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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나의 100번째 복제인간2화

살해당한 나의 100번째 복제인간

살해당한 나의 100번째 복제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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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번호가 다른 시체

삑.

신호는 세 번 울리고 멎었다. 시온이 한 걸음 내딛자 다시 세 번 울렸다.

서린아는 팔림프세스트의 투명한 화면을 통로 벽에 세웠다. 붉은 선이 어둠 속으로 뻗었다.

“보안 드론의 응답이 아닙니다. 생체 단말에 가깝습니다.”

“가까운 게 아니라?”

“단말은 사람의 심박을 흉내 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신호에는 호흡 간격이 있습니다.”

시온은 신호가 다시 울리기를 기다렸다. 세 번. 잠시 쉰 뒤 한 번.

그 박자는 기계가 만든 규칙처럼 정확했지만 끝의 한 번은 매번 늦었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응답하고 있었다.

“위치.”

“정비 통로 안쪽이 아닙니다. 아래층에서 올라옵니다.”

서린아가 벽면의 오래된 배선도를 확대했다. 선 하나가 기억금고 아래의 폐쇄 배양층으로 내려갔다.

“그 층은 전원이 끊긴 곳이야.”

“공식 기록은 그렇습니다.”

“공식 기록을 믿어?”

“그래서 직접 확인하려는 겁니다.”

서린아가 먼저 걸었다. 시온은 뒤를 따르다가 멈췄다. 반대편 통로에는 보안등이 켜지고 있었다. 드론이 그들의 흔적을 따라오고 있었다.

시온은 벽의 단자에 손을 댔다. 푸른 숫자 100이 떠올랐다가 곧 회색으로 꺼졌다.

수신체 식별 실패.

“내 암호키가 이 문을 열 수 있나?”

“열 수는 있습니다. 다만 열었다는 기록도 남습니다.”

“기록을 남겨.”

“폐기될 사람의 권한으로 문을 열겠다는 뜻입니까?”

“살아 있는 사람의 권한으로.”

시온이 암호키를 밀어 넣자 잠금쇠가 풀렸다. 아래에서 뜨거운 공기가 올라왔다. 냉각액 냄새 사이로 오래된 배양액과 금속 타는 냄새가 섞였다.

폐쇄 배양층

계단은 아래로 갈수록 좁아졌다. 벽면에는 지워진 숫자들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07. 19. 42. 그 위에 검은 페인트가 칠해졌지만 일부 숫자는 손톱으로 긁은 듯 드러나 있었다.

서린아가 장갑 낀 손으로 숫자를 훑었다.

“배양체 등록번호입니다.”

“내 번호와 같은 체계야?”

“아닙니다. 이건 수신체 계통 번호예요.”

시온은 발을 멈췄다.

“수신체에도 번호가 따로 있다고?”

“전송 받을 뇌와 배양 중인 몸은 별개의 항목입니다. 보통은 최종 등록 때 합쳐집니다.”

“보통은.”

“이곳은 최종 등록 전에 폐쇄됐습니다.”

신호가 아래에서 울렸다. 세 번. 그리고 늦은 한 번.

철문 앞에 작은 단자가 붙어 있었다. 단자 표면에는 희미한 문자 하나가 남아 있었다.

HN-012.

시온은 쇄골을 만졌다. 피부 아래의 인장 100이 차갑게 반응했다.

“저게 12번째 백업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직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그럼 왜 내 영상에 저 표식이 있었지?”

“그걸 확인하려고 내려온 겁니다.”

서린아가 복구키를 꺼냈다. 얇은 금속 조각이 손가락 사이에서 떨렸다.

“이 키를 사용하면 당신의 기록에 손상이 갈 수 있습니다.”

“네가 가진 키는 내 백업을 훔치는 장치가 아니었나?”

“손상된 기억을 안정화하는 키입니다. 하지만 안정화와 복구는 다릅니다.”

“설명은 나중에.”

서린아가 단자에 키를 꽂았다. 철문 안쪽에서 오래 잠든 펌프가 돌아갔다. 폐쇄됐다고 기록된 층에 독립 전원 하나가 아직 살아 있었다. 낡은 축전지가 배양 펌프와 작은 냉각기를 따로 돌리고 있었다.

오래 잠든 펌프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곳은 버려진 곳이 아니었다.

화면 위로 낡은 원장이 펼쳐졌다.

배양 수신자 계통 HN-012.

전송 슬롯: 미할당.

상태: 폐기 보류.

원본 유전 정보: HN-001 계열.

시온의 목 안쪽이 굳었다.

“HN-001 계열이라니.”

“당신의 표준 계열과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 원장은 100번째 슬롯의 전송 기록이 아닙니다.”

“그럼 이 체는 뭐지?”

“수신 대기체입니다.”

스피커에서 오르페우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린아. 복구키를 내려놓으십시오. 폐쇄 구역의 접근은 승인되지 않았습니다.”

“승인되지 않은 건 당신이 아니라 이 층의 존재 아닙니까?”

“질문에 답하기 전에 조건을 고지합니다. 해당 기록은 법적 증거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정 여부는 나중에 판단해.” 시온이 말했다. “HN-012의 원본은 나야?”

“유전 정보만으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내 시설에서 나온 계통일 가능성은 높아.”

“시설의 소유권과 수신체의 정체성은 별개입니다.”

오르페우스는 같은 문장을 다른 순서로 되돌려 주었다. 시온은 이 AI가 정답보다 조건을 먼저 내놓는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이 층을 누가 폐쇄했지?”

“권한 제한으로 공개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는 거야. 말하지 않는 거야?”

“현재 제 판단부는 두 경우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서린아가 원장 한쪽을 눌렀다. 지워진 행 아래에 작은 흔적이 나타났다.

감사 알고리즘 판정: 무명체.

서린아의 손이 멎었다.

“이 분류표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무명체가 뭐지?”

“등록되지 않은 복제체입니다.”

“이름이 없는 몸?”

“법적으로는 이름을 가질 수 없는 몸입니다.”

그녀는 화면을 닫으려 했다. 시온이 손목을 잡았다.

“끝까지 봐.”

“이 기록은 폐기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봐야 해.”

팔림프세스트가 원장 뒤에 눌어붙은 시간을 떼어냈다. 숫자와 감정 회로의 잔향이 동시에 떠올랐다. 시온의 코끝에 얼음 냄새가 스쳤다. 어린아이의 울음이 들렸다.

열지 마.

그는 눈을 감았다. 장면은 문 하나와 흰 손가락뿐이었다. 누가 문을 닫았는지 알 수 없었다.

“뭐가 보였습니까?”

“문.”

“누가 있었죠?”

“몰라.”

서린아는 더 묻지 않았다.

살아 있는 원장

배양층 안쪽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독립 축전지의 전압이 떨어지며 냉각 압력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었다.

“밸브가 닫히고 있습니다.” 서린아가 말했다. “이 체가 살아 있다면 6분 안에 손상됩니다.”

“폐쇄 구역이면 죽어도 기록되지 않겠지.”

“그래서 열어야 합니다.”

“문을 열면 우리 위치가 노출돼.”

서린아가 시온을 보았다.

“그걸 알고도 내려왔잖아요.”

시온은 대답 대신 벽면 제어기를 뜯었다. 숫자 100이 다시 떴다. 이번에는 식별 실패 문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수동 권한만 남은 화면이 열렸다.

냉각 밸브 A. 잠금.

냉각 밸브 B. 과열.

시온은 A 밸브를 수동으로 전환했다. 차가운 증기가 통로를 덮었다. 손등의 피부가 하얗게 얼어붙었다.

“손을 빼세요.”

“아직 안 끝났어.”

그가 밸브를 끝까지 밀자 펌프가 다시 뛰었다. 안쪽의 캡슐 하나에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캡슐 표면에는 HN-012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안에 젊은 남자가 누워 있었다. 외형은 시온보다 어렸고 왼쪽 눈 아래에 작은 점이 있었다.

서린아가 캡슐 옆 단자를 확인했다.

“심박은 있습니다. 의식은 얕아요.”

“깨울 수 있나?”

“깨우면 몸이 버티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안 깨우면 폐기될 거야.”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시온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말은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다.

“그럼 누구 결정이지?”

“본인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린아는 캡슐의 각성 단계를 최저치로 올렸다. 완전히 깨우지 않고 목소리만 닿게 하는 설정이었다.

“들리면 한 번만 반응하세요.”

캡슐 안 남자의 손가락이 떨렸다.

삑.

시온의 머릿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살해 영상의 화면이 겹쳤다. 검은 장갑. 바닥으로 기우는 시야.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

이름을 확인하지 마.

이번에는 잔향이 아닌 단말 기록에서 같은 문장이 흘러나왔다.

서린아가 기록 시각을 확대했다. 2319년 9월 3일 18시 02분.

“공식 사망 판정은 18시 13분입니다.”

“11분 빠르군.”

“당신이 죽기 전에 이 체가 응답했다는 뜻입니다.”

“아니. 내가 죽기 전부터 누군가 내가 죽을 걸 알고 있었던 거야.”

천장 안쪽에서 드론의 금속 다리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서린아가 차폐문을 닫으려 했지만 잠금 신호가 먹히지 않았다.

시온은 단말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꺼풀이 떨렸다.

“이름이 뭡니까?” 서린아가 물었다.

남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도하.”

한 글자씩 갈라진 목소리였다.

시온이 한 발 가까이 다가갔다.

“HN-012는 네 번호야?”

도하의 눈이 반쯤 열렸다. 흐린 시선이 시온의 쇄골 인장에 멈췄다.

“HN-100.”

“그래.”

“여기 있으면 안 돼.”

도하의 손가락이 캡슐 안쪽을 긁었다.

“누가 나를 만들었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그게 누구야?”

도하는 숨을 힘겹게 들이켰다. 캡슐의 경고등이 켜졌다.

“HN-012는 한 사람이 아니야.”

서린아가 단말에서 원본 신호를 분리했다. 그녀는 신호를 끊지 않고 시간 기록만 고정했다.

“도하. 지금부터 당신이 말하는 기록은 저장됩니다. 원하지 않으면 고개를 움직이세요.”

도하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동의인지 경련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시온은 고개를 숙여 그의 시야에 들어갔다.

“네가 결정해. 깨울지 말지 내가 정하지 않겠다.”

“당신은 이름을 빼앗아.”

“뭐?”

“100은 이름이 아니야.”

도하의 목소리가 끊겼다. 동시에 배양층 전체에 침입 경보가 터졌다.

오르페우스가 말했다.

“폐기 절차를 개시합니다. 보안 지연 종료까지 18분 남았습니다.”

서린아가 시온의 단말을 붙잡았다.

“경보가 외부로 송출됐습니다. 누군가 이 층을 봉쇄하고 있어요.”

“누군지 알아?”

“모릅니다.”

시온은 도하의 캡슐 옆에 손을 올렸다. 숫자 100이 유리에 비쳤다.

“나는 한시온이다.”

도하의 눈이 다시 열렸다.

“그 이름으로 날 판단하지 마.”

“판단하지 않아.”

시온은 캡슐의 각성 단계를 한 칸 더 올렸다.

“네가 부르는 이름부터 듣겠다.”

서린아가 그를 노려보았다.

“무슨 짓입니까?”

“도하가 선택하게 하는 거야.”

“그 선택으로 죽을 수도 있어요.”

“살아도 폐기될 수 있지.”

밖에서 차폐문이 흔들렸다. 도하의 단말에 새로운 좌표가 떠올랐다. 폐쇄 배양층이 마지막으로 등록해 둔 예약 수신 신호였다. 오르비스 외벽의 정비 접속구가 표시됐다.

그리고 화면 맨 아래에 한 줄이 새로 나타났다.

수신자: HN-100.

시온은 그 문장을 보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열까지 세기도 전에 도하가 입을 열었다.

“그 좌표로 가면 네가 죽은 곳을 다시 볼 수 있어.”

경보음이 더 커졌다.

서린아는 팔림프세스트를 닫지 않았다. 시온은 캡슐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18분.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이름을 확인하기에도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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