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당한 나의 100번째 복제인간

5화: 얼음 냄새
포드 아래의 길
갈고리가 화물 포드의 외벽을 긁었다.
끼이익.
선체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천장의 산소 마스크가 흔들렸다. 시온은 조종석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외벽 감압 소탕까지 11분 42초.
측면 해치의 기압계가 붉게 뛰었다. 사냥꾼들이 절단기로 문을 자르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 남은 공기까지 잃는다.
작은 창에 절단 불꽃이 튀었다. 포드가 흔들릴 때마다 도하의 몸도 바닥에 쓸렸다.
“밑으로 갑니다.”
서린아가 손바닥만 한 비상 도면을 펼쳤다. 포드 바닥의 점검 해치가 외벽 운송 레일 아래 이송통로와 이어져 있었다. 레일 점검원들이 정거장 안쪽으로 돌아가는 통로였다.
해치 옆 작은 압력계에는 녹색 바늘이 떠 있었다. 포드와 아래 통로의 기압이 같았다. 시온은 밸브를 손으로 한 번 시험하고 나서야 잠금핀을 뽑았다. 한쪽 바늘이 붉게 움직였으면 해치는 열 수 없었다.
시온이 바닥 덮개를 열었다. 아래에서는 송풍기가 뜨거운 금속 냄새를 뿜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좁은 사다리였다.
“도하. 내려갈 수 있겠어?”
도하가 무릎을 붙잡았다. 손끝이 떨렸다.
“계단은. 조금.”
“사다리야. 내가 먼저 내려가 받겠다.”
“떨어뜨리면?”
“그럼 나도 같이 떨어져.”
농담처럼 던진 말이 약속이 되었다. 시온은 아픈 팔 대신 두 다리로 사다리를 버티고 도하의 발이 닿을 자리를 일러 주었다.
도하는 시온의 피 묻은 어깨를 봤다. 믿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해치 가장자리까지 몸을 끌고 왔다.
쿵.
측면 문이 안쪽으로 볼록하게 휘었다. 시온은 서린아에게 눈짓했다. 서린아가 팔림프세스트에서 얇은 절단 코일을 분리해 해치의 봉인선을 잘랐다. 장비의 표시등 하나가 꺼졌다.
“이제 감응 코일은 하나만 남아요.”
“돌아가서 보상할게.”
“당신 명의로 청구할 수 있는 보험은 이제 없어요.”
측면 문에서 두 번째 절단음이 났다.
시온은 사다리로 몸을 내렸다. 다친 어깨에 무게가 실리자 시야가 하얘졌다. 서린아가 도하의 발목을 잡아 한 칸씩 내려보냈다.
셋이 아래로 내려온 순간 포드의 측면 문이 터졌다.
“대상 확인! 안에 있다!”
헬멧을 쓴 사냥꾼이 해치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시온은 포드 바닥 비상함에서 꺼낸 소화통의 봉인을 뽑았다. 흰 분말이 사다리 통로를 채웠다. 사냥꾼이 욕설을 뱉으며 렌즈를 닦는 동안 시온은 하부 격자를 닫았다.
격자에는 안쪽 걸쇠가 없었다. 시온은 소화통을 눕혀 손잡이 사이에 끼웠다. 첫 발길질에 통이 휘어졌고 두 번째 발길질에는 손잡이가 조금 벌어졌다. 한 번 더 버티기는 어려웠다.
“얼마나 벌었죠?” 서린아가 물었다.
“분말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는 곧바로 도하의 팔을 자신의 허리에 둘렀다.
기밀문의 반대편
이송통로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날 폭이었다. 바닥에서는 정비 레일이 울리고 벽에서는 압력 배관이 낮게 떨렸다. 서린아가 앞에서 비상등을 비췄다.
소탕까지 8분 16초.
도하의 발끝이 자꾸 바닥에 끌렸다. 가벼운 몸인데도 시온의 어깨는 매걸음마다 타들어 갔다. 서린아가 멈춰 도하의 목덜미에 손을 댔다.
피부가 차가웠다. 서린아는 자신의 외투 안감을 뜯어 도하의 목덜미에 둘렀다. 도하가 춥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자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체온이 또 떨어져요. 속도를 높이면 쓰러질 겁니다.”
“빠른 길을 찾을게.”
시온은 벽의 정비 표지들을 읽었다. 도크 7 방향은 위쪽이었다. 심층 냉각 도관으로 가는 화살표는 아래쪽 비상 계단을 가리켰다. 그는 아래를 택했다.
위쪽 표지 밑에는 보안 셔틀의 도착을 알리는 파란 등이 켜져 있었다. 윤태경의 약속은 진짜였다. 그렇다고 셔틀에 탄 뒤 내릴 권한까지 그의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 시온은 표시등에서 눈을 떼고 도하의 체중을 다시 받았다.
뒤에서 금속 격자가 울렸다. 사냥꾼이 통로에 내려온 모양이었다.
“한시온! 혼자 나오면 나머지 둘은 건드리지 않겠다!”
계단 끝에는 사람 키보다 낮은 기밀문이 있었다. 문을 여는 수동 손잡이에는 외벽 소탕 시 자동 폐쇄라는 붉은 글씨가 찍혀 있었다. 서린아가 손잡이를 돌렸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압력 차 때문에 걸렸어요. 배관을 먼저 비워야 해요.”
바깥 통로의 기압이 안쪽보다 높았다. 압력을 맞추지 않고 문을 당기면 문짝이 틀어져 더는 닫히지 않을 수 있었다.
시온이 옆의 방출 손잡이를 잡았다. 어깨에 힘을 넣자 붕대 안쪽이 젖었다. 한 번 돌리고 손이 미끄러졌다.
도하가 그의 팔을 밀어냈다.
“내가 잡을게.”
“힘이 없어.”
“손은 움직여.”
서린아가 도하의 뒤에서 몸을 지탱했다. 시온은 손잡이를 반쯤 돌리고 도하에게 넘겼다. 도하가 양손으로 밀었다. 밸브 속 공기가 쉭 하고 빠졌다. 기밀문이 손가락 두 마디만큼 벌어졌다.
도하의 손이 손잡이 위에서 미끄러졌다. 서린아가 그녀를 받아 세웠다. 도하는 주저앉은 채 숨을 골랐지만 문 쪽을 가리키는 손가락만은 내리지 않았다.
뒤에서 발소리가 빨라졌다.
시온은 서린아와 도하를 먼저 밀어 넣었다. 사냥꾼의 손이 문틈으로 들어왔다. 권총 총구가 도하의 등 뒤를 겨누었다.
“멈춰!”
시온이 손잡이를 놓았다. 되돌림 스프링에 밀린 문이 거칠게 닫혔다. 사냥꾼은 손을 빼며 총을 떨어뜨렸다. 총이 문턱 안쪽으로 굴러왔다. 시온은 발로 총을 더 깊이 차 넣었다.
사냥꾼이 문 반대편에서 욕설을 퍼부었다. 그가 손잡이를 잡자 문이 다시 조금씩 열렸다. 시온은 문틈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무거운 문을 붙잡는 동안 도하가 냉각 구역까지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뒤따르는 자가 다시 열기 전에 걸음을 옮겨야 했다.
울음이 남은 곳
심층부의 공기는 외벽보다 따뜻할 줄 알았다. 그러나 폐열 냉각 도관 입구에서는 입김이 났다. 벽마다 은색 관이 얽혀 있었고 바닥에는 오래된 성에가 굳어 있었다.
배관 옆에는 사람이 옆걸음으로 겨우 지나는 점검 회랑이 이어졌다. 발아래 배수 홈에는 투명한 얼음 조각이 쌓여 있었다. 시온은 도하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벽의 손잡이를 따라가게 했다.
기밀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시온은 도하를 먼저 회랑 안으로 들였다. 사냥꾼의 두꺼운 어깨갑은 좁은 입구에 걸렸다. 벗겨 낼 수는 있어도 당장은 총을 들고 따라올 수 없었다.
소탕까지 4분 03초.
시온의 단말이 진동했다. 화면에 있던 좌표가 왼쪽 관의 표지를 가리켰다.
13번 냉각 회수관.
서린아가 관의 온도 표시를 읽었다.
“폐열 회수용인데 이쪽만 영하예요. 왜 냉각이 걸려 있죠?”
시온은 손을 뻗어 성에 낀 금속을 만졌다.
그 순간 냄새가 났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아야 할 얼음에서 쇳가루와 젖은 천 냄새가 올라왔다. 관의 진동이 사라지고 낮은 울음이 들렸다. 아이가 숨을 삼키려 할수록 더 크게 새어 나오는 울음이었다.
시온은 자기 손이 더 작아진 듯한 착각에 휩싸였다. 차가운 문 앞에서 누군가 손가락으로 금속을 긁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지 그 손 안에 있는지조차 가를 수 없었다.
“문 닫지 마.”
작은 목소리였다.
시온은 손을 떼었다. 도관의 소음이 돌아왔다. 그 앞에는 얼음 냄새도 아이도 없었다. 오직 서린아가 그의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뭘 들었어요?”
“아이. 문을 닫지 말라고 했어.”
서린아가 팔림프세스트의 남은 감응 코일을 시온의 손목에 댔다. 작은 파형 두 개가 겹쳐 나타났다.
“외부 음성은 아닙니다. 당신 감각 회로에서 올라온 잔향이에요. 어느 백업의 것인지는 지금 구분 못 해요.”
“기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겠군.”
“네.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도요.”
시온은 금속에서 손을 떼고 손바닥을 펼쳤다. 실제 피부에는 아무 자국이 없었다. 그런데도 손톱 끝이 아렸다. 그가 문을 닫은 쪽이었을까. 안에서 열어 달라고 울던 쪽이었을까. 어느 쪽이든 그 아이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할 증거는 없었다.
도하가 관의 낮은 곳을 가리켰다.
“저기.”
시온은 몸을 숙였다. 성에 아래 금속 덮개에 짧은 긁힌 자국이 다섯 개 있었다. 작은 손가락이 남긴 것처럼 벌어져 있었다. 그는 손을 대 보았다. 자신의 손보다 한참 아래에서 끝났다.
“언제 난 거지?”
서린아가 자국을 비췄다. 긁힌 면 위로 성에가 여러 겹 자라 있었다.
“오래됐어요. 그런데 이것만으로 아이가 여기 있었다고 말할 순 없어요.”
울음과 자국이 하나의 사건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누군가 이 문 앞에서 필사적으로 무엇인가를 열려 했다는 것만은 보였다.
“이 자국은 남겨 둬요.”
서린아가 장비의 광학판으로 성에와 긁힌 면을 함께 찍었다. 파일에는 시각과 위치만 붙였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사람의 흔적에 서둘러 이름을 씌우고 싶지 않았다.
열라는 명령
13번 회수관을 따라 난 점검 회랑 끝에는 두 겹의 차폐문이 있었다. 문 옆 수동 밸브에는 ‘슬롯 13 냉각’이라는 글씨와 붉은 봉인선이 붙어 있었다. 냉각 배관의 압력을 풀어야 걸쇠가 열리는 구조였다. 봉인을 끊으면 설비 상태가 보안망에 올라간다는 경고문도 보였다.
시온은 손잡이에 남은 낡은 긁힘을 다시 보았다. 방금 본 자국과 같은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인하려면 살아서 문 너머로 가야 했다.
소탕까지 1분 51초.
회랑 입구에서 갑옷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사냥꾼은 가벼워진 몸으로 좁은 길을 따라오고 있었다.
“열면 위치가 뜹니다.” 서린아가 말했다.
“안 열면 여기서 죽어.”
시온은 도하를 보았다. 그녀는 차폐문 아래의 차가운 틈을 보고 있었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아무도 몰랐다.
“도하. 안쪽은 더 추울 수 있어. 계속 갈지 네가 정해.”
“나를 버려두고 가는 길은 없잖아.”
“없어.”
“그럼 같이 가.”
도하가 손을 뻗었다. 시온은 그녀의 손을 잠깐 잡았다. 체온이 손바닥에 거의 남지 않았다. 그가 놓은 손을 서린아가 곧바로 외투 안으로 감쌌다.
시온은 봉인선을 끊었다. 서린아가 도하를 감싸고 뒤로 물러났다. 그는 양손으로 밸브를 돌렸다. 붕대에서 피가 비쳤다. 차가운 증기가 발목을 때리며 쏟아졌다.
서린아가 외투로 도하의 얼굴을 가렸다. 시온은 증기가 잦아들 때까지 밸브를 놓지 않았다. 한 바퀴를 더 돌리자 배관의 압력계 바늘이 영점으로 내려갔다.
철컥.
첫 번째 차폐문이 열렸다. 세 사람이 안쪽 통로로 들어섰다. 두 번째 문을 여는 동안 경보음이 천장에서 울렸다.
‘외벽 감압 소탕 개시.’
뒤쪽 문이 큰 충격과 함께 닫혔다. 시온은 도하의 몸을 끌어 안쪽으로 굴렀다. 서린아가 손잡이를 당겨 두 번째 문을 봉했다.
겨우 진공을 피했다. 대신 단말에는 낯선 경고가 떠 있었다.
‘13번 냉각 회수관 개방 기록 전송.’
시온이 화면을 끄려던 때였다.
안쪽의 막힌 관에서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일정한 간격의 세 번. 배관이 식으며 내는 소리와는 달랐다. 도하가 시온의 팔을 붙잡았다.
“저쪽에서 누가 두드린 거야?”
시온은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들었던 아이의 울음이 다시 귀 뒤에서 일렁였다. 그는 회수관의 기압계를 찾았다. 바늘이 아주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