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왕의 바둑판

3화: 빈 점을 지키는 수
동쪽 골목의 수레가 바뀌었다는 소식은 밤새 세 번 다른 모습으로 전해졌다. 처음에는 포졸이 아이를 실어 갔다고 했고, 다음에는 문파의 표식이 붙은 수레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빈 수레가 장터에 버려졌다는 말이 돌았다. 매화는 바둑판에 돌을 놓지 않았다.
문선은 순찰표를 확인해 수레가 동쪽 관청에서 출발한 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동구가 장터에서 수레 자국을 찾았고, 복돌이는 길가에서 짚신 한 짝을 발견했다. 짚신의 주인은 아이들이 만든 공동 급식소에서 일하는 남자였다. 아이를 실어 간 수레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다.
매화는 소문을 가져온 사람을 벌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걱정되어 급히 알렸다고 했다. 대신 정보의 출처와 확인 여부를 나눠 적었다. 판 위에는 수레의 이동만 표시하고, 아이 이름은 빈 점에 두었다. 그 규칙을 지키자 거지 조직 안에서 불만이 나왔다. 정보를 늦게 공유하면 사람을 구할 시간을 놓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우리가 모든 정보를 확인할 때까지 기다리면, 피해가 생길 수도 있어.” 문선이 말했다.
“그렇다고 확인되지 않은 사람 이름을 올리면, 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어요.”
두치는 둘의 말을 들으며 새 기보를 펼쳤다. 그는 어떤 정보는 위험을 감수하고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화는 위험의 크기와 정보를 공개할 사람을 함께 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우선 수레가 향한 장소만 확인하고, 사람의 이름은 당사자에게 물을 때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청률은 관청 수레가 강변 창고로 갔다고 알려 왔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그곳을 사용해 정보 쪽지를 옮긴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제삼의 손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번갈아 움직이는 체계였다. 정보가 하나의 바둑판에 모이면 누군가 그 판을 훔칠 수 있었다.
“왜 말하지 않았죠?” 매화가 물었다.
“내가 모든 소식을 관리하면 충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럼 아이들은 당신이 정한 수로 움직였겠네요.”
청률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쪽지를 전달한 사람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청률이 어느 문파와 거래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공개한 소식으로 문파의 전투가 다른 골목으로 옮겨 간 일도 있었다.
매화는 청률을 바둑판에서 쫓아내지 않았다. 대신 다음 판을 놓을 사람은 각 골목에서 한 명씩 뽑고, 정보 공개에 동의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은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청률은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고, 거래한 문파와 관청 목록을 제출해야 했다.
그들은 강변 창고를 찾아갔다. 안에는 빈 수레와 사라진 거지표가 쌓여 있었다. 포졸들은 바둑판의 수를 이용해 순찰을 바꿔 왔다. 아이들이 놓은 표식을 훔쳐 골목의 식량과 거처를 알아냈다. 매화는 그 표식들을 회수하자고 했지만, 일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전달됐을 수 있었다.
문선은 표식 하나가 누군가의 이름 대신 길을 표시하는 데 쓰인다고 말했다. 해당 골목 주민들이 표식을 바꾸면 이전 정보는 쓸모를 잃는다. 그러나 표식 변경을 알리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위치를 드러낼 위험이 있었다. 매화는 각 골목이 자기 표식을 정하고, 인접 골목 한 곳에만 변경 사실을 전하도록 했다.
그때 창고 안쪽에서 젊은 여인이 나왔다. 두치가 사라진 제자 소율과 닮았지만, 그녀는 다른 이름을 댔다. 자신은 제삼의 손 가운데 한 명이며, 거지표를 훔쳐 간 사람들을 감시해 왔다고 했다. 그녀는 이름을 밝히길 원치 않았고, 매화는 더 묻지 않았다.
여인은 청률을 향해 자신이 소율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두치는 눈에 눈물이 맺혔지만,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돌아오기를 오래 기다렸지만, 그녀가 나타났다고 해서 예전의 제자로 돌아와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판에 제 이름을 적지 마세요.” 여인이 말했다.
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신이 지키고 싶은 정보만 남기겠습니다.”
여인은 창고에서 훔친 표식들이 관청 수레에 실려 갔다고 했다. 그 표식으로 순찰을 바꾸고, 빈집을 조사했으며, 식량 창고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녀는 표식을 회수하는 대신 잘못된 표식을 일부러 흘려 수레를 빈 골목으로 유인했다. 그 과정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지만, 다음에 같은 방법을 쓸 수는 없었다.
문선은 그 작전이 위험했다고 지적했다. 여인은 자신이 모두를 대신해 결정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녀는 관청의 움직임을 공개할 수 있지만, 자신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매화는 그녀의 조건을 기록하지 않고, 정보만 확인된 사실로 남겼다.
창고 밖에서 포졸 대장이 나타났다. 그는 청률을 체포하려는 게 아니라, 훔친 표식을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매화는 표식에 이름이 적히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주민들이 만든 정보라고 말했다. 포졸은 관청이 골목 안전을 책임진다고 주장했다.
“책임진다면 주민에게 묻고 돌려줘야죠.”
대장은 한참 망설이다 표식 자루를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이미 쓰이지 않는 표식과 아직 유효한 표식이 섞여 있었다. 매화는 모든 것을 가져가지 않고, 골목 주민이 확인한 표식만 돌려주기로 했다. 일부는 소유자를 찾을 수 없어 잠정 보관했다.
청률은 관청과 문파에 전달한 정보를 공개했다. 그 목록에는 거지 조직이 먼저 보낸 소문도 있었다. 매화는 자신의 조직도 판의 움직임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들은 누가 정보를 제공했고 어떤 행동에 사용됐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책임은 청률 한 사람에게 넘길 수 없었다.
두치는 소율에게 기보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여인은 기보를 읽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기록이 자신을 찾는 표식이 될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두치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보관하던 기보를 태우지 않고 봉인해 두기로 했다. 언젠가 그녀가 원하면 읽을 수 있게 하되, 누구도 열람하지 못하도록 했다.
밤이 되자 새 바둑판이 열렸다. 각 골목의 대표가 정보와 공개 범위를 직접 정했다. 어느 점은 수로 표시되고, 어느 점은 공백으로 남았다. 매화는 중심에 앉지 않았다. 그녀는 판 밖에 서서 사람들이 돌을 놓는 순서를 지켜봤다.
마지막으로 동구가 흰 돌 하나를 들었다. 그는 아직 복돌이의 우물 위치를 판에 올릴지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매화는 그 돌을 놓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동구는 돌을 내려놓고, 복돌이에게 직접 물으러 갔다.
판은 한 수도 완성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어느 골목이 안전하고 어떤 정보가 아직 말해지지 않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날 밤 거지왕의 바둑판은 세력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의 이름을 판에 올리지 않을지 모두에게 물었다.
새벽 무렵 빈 점 옆에 작은 글씨가 생겼다. ‘여기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는다.’ 매화는 글씨를 지우지 않았다. 그녀는 돌을 놓는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판에 없는 손이 움직이지 않는 밤을 맞았다.
판을 둘러싼 사람들은 빈 점을 보고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비어 있는 자리가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공간이었다. 동구는 복돌이에게 그 점을 설명하러 갔다. 복돌이는 우물 위치를 공유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동구는 돌을 내려놓은 채 돌아왔다.
매화는 그를 칭찬하지 않았다. “네가 듣고 온 말을 네가 판에 올리고 싶을 수도 있어. 그럴 때는 먼저 복돌이에게 물어.”
“그럼 복돌이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도 못 알아요.”
“맞아. 그게 그가 고른 결과야.”
동구는 답답해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골목의 대표들은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누구에게 전달해도 되는지, 언제 지워야 하는지 함께 적었다. 매화는 규칙을 혼자 정하지 않고, 첫 장에 누구나 이의를 적을 수 있는 칸을 만들었다.
문선은 포졸 대장과 다음 달 순찰표를 검토했다. 관청은 골목의 안전을 책임진다고 주장했지만, 주민들이 직접 순찰 경로를 보지 못하도록 했다. 포졸 대장은 그 이유가 범죄자에게 경로가 알려질까 우려해서라고 했다. 문선은 주민에게 모든 경로를 공개하는 대신, 위험한 시간과 피난 장소를 각 골목에 알리는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포졸들이 약속을 어기면 다시 알리겠다고 했다. 문선은 순찰표를 전부 공개하지 않은 채, 자신이 확인한 사실과 관청의 약속을 구분해 기록했다. 정보는 믿음 하나로 굴러가지 않았다.
청률은 자신의 문파로 돌아가 정보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매화는 그에게 다시는 정보를 나누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정보가 사람을 움직일 때 누구의 동의를 받았는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청률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고, 첫 사례로 자신이 숨긴 이전 기보를 공개했다.
기보에는 거지 아이들의 이동 경로가 여러 수로 표시돼 있었다. 청률은 전투를 피하려고 그 경로를 문파에 알려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포졸들이 아이들을 찾아냈다. 그는 자신이 의도한 결과와 실제 결과를 구분해 공개했다. 매화는 그의 고백을 받아도 용서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책임을 지는 일이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치는 기보의 소율 이름을 지우지 않았다. 대신 열람 금지 표시를 붙이고, 그 표시를 해제할 사람은 소율 본인이라고 적었다. 그는 그동안 기록을 태워 보호하려 했고, 이름을 지워 사라지게 했다. 이제는 보존하되 접근을 제한하는 다른 방법을 배웠다.
며칠 뒤 복돌이는 우물에서 돌아왔다. 그는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매화는 그의 선택을 도와줄 사람을 지정해 달라고 물었다. 복돌이는 동구와 함께 지내고 싶다고 했고, 국밥 장수의 빈 방을 빌리기로 했다. 위치는 바둑판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믿을 수 있는 두 사람만 알도록 했다.
매화는 새 거지왕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판을 혼자 들여다보는 일은 그만뒀다. 각 골목의 대표들이 자기 수를 놓고, 정보를 나누지 않기로 한 사람은 돌을 쥔 채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선택도 밤바둑의 일부였다.
해가 뜰 무렵, 바둑판 모서리에 작은 검은 돌 하나가 발견됐다. 아무도 놓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매화는 돌을 집지 않고 판 가장자리에 ‘출처 미상’이라는 표시를 붙였다. 그 다음 수를 결정하기 전에, 그 돌을 두고 간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판 위의 공백을 읽는 법을 배웠다. 모든 공백에 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는 일이 가장 정확한 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