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기록원의 역전

3화: 마지막 아웃 카운트
연습경기는 9회 말까지 이어졌다. 블루웨일즈는 2대4로 뒤지고 있었고, 주자는 1루와 2루, 아웃은 하나였다. 한도윤은 기록석에서 타구 방향과 주자 리드를 확인했다. 감독 서준표는 작전 카드에 번트를 적지 않았다. 타석에는 장재민, 다음은 포수 윤하람이었다. 하람은 무릎 통증을 트레이너에게 알린 뒤 오늘은 지명타자로 출전 중이었다.
재민은 첫 공을 지켜봤다. 투수는 바깥쪽 변화구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두 번째는 높은 직구였고, 재민은 배트를 내지 않았다. 스코어북에는 볼 하나, 스트라이크 하나가 기록됐다. 주자들은 투수의 동작을 살폈다. 도윤은 1루 주자의 리드 폭이 평소보다 좁은 것을 알아챘다. 직전 이닝에서 두 번 견제를 받은 뒤였다.
준표는 더그아웃에서 손가락으로 2루 주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타구가 내야로 가면 홈까지 뛰지 말고, 중견수 앞으로 떨어지면 한 베이스씩 가라는 뜻이었다. 주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민은 세 번째 공을 맞혀 3루 쪽으로 굴렸다. 번트가 아니라 강한 땅볼이었다. 3루수는 1루에 송구했고, 재민은 아웃됐다. 2루 주자는 3루에 도달했고, 1루 주자는 2루까지 진루했다. 아웃은 둘, 주자는 2·3루에 있었다.
하람은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무릎을 한 번 굽혔다. 통증을 2라고 기록했지만, 트레이너는 뛰는 동작을 제한하라고 했다. 준표는 하람에게 타격 뒤 1루까지 무리하지 말고, 대주자를 준비시켜 놓았다고 말했다. 하람은 자기 타석에서 대주자를 쓰는 건 동의하지만, 교체 시점을 직접 확인하겠다고 했다.
더그아웃에서 하람은 외야 펜스 너머의 바람이 오른쪽으로 불고 있다고 했다. 준표는 일기예보와 경기장 깃발이 다르게 움직인다며 타구가 뜨면 확인하라고 했다. 바람을 이용해 외야로 보내려는 작전은 세훈에게 맡기지 않고, 하람이 투수와 타자의 리듬을 보며 사인을 조정하기로 했다. 도윤은 바람 방향을 자체 메모에만 적었다. 공식 스코어에는 타구가 실제로 날아간 위치가 기록될 뿐, 바람이 그 타구를 만든 원인이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투수는 하람에게 초구 직구를 던졌다. 하람은 스윙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공은 낮게 빠졌고, 심판은 볼을 선언했다. 도윤은 1볼 1스트라이크를 입력했다. 하람은 타석에서 투수의 손목 움직임을 보고 포수 미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음 공은 바깥쪽 직구였다. 하람은 밀어 쳐 우익수 앞에 떨어뜨렸다. 3루 주자가 홈을 밟고, 2루 주자도 3루에서 멈췄다. 점수는 3대4, 주자는 1·3루, 아웃은 둘이었다.
준표는 하람을 1루에서 대주자로 교체했다. 하람은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며 무릎 상태를 트레이너에게 다시 말했다. 통증이 3으로 올라와 있었다. 그는 교체가 아쉽지만, 한 번 더 뛰면 다음날 훈련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준표는 하람에게 다음 경기 출전 여부를 미리 약속하지 않고 상태를 다시 보겠다고 했다.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김세훈이었다. 주자는 1루와 3루, 아웃 둘. 투수는 세훈에게 초구를 던지고, 세훈은 파울을 쳤다. 0볼 1스트라이크. 준표는 1루 주자에게 도루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포수의 송구가 빠르다는 데이터와 경기 흐름을 함께 고려했다. 3루 주자는 투수의 견제에 대비해 리드 폭을 줄였다.
두 번째 공은 몸쪽 직구였다. 세훈은 방망이를 짧게 잡고 커트했지만, 공은 포수 뒤쪽으로 튀었다. 주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포수가 공을 바로 잡아 3루 주자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도윤은 공식 기록에 파울을 입력하고, 자체 메모에는 주자들이 스타트를 끊지 않은 이유를 적었다. 무리한 진루 대신 다음 공을 기다리는 판단이었다.
세 번째 공은 낮은 변화구였다. 세훈이 헛스윙해 2스트라이크가 됐다. 준표는 더그아웃에서 작전을 바꾸지 않았다. 세훈은 다음 공을 기다렸다. 투수는 같은 궤적으로 변화구를 던졌지만 공이 바깥쪽으로 벗어났다. 1볼 2스트라이크. 다음 공은 빠른 공이 가운데로 들어왔고, 세훈은 우익수 쪽으로 강하게 맞혔다. 공은 외야수 앞에 떨어졌다.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다. 1루 대주자는 2루를 돌아 3루로 향했다. 우익수 송구가 유격수 앞에 도착했고, 유격수는 3루로 공을 던졌다.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블루웨일즈는 동점 기회를 얻었지만, 추가 득점은 만들지 못했다. 점수는 4대4, 아웃은 세 개였다. 경기는 규정 이닝을 채운 연습 무승부로 끝났다.
3루에서 아웃된 대주자는 더그아웃으로 돌아와 헬멧을 벗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는 3루 코치의 손이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치는 외야수 송구가 중간에서 방향을 바꾸는 걸 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준표는 경기 중 신호를 따랐다는 이유로 선수를 탓하지 않고, 코치의 판단과 타구 위치를 영상으로 확인하자고 했다. 대주자는 아웃 하나가 동점을 지운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하람은 본인이 만든 적시타가 점수로 이어진 건 사실이라고 답했지만, 팀은 한 점을 더 낼 수 있었던 기회도 놓쳤다.
“내가 더 빨리 뛰었으면 살았을 수도 있어요.” 대주자가 말했다.
도윤은 기록에 그렇게 쓰지 않았다. 아웃 판정은 남지만, 더 빨리 뛰었으면 살았을지 기록만으로 알 수 없다. 그는 영상 분석에서 송구 시간과 주자의 출발을 함께 살피겠다고 했다. 준표는 다음 경기에선 외야수 어깨와 타구 위치를 보고 3루 코치가 신호를 멈추는 기준을 정하겠다고 했다.
도윤은 점수와 타점을 입력하고, 대주자 교체 시각을 기록했다. 9회 말 블루웨일즈는 2점을 따라잡았다. 재민의 땅볼은 아웃이 됐지만 주자를 진루시켰고, 하람은 적시타를 쳤다. 세훈의 안타로 동점이 됐지만, 추가 진루를 시도한 대주자는 3루에서 아웃됐다. 한 장면이 성공과 실패를 함께 만들었다.
준표는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선택의 이유를 물었다. 재민은 3루 쪽 땅볼을 쳤을 때 타구가 예상보다 느려 1루까지 못 갈 것 같았다고 했다. 2루 주자는 3루까지 갈 수 있었지만 홈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하람은 적시타를 쳤지만 무릎이 아파서 대주자 교체를 선택했다. 각자의 결정은 기록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마지막 3루 주자는 왜 더 갔죠?” 도윤이 물었다.
준표는 외야수의 송구가 홈으로 향했다고 보고, 1루 주자가 3루까지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나 송구가 중간에 컷오프됐고, 유격수가 빠르게 3루로 던졌다. 준표는 그 장면을 본인 결정으로 기록하겠다고 했다. 선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도윤은 공식 기록과 자체 전술 메모를 구분했다. 3루 주자의 아웃은 주루사로 기록되지만, 그 선택이 누구의 지시였는지는 팀 내부 검토 자료에만 남겼다.
경기 후 타격 훈련 시간에 도윤은 준표에게 선수 테스트를 다시 요청했다. 그는 2년 전 평가 기록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확인받고 싶다고 했다. 준표는 구단이 선수 등록 비용과 출전 자리를 부담해야 하므로, 기록 담당자가 테스트를 받는 것만으로 쉽게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윤은 기록석을 비울 때 대체 인력을 찾고, 타격 테스트는 공식 훈련과 별도로 받겠다고 제안했다.
“이번 주에 티 배팅으로 시작해. 타격 코치가 네 몸 상태를 보고, 다음 단계로 갈지 정하겠다. 기록 업무는 그대로 해. 네가 선수로 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알겠습니다. 평가부터 받겠습니다.”
준표는 선수 등록 요강을 확인하고, 도윤의 연령과 최근 경기 이력에 제한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등록 마감은 한 달 뒤였고, 건강 확인도 필요했다. 도윤은 자신이 출전하고 싶은 이유를 팀에 숨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팀을 위해 선수로 뛰겠다고 과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평가받는 일이 먼저였다.
하람은 트레이너 진료 예약을 잡았다. 그는 다음 경기에 포수로 나갈 수 있는지 진료 뒤 결정하기로 했다. 준표는 수비 리드를 하람 한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다른 포수와 나누는 훈련을 계획했다. 재민은 다음 훈련에서 타구 판단과 출발 시점을 반복하고, 도윤에게 자신의 느낌도 기록해 달라고 했다. 선수들은 수치가 자기 경험을 대신하지 않도록 분석 내용을 함께 확인했다.
도윤은 공식 스코어북을 다시 대조했다. 9회말 적시타와 주루사, 대주자 교체, 최종 4대4가 리그 기록 규정에 맞게 입력됐는지 확인했다. 타점 기록에는 오류가 없었다. 별도 분석표에는 2사 1·3루에서 대주자의 출발 시각과 외야 송구가 적혔다. 데이터는 경기의 흐름을 설명하는 하나의 근거였고, 팀의 다음 선택은 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내릴 일이었다.
짐을 싸는 도윤에게 재민이 말했다.
“다음엔 네가 타석에 서는 걸 보고 싶긴 해. 근데 네가 기록한 숫자대로 치라는 뜻은 아니야.”
도윤은 웃으려다 웃지 못했다. 그 말은 초대이자 경고처럼 들렸다. 자신의 데이터가 자기를 평가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는 티 배팅 테스트를 받기로 했고, 결과가 나쁘면 기록원으로 남을 수 있었다. 선수 등록까지 갈지는 다음 단계가 알려 줄 것이다.
연습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블루웨일즈는 9회말 두 점을 만들었다. 하람은 수비만이 아니라 타석의 기여를 보였고, 재민은 달리기보다 타구를 읽었다. 준표는 대주자 작전의 선택을 자기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도윤은 마지막 공격을 기록했지만, 다음 타석은 직접 준비할지도 몰랐다.
다음 주 구단 운영 회의에는 원정 경기 축소안이 올라올 예정이었다. 후원금이 줄어들면 등록 선수 수와 분석 담당자 고용이 함께 영향을 받았다. 도윤은 팀이 자기 테스트를 허락하더라도 출전 자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티 배팅을 시작하기 전에 구단의 예산표도 먼저 보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