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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27화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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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닫힌 문 앞에서

지혁의 손끝에서 온기가 빠져나갔다.

“검은 승합차?”

그가 되물었다.

수화기 너머 경호팀장의 목소리가 복도에 낮게 번졌다.

“네. B2 하역 구역에 정차해 있던 차량입니다. 비상문이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출차 직전에 문 쪽 카메라가 끊겼습니다. 차량 번호는 38가의 뒤 네 자리만 확인됐습니다.”

“누가 비상문을 잠갔습니까.”

“확인 중입니다. 보안 카드는 사용되지 않았고 수동 잠금 장치가 작동한 흔적이 있습니다.”

지혁의 손이 휴대폰을 쥔 채 굳었다.

은우는 그의 얼굴보다 먼저 호흡을 보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간격이 지나치게 길었다. 내쉴 때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주차장으로 가겠습니다.”

지혁이 말했다.

“제가 같이 가도 됩니까?”

은우는 곧바로 덧붙였다.

“여기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제가 다녀와도 되고요.”

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민규가 보안팀 번호가 찍힌 화면을 내밀었다.

“현장으로 가시면 접근 로그와 CCTV가 덮어쓰이지 않도록 먼저 고정하겠습니다.”

“나도 간다.”

지혁의 말은 단정했지만 손가락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은우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같이 가요. 대신 현장에서 문을 열지 말지와 이동할 곳은 지혁 씨가 정합니다.”

잠시 뒤 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같이 와요.”

“네.”

은우는 민규에게 말했다.

“보관실 상자는 법무 담당자 입회 아래 봉인해 주세요. 주차장에는 사람을 많이 붙이지 말고 통로를 비워요. 누군가를 잡는 것보다 현장을 보존하는 게 먼저입니다.”

“알겠습니다.”

지혁은 은우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서비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밀려왔다.

갈라홀의 향수 냄새가 끊기고 콘크리트와 고무 타이어 냄새가 섞였다. 은우는 거울에 비친 지혁을 살폈다. 그는 벽에 기대지 않고 서 있었지만 엄지가 검지의 마디를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손을 잡아도 됩니까?”

“아직은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은우는 더 묻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지하 2층에 닿았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바깥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철컥.

지혁의 어깨가 크게 굳었다. 문이 반쯤 열리자 그는 닫힘 버튼을 눌렀다.

“지혁 씨?”

“잠깐.”

문이 다시 닫혔다. 좁은 공간 안에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열지 마.”

지혁이 낮게 말했다.

“문을 열지 않겠습니다.”

“저 문이…….”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시선이 엘리베이터 바닥의 검은 고무 매트에 박혔다.

은우는 층 표시를 확인했다.

“지금은 신성문화재단 지하 2층입니다. 서비스 엘리베이터 안이고요. 제 목소리가 들립니까?”

“들립니다.”

“문을 닫은 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니면 문을 열고 왼쪽 계단으로 갈 수 있어요. 지혁 씨가 고르세요.”

지혁은 입술을 다물었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2에서 1로 바뀌었다.

“왼쪽.”

“제가 먼저 내릴게요. 지혁 씨는 세 걸음 뒤에 와요.”

문이 열렸다.

은우가 먼저 내려 왼쪽 벽과 계단 표지를 확인했다. 뒤에서 지혁의 구두가 바닥에 닿았다.

비상문에는 작은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그 너머로 주차장의 하얀 조명이 깜빡였다.

지혁의 얼굴에서 피가 빠졌다.

“비슷해.”

“무엇이요?”

“경사. 냄새. 문.”

세 단어가 끊겨 나왔다.

경호팀장이 문고리에 손을 대려 하자 지혁이 소리쳤다.

“열지 마!”

은우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두 걸음 뒤로 물러나 주세요. 문은 그대로 두고요.”

그녀는 지혁의 앞을 막지 않고 시야 한쪽에만 들어가도록 섰다.

“계단으로 돌아가거나 엘리베이터로 갈 수 있습니다. 보안실에 연락해 사람을 부를 수도 있어요.”

“사람을 부르면…….”

“제가 옆에 있습니다. 아무도 지혁 씨를 만지지 않게 할게요.”

지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차 안에…….”

그가 숨을 들이마셨다. 공기가 목에서 걸렸다.

은우는 질문을 삼켰다.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확인해야 해요.”

“확인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지혁 씨가 이 문 앞에 서 있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 혼자 보내지 않겠습니다.”

“혼자 가지 않아요. 민규 씨와 경호팀장님이 같이 갑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은우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가도 됩니다. 하지만 문은 열지 마세요.”

“약속하겠습니다.”


민규가 보안실에 연락한 뒤 주차장 통로에 사람을 세웠다. 경호팀장은 비상문을 열지 않고 유리창 너머를 확인했다.

검은 승합차는 없었다. 바닥에는 타이어가 급하게 꺾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비상문 옆 수동 잠금 장치에는 얇은 금속 가루가 묻어 있었다.

“사진부터 찍고 장갑을 바꿔서 보존하세요.”

은우가 말했다.

“추측을 먼저 적으면 나중에 증거가 그 추측에 맞춰집니다.”

민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혁은 계단 입구에 선 채 문 아래의 좁은 틈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갈 때마다 그 틈의 빛이 끊겼다.

“차량은 22시 51분에 들어왔고 22시 54분에 나갔습니다. 운전자는 모자를 써서 얼굴 확인이 어렵습니다. 비상문 카메라는 22시 52분부터 4분간 영상이 없습니다.”

보안실의 무전이 끝나자 지혁의 호흡이 다시 흐트러졌다.

“몇 시라고 했습니까?”

“22시 52분입니다.”

민규가 답했다.

지혁의 시선이 은우에게 향했다.

“그 전화가 온 시간과 가깝습니다.”

“네. 하지만 지금은 누가 범인인지 정할 때가 아닙니다. 무엇이 기록됐는지 확인할 때예요.”

“기록이 끊겼습니다.”

“끊긴 것도 기록입니다.”

은우는 비상문에서 두 걸음 물러났다.

“문서를 노린 사람이 주차장까지 움직였다는 정황은 생겼지만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지혁 씨가 여기서 증명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지혁이 낮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부서진 숨에 가까웠다.

“당신은 늘 제가 모르는 걸 먼저 정리해 줍니다.”

“지금은 정리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벌고 있습니다.”

은우는 그의 눈을 보며 말했다.

“지혁 씨가 보고 들은 것을 다시 자기 것으로 가져올 시간입니다.”

지혁은 문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계단참으로 가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이동해도 됩니까?”

이번에는 지혁이 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아도 됩니까?”

은우는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혁의 손가락이 은우의 손을 감쌌다. 손바닥은 차가웠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계단을 한 층 올라갔다.


계단참의 창문으로 지하 주차장의 조명이 길게 들어왔다. 은우는 난간 옆 의자에 지혁을 앉히고 물병을 열어 건넸다.

지혁은 물병을 받았지만 바로 입에 대지 못했다.

“지혁 씨가 보고 있는 건 지금 이곳입니까?”

“네.”

“거짓말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혁은 한참 뒤에 말했다.

“아마도 아닙니다.”

은우는 그의 앞이 아니라 옆에 섰다.

“그럼 지금 보이는 것 세 가지를 말해 주세요.”

“파란 출구 표지. 당신의 시계. 민규가 든 검은 파일.”

“들리는 건요?”

“환풍기. 무전기.”

지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당신이 숨 쉬는 소리.”

이번에는 눈동자가 현재에 머물렀다.

“제가 이상해 보입니까?”

“아니요. 지혁 씨가 말하지 않은 일은 모릅니다.”

그 말에 지혁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습니까?”

“궁금합니다. 하지만 궁금한 것과 물어도 되는 건 다릅니다.”

지혁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손은 아직 떨렸지만 병을 놓치지는 않았다.

“문이 닫히는 소리를 기억합니다.”

그가 말했다.

“오늘 소리와 비슷했습니다.”

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게 전부여도 됩니다.”

“문을 열지 않아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지혁 씨가 열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그 말을 들어 준 사람이 처음이라면요?”

은우는 그 문장을 바로 해석하지 않았다.

“오늘은 제가 들었습니다.”

지혁은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제가 약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약해진 사람은 선택권을 빼앗겨도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지혁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럼 오늘은 다르게 배워요.”

은우는 그의 손에 들린 물병을 가리켰다.

“도움을 받을지 말지 고를 수 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건 약한 게 아닙니다.”

계단 아래에서 발소리가 올라왔다. 윤세라가 민규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지혁아. 보관실과 주차장 로그 보존은 끝냈어. 비상문은 열지 않았고 잠금 장치도 촬영했어.”

지혁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가 은우에게 말했다.

“문서 원본을 요구하는 익명 메시지가 하나 더 왔어.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남은 건 주차장에 있다.’”

지혁의 손이 물병을 세게 쥐었다.

은우는 손을 올리지 않고 시선만 맞췄다.

“지혁 씨. 지금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하에서 자동차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났다. 계단참의 창문이 아주 조금 떨렸다.

지혁은 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집에 가고 싶습니다.”

“혼자 갈 수 있습니까?”

지혁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같이 와요.”

은우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지혁이 먼저 놓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는 아무도 열지 않은 비상문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지혁은 더 이상 그 문만 바라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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