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무덤 대장간의 마지막 불꽃

1화: 검 속에서 깨어난 별
갱도에서 종이 세 번 울렸다.
첫 번째 종은 교대 신호였다. 두 번째는 수레가 궤도를 벗어났다는 뜻이었다. 세 번째는 누구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붕괴 경보였다.
라온은 망치질을 멈췄다. 대장간의 벽에 걸린 먼지들이 가늘게 흔들렸다. 쇠를 달구는 화덕의 불꽃이 한쪽으로 눕더니, 마치 숨을 참듯 푸르게 변했다.
“하겐 아저씨.”
“들었어.”
스승은 집게를 내려놓고 문으로 향했다. 오른손 검지가 굽어 있어도 걸음은 빨랐다. 그는 경보 종을 확인하러 온 마을 사람 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세 번째 종 뒤에 필요한 말은 하나뿐이었다.
“누가 안에 남았지?”
“막내 조 둘이요. 서쪽 갱도에서 운반 수레를 찾는다고.”
라온은 앞치마 끈을 풀었다. 하겐이 팔을 붙잡았다.
“네가 들어갈 곳이 아니야.”
“제가 갱도 구조를 제일 잘 알아요.”
“그리고 네가 제일 먼저 숨이 차는 것도 알아.”
“그럼 더 빨리 움직이죠.”
하겐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말리는 대신 작업대 밑에서 짧은 로프와 광부용 방진천을 꺼냈다. 라온이 그걸 받자 스승은 자기 망치도 허리에 찼다.
폐광은 오래전부터 별무덤의 바깥 통로와 이어져 있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 아래에 별이 묻혀 있다고만 했다. 채굴 허가가 끊긴 뒤에도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붕괴 구간을 막아 두었지만, 별철을 몰래 찾는 이들은 틈을 계속 넓혔다.
오늘 수레가 떨어진 곳도 폐쇄 구역 가까이였다.
갱도 입구에 도착하자 먼지가 뺨을 때렸다. 바닥의 레일은 비스듬히 꺾였고, 등불 하나가 돌 틈에서 겨우 타고 있었다. 하겐은 벽에 손바닥을 대고 진동을 살폈다.
“천장에 금이 셋. 동쪽으로 갈수록 더 커져. 서쪽 벽을 따라가.”
라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서로 로프를 묶고 안으로 들어갔다. 젖은 돌 냄새와 화약 냄새가 섞여 있었다. 한 모퉁이를 돌자 수레가 뒤집혀 길을 막고 있었다. 그 너머에서 누군가 기침했다.
“여기요!”
어린 광부의 목소리였다. 라온은 엎드려 수레 아래로 기어갔다. 나무 바퀴가 바위에 끼어 있었고, 한 소년의 발목이 짐받이 밑에 눌려 있었다. 다른 아이는 가까운 벽에 등을 붙인 채 떨고 있었다.
“다친 데 보여 줘.”
“발이… 움직이지 않아요.”
“괜찮아. 먼저 숨을 천천히 쉬자. 이름이 뭐야?”
“도엘.”
“좋아, 도엘. 내가 수레를 들어 올릴 동안 네 친구가 로프를 당길 거야. 소리 들리면 발을 빼.”
라온은 수레의 받침대를 찾았지만 균열 난 나무가 버틸 것 같지 않았다. 하겐이 뒤에서 몸을 낮췄다.
“그대로 들면 더 무너져. 왼쪽 바퀴를 빼.”
바닥 아래에서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천장 조각이 떨어져 두 사람 사이에 박혔다. 하겐이 라온을 밀어냈다. 소년이 숨을 삼켰다.
“스승님!”
“괜찮다. 수레부터.”
라온은 손전등으로 바퀴축을 비췄다. 끼인 돌을 빼려면 쐐기가 필요했다. 그는 허리의 망치를 꺼냈으나 손잡이가 너무 길어 좁은 틈에 들어가지 않았다. 옆에 굴러온 철편은 손바닥만 했고, 한쪽 끝이 날카로웠다. 그는 철편을 축과 바위 사이에 밀어 넣었다. 몇 번을 쳐도 꿈쩍하지 않았다.
“더 세게!” 하겐이 외쳤다.
“세게 치면 축이 부러져요.”
“그럼 생각해. 망치만 휘두르지 말고.”
라온은 숨을 고르고 철편의 방향을 바꿨다. 바퀴의 무게가 축을 누르는 쪽이 아니라 바위 틈을 벌리는 쪽으로 힘이 흐르도록 각도를 잡았다. 한 번, 두 번. 금속이 돌을 긁는 소리가 났다. 세 번째 망치질에 돌쐐기가 밀려 나왔다.
수레가 몇 치 들렸다. 도엘이 다리를 빼내며 비명을 질렀다. 다른 아이가 로프를 당겼다. 그 순간, 수레 아래에 숨겨져 있던 검 한 자루가 굴러 나와 라온의 팔에 부딪혔다.
칼날은 손잡이에서 한 뼘쯤 잘려 있었다. 표면은 검은 돌처럼 무광이었는데, 갈라진 단면 안쪽에서 작은 불빛이 맥박쳤다.
“만지지 마!” 하겐이 소리쳤다.
늦었다. 라온의 손바닥이 검의 손잡이를 감쌌다.
갱도의 소리가 끊겼다.
그의 눈앞에 낯선 작업장이 펼쳐졌다. 지금의 대장간보다 훨씬 큰 곳이었다. 천장에는 별자리처럼 박힌 쇠못이 빛났고, 긴 수염의 대장장이가 붉은 불 앞에서 검을 두드리고 있었다. 대장장이는 망치를 내려놓고 옆에 선 소녀에게 말했다.
“이 검은 별을 죽이려고 만드는 게 아니다. 길을 찾을 때까지 지키는 거야.”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왼손에는 라온이 어릴 적 보았던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불꽃이 갑자기 검게 변했고, 작업장의 바닥이 갈라졌다. 소녀가 칼날을 감싸 안으며 외쳤다.
“문을 닫아요! 안쪽에서 누가 부르고 있어요!”
기억이 산산이 부서졌다.
라온은 갱도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하겐은 그를 일으키며 검을 천으로 감쌌다.
“방금 뭘 봤어?”
“대장간이요. 그리고… 문을 닫으라는 여자.”
하겐의 얼굴에서 혈색이 사라졌다. 그는 소년 둘을 먼저 입구 쪽으로 보냈다. 터널 저편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광산의 여름 공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람이었다. 등불이 하나씩 꺼지고 바닥을 따라 얇은 서리가 번졌다.
“스승님, 여기 얼음이—”
“말하지 마. 뛰어.”
천장에서 돌이 우수수 떨어졌다. 라온은 검을 놓지 않은 손을 앞치마로 감쌌다. 손끝이 저려 왔다. 하지만 검 안쪽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서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선명해졌다.
입구까지 열 걸음. 다섯 걸음. 갱도가 크게 흔들렸다. 하겐이 뒤처진 아이를 안아 들고, 라온은 무너져 내리는 나무 기둥을 어깨로 받쳤다. 버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
검의 표면에 낯선 글자가 떠올랐다. 뜻은 읽을 수 없었지만, 마지막 한 획이 불씨각과 닮아 있었다. 라온은 대장간에서 매일 보던 문양을 기억해 칼자루를 돌렸다.
검 안의 빛이 한 번 크게 뛰었다.
차가운 바람이 멎었다. 천장의 돌들이 더 떨어지지 않고 틈에 걸린 채 멈췄다. 그 짧은 틈을 이용해 일행은 입구를 빠져나왔다. 밖에 나오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도엘은 울면서 형을 끌어안았다.
라온은 입구에 주저앉은 채 감각을 확인했다. 왼손 손가락은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손등을 문지르자 바늘에 찔린 듯한 통증만 돌아왔다. 하겐이 물통을 내밀었지만 그는 받지 못했다. 몸이 떨리는 건 추위 때문인지, 방금 본 장면 때문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스승님, 검이 멈췄어요. 서리가 더는 안 나와요.”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멈춰 있는 거다.”
하겐은 검을 천으로 싸서 광산 바닥에 놓았다. 보통은 이런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 대장간의 철집게로 옮겼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검을 내려놓자마자 주변 돌에 귀를 댔다. 기다리는 사람처럼 잠깐 눈을 감았다.
“무슨 소리가 들려요?”
“아무것도.”
“거짓말이네요.”
“거짓말은 나중에 따져. 지금은 네 손부터 살펴야 한다.”
하겐은 라온의 손바닥에 약초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라온은 붕대 틈으로 검을 보았다. 칼날에 생긴 금은 아까보다 길어져 있었지만 그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빛은 여전히 일정하게 깜박였다. 살아 있는 불씨처럼 보였다. 한 번 밝아질 때마다 손끝에 남은 차가움이 아주 조금씩 풀렸다.
도엘의 발목은 심하게 부어 있었다. 형은 동생을 업고 가겠다고 나섰지만, 하겐은 다친 발로 무리하면 뼈가 어긋난다고 꾸짖었다. 대신 라온이 운반용 널빤지를 찾으러 갱도 입구 안으로 몇 걸음 되돌아갔다. 하겐은 그를 보내며 로프를 잡고 놓지 않았다.
“네가 들은 말, 전부 기억하느냐?”
“검은 별을 죽이려고 만든 게 아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문을 닫으라고.”
“그 여자 얼굴은?”
“잘 모르겠어요. 왼손에 흉터가 있었어요.”
하겐은 붕대를 한 라온의 왼손을 흘끗 보았다. 오래된 흉터 하나 없는 손이었다. 그의 얼굴에 스친 표정은 안도처럼 보였지만, 곧 걱정으로 바뀌었다.
“기억은 네가 보고 싶은 장면만 보여 주지 않는다. 그 사람이 숨긴 것도, 네가 오해한 것도 함께 섞여 있어. 그걸 사실이라고 떠벌리면 누군가 다친다.”
“그럼 아무도 믿지 말라는 거예요?”
“믿기 전에 확인하라는 뜻이다. 그것도 네 손으로.”
말이 끝나자 폐광 안쪽에서 낮고 긴 마찰음이 울렸다. 마치 거대한 문짝이 돌바닥을 긁으며 움직이는 소리였다. 서리는 더 번지지 않았지만, 입구에 쌓인 가루가 안쪽으로 끌려갔다. 검은 천 아래의 빛도 그쪽을 향해 기울었다.
하겐은 아이들을 뒤로 물리고 로프를 짧게 잡아당겼다.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눈이 다시 흔들렸다.
“입구를 막아. 돌을 쌓고 틈은 진흙으로 메운다. 오늘 본 것은 마을 밖에 말하지 마.”
“감찰관이 오면요?”
“그 사람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다.”
라온이 다시 물으려는 순간, 산길 저편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하겐은 검을 집어 들었다. 그제야 라온은 스승의 손도 떨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겐은 천으로 감싼 검을 보다가 라온을 바라봤다.
“그 기억, 네가 본 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라.”
“스승님은 저 여자를 아세요?”
대답 대신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산길을 따라 은색 흉갑을 입은 기병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맨 앞의 여자가 말에서 내려 폐광 입구와 사람들의 손을 차례로 살폈다.
그녀의 시선이 라온의 피 묻은 손에서 멈췄다.
“왕실 별철 감찰관 세린 아르덴이다. 그 검을 넘겨라.”
라온은 천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검 속의 빛이 손바닥 아래에서 다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