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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25화

계약 결혼인데 시부모님이 너무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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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서로의 답

“첫 질문입니다. 강 전무님이 잠들지 못하는 밤,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우진 기자의 목소리가 홀 중앙에 맑게 울렸다.

카메라 렌즈들이 은우와 지혁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기부금 사용처를 알리던 화면도 흐릿한 빛으로만 남았다.

지혁은 한 발 앞으로 나서려 했다. 은우가 그의 손을 잡은 채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질문은 세 개만 받겠습니다.”

은우가 말했다.

“한 사람만 답하는 방식도 안 됩니다. 서로에게 한 개씩, 마지막 질문은 두 사람이 동시에 답하는 것으로 하죠. 그리고 답을 들은 뒤에도 의혹을 제기하려면 기자님은 취재의 공익성과 자료 입수 경위를 설명해 주세요.”

정우진이 눈썹을 움직였다.

“질문을 제한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사생활은 무제한으로 꺼내 놓는 물건이 아니니까요. 공익 취재라면 검증 절차도 공정해야 하고요.”

지혁이 은우를 보았다. 그녀는 카메라를 피하지 않았다. 질문을 받아들이되 질문의 주도권까지 내주지는 않는 얼굴이었다.

“좋습니다.”

정우진이 녹음기를 세웠다.

“답하시죠. 잠들지 못하는 밤에 강 전무님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은우는 잠시 지혁의 옆모습을 보았다.

한남동 펜트하우스에서 처음 늦은 밤을 보냈을 때였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도 거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지혁은 서재 창문을 조금 열어 둔 채 창가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 차도 술도 없었다. 접힌 경제지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태블릿만 놓여 있었다.

“창문을 엽니다.”

은우가 또렷하게 말했다.

“그리고 서재 창가에 앉아서 종이 신문을 넘겨요. 기사 내용을 읽는다기보다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 같아요. 태블릿은 무음으로 켜 두고요.”

정우진의 입가가 조금 굳었다.

은우는 말을 이었다.

“그날은 누구도 깨우지 않으려 하죠. 제가 알아차려도 괜찮다고 말하기 전까지는요.”

지혁의 시선이 은우에게 멈췄다. 그녀가 본 것은 불면이라는 약점이 아니었다. 자신이 오래 감춰 둔 조용한 습관이었다.

“맞습니까?”

기자가 물었다.

“맞습니다.”

지혁의 대답은 낮고 단정했다.

은우는 그 한마디를 듣고서야 손끝의 힘을 조금 풀었다. 불안을 감추는 사람에게 그 습관을 들켰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 안쪽의 고요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는 뜻 같았다.


정우진은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을 꺼냈다.

“그럼 강 전무님 차례입니다. 서 대표님이 중요한 발표 전날 반드시 하는 행동은 무엇입니까?”

은우의 손끝이 가만히 굳었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도 아니고 외부에 알려진 습관도 아니었다. 소라조차 모를 질문이었다.

지혁은 은우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망설이지 않았다.

“부모님 인쇄소에서 가져온 쇠자를 꺼냅니다.”

홀 안에서 작은 숨소리가 흘렀다.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정리하기 전에 그 자를 책상 맨 앞에 둡니다. 그리고 숫자보다 고객 이름을 먼저 씁니다. 긴장하면 숫자를 붙잡기보다 누가 그 기획을 실제로 쓰는지부터 확인하니까요.”

은우는 지혁의 서재 책상 끝에 놓인 낡은 쇠자를 떠올렸다. 며칠 전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물건이었다. 그는 아무 설명 없이 서랍 맨 위 칸에 보관해 두고 있었다.

“왜 그걸 합니까?”

정우진이 끼어들었다.

“질문은 답하면 끝내죠.”

지혁의 목소리가 차갑게 잘렸다.

그러나 은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아직도 그 자로 종이 재단선을 재세요. 저는 기획이 커질수록 처음 손에 쥔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꺼내 둡니다.”

지혁은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손을 잡은 힘은 아주 조금 단단해졌다.

정우진은 미소를 지었다.

“흥미롭군요. 연습을 많이 하신 모양입니다.”

은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연습한 대답이라면 기자님이 더 잘 아시겠네요. 질문을 미리 받아 적어 오셨으니까요.”

순간 정우진의 태블릿 화면이 흔들렸다. 민규가 경호팀 뒤에서 한 걸음 다가왔다.

“형수님. 화면에 열린 문서 제목이 보입니다.”

민규가 낮게 말했다.

“갈라 운영위 내부 동선 검토안과 같은 제목입니다. 배포 대상은 제한돼 있었습니다.”

정우진은 급히 태블릿 화면을 껐다.

“취재 메모는 취재원의 보호 대상입니다.”

“취재원 보호와 질문지 출처는 다른 문제죠.”

은우가 대답했다.

“저희가 정한 마지막 질문을 하세요. 그다음에는 기자님 차례입니다.”

정우진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 포토월 근처에 있던 오혜란이 잔을 들었다가 천천히 내려놓는 모습이 보였다.

“좋습니다.”

기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두 분이 진짜 부부라면 상대가 가장 싫어하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동시에 답해 보시죠.”

지혁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질문은 더 이상 생활 습관을 묻지 않았다. 계약서의 빈틈을 찌르려는 질문이었다.

은우는 그를 올려다봤다.

“하나, 둘, 셋.”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혼자 괜찮다고 말하는 것.”

정우진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지혁은 은우를 보았다. 은우는 웃지 못했다. 그 답이 맞았다는 사실보다 서로 같은 문장에 닿았다는 사실이 더 벅찼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대답 아닙니까?”

정우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럼 이유까지 답하겠습니다.”

은우가 마이크를 받아 들었다.

“지혁 씨는 괜찮다고 말한 뒤 혼자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도와줄 기회까지 없애요. 저는 반대로 괜찮다고 말하면서 손을 더 빨리 움직입니다. 부탁하면 약해지는 줄 알았으니까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지혁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그 말이 서로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압니다. 그래서 요즘은 먼저 묻습니다. 정말 괜찮은지.”

지혁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립니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러나 은우의 가슴 깊은 곳에 오래 남았다.

홀 안은 조용했다. 누군가의 카메라 셔터가 몇 번 울린 뒤 입구 전시 쪽에서 조심스러운 박수가 시작됐다.


은우는 박수가 커지기 전에 정우진에게 몸을 돌렸다.

“이제 기자님 차례입니다. 저희가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는 사진이 공익적 의혹을 뒷받침한다는 근거가 뭡니까? 그리고 오늘 질문지를 누가 전달했는지 말해 주세요.”

“제보자의 신원은 밝힐 수 없습니다.”

“신원을 묻지 않았습니다. 출입 권한이 필요한 내부 문서를 어떤 경위로 받았는지 묻는 겁니다.”

민규가 휴대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운영위원회 보좌진 계정 중 하나가 오늘 오후에 외부 메일로 동선 검토안을 전송한 기록이 있습니다. 수신 주소는 기자님 회사 도메인입니다.”

정우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기록은 불법적으로 취득한 것 아닙니까?”

“행사 보안 로그입니다.”

지혁이 처음으로 기자 앞으로 걸어 나왔다.

“당신은 사전 등록되지 않은 질문으로 사생활 검증을 시도했습니다. 자료 출처와 출입 경위를 제출하십시오. 제출 전까지는 오늘 촬영물의 무단 유포도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언론을 막겠다는 겁니까?”

“질문을 막는 게 아닙니다. 근거 없는 의심을 취재라고 부르지 말라는 겁니다.”

은우의 목소리가 지혁의 말 뒤를 이었다.

“오늘 여기에는 이름이 없는 제작자들이 있습니다. 그분들도 기사 한 줄로 누군가의 사정이 소비되는 일을 겪어 왔어요. 보이지 않는 시간을 공개하자고 만든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근거 없이 전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녀는 입구 전시를 가리켰다.

“후원도 취재도 책임을 먼저 보여야 합니다.”

오혜란이 잔을 내려놓고 다가왔다.

“서 대표님. 기자의 질문이 거칠었다고 해서 재단 행사를 개인 분쟁의 무대로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요?”

은우는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그러게요. 그래서 처음부터 개인적인 이야기를 끌어온 분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오혜란의 눈가가 아주 잠깐 굳었다.

지혁은 경호팀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진은 즉시 끌려 나가지 않았다. 그는 촬영 장비를 정리한 뒤 민규가 지정한 운영실로 동행했다.

윤해정은 입구 전시 앞에서 자기 이름이 적힌 보드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박수를 보탰다. 누군가의 손으로 만든 시간을 보여 주려던 행사는 한순간 다른 종류의 검증대가 됐다. 은우는 그 자리에서도 누구의 이름을 함부로 소비하게 두지 않았다.


사람들이 다시 전시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동안 은우는 지혁과 나란히 무대에서 내려왔다.

“아까 대답.”

지혁이 낮게 말했다.

“정말 제가 그 말을 제일 싫어합니까?”

“네.”

은우는 솔직하게 답했다.

“지혁 씨가 혼자 괜찮다고 하면 저는 제 자리가 없는 것 같아서 싫어요.”

지혁의 발걸음이 멈췄다.

“당신 자리는 비워 둔 적 없습니다.”

“말로는 처음 들었네요.”

“그럼 앞으로는 말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장의 음악보다 낮았지만 은우에게는 더 선명했다.

민규가 복도 끝에서 다급하게 다가왔다.

“형. 기자 휴대폰에 방금 메시지가 왔습니다.”

지혁의 표정이 굳었다.

“내용은?”

민규가 화면을 보여 주었다.

[원본은 보관실에 있다. 계약서보다 먼저 그걸 확보해.]

은우의 시선이 아이보리 드레스가 놓인 쪽으로 향했다.

원본은 보존 케이스 안에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노리는 원본은 드레스 한 벌만이 아닐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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