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성 입문서의 저자

3화: 지워진 문장의 주인
채령은 첫 판본의 주문 장부가 사라진 다음 날, 인쇄소 문을 닫았다. 목판을 지키려는 결정이었지만, 손님은 줄고 빚쟁이는 찾아왔다. 백문은 장부를 대신 찾아 주겠다고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허락 없이 목판을 계속 찍었어요. 장부를 찾는 것보다 그 사실을 먼저 알려야 해요.”
그녀는 책을 산 독자들에게 오류가 있는 판본을 알리는 종이를 붙였다. 환불과 치료비를 청구할 수 있다는 내용도 적었다. 백문은 자신의 이름을 가장 위에 썼다. 그 아래에 채령, 진억, 독해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이어졌다.
정오 무렵, 문파의 제자들이 인쇄소로 왔다. 그들은 백문이 비급 문장을 훔쳤다고 주장하며 목판을 압수하려 했다. 진억은 제자들 앞에 섰다. “이 책의 글을 문파 비급이라고 확정한 적은 없다.”
제자들의 우두머리 남경은 그 말이 스승의 권한을 넘어섰다고 반발했다. 그는 고검 노인의 초식을 입문서가 훼손했다고 믿었다. 백문은 원본 일지를 내밀지 않았다. 기록이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공개하면 다른 사람의 이름이 먼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글이 누구의 것인지 확인하려는 겁니다.” 남경이 말했다.
“그럼 목판을 가져가는 대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백문이 답했다. “어떤 동작을 했고, 어디서 다쳤는지 듣고 나서 판단하면 됩니다.”
남경은 그 제안이 시간을 끌려는 수작이라고 여겼다. 그는 검을 뽑아 마당의 삽화를 베었다. 종이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단화가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백문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았다.
진억은 남경에게 칼을 거두라고 명령했다. 제자는 따르지 않았다. 그는 입문서의 반걸음 동작이 문파의 검식과 같다는 걸 증명하겠다며 백문을 공격했다.
백문은 검을 들지 않았다. 그는 남경의 발이 안쪽으로 꺾이는 걸 보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남경의 칼끝은 그를 스치고, 마당의 기둥에 박혔다. 백문은 그대로 넘어질 뻔했지만 발을 넓혀 균형을 잡았다. 그가 한 동작은 책에 쓰이지 않은 것이었다.
“누가 가르쳤지?” 남경이 물었다.
“넘어지기 싫어서요.”
단화가 나서서 남경의 검을 뽑아 기둥에서 빼냈다. 그녀는 싸움을 멈추고, 손목이 아픈 자신이 무기를 쥐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남경은 그녀를 겁쟁이라 불렀다. 단화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보호대를 풀어 부어오른 관절을 보여 줬다.
“오늘 이 손으로 검을 휘두르면 내일도 검을 못 듭니다. 싸움에서 물러나는 건 지는 게 아니에요.”
남경은 검을 거뒀다. 그는 책이 고검 노인의 초식을 망가뜨렸다고 믿지만, 목판을 강제로 가져가면 문파가 기록을 숨긴다는 의심만 키울 거라고 했다. 그는 직접 독해회에 참석해 반걸음 문장을 시험하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독해회에는 남경과 곽무, 다른 문파의 무인들이 모였다. 백문은 본문을 읽고, 각자가 동작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먼저 말하게 했다. 남경은 반걸음이 상대의 공격선을 피하는 동작이라고 했다. 단화는 상대의 움직임을 끌어낸 다음 거리를 다시 정하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곽무는 다친 발목이 나아질 때까지 그 동작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남경이 직접 시범을 보였다. 그의 자세는 고검 노인의 일지에 적힌 기록과 정확히 같았다. 백문은 그 동작을 어디서 배웠는지 물었다. 남경은 어릴 때부터 스승에게 배웠다고 답했다. 고검 노인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었는데도, 남경은 초식을 배웠다고 믿었다.
진억은 제자들이 전해 받은 동작이 여러 스승의 경험이 섞인 것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파는 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닌 방식으로 이어져 왔고, 고검 노인도 모든 초식을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남경은 그 말에 불쾌해했다. 문파의 권위가 흔들리면 배워 온 검술의 가치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백문은 그에게 가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구의 경험이었는지 다시 묻는 거라고 말했다. 남경은 잠시 생각하다 일지에 자신의 이름과 배운 경로를 적었다. 그가 그 동작을 처음 배운 사람은 진억의 사부가 아니라, 자신을 키운 누이였다.
누이는 표국에서 호위 일을 했고, 아이들 앞에서 길을 열어 도망치게 했다. 남경은 그때 본 발걸음을 기억해 문파의 검식으로 오해했다. 그는 자신이 책에 분노한 이유가 그 동작의 출처를 잃을까 두려워서였다고 인정했다.
백문은 그의 누이 이름을 기록할지 물었다. 남경은 공개해도 된다고 했지만, 누이가 살아 있는지 확인되기 전에는 문파의 기록에만 남기기로 했다. 그 선택은 진억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누이를 찾아가 허락을 구하기로 했다.
한편 채령은 인쇄소의 장부를 되찾았다. 주문 기록을 훔친 사람은 문파 제자가 아니라, 첫 판본의 목판을 새긴 화공이었다. 그는 고검 노인의 지시를 받아 문장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채령은 그가 장부를 숨긴 이유를 물었다.
화공은 고검 노인이 반걸음 문장을 완성된 기술처럼 팔지 말라고 했다고 했다. 그는 출판사가 요구한 분량을 채우려고 지워진 문장과 다른 삽화를 넣었다. 그가 숨긴 장부에는 고검 노인의 서명이 있었지만, 그 아래에 다른 이름도 적혀 있었다. 백문의 어머니, 서련이었다.
백문은 그 이름을 알아봤다. 어머니는 글씨를 가르칠 때마다 손목을 안쪽으로 꺾지 말라고 했다. 그의 첫 원고에 남은 획도 같은 버릇을 가졌다. 고검 노인은 어린 백문에게 글을 가르친 게 아니라, 어머니가 남긴 문장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그 싸움에 있었습니까?” 백문이 물었다.
화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네 어머니는 누군가를 피하려고 반 걸음을 옮겼고, 너를 품에 안고 달아났어. 고검 노인은 그 동작이 검술이라기보다 살아남으려는 선택이라고 했지.”
백문은 그 말이 기억과 맞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을 믿고 싶었지만, 확실한 기억처럼 쓰지 않기로 했다. 채령은 장부를 독해회에 보여 주되, 어머니의 이름은 백문이 공개할 때까지 숨기겠다고 했다.
진억은 문파가 입문서의 초식을 독점하려 했던 일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문파의 기록에 고검 노인의 출처와 남경의 누이 이름을 함께 남기기로 했다. 남경은 누이를 찾아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 초식의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백문은 새 판본의 첫 문장을 고쳤다. ‘이 책은 검성의 입문서가 아니라, 싸움을 보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 아래에는 각 동작의 출처와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나누어 적었다. 단화는 자기 경험을, 곽무는 부상을 치료한 뒤 다시 배우는 과정을 기록하기로 했다.
책방 문이 다시 열리자 첫 손님은 팔에 붕대를 감은 젊은 무인이었다. 그는 책을 펼치며 백문에게 물었다. “반 걸음은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
백문은 답을 바로 주지 않았다. 먼저 그가 무엇을 피하려는지 물었다. 젊은 무인은 자신이 싸우고 싶은 게 아니라, 형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백문은 그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함께 그렸다.
그 길은 무공의 초식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날 책방을 찾아온 이들이 가장 먼저 배운 문장이었다. 살아남을 곳을 정하는 일은 저자의 답안이 아니라, 각자의 몸과 사정에서 시작됐다.
독해회가 끝난 뒤, 백문은 화공에게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화공은 서련이 몇 해 전 장강의 작은 나루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 뒤 편지는 오지 않았지만, 고검 노인은 그녀가 살아 있다고 믿었다. 백문은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기록과 소망을 같은 칸에 적지 않았다.
진억은 문파의 오래된 출입 장부에서 나루의 이름을 찾아냈다. 서련은 그곳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는 표국의 의원을 도왔다. 남경의 누이도 같은 표국에서 일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두 사람의 길이 겹친다면 입문서의 문장이 한 사람의 무공에서 나온 게 아닐 수 있었다.
“그럼 책의 저자는 누구죠?” 단화가 물었다.
“나는 책을 썼어요.” 백문은 답했다. “하지만 그 문장을 처음 만든 사람은 나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는 표지의 저자 표기를 없애지 않았다. 대신 서문에 자신이 관찰한 장면, 채령이 인쇄하면서 바뀐 그림, 단화와 독자들이 보탠 해석을 구분해 적었다. 그 일은 이름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는 일이라기보다, 자기 책임이 어디까지인지 선명하게 하는 일이었다.
새 판본의 인쇄 비용은 부족했다. 채령은 목판 일부를 고쳐 다시 쓰고, 손상된 삽화는 독자들이 그린 여러 발자국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백문은 수입을 모두 부상자에게 주면 자신의 월세를 낼 수 없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채령은 책값의 일부를 치료비로 떼고, 나머지는 인쇄와 생계에 쓰기로 장부에 적었다.
진억은 그 계산을 보고 “책은 문파의 재산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문파 제자들은 반발했지만, 남경이 먼저 누이의 이름을 찾는 데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의 선택은 스승의 권위를 세우는 일보다 누이에게 직접 묻는 일이 먼저라는 뜻이었다.
백문은 떠나기 전에 단화에게 새 삽화를 건넸다. 종이에는 같은 자세를 세 방향에서 그려 놓았고, 어떤 발이 더 낫다고 표시하지 않았다. 단화는 몸이 회복되면 각 자세를 시험해 보겠다고 했다. 시험 결과가 다르면 그림을 다시 고칠 거라고 덧붙였다.
“그럼 책은 계속 바뀌겠네요.”
“사람들이 읽는 동안은 그럴 거예요.”
백문은 자기 책을 완성된 비급처럼 내놓고 싶었던 마음을 인정했다. 명성은 빠르게 얻을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몸을 자신의 문장에 맞추는 대가가 있었다. 이제 그는 독자에게 틀렸다고 말할 권리도 함께 주려 했다.
나루로 향하는 길에서 백문은 어머니의 글씨가 남은 초고를 품에 넣었다. 이름과 출처를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빈칸으로 남겨 뒀다. 어머니가 돌아와 직접 수정할 수 있다면, 그 빈칸은 오자가 아니라 기다리는 자리일 터였다.
저녁이 되자 강 건너편에서 한 사람이 걸어왔다. 오른발을 끌고 있었고, 왼손에는 낡은 검집을 들었다. 그는 백문에게 다가와 이름을 묻지 않았다. 대신 그가 쓴 입문서의 첫 문장을 말했다.
“이 책은 검을 가르치지 않는다. 싸움을 보고 살아남은 사람의 기록이다.”
백문은 그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사라진 어머니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는 먼저 답을 요구하지 않고, 그 사람의 발걸음을 물었다. 상대는 한쪽 다리를 다쳐 반걸음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백문은 길가의 돌을 치우고 천천히 걸을 자리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몸이 문장에 맞지 않으면 문장을 고치면 된다. 그는 그렇게 적은 첫 저자로서, 이번에는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