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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 살수의 귀농 일기3화

천하제일 살수의 귀농 일기

천하제일 살수의 귀농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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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약초꾼의 손

도겸은 계단밭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여인을 바라봤다.

여인은 짚신 끝으로 돌을 밀어내며 천천히 올라왔다. 등에 멘 약초 망태기는 비어 있지 않았다. 마른 잎과 뿌리가 삐죽 나와 있었고 허리에는 작은 삽이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첫 번째 단에 올라서자 걸음을 멈췄다. 시선이 밭 전체를 훑은 뒤 도겸의 손과 세 번째 단의 돌둑으로 향했다.

“여기가 진도겸 씨 밭인가요?”

“그렇소.”

“아래 마을에서는 떠돌이 농부가 올라왔다고만 하던데요.”

“떠돌다 보니 밭이 필요해졌소.”

여인은 대답 대신 밭둑을 바라봤다. 시선이 고랑을 따라가다 멈췄다.

“돌을 쌓은 방향이 이상하네요.”

“물이 내려오는 쪽을 늦추려고 쌓았소.”

“비가 오면 저 둑부터 무너져요.”

도겸은 손에 들고 있던 손도끼를 내려놓았다. 여인은 겁을 주려는 얼굴이 아니었다. 틀린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아직 비가 오지 않았소.”

“비가 온 다음에 고치면 밭이랑 흙이 같이 떠내려가죠.”

그녀는 울타리 밖에 선 채 세 번째 단을 올려다봤다.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밭에 놓인 것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있었다.

“서연화예요. 마을에서 약초를 캐고 밭을 봅니다.”

“약초꾼이오?”

“보면 모르겠어요?”

연화는 등에 멘 망태기를 손으로 두드렸다. 안에서 마른 뿌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 밭은 오래 비어 있었어요. 서쪽 물이 밭을 망쳐서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고요.”

도겸의 시선이 서쪽 비탈로 향했다. 검은 물자국은 해가 지자 더 진하게 보였다.

“그 물이 나쁜 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소?”

“냄새를 맡으면 알 수 있어요. 약초를 죽이는 물과 사람 배를 아프게 하는 물은 조금 다르거든요.”

연화가 도겸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런데 당신은 왜 거기에 밭을 샀죠?”

“싸게 나왔소.”

“싸다는 이유로 폐광 옆 밭을 사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돌을 치우면 쓸 만해질 것 같았소.”

“돌만 치우면 되는 밭이 아니에요.”

연화가 한 발 가까이 다가왔다. 도겸은 자연스럽게 몸의 중심을 낮췄다. 그 움직임을 연화가 놓치지 않았다.

“손을 좀 봐도 될까요?”

“내 손을?”

“아니요. 약초를요.”

연화의 손가락이 세 번째 단의 작은 돌둑을 가리켰다.


도겸은 먼저 울타리의 느슨한 말뚝을 뽑았다. 연화는 그가 만든 길을 따라 세 번째 단까지 올라왔다. 발을 디디는 곳마다 흙이 밀렸지만 작은 돌을 골라 밟으며 움직였다.

푸른빛이 감도는 약초는 새로 만든 돌둑 안쪽에 누워 있었다. 잎은 아까보다 고개를 들었지만 끝이 여전히 말려 있었다.

연화는 무릎을 굽혀 잎의 그늘을 확인했다. 손가락으로 흙 표면을 가볍게 눌러 보더니 도겸을 올려다봤다.

“너무 얕아요.”

“뿌리가 숨을 쉬어야 하오.”

“숨 쉬는 것과 흔들리는 건 달라요.”

그녀는 삽 끝으로 약초 옆 흙을 조금 걷어냈다. 가느다란 뿌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뿌리는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바위 밑에서 캐 왔죠?”

“그렇소.”

“그럼 더 깊은 습기를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지금처럼 양지에 눕히면 낮에는 마르고 밤에는 차가워져요.”

도겸은 약초를 내려다봤다. 물이 고이지 않도록 얕은 자리를 골랐지만 연화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이 뿌리는 바위 밑에서 오래 살아남았다. 햇빛보다 일정한 습기에 익숙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오?”

연화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먼저 들어 올려야 해요. 뿌리를 끊으면 안 되고요.”

도겸이 손을 뻗자 연화가 그의 손목을 막았다.

“그렇게 잡으면 잔뿌리가 눌려요.”

“그럼 어디를 잡소?”

“흙째로요. 손가락을 여기 넣고 바깥부터 넓혀야 해요.”

연화가 직접 손가락으로 흙을 가리켰다. 손톱 아래에는 검은 흙이 박혀 있었다. 약초를 캐는 사람의 손이었다. 굳은살은 거칠었지만 움직임은 섬세했다.

도겸은 그녀가 가리킨 곳에 손가락을 넣었다. 흙알이 뭉친 정도를 느끼며 바깥쪽부터 천천히 풀었다. 무흔수로 사람의 혈을 누를 때보다 힘을 더 아껴야 했다. 약한 힘에도 잔뿌리가 끊어질 수 있었다.

“손에 힘을 많이 주네요.”

“이 정도면 약한 편이오.”

“사람을 잡던 손처럼 말하네요.”

도겸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농부 손치고는 굳은살이 이상하다는 뜻이오?”

“농부 손치고는 흙을 고르는 순서가 이상하다는 뜻이에요.”

연화는 뿌리 주변의 흙을 한 줌 집어 손바닥에서 굴렸다.

“보통은 좋은 흙을 먼저 찾죠. 당신은 물 빠지는 길부터 보고 돌을 옮겼어요. 약초가 아니라 밭 전체를 살리려는 사람처럼 굴고요.”

“그게 잘못됐소?”

“잘못은 아니에요. 낯선 거죠.”

둘은 말없이 약초를 들어 올렸다. 도겸이 넓게 받치고 연화가 뿌리 끝을 감쌌다. 연화는 그가 잔뿌리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것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쪽으로 옮겨요.”

연화가 돌둑 뒤쪽의 그늘진 자리를 가리켰다.

도겸은 그곳의 흙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표면은 말랐지만 한 치 아래에는 습기가 있었다.

“물이 너무 오래 머무를 수 있소.”

“그래서 옆으로 빠지는 홈을 낼 거예요.”

“뿌리가 잠길 텐데.”

“당신이 홈을 좁게 내면 되죠.”

도겸은 연화를 바라봤다. 그녀는 이미 작은 삽을 들고 있었다.

“내 밭에서 일하겠다는 뜻이오?”

“죽어 가는 약초를 보고 그냥 가면 약초꾼이 아니죠. 이 물길은 아래 마을 밭에도 닿아요.”

연화는 삽으로 흙을 걷어냈다. 도겸도 말없이 손을 보탰다.


해가 봉우리 뒤로 내려갈 때까지 두 사람은 흙을 옮겼다.

도겸은 삽으로 큰 덩이를 걷어내고 연화는 손으로 잔돌을 골랐다. 연화가 흙을 너무 곱게 만들려 하면 도겸이 물길을 막는다고 말했고 도겸이 돌을 지나치게 촘촘히 쌓으면 연화가 뿌리가 숨을 못 쉰다고 타박했다.

말다툼처럼 들렸지만 손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약초를 새 자리에 눕힌 뒤 연화는 주변 흙을 세 번에 나누어 덮었다. 마지막에는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만 눌렀다.

“이렇게 해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아요.”

“아까는 얕다고 하지 않았소?”

“깊게 묻으라는 말이 아니라 단단하게 세우라는 말이었어요.”

도겸은 약초 끝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봤다. 잎의 말린 끝이 조금 펴져 있었다.

그때 연화가 흙 위의 검은 얼룩을 발견했다.

“이건 만지지 마세요.”

그녀는 손가락을 멈춘 채 서쪽 비탈을 가리켰다. 약초를 심은 자리에서 아주 가느다란 검은 선이 아래로 이어지고 있었다.

“서쪽 물이 여기까지 내려왔소.”

“비가 온 것도 아닌데요?”

“바위틈에서 새는 물이 있소.”

“그럼 확인해야 해요.”

“날이 어두워지고 있소.”

“어두워지면 물이 흐르는 방향이 더 잘 보여요.”

연화는 망태기를 초가 벽에 세워 두었다. 도겸은 길을 막듯 앞에 섰다.

“서쪽은 위험하오.”

“그래서 혼자 가면 안 돼요.”

“나는 혼자서도—”

“이 산길을 모르는 사람은 발밑부터 보세요.”

연화는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당신이 물 냄새를 잘 맡는 건 알아요. 하지만 돌이 어느 쪽으로 무너지는지는 내가 더 잘 압니다.”

도겸은 그녀를 살폈다. 연화는 겁이 없어서 앞장서는 얼굴이 아니었다. 여러 번 무너지는 비탈을 보았기에 위험을 숫자처럼 세고 있었다.

“앞장서시오.”

그가 물러서자 연화가 잠깐 눈을 크게 떴다.

“말은 잘 듣네요.”

“밭에 필요한 말이면 듣소.”

“그럼 덜 수상하겠네요.”

연화는 먼저 비탈을 내려갔다.


서쪽 돌틈은 밭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는데도 바위 그늘은 밤처럼 어두웠다.

연화는 마른 풀을 걷어내고 낮은 바위에 손을 댔다. 손바닥이 젖자 냄새를 맡았다. 표정이 굳었다.

“쇠 냄새가 강하네요.”

“광물 때문일 수 있소.”

“그럴 수도 있죠.”

연화는 망태기에서 흰 천 조각을 꺼내 물에 적셨다. 천은 금세 옅은 회색으로 변했다.

“이 물은 밭에 보내면 안 돼요.”

“약초가 죽겠소?”

“약초만 죽는 게 아니에요. 흙이 오래 아플 수 있어요.”

도겸은 돌틈 위쪽을 바라봤다. 물은 폐광 입구 방향에서 흘러나와 바위 밑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흐름은 약했지만 일정했다.

“자연스럽게 난 물길이 아니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돌이 젖은 자리가 끊겨 있소. 위쪽에서 한 번 모였다가 흘렀소.”

연화는 도겸이 가리킨 곳을 살폈다. 바위 표면에는 얇은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그 아래 마른 흙에는 바퀴가 지나간 것 같은 두 줄이 남아 있었다.

연화의 손이 망태기 끈을 움켜쥐었다.

“이 길로 수레가 다닌 적이 있어요.”

“언제부터요?”

“정확히는 몰라요. 하지만 폐광이 닫힌 뒤에는 아무도 광석을 나르지 않았어요.”

도겸은 바퀴 자국 옆의 검은 가루를 손도끼 끝으로 건드렸다. 가루는 흙과 달리 물을 머금지 않고 뭉쳤다.

연화가 그의 손을 막았다.

“맨손으로 만지지 마세요.”

“독을 의심하오?”

“독인지 아닌지는 몰라요. 모르는 건 입에 넣지 않는 게 약초꾼의 규칙이에요.”

“좋은 규칙이군.”

도겸은 손도끼를 마른 풀에 문지르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꽂아 두었다. 주변의 돌 위치를 눈에 담았다.

연화는 그 모습을 유심히 봤다.

“당신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할 줄 아네요.”

“모르는 척하는 것보다 낫소.”

“그 말은 맞는데 손은 전혀 농부 같지 않아요.”

도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폐광 쪽에서 내려왔다. 쇠 냄새 속에 희미한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탈 위 마른 가지 하나가 바람과 반대쪽으로 흔들렸다.

연화도 그 움직임을 보았는지 숨을 죽였다.

잠깐의 정적 뒤에 돌 하나가 굴러 내려왔다.

도겸의 손이 허리로 향했다가 멈췄다. 칼은 없었다. 그는 대신 발끝으로 앞의 납작한 돌을 밀어 물길 앞에 세웠다.

“지금 뭘 하는 거예요?”

“오늘 밤 밭으로 물이 가지 않게 막는 거요.”

“완전히 막으면 동쪽 물도 못 받아요.”

“서쪽 물만 돌리는 거요.”

도겸은 두 개의 돌 사이에 마른 흙을 채웠다. 연화가 주변의 모래를 걷어내고 작은 자갈을 건넸다. 두 사람은 말없이 임시 둑을 만들었다.


밭으로 돌아왔을 때 하늘에는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연화는 새로 심은 약초 앞에 다시 앉았다. 잎은 축 처져 있었지만 아까처럼 말려 들지는 않았다.

“내일 아침에 동쪽 물길을 확인해요.”

“혼자 하겠소.”

“그럼 약초를 또 죽이겠죠.”

“죽이지 않았소.”

“아직 안 죽은 거예요.”

도겸은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살아 있는 것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달랐다.

“내일 오겠다는 뜻이오?”

“물길을 보러요. 밭을 같이 일구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알겠소.”

연화는 몇 걸음 내려가다 돌아섰다.

“흙을 고를 때 손가락을 너무 세우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뿌리 옆에 빈틈이 생겨요.”

“기억해 두겠소.”

“그리고 서쪽 비탈에는 혼자 가지 말고요.”

“그건 약초꾼의 규칙이오?”

“청운촌 사람의 규칙이에요.”

연화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산길을 내려갔다. 짚신 소리가 끊긴 뒤에도 도겸은 한동안 어둠을 바라봤다.

그는 세 번째 단으로 올라가 약초 주변의 흙을 확인했다. 연화가 덮은 흙은 자신이 만든 것보다 거칠었다. 대신 뿌리 끝까지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도겸은 약초 옆에 손가락 한 마디 깊이의 홈을 냈다. 물이 고이면 빠져나갈 길이었다.

초가 뒤편으로 돌아가 낮에 숨겨 둔 흑철 조각을 꺼냈다. 조각의 끝에 붙은 검은 가루가 서쪽 돌틈의 것과 같은 빛을 냈다.

수레는 광석을 실어 나른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폐광의 물과 같은 가루를 밭 가까이까지 옮겨 놓고 있었다.

도겸은 흑철을 다시 천에 싸서 마루 밑에 넣었다. 이번에는 매듭을 두 번 묶었다.

“내일은 물길부터 보겠군.”

새벽이 오기 전까지 밭은 조용해야 했다. 그러나 울타리의 억새 매듭이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아주 조금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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