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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8화

뒷골목의 골동품 거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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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일곱 면의 암호

새벽 3시 4분.

강태오는 회색 조끼 안감에서 나온 사파이어 반지를 현미경 아래 올려놓았다.

푸른 돌은 손톱의 절반만 한 크기였다. 대신 윗면이 일곱 개의 면으로 갈라져 있었다. 각 면의 끝에는 홈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다. 장인이 장식 효과를 내기 위해 넣는 흠집이 아니었다. 홈은 깊이가 조금씩 달랐고 방향도 일정하게 꺾여 있었다.

태오는 링을 뒤집었다. 안쪽에는 손가락이 닿지 않는 좁은 틈이 있었다. 그 틈의 금속은 다른 부분보다 붉었다. 피가 묻은 흔적은 아니었다. 열과 마찰을 오래 받은 금속의 색이었다.

그는 자외선등의 각도를 낮추고 돌 표면에 비스듬히 빛을 쏘았다.

첫 번째 면의 홈이 길게 떠올랐다. 두 번째 면은 짧았다. 세 번째 면은 다시 길었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꺾였다.

태오는 책상 서랍에서 동해물류공사 채권의 압인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 숫자 세 개에는 희미한 번짐이 남아 있었다.

3-1-5

채권에 찍힌 배열은 단순한 접수 번호가 아니었다. 청색 항로의 분할 입금 순서 앞부분과 같았다. 태오는 반지의 첫 세 면을 사진 위에 겹쳤다. 긴 홈과 짧은 홈의 간격이 압인 숫자의 획 간격과 정확히 맞았다.

“숫자를 새긴 게 아니군.”

숫자는 누군가가 읽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반지는 숫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순서를 전달하는 물건이었다. 면의 길이와 홈의 방향이 숫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태오는 일곱 면의 홈을 투명 필름에 옮겼다. 첫 다섯 면을 순서대로 나열하자 3-1-5-2-4가 되었다. 양피지에 적힌 익명 계좌의 분할 입금 순서와 일치했다.

그러나 뒤의 두 면은 계좌 순서가 아니었다. 여섯 번째 면의 홈은 숫자보다 알파벳 식별자에 가까웠다. 홈 끝에 남은 미세한 절삭 자국이 세로로 두 번 끊겨 있었다.

태오는 침입자에게서 확보한 한빛 문화재환수재단 출입증 사진을 떠올렸다. 재단 내부 구역 표기는 영문 한 자와 두 자리 숫자로 나뉘어 있었다. 그는 출입증 사진의 H09를 확대해 반지의 홈 옆에 겹쳤다.

H-09

일곱 번째 면은 홈이 하나뿐이었다. 대신 홈 안쪽에 검은 점이 두 개 박혀 있었다. 태오는 반지를 돌려가며 점의 간격을 재었다. 점 두 개는 보석의 장식용 내포물이 아니었다. 옛 비밀 장부에서 억 단위 금액을 묶을 때 쓰던 보조 표식과 같은 간격이었다.

그는 채권의 액면가와 양피지의 분할 계좌를 차례로 떠올렸다. 반지에 적힌 금액은 단위가 생략된 금액 묶음이었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값은 50억이었다.

태오는 숫자 아래에 선을 그었다.

3-1-5-2-4 / H-09 / 50

아직 50억이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채권의 100억 규모와 양피지의 분할 입금 구조를 함께 놓으면 이 표식은 소액 운송비가 아니라 비자금 일부를 뜻할 가능성이 높았다.

반지는 열쇠가 아니었다. 문을 여는 물건이 아니라 승인받은 운반자임을 증명하는 표식이었다. H-09 관리 구역을 통과할 때 이 반지를 보여 주고 50이라는 금액 묶음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 순간 반지 안쪽의 붉은 금속 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태오는 미세 절삭 칼끝으로 가루를 아주 조금 떼어 유리판에 옮겼다. 가루는 금이 아니었다. 붉은 빛이 도는 납과 주석의 합금이었다. 봉인재를 녹여 굳힐 때 생기는 미세한 찌꺼기였다.

감정실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태오는 즉시 진짜 사파이어 반지를 장갑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강태오 씨.”

신유경이 계단 아래로 내려왔다. 차 형사는 올라간 채였고 그녀의 손에는 통신기 격리 봉투가 들려 있었다.

“침입자 둘은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한 명은 화살촉의 독성 성분을 알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요.”

“입을 다문 사람은 보통 말할 게 많은 사람입니다.”

“그쪽은 말할 게 없는 사람처럼 굴지 마.”

신유경은 작업대 위 현미경과 유리판을 번갈아 보았다.

“이제 반지까지 나왔군.”

태오는 눈썹을 아주 조금 올렸다.

“반지라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수사관이 회색 조끼에서 장신구를 찾았다고 보고했어. 사진도 받았고.”

신유경은 손을 내밀었다.

“압수할게.”

“압수 목록에 올리면 발신자도 목록을 확인합니다. 그 순간 반지는 증거가 아니라 회수 대상이 됩니다.”

“당신이 증거를 숨길 권리는 없어.”

“경감님은 그 통신기를 확보하고도 발신자를 못 찾으셨죠.”

신유경의 표정이 굳었다.

“재단 보존실 번호는 직통이 아니었어. 내부 착신 전환 번호를 한 번 거쳤고 마지막 전환 기록은 지워져 있었지. 한빛 재단의 정식 직원이라는 증거도 없어.”

“그럼 더더욱 반지를 경찰 보관함에 넣으면 안 됩니다.”

“당신은 내가 뭘 찾았는지 이미 알고 있군.”

태오는 대답하지 않고 유리판의 붉은 가루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저 가루는 화살촉 독이 아닙니다. 침입자의 장갑 안쪽에서 나온 봉인재입니다. 그는 재단 보존실에서 무언가를 봉인한 뒤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게 반지와 무슨 상관이지?”

“반지는 물건의 열쇠가 아니라 사람의 표식일 수 있습니다.”

신유경이 사파이어를 바라보았다. 태오는 그 시선을 읽었다. 그녀는 반지의 세부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지금 숫자와 식별자를 알려 주면 경찰은 H-09를 먼저 뒤질 것이다. 태오는 그곳에 돈보다 비싼 사람이 있을 가능성을 버리지 않았다.

“당신이 말하지 않는 것 중에 백사장 채권과 관련된 게 있습니까?”

“채권은 이미 위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위조라는 말 뒤에 계좌가 있습니까?”

“계좌보다 먼저 돈을 움직인 사람이 있습니다.”

태오는 진짜 반지를 보존 상자에 넣었다.

“경감님은 오늘 밤 섀도 엔틱 앞의 감시차를 계속 세워 두실 겁니까?”

“당신을 보려고 붙인 차야.”

“그 차가 움직이면 저도 알 수 있겠군요.”

“감시를 이용할 생각이라면 포기해. 이번에는 내가 먼저 체포할 거야.”

신유경은 돌아서기 전 태오를 노려보았다. 태오는 그녀가 떠난 뒤 감정실의 환풍구를 확인했다. 밖의 감시차와 연결된 소형 수신기가 작동하고 있었다. 경찰은 그의 가게를 보고 있었다. 동시에 누군가 경찰의 감시차를 보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태오는 전당포 뒤쪽의 서비스 해치를 열었다. 골목 아래에는 낡은 민속품 수거 상자를 옮기는 손수레가 놓여 있었다. 그는 상자 안에 가짜 사파이어 반지를 넣었다. 진짜 반지에서 떼어 낸 붉은 가루 일부도 가짜 링의 안쪽에 발랐다.

그리고 오복자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다.

금속 확인. 수거 상자 3번. 질문하지 말 것.

오복자는 태오가 감정원에 있던 시절 보존용 합금과 봉인재를 납품하던 금세공업자였다. 정식 시장에서 태오가 쫓겨난 뒤에도 그녀는 그가 맡긴 금속 조각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 재료의 배합만 확인하고 그 값만 받는 사람이었기에 태오는 그녀를 믿었다.

십 분 뒤 수거 상자가 서비스 해치 밖으로 밀려 나갔다. 오복자의 손이 상자 손잡이를 잡는 순간 맞은편 감시차의 적외선 카메라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태오는 감정실 모니터에 그 움직임을 띄웠다.

가게를 감시하는 경찰이 상자를 본 것인지 경찰을 감시하는 다른 눈이 상자를 본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오복자의 답장은 삼 분 뒤 도착했다.

납과 주석. 오래된 봉인재. 한빛 재단 보존실에서 쓰는 배합과 같음. 오늘 새벽 반출된 흔적.

태오는 진짜 반지의 여섯 번째 면을 다시 보았다.

H-09는 단순한 보관실 번호가 아니었다. 봉인재가 출입하는 관리 구역이었다. 가짜 반지를 실은 수거 상자는 그 구역에서 나온 물건을 확인하는 미끼가 될 수 있었다.

그때 사거리 모퉁이에 회색 조끼 남자가 나타났다. 침입자와 같은 조끼는 아니었지만 오른쪽 소매 안쪽에 세 줄 문양이 어렴풋이 보였다. 남자는 손수레를 지나치며 수거 상자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고 감시차 반대편의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졌다.

태오는 경찰 감시차의 번호판을 확인했다. 차 안의 사람이 상자를 주시했다면 곧 움직일 것이다.

3분 뒤 감시차의 헤드라이트가 켜졌다.

신유경은 가짜 상자를 미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승합차가 골목을 빠져나가 회색 조끼 남자가 사라진 방향으로 움직였다.

태오는 진짜 반지를 꺼내 오프라인 장부를 펼쳤다. 첫 줄에는 감정 결과가 아니라 순서를 적었다.

3-1-5-2-4

두 번째 줄에는 식별자를 적었다.

H-09

마지막으로 금액과 시간을 적었다.

50억 / 06:10

붉은 봉인재가 오전 6시 10분 외부 이체용 케이스에 쓰인다면 그 케이스는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B-17 전표의 02:10 / 9-B는 화물 이동 시각과 통과 코드였다. 반지는 그 화물이 자금으로 바뀌는 다음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

태오는 사거리 카메라의 화면을 네 갈래로 나누었다. 경찰 승합차는 회색 조끼 남자를 따라갔다. 골목 끝에서는 흰색 소형 화물차가 한빛 재단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화물차 뒤 번호판에는 진흙이 묻어 있었지만 왼쪽 램프의 깨진 모양은 보였다.

태오는 그 모양을 수첩에 그렸다. 물건의 얼굴은 가려도 손상은 숨기기 어렵다.

수거 상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감시차에서 신유경의 짧은 메시지가 들어왔다.

당신 가게 앞에 둔 상자와 관련된 차량을 따라가는 중이다. 이번에도 미끼라면 다음엔 문을 부수겠다.

태오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신유경이 차량을 쫓아가면 경찰의 시선은 섀도 엔틱에서 멀어진다. 그 순간 한빛 재단의 진짜 운반차는 감시망의 빈틈을 통과할 것이다.

하지만 태오는 아직 해외 가상자산 계좌의 전체 주소를 알지 못했다. H-09는 보관 케이스의 식별자였고 50억은 이체 금액의 후보였다. 돈을 빼돌리려면 케이스가 어디로 가는지와 계좌의 끝자리를 함께 알아야 했다.

그는 사파이어 반지를 다시 현미경 아래 올렸다.

일곱 번째 면의 검은 점 두 개 사이에 아주 얇은 긁힘이 있었다. 이번에는 숫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B-17 전표의 9-B와 같은 방향으로 꺾인 흔적이었다.

태오는 입술을 닫은 채 웃었다.

반지는 자금의 문을 열지 않는다. 문 앞에서 누가 돈을 들고 있는지 알려 줄 뿐이다.

그렇다면 돈이 지나갈 때 필요한 것은 반지와 경찰의 눈이었다.

태오는 금고에서 낡은 해외 송금용 단말과 빈 계정표를 꺼냈다. 정식 시장에서 쫓겨나기 전 쓰던 도구였다. 지금은 이름을 지운 장부와 함께 뒷골목에서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오전 5시 46분.

거리의 가로등이 하나씩 꺼졌다. 사거리 감시차의 화면에는 신유경이 쫓아간 회색 조끼 남자의 이동 경로가 끊긴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동시에 한빛 재단 방향으로 움직이던 흰색 화물차가 낡은 지하 차도 앞에서 멈췄다.

태오는 붉은 금속 가루가 묻은 가짜 반지를 상자에서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진짜 사파이어 반지는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50억이면 충분히 비싸겠군.”

그는 새 장부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이체 시작 06:10

아직 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돈을 지키는 사람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태오는 섀도 엔틱의 뒷문을 열었다. 경찰의 감시차가 비어 있는 사거리를 향해 시선을 돌린 순간이었다.

그는 지하 차도와 반대편 골목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 쪽이 진짜 문인지 확인하려면 먼저 누군가에게 가짜 열쇠를 쥐여 줘야 했다.

오전 6시 10분까지 스물네 분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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