 무엇을 바꾸었습니까?’

은우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답을 예쁘게 쓰는 사람보다 실제로 무엇을 봤는지 적는 사람을 만나요.”

“좋아요. 다만 내일 오전 매장 두 곳 점검은 우리 둘이 가야 해요.”

“알아요. 채용이 늦어지면 파일럿 범위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새 공고를 게시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지원 알림 하나가 떴다.

첨부 파일은 화려한 포트폴리오가 아니었다. 매장 계산대 옆에서 쓴 반품 기록을 찍은 사진이었다. 지원자는 돌봄 때문에 경력이 끊긴 뒤 지금은 그 리필숍에서 시간제로 일한다고 적었다. 운영자의 허락을 받아 개인 정보를 지운 기록만 첨부했다는 설명도 있었다.

소라가 사진을 확대했다.

“아까 그 기록을 쓴 분이네요. 사장님이 공고를 알려 주셨대요.”

빨간 펜으로 마지막 줄이 그어져 있었다.

‘뚜껑이 젖으면 미끄러진다. 그런데 손님이 빈 용기를 다시 가져왔을 때 직원도 왜 받아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회수 횟수를 적기 전에 직원이 답할 문장부터 만들어야 한다.’

은우는 그 문장을 읽고 매장에서 들은 질문을 떠올렸다. 제품 설명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사람을 맞는 말이 필요했다.

“면접을 제안해요. 내일 첫 매장 점검 때 저희가 무슨 일을 기록하는지도 보여 드리고요. 채용 전 노동을 부탁하는 걸로 들리지 않게 점검은 우리가 할 거라고 분명히 전해요.”

소라가 지원서의 연락처를 눌렀다. 두 사람의 이름만 적혀 있던 유리문 안쪽에 아직 빈칸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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