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로 돌아왔더니 아기 헌터? ― 성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중입니다

10화: 길거리 게이트 자폭
“응애―――!”
가을 정오의 맑은 하늘을 가르는 날카롭고 우렁찬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거리 광장을 뒤흔들었다.
유모차 안전바를 움켜쥔 무진의 작은 주먹에 푸른 마력이 은은하게 서려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로 발을 내딛으려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뚝 멈춰 섰다.
“어머! 아기 목청 좀 봐.”
“무슨 일이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직장인들과 장바구니를 든 주부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찰나였다.
콰드드득!
사람들이 막 발을 디디려던 횡단보도 정중앙의 아스팔트가 마치 얇은 유리판처럼 산산조각 나며 솟구쳐 올랐다.
쩌저적 갈라진 도로 틈새로 검붉은 차원의 안개가 무섭게 뿜어져 나왔다.
“꺄아아악!”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불길한 붉은빛이 번쩍이자 뒤늦게 도로변 대형 전광판의 신호가 시뻘건 경고문으로 바뀌었다.
[비상경보: 도심 돌발형 E급 게이트 발생!]
[보행자 및 인근 시민들은 즉시 현장에서 대피하십시오!]
사이렌이 찢어질 듯 울려 퍼졌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불과 10여 미터 떨어진 횡단보도 한복판에 지름 3미터에 달하는 기괴한 타원형 차원문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크르르르!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차원의 틈새에서 붉은 눈을 번뜩이는 마수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단단한 골판 갑피와 톱니 같은 앞발을 번뜩이는 E급 마수 ‘가시 뿔두더지’ 떼였다. 아스팔트를 두더지 굴 파듯 헤집으며 튀어나온 놈들이 붉은 침을 질질 흘리며 사람들을 향해 쇄도하려 했다.
“괴물이다!”
“도망쳐!”
순식간에 평화롭던 거리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인파 속에서 장바구니를 든 노인이 발을 헛디뎌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아아악!”
가장 앞장선 마수 한 마리가 침을 튀기며 노인의 목덜미를 향해 도약했다.
그 순간 연희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타앙!
“물러서요!”
연희는 유모차 앞을 가로막아서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눈부신 에메랄드빛 마력이 뿜어져 나와 부채꼴 모양의 방어벽을 형성했다. B급 보조 헌터 연희의 주특기인 ‘생명력의 수호 결계’였다.
쾅!
허공으로 솟구쳤던 마수가 투명한 방어막에 정면으로 부딪혀 튕겨 나갔다.
“할머니! 얼른 일어나세요! 뒤쪽 은행 건물 안으로 뛰세요!”
연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비록 B급 헌터라 해도 그녀는 전방에서 몬스터를 써는 전투 계열이 아니었다. 상처를 치료하고 아군을 지키는 후방 힐러였다. 홀로 쏟아져 나오는 마수 군단을 제압하기에는 화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더구나 등 뒤에는 목숨보다 소중한 무진이가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연희는 떨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방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내가 막아야 해. 협회 기동대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해!’
어머니의 본능이 공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연희가 결사적인 각오로 방어선을 치는 동안 무진의 시야에는 전혀 다른 형태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파바바박!
[아기 헌터의 일기] 채널 창이 그야말로 폭발하듯 붉은 경고를 토해냈다.
[성좌 ‘은하의 제왕’이 아가의 산책을 방해한 하찮은 차원 파편에 격노합니다!]
[성좌 ‘은하의 제왕’: 감히 짐의 조카가 타신 유모차 앞길을 막아서다니! 즉시 우주 함대에 명령해 성간 궤도 섬멸포를 조준하라!]
[성좌 ‘장미의 여왕’이 눈을 까뒤집으며 경악합니다!]
[성좌 ‘장미의 여왕’: 세상에! 저 징그러운 벌레들의 흙탕물이 아가의 노란 털모자에 튀면 어쩌려고 저래?! 당장 영구 동토의 서리를 내려 행성 표면을 꽁꽁 얼려버리겠어!]
[성좌 ‘은하의 제왕’이 ‘성간 궤도포 1문(신화급)’ 지원을 긴급 신청합니다!]
[성좌 ‘장미의 여왕’이 ‘영구 동토의 절대 빙벽(신화급)’ 투하를 긴급 신청합니다!]
‘저 인간들이 진짜 돌았나!’
무진은 솟구치는 뒷목을 잡고 싶었다.
궤도 섬멸포니 영구 동토니 하는 것들이 떨어지면 E급 게이트 하나 잡겠다고 마포구 일대 전체가 지도에서 지워질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하던 학자 성좌의 경고가 번쩍였다.
[성좌 ‘침묵의 학자’: 도심 한복판에서의 궤도포 사격은 직경 10킬로미터의 영구 크레이터를 생성함. 영구 동토 역시 반경 3킬로미터 내 모든 유기체의 급격한 동사를 초래하므로 절대 기각을 권고함.]
무진은 망설이지 않고 짧은 두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신화급 외부 파괴 지원을 전면 거부했습니다.]
[성좌 ‘은하의 제왕’이 분통을 터뜨리며 옥좌를 걷어찹니다.]
[성좌 ‘장미의 여왕’이 손수건을 물어뜯으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파괴 권능을 물리쳤지만 상황은 여전히 긴박했다.
쾅! 콰앙!
차원문에서 기어 나온 다섯 마리의 가시 뿔두더지가 연희의 에메랄드빛 방어벽을 연신 들이받고 있었다.
방어벽 표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쩍쩍 갈라졌다. 연희의 입술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렸다.
“크윽……!”
전투 헌터들의 지원까지는 최소 5분.
그사이 방어벽이 깨지면 연희는 물론이고 유모차 안의 무진까지 순식간에 마수들의 발톱에 찢겨 나갈 터였다.
‘내가 나서는 수밖에 없겠군.’
무진의 눈동자가 깊고 서늘한 심연의 빛을 띠었다.
갓난아기의 몸으로는 성인 헌터처럼 검을 휘두르거나 고위 파괴 마법을 영창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진은 1,000년 동안 온갖 차원의 비밀을 파헤치며 마왕군을 멸했던 최고위 대마법사였다.
무진의 날카로운 감각이 눈앞의 E급 게이트를 나노 단위로 뜯어보았다.
‘지하의 잔류 마나가 불완전하게 뒤엉켜 터져 나온 돌발 게이트다. 껍데기만 요란할 뿐 중심 마력 회로가 아직 안착하지 못했어.’
정상적으로 열린 게이트는 외부 충격으로 쉽게 닫히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열린 저 게이트는 마치 덜 굳은 석고상처럼 구조적으로 극도로 취약했다. 외부에서 무식하게 때려 부술 필요가 없었다.
차원의 고유 주파수를 정확히 짚어낸 뒤 그와 정반대되는 ‘역위상 마력’을 내부 핵에 한 방만 꽂아 넣으면 끝이었다.
스스로의 회로가 꼬인 게이트는 외부 폭발이 아니라 내부 진공 붕괴를 일으키며 얌전하게 자폭하게 된다.
문제는 그 정밀한 파동을 전달할 매개체였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가누기 힘든 아기의 몸으로 지팡이도 없이 어떻게 10미터 밖의 차원 핵을 타격한단 말인가?
답은 이미 무진의 목구멍 안에 있었다.
소리였다.
아기의 맑고 높은 울음소리는 마력을 싣기에 가장 순수하고 왜곡 없는 음파 전달체였다.
무진은 가슴 정중앙에 자리 잡은 작은 마력 핵을 전속력으로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심장 부근에서 푸른 스파크가 튀며 채널의 배경 마력이 미세하게 동조했다.
[스킬: ‘치명적인 옹알이’가 차원 간섭 모드로 세밀하게 조율됩니다.]
[성좌 ‘침묵의 학자’가 아가의 마력 운용을 감지하고 숨을 들이킵니다.]
[‘역위상 음파 공진’이 목구멍으로 집중됩니다.]
무진은 통통한 두 뺨을 한껏 부풀렸다.
동그랗게 모인 작은 입술 사이로 전생의 지혜와 갓난아기의 기도가 하나로 맞물려 들어갔다.
“캬아아악!”
마침내 연희의 수호 결계가 한계에 달해 파열음을 냈다.
가장 거대한 마수 한 마리가 방패 틈을 뚫고 튀어 올라 연희의 어깨를 향해 독기 서린 앞발을 내리찍으려던 그 순간이었다.
“뺘아―――악!”
앙증맞고도 맑은 기합 소리가 사거리의 소음을 일순간에 집어삼켰다.
그것은 인간의 귀에는 그저 귀여운 아기가 내지른 새된 옹알이처럼 들렸다.
하지만 대기 중으로 퍼져나간 파동은 평범한 공기가 아니었다.
무진의 작은 입술에서 쏘아 올려진 반투명한 보랏빛 음파 고리가 보이지 않는 화살처럼 허공을 갈랐다.
스파앙!
보랏빛 음파는 마수들의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쳐 정확하게 붉은 차원문의 정중앙이자 회전하는 마력 핵을 관통했다.
찌이이잉―――!
기괴한 고주파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마치 날카로운 송곳에 찔린 풍선처럼 붉은 차원문이 기괴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크르르……?”
연희를 덮치려던 마수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멈칫했다.
게이트 내부를 순환하던 붉은 마력이 순식간에 푸른색으로 반전되더니 반대 방향으로 거칠게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먹혀들었다!’
무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위상 마력이 게이트의 중심 핵을 뒤틀어 버리자 차원의 문이 스스로를 닫기 위해 거대한 중력 흡입을 일으키고 있었다.
후우우웅!
차원문 중심에서 강력한 진공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도로 위로 뛰쳐나왔던 가시 뿔두더지들이 비명을 지르며 제멋대로 미끄러져 게이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깨갱! 깽!”
발버둥 치며 아스팔트를 긁어대던 마수들이 쓰레받기에 쓸려 들어가는 먼지처럼 차원의 틈새 속으로 몽땅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뾱!
마치 어린아이가 비누거품을 터뜨린 것 같은 허망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차원문이 안쪽으로 오그라들며 완전히 닫혀 버렸다.
파스스스……!
사방을 뒤덮었던 붉은 마기 안개는 거짓말처럼 봄눈 녹듯 흩어져 사라졌다.
찢어졌던 도로 한복판에는 마수도 차원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맑고 투명한 푸른빛을 내뿜는 주먹만 한 최상급 E급 마나스톤 하나만이 댕그랑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 위를 굴렀을 뿐이었다.
정적.
찢어질 듯 울리던 도심의 사이렌 소리만이 텅 빈 사거리 교차로를 메우고 있었다.
“……어?”
연희는 두 팔을 든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방패를 깨고 자신을 덮치려던 괴물도 금방이라도 마포구를 집어삼킬 듯 뿜어져 나오던 붉은 게이트도 온데간데없었다.
“게이트가…… 사라졌어?”
연희의 떨리는 시선이 도로 한복판에서 반짝이는 파란 마나스톤에 닿았다.
주변 건물 기둥 뒤에 숨어 있던 시민들도 하나둘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괴물들이 다 어디 갔어?”
“게이트가 통째로 오그라들더니 사라졌는데?”
“말도 안 돼! 게이트가 자체적으로 마력 불안정을 일으켜서 자폭한 건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사이로 한 청년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쳤다.
“아까 저 유모차 아기가 크게 울어서 다들 멈췄잖아! 안 그랬으면 우리 전부 게이트 열린 도로 위로 그냥 걸어 들어갈 뻔했어!”
“맞아! 저 아기 울음소리가 우리를 살린 거야!”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도담 길드의 유모차로 쏠렸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연희는 다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무진아!”
연희는 바닥에 무릎을 꿇듯 주저앉으며 무진을 품에 와락 끌어안았다.
“무진아! 괜찮아? 어디 안 다쳤어? 흑…… 무진아……!”
연희의 어깨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뜨거운 눈물이 무진의 노란 털모자 위로 뚝뚝 떨어졌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보다 무진이가 다쳤을까 봐 두려웠던 모성애가 울음으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우리 복덩이가 엄마를 지켜줬구나. 우리 무진이가 크게 소리쳐 줘서 엄마도 살고 사람들도 다 살았어.”
연희는 무진의 통통한 볼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무진은 연희의 목덜미를 작은 뺨으로 가만히 문질렀다.
전생의 천 년 동안 그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 순수하고 필사적인 마음으로 감싸 안아 준 적은 없었다. 언제나 세상을 구해야 하는 고독한 절대자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품 안에서는 그저 지켜주고 싶은 다정한 엄마의 아이일 뿐이었다.
“아부…… 뺘아.”
무진은 얌전히 연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작은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무진의 눈앞에 시스템 창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성좌 ‘은하의 제왕’이 전율하며 옥좌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성좌 ‘은하의 제왕’: 보았는가……! 단 한 번의 영민한 일갈로 차원의 맥을 끊어 자폭시키다니! 저 지혜와 침착함이야말로 진정한 패자의 풍모로다!]
[성좌 ‘장미의 여왕’이 대성통곡하며 꽃잎을 흩뿌립니다!]
[성좌 ‘장미의 여왕’: 으앙! 우리 아가가 입술을 뺘악 모을 때 내 심장이 먼저 자폭했어! ㅠㅠ 저 완벽한 옆태! 저 거룩한 옹알이!]
[성좌 ‘장미의 여왕’이 ‘아가의 평화로운 첫 외출 성공 축하금’ 100,000 맘마 코인을 후원합니다!]
[성좌 ‘침묵의 학자’: 파괴 대신 차원 공명 상쇄를 택한 고도의 마력 기동…… 경이롭다는 말 외엔 형용할 길이 없군.]
[우주 전역의 채널 네트워크에 ‘지구 변방의 기적적인 아기’에 관한 입소문이 퍼져나갑니다!]
[실시간 채널 접속자 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채널 창의 숫자가 맹렬한 기세로 치솟고 있었다.
온 우주의 거대한 시선들이 이 작은 서울의 한복판에서 노란 곰돌이 모자를 쓴 아기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멀리서 뒤늦게 사이렌을 울리며 협회 기동대의 방호 차량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연희는 눈물을 훔치며 도로 위에 떨어진 마나스톤을 조심스레 주워 가방에 넣었다. 돌발 게이트를 최초로 막아낸 헌터에게 주어지는 정당한 전리품이었다.
“무진아! 이제 집에 가자. 얼른 가서 따뜻한 맘마 먹고 코 자자.”
연희는 무진의 곰돌이 모자를 다시 한번 예쁘게 매만져 주고 유모차 손잡이를 잡았다.
가을바람이 상쾌하게 뺨을 스쳤다.
무진은 푹신한 유모차 등받이에 머리를 파묻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도심의 평화는 지켜졌고 가족은 무사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분유를 배불리 마시고 늘어지게 낮잠을 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