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고치는 시계공의 우산

1화: 왕궁에만 내린 검은 비
첫 빗방울은 왕궁의 황금 기와 위에 떨어졌다.
차도겸은 탑 아래 작업대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맑은 종소리 대신 젖은 쇳가루가 달라붙는 탁한 소리였다. 그는 망치를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왕궁의 첨탑 위로 검은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비가 오는데 왜 안개가 더 짙어져요?”
관측관 한세주가 창문을 열었다. 회색 빗물이 그녀의 소매 끝에 튀었다. 얼룩은 물처럼 번지지 않고 먹물처럼 뭉쳤다.
“구름통 세척수입니다.” 그녀가 손수건으로 빗방울을 눌렀다. “이게 강우에 섞일 리 없는데.”
“방금 소리는 기압 톱니가 역회전하는 소리였어요.” 도겸이 말했다. “누군가 수문을 급하게 돌렸습니다.”
선임 정비사 유나림이 공구함을 닫았다. “추측하지 마. 먼저 구름통을 잠가.”
“이미 왕실 쪽으로 비가 쏟아져요.”
“그래서 더 만지면 안 돼.”
나림은 도겸의 손에서 렌치를 빼앗았다. 그의 손바닥엔 구리 가루가 묻어 있었다. 도겸은 누나가 사라진 뒤부터 탑의 모든 기어 소리를 외우려 했다. 기계가 내는 작은 떨림 하나라도 놓치면, 도희가 남긴 흔적까지 함께 놓칠 것 같았다.
세주는 창틀에 빗물받이를 놓았다. “오염수 검사 전에 수문을 잠가야 합니다. 왕실 지붕의 물은 빗물 탱크로 흘러가요. 지금 차단하지 않으면 식수 저장고까지 들어갑니다.”
“왕실 저장고는 별도 배관이야.” 나림이 말했다.
“지난달 도면과 실제 관측값이 다릅니다.”
“그럼 도면부터 확인해야지.”
“그러는 동안 비가 계속 오잖아요.”
탑 바깥에서 종이 울렸다. 수문이 열릴 때 나는 경보였다. 나림은 즉시 안전줄을 허리에 묶었다. “도겸, 공구. 세주, 압력계. 누구든 내 지시 전에 밸브를 돌리면 현장에서 내보낸다.”
“나림 선임, 밸브가 벌써—”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면 다친다.”
그들은 나선 계단을 뛰어올랐다. 탑 중심부의 기압 톱니는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돌고 있었다. 바람을 끌어오는 큰 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고, 세척수 배관의 연결부에서 검은 거품이 새어 나왔다.
도겸은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톱니마다 다른 음이 났다. 하나는 낮고 둔했으며, 다른 하나는 부러진 유리처럼 날카로웠다.
“둘째 축이 아니라 넷째 축이 걸렸어요. 소리가 두 번 튀어요.”
나림은 도면을 확인했다. “넷째 축은 왕실 수로와 분리돼 있어.”
“분리된 도면이 틀렸다면요?”
“도겸.”
“선임, 비가 검게 변했어요. 도면이 맞다고 가정할 시간 없어요.”
나림은 렌치를 도겸에게 건넸다. “축을 잠그되 반 바퀴만. 세주, 압력 변화를 읽어.”
도겸은 축에 렌치를 끼웠다. 기계의 진동이 팔을 타고 올라왔다. 반 바퀴를 돌리자 망치 소리 같은 굉음이 났다. 구름통 압력이 한순간 치솟고, 검은 물이 배관 이음새로 튀었다.
“멈춰!” 세주가 외쳤다.
“손 떼면 수문이 더 열린다!” 도겸이 소리쳤다.
나림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대신 안전줄을 당겨 중심을 잡아 줬다. “도겸, 지금은 축을 돌리지 말고 고정핀을 빼. 세주, 왼쪽 배출관 열어.”
세주는 압력계를 보며 잠금쇠를 풀었다. “열면 시민 구역 수로로 압력이 넘어갈 수 있어요.”
“그대로 두면 왕실 저장고가 오염돼.”
“시민 구역은 물탱크가 작습니다. 여기서 터지면 학교와 병원에도—”
“알아. 그래서 압력을 나눠야 해.”
도겸은 기어 소리를 다시 들었다. 넷째 축의 금이 간 부분이 일곱 번에 한 번씩 떨렸다. “배출을 전부 열지 말고, 한 칸만 열어요. 압력은 낮추고 기어는 고정할 수 있습니다.”
나림은 그의 제안을 살폈다. “근거.”
“금 간 이빨이 일곱 번째에 걸려요. 그때 힘을 빼면 축이 비켜 갑니다.”
“실패하면?”
“저 배관이 먼저 터집니다.”
“그건 근거가 아니야.”
세주가 압력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수치가 맞아. 7회 진동마다 압력이 0.4씩 뛰어요.”
나림은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시도해. 내가 축을 잡는다.”
도겸은 렌치 손잡이를 천천히 돌렸다. 첫 번째 진동, 두 번째, 세 번째. 탑의 바닥에서 굉음이 올라왔다. 다섯 번째에 세척수가 천장으로 솟았다. 여섯 번째에 나림의 장갑이 찢어졌다. 일곱 번째 진동에서 도겸이 손을 풀었다.
기어가 반 박자 늦게 움직였다. 세주는 배출관 밸브를 한 칸만 열었다. 검은 물이 투명한 수조로 흘러들고, 왕실 방향의 구름통 압력이 떨어졌다.
탑 밖에서 검은 비가 멎었다. 그러나 왕실 기와 아래의 빗물은 이미 수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아래 계단에서 경비 하나가 뛰어 올라왔다. “왕궁 수조에서 물이 넘칩니다. 서쪽 저장고가 검게 변했어요.”
세주는 창가로 달려가 왕궁 뒤편의 빗물관을 확인했다. 지붕 홈통에서 검은 물이 쏟아져 정원 연못을 물들였다. “수조 유입문을 닫아야 해요. 지금 흘러드는 양이면 정원뿐 아니라 조리장으로도 넘어갑니다.”
“왕실 경비가 막고 있을 겁니다.” 나림이 말했다.
“그럼 출입 허가를 기다려야겠네요.” 도겸은 금속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림은 그를 노려봤다. “공구를 들고 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야. 왕실에서 오염 사실을 숨기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숨길 수 없게 만들면 되죠. 빗물받이마다 색이 남았어요. 궁 안에서 이미 다 봤을 겁니다.”
“본 사람과 기록에 남는 건 다르다.” 세주가 말했다. “제가 샘플을 채취하고 압력 기록과 함께 관측실에 보관할게요.”
“관측실 열쇠는 부관이 갖고 있어요.”
“그럼 부관을 깨우죠.”
세주는 방수병에 빗물을 받아 뚜껑을 닫았다. 검은 침전물이 병 바닥에 빠르게 가라앉았다. 도겸은 나림의 손등에서 피가 번지는 걸 보고 자기 수건을 내밀었다. 나림은 받지 않았다.
“장갑도 없이 축을 잡았잖아요.”
“네가 축을 놓치면 탑이 뒤집혔을 테니까.”
“제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었어요.”
“그럼 그때 다 같이 다쳤겠지. 다음엔 혼자 맞다고 우기지 마.”
도겸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네.”
“그리고 사과는 다친 손이 아니라 네 동료한테 해.”
세주가 샘플병을 들어 보였다. “저한테 할 사과라면, 먼저 저 병을 왕궁까지 같이 옮겨 주세요. 혼자 가면 경비가 빼앗을 테니까.”
도겸은 금속 조각을 다시 꺼내 주머니 가장 깊숙이 넣었다. “같이 갑시다. 이번엔 제 판단부터 말하지 않을게요.”
“시민 수조 쪽은?” 도겸이 물었다.
세주는 압력계를 확인했다. “비가 거의 빠졌어요. 왕실 구역에만 몰렸습니다.”
나림이 찢어진 장갑을 벗었다. 손등에 작은 상처가 났다. “수문을 건드린 사람을 찾아야 해.”
“고장은 우연이 아니에요.” 도겸은 배관 틈에 박힌 금속 조각을 집었다. “이 이빨, 제 누나가 쓰던 규격입니다.”
나림의 표정이 굳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제가 누나 공구를 물려받았으니까요.”
세주는 조각을 받아 표면의 각인을 살폈다. “이건 탑 제작 부품이 아닙니다. 바깥 작업장에서 만든 교체용 톱니예요.”
“누가 넣었든 왕실 배관에 연결돼 있었어.” 나림이 말했다. “도겸, 이 조각은 작업대에 봉인해. 절대 혼자 조사하지 마.”
“선임도 이미 누나를 알고 있죠.”
“지금 그 얘기 할 때가 아니야.”
“그럼 언제예요? 누나가 사라진 지 3년인데, 기상탑 기록에는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와요.”
나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경비가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세주는 조각을 도겸에게 돌려줬다.
“검은 비를 맞은 왕실 저장고를 확인해야 합니다. 공식 발표가 나가기 전에.”
“우리가 갈 수 있어요?” 도겸이 물었다.
나림은 구겨진 작업 지시서를 집어 들었다. “수리팀은 부품 교체를 위해 출입할 수 있어. 네가 손에 든 조각은 증거가 아니고, 고장 부품이야. 그 차이를 이용하자.”
세주가 방수 주머니에 압력 기록지를 넣었다. “저는 관측 수치를 챙기겠습니다. 나중에 아무도 숫자를 바꾸지 못하게.”
왕실 계단으로 내려가자 경비들이 이미 수조 앞을 막고 있었다. 검은 물이 돌바닥을 타고 구두 끝에 닿았다. 세주가 샘플병을 들어 보이자 경비대장이 손으로 가로막았다.
“이 구역은 왕실 관리입니다.”
“수조 배관이 기상탑과 연결돼 있습니다. 오염 경로를 확인해야 합니다.”
“왕실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나림은 허가증을 꺼내 경비대장의 눈앞에 폈다. “고장 부품 교체 명령서입니다. 수조에 물이 들어가는 걸 막는 것도 수리에 포함돼요.”
“수리팀은 탑까지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럼 물을 그대로 흘려보내겠다는 뜻입니까?” 세주가 물었다.
경비대장은 입을 열지 않았다. 뒤쪽 조리장 문이 열리고 하녀 하나가 양동이를 들고 나왔다. 물에 검은 막이 떠올라 있었다. 하녀는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고 경비들을 바라봤다.
그제야 경비대장이 옆으로 비켰다. “오 분입니다.”
도겸은 수조 유입문을 닫고 배관 이음새를 살폈다. 왕실로 향하는 관은 탑 도면보다 한 갈래 더 많았다. 금속 조각과 같은 이빨이 그 분기 밸브에 끼어 있었다. 그는 손을 대려다 멈췄다.
“나림 선임, 여기부터는 같이 봐 주세요.”
나림이 그의 옆에 섰다. “그렇게 해.”
그 순간 탑의 최상층에서 별도의 종이 울렸다. 세 번, 짧게, 한 번 길게.
도겸의 얼굴이 굳었다. 누나가 어릴 때 쓰던 공방 호출 신호였다. 그 소리는 탑의 기록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손안에서 금속 조각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