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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고치는 시계공의 우산3화

비를 고치는 시계공의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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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누나의 이름이 적힌 정비명부

새벽이 되기 전까지 북쪽 시장에 비가 내려야 했다.

도겸은 왕실 수로에서 떼어 온 분기 밸브를 작업대 위에 올렸다. 나림이 팔짱을 끼고 지켜봤고, 세주는 밤새 적은 압력 기록을 한 장씩 넘겼다.

“반 칸 열어 둔 밸브를 그대로 쓰면 시장의 물은 조금 늘어.” 세주가 말했다. “하지만 왕실 정원에 물이 부족해지면 경비가 다시 닫을 거야.”

“왕실은 이미 저장고를 비우고 있어요. 검은 비 때문에 정원 물을 쓸 수 없으니까요.”

“그건 오늘 밤뿐이야.”

“그럼 오늘 밤만이라도 시장에 비를 보내면 돼요.”

나림이 밸브의 톱니를 손톱으로 두드렸다. “이건 누군가가 바깥 공방에서 만든 부품이야. 탑의 압력에 맞춰 재가공하지 않으면 세 번째 비에서 걸릴 거다.”

“그럼 여기서 깎죠.”

“부품을 깎으면 원래 흔적이 사라져.”

도겸은 멈칫했다. “증거를 보존하려면 물을 포기해야 해요?”

“둘 다 할 수 있는지 찾아보자는 거야.” 나림은 밸브를 뒤집었다. 톱니 안쪽에는 얇은 나사구멍이 하나 있었다. “이 구멍을 고정핀으로 막지 말고 완충쇠를 넣으면 압력을 나눌 수 있어.”

“완충쇠는 탑에 없어요.” 세주가 말했다.

도겸은 주머니에서 누나의 기어 조각을 꺼냈다. 규격이 비슷했다. “이걸 쓰면 맞아요.”

“그걸 넣으면 네가 가진 유일한 증거가 사라져.” 나림이 말했다.

“흔적은 복제할 수 있어요. 탑에서 쓰는 각인틀로 먼저 본을 뜨면 돼요.”

“성급하게 결정하지 마. 이 조각이 네 누나 것이라는 확인도 안 됐어.”

“그래도 시장의 물을 살릴 수는 있어요.”

세주가 투명한 종이에 기어의 윤곽을 옮겼다. “기록으로 남기겠습니다. 원본의 마모 방향과 치수를 잃지 않도록요.”

나림은 한참 말이 없었다. 도겸은 그 침묵을 허락으로 여기지 않았다. 망치도 들지 않았다. 그가 손을 멈추고 기다리자 나림은 자신이 숨겨 온 이야기를 꺼냈다.

“도희가 사라진 날, 나한테 도면을 맡겼어. 왕실 수로를 시민 구역까지 연결하는 설계였지. 나는 그 도면을 숨겼다.”

“왜요?”

“그걸 공개하면 수문을 설계한 정비조가 처벌받고 탑이 폐쇄될 거라고 생각했어. 당시엔 책임자를 세우는 게 먼저라고 믿었지. 그 뒤로 기록에서 도희 이름이 지워졌고, 난 그냥 두면 언젠가 다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나가 살아 있는지 아세요?”

“모른다. 그걸 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야.”

도겸은 망치 손잡이를 쥐었다가 놓았다.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요?”

“네가 누나를 찾으러 혼자 탑을 돌아다니는 걸 막고 싶었다.”

“그렇게 막으면 누나가 돌아와요?”

“아니.”

나림의 대답은 짧았다. 도겸은 말없이 본을 뜬 종이를 확인했다. “그 도면은 어디 있어요?”

“내 작업대 아래 서랍. 하지만 지금은 밸브부터 고쳐.”

“같이 고칩시다. 그 다음 도면을 봐요.”

“조건이 하나 있다. 네가 설계한 대로 압력이 올라오지 않으면 즉시 멈춰. 시장에 물을 보내려고 다른 구역의 수조까지 비우면 안 돼.”

“좋아요. 세주 씨가 수치를 확인해 주세요.”

“확인만 하는 게 아니에요. 임계 압력에 닿으면 제가 밸브를 닫을 겁니다. 그때는 도겸 씨가 막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세 사람은 밤샘 작업에 들어갔다. 도겸은 기어 조각의 본을 떠 완충쇠를 만들었다. 나림은 밸브를 분해하고, 세주는 시장과 왕실 배관의 압력 수치를 번갈아 확인했다. 작업대 위의 기계는 몇 번이나 걸렸고, 작은 스프링 하나가 튀어 나가 천장에 박혔다.

“부품이 너무 빡빡해요.” 도겸이 말했다.

“기어를 더 깎으면 증거가 사라져.” 나림이 받았다.

“그럼 스프링 길이를 바꾸겠습니다.”

“길이를 줄이면 복원력이 약해져.”

“압력을 분산하면 돼요. 왕실 쪽 밸브를 한 번 더 닫고 시장 쪽을 조금 더 열면.”

세주가 계산을 마쳤다. “그렇게 하면 궁정 온실의 물이 아니라 빈 저장고로 가는 압력이 줄어들어요. 위험은 낮습니다.”

나림이 도겸을 바라봤다. “이번엔 네가 혼자 결론 내리지 않았군.”

“저 혼자 수리한 적은 없어요. 혼자 고칠 수 있다고 착각한 거죠.”

완충쇠를 끼우고 조립을 마친 뒤, 그들은 시장으로 향했다. 해가 뜨기 전, 세주는 관측소에서 예상 강우를 읽었다. “구름통 압력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어요. 다만 비가 시장까지 오려면 바람 방향이 맞아야 합니다.”

“바람은 어떻게 바꿔요?” 나림이 물었다.

“바꾸지 않아요. 기다려야 합니다.”

도겸은 기상탑의 바람날개가 도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만요. 날개가 세 번 돌 때마다 한 번씩 멈춰요. 서쪽 바람이 아래층에서 걸립니다.”

그는 나림과 함께 바람 수로를 확인했다. 구름통에서 빠져나온 바람이 시장 방향으로 가기 전에 왕실 첨탑의 장식 날개에 부딪혔다. 도겸은 임시 받침대를 만들어 날개의 각도를 조금 낮췄다.

“이건 왕실 장식물입니다.” 경비가 다가왔다.

“오늘은 바람 통로를 막는 고장 부품이에요.” 나림이 말했다.

“누가 승인했습니까?”

“제가요.” 도겸이 답했다. “고장 책임도 제 이름으로 기록하세요.”

경비는 그를 막으려다가 세주가 내민 관측치를 봤다. “강우가 틀어지면 책임질 겁니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비가 내리면 그 기록도 같이 남겨 주세요.”

경비가 물러난 뒤 세주는 밸브를 열었다. 탑이 낮은 진동을 내며 돌았다. 구름통 안쪽의 물방울이 압력에 밀려 작은 관으로 이동했다. 한참 지나도 비는 오지 않았다.

시장의 상인이 멀리서 지붕을 바라봤다. 아이는 빈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 곁에 서 있었다. 도겸은 손을 더 뻗어 밸브를 돌리고 싶었지만, 세주의 말대로 기다렸다.

첫 빗방울이 낡은 천막 위에 떨어졌다. 투명한 물이었다. 두 번째 방울이 뒤따르고, 잠시 뒤 북쪽 시장의 지붕들이 고르게 젖기 시작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양동이를 내놓았다. “이게 계속 올까요?”

“지금은요.” 세주가 말했다. “내일도 온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오늘의 압력 기록을 공개할게요.”

“그걸로 물을 받아 마실 수 있나요?”

“아뇨. 하지만 다음 배분을 바꾸는 근거가 됩니다.”

상인은 빈 통을 빗물 아래 놓았다. “그럼 다음에도 와요. 기록이 어떻게 바뀌는지 우리도 볼 거예요.”

아이의 어머니는 양동이를 먼저 들지 않고 빗물을 손끝에 받아 냄새를 맡았다. “철 냄새가 안 나네요.”

세주가 샘플병과 비교했다. “침전물은 없어요. 그래도 끓여 쓰셔야 합니다.”

“끓일 장작도 아껴야 하는데.” 여자는 잠깐 웃었다. “그래도 오늘은 국을 끓일 수 있겠어요.”

옆 가게의 주인이 천막을 걷어 올렸다. “왕궁에 보내던 비를 여기로 돌린 겁니까? 온실에 물이 모자라면 경비가 다시 막으러 올 텐데요.”

“수로에 남아 있던 압력을 옮겼어요.” 도겸이 말했다. “온실의 물을 뺏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내일도 올 수 있어요?”

도겸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바람과 구름이 맞아야 합니다. 오늘을 매일 약속할 순 없어요. 대신 내일 탑에서 어느 구역으로 비가 갔는지 직접 공개하겠습니다.”

“공개한다고 빗물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맞아요. 하지만 누가 비를 받지 못했는지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상인은 빈 통을 발로 밀어 빗물 아래로 가져왔다. “그 말, 내일도 하세요. 우리한테 한 약속으로요.”

도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나림이 그의 옆에서 말했다. “이번엔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은 안 했네.”

“제가 혼자 오면 이분들이 믿지 않을 거예요.”
도겸은 시장의 물받이에 빗물이 차는 것을 지켜봤다. 작은 성취였다. 한 구역에 비가 온다고 도시의 불공정이 끝나진 않았다. 그렇지만 탑의 장치가 왕실만 향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정비고로 돌아온 나림은 서랍에서 낡은 도면을 꺼냈다. 접힌 종이 위에는 도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명 옆에는 수로를 시민 구역으로 돌리는 회로와 함께 짧은 문장이 쓰여 있었다.

‘비는 주인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을 기억한다.’

그 밑에 정비명부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도희의 이름이 적힌 마지막 기록이었다.

‘왕도 외곽 제2관측소 전출. 비공개.’

도겸은 종이를 움켜쥐지 않았다. 손을 내밀어도 나림이 먼저 건네지 않았다.

“이 전출 기록, 진짜일까요?”

“확인해야지. 기록만 믿으면 또 잘못될 수 있어.”

“그럼 직접 가요.”

세주는 창밖을 보았다. 비는 시장에서 그쳤고, 왕궁의 지붕에는 구름이 다시 모이고 있었다. “다음 관측소는 내일 정오까지 닫혀 있어요.”

“기다릴 수 있어요.” 도겸이 말했다. “이번에는 혼자 안 가면 되니까.”

도겸은 도면을 펼쳤다. 정비명부의 마지막 줄에는 외곽 관측소 이름 옆에 읽을 수 없는 표기가 하나 더 있었다.

“우산 보관소?” 세주가 종이를 가까이 들여다봤다. “기상탑에서 우산을 보관할 이유가 있나요?”

나림은 도희의 도장을 손끝으로 눌렀다. “비가 오는 날마다 시장을 돌며 우산을 고쳐 주던 사람이었어. 수리비를 못 내는 사람한테는 다음 비가 올 때 갚으라고 했지.”

“누나가 그곳으로 옮겼다는 뜻은 아니겠죠.” 도겸은 기록의 잉크를 살폈다. “주소도 아니고, 정비 항목처럼 적혀 있어요.”

“그러니 직접 확인해야지.” 나림이 말했다. “가능성을 사실로 만들지 말고.”

도겸은 내일 새벽 동료들과 그 보관소를 찾기로 했다. 시장 상인에게는 배분 기록을 다시 보여 주겠다고 약속했다. 탑 밖으로 나서자 빗방울이 세 사람의 어깨를 적셨다. 이번에 내린 물은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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