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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14화

대마법사의 교양 수업에 낙제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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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첫 주의 낙제선

붉은 만년필 끝이 보고서 마지막 줄에서 멎었다.

‘촉매가 낡았으므로 폭발은 불가피했다.’

엘리안은 종이를 뒤집었다. 앞면에는 마법학부 3학년 차석이라는 직함과 셀커크 가문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실패한 순간 손가락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한 줄도 없었다.

“탈락.”

시엘이 브라이언의 이름에 선을 그었다.

“성적 증명서가 일곱 장입니다. 이의를 제기할 텐데요.”

“그 서류에서 왜 갈비뼈가 아픈지는 찾을 수 있나?”

시엘은 답하지 않고 다음 보고서를 펼쳤다. 브라이언이 복도에서 제 옆구리를 누르던 장면이 떠올랐다.

연구실 문밖에선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접수가 끝난 뒤에도 지원자들은 게시판 앞에서 밤을 새웠다. 빈자리 여덟 개에 들어온 종이는 삼백 장을 넘었다.

다음 보고서에는 동료가 손을 놓쳐 자신의 진형이 무너졌다고 쓰여 있었다. 엘리안이 원인을 가리던 손가락을 떼자 작은 글씨가 보였다. ‘그가 미끄러지기 전 내 쪽 손잡이가 먼저 뜨거워졌다.’

“여기까지 봤다면 뭘 했어야 하지?”

“진형을 멈추고 손잡이를 확인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래에는 동료 탓만 있군.”

종이가 탈락 더미로 넘어갔다.

시엘이 얇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델린 하르벤. 2학년 전공생이었다.

‘동급생의 불꽃이 약해 보여 내 몫까지 출력을 올렸다. 상대의 손이 떨리는 것을 봤으나 내 진형의 밝기에 가려졌다고 적었다. 실제로는 봤고 무시했다. 폭발 직전 내 오른손 검지가 굳었다.’

엘리안이 마지막 문장에 동그라미를 쳤다.

“자기가 본 것을 지우지 않았군.”

“가문 이름을 가려도 남길 보고서입니다.”

다른 한 장은 손때로 얼룩져 있었다. 토마스 린은 불씨를 세 번 꺼뜨린 학생이었다. 첫 번째에는 손목이 떨렸고 두 번째에는 그 떨림을 막으려고 팔꿈치를 고정했다. 세 번째에는 아예 숨을 멈췄다고 썼다.

“실패를 세 번이나 적었습니다.”

“세 번 다른 것을 보았으니까.”

엘리안은 토마스의 종이를 아델린의 것 위에 놓았다. 다른 여섯 장에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손과 호흡이 있었다. 위로 올린 더미 여덟 장. 아래에 남은 종이는 수백 장이었다.

시엘이 선발 기준을 다시 읽고 여덟 장의 이름을 명부에 옮겼다. 루카스가 가져온 수강 인장을 찍자 빈칸 여덟 개가 모두 닫혔다.

“서른 명. 더는 받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엘리안은 떨어진 보고서도 묶어 보관하라고 했다. 틀린 답을 고친 흔적까지 지우는 강사는 아니었다.


게시판 앞에 붙은 여덟 이름을 보고 작은 소란이 일었다.

“브라이언 선배 이름이 없어?”

“토마스 린이 누구야? 불씨 하나 못 지키는 학생이라며.”

토마스는 뒤로 물러나려다 멈췄다. 자기 이름 아래 찍힌 수강 인장을 손끝으로 짚었다. 아델린도 자신의 이름을 확인했지만 웃지 못했다. 종이에 적은 ‘봤고 무시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날 이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일이었다.

교양 101 강의실에 들어서자 앞줄에서 레온이 자리마다 작은 측정석을 놓고 있었다. 학생 재현 시험의 기록판에서 보았던 얼굴이었다. 아델린은 그가 든 돌을 살폈다. 평민 학생이 전공 실습 기구를 준비하는 모습이 여전히 낯설었다.

“그건 제가 놓겠습니다.”

레온이 말했다.

“내 자리인데.”

“흔들리면 기준값이 바뀝니다. 책상이 수평인지부터 봐야 해서요.”

레온은 책상 다리 아래에 접힌 종이를 끼우고 측정석을 올렸다. 옆자리의 헤이든이 손바닥으로 책상 모서리를 눌러 확인했다.

“이 녀석은 돌보다 책상을 더 의심한다니까.”

“지난번엔 제가 기울어진 책상에서 세 번 재서 값이 전부 달랐거든요.”

레온은 웃지도 않고 종이를 한 겹 더 접었다. 아델린은 그가 이름난 시험을 통과한 비결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종이 울릴 때 시엘이 문 앞에 섰다. 명부에는 정확히 서른 개의 서명칸이 있었다. 복도에 남은 지원자 하나가 문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참관만이라도 안 됩니까? 실습은 안 하겠습니다.”

“관람석은 없습니다.”

엘리안이 교탁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내가 손을 볼 수 없는 학생에게 마법을 쓰게 할 생각도 없고.”

“저는 뒤에서 보기만 하겠습니다.”

“그러면 잘못된 흐름도 결과만 보고 배우겠지. 문을 닫아라.”

문이 닫혔다. 시엘은 서른 명의 이름을 불렀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학생이 손을 들어 얼굴을 보였고 시엘은 명부의 자리 번호와 대조했다. 강의실 뒤편에서 누군가 자신의 친구에게 자리를 맡아 주겠다고 속삭이다 입을 다물었다.

칠판에 네 줄이 적혔다.

출석. 과제. 관찰. 안전 지시.

“첫 주부터 하나라도 고의로 어기면 F다.”

새 학생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전공 수업에서도 첫날 낙제까지 말하는 교수는 드물었다.

“출석했는데 실습 결과가 나쁘면요?”

토마스가 손을 들었다.

“실패를 기록하면 평가한다. 성공했다고 꾸미면 낙제다.”

엘리안은 선발 보고서 묶음을 두드렸다.

“여기 들어온 이유가 그 차이를 적었기 때문이다.”

시엘은 기록지 상단의 빈 칸을 가리켰다. 측정값을 고칠 때에는 원래 값을 남기고 수정 시각을 적게 되어 있었다. 제출함에 들어간 뒤 말을 바꾸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첫 실습은 불꽃을 키우는 일이 아니었다. 측정석에 손목을 대고 마력이 돌아오는 위치를 표시하는 일이었다. 불씨는 손톱만큼도 키우지 말라는 지시가 붙었다.

아델린은 제 손에서 나온 희미한 빛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토마스의 측정석에는 두 번이나 끊긴 선이 찍혔다. 그는 매번 선이 끊긴 곳에 번호를 매겼다. 레온의 것은 낮고 고르게 이어졌다.

아델린의 첫 선은 끝에서 붉게 솟았다.

“정상 범위. 역류 없음.”

기록지에 그렇게 적자 펜촉이 종이를 긁었다. 오른쪽 손목에서 짧은 통증이 올라왔다. 측정석의 끝에도 붉은 점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정도 흔들림은 누구에게나 있었다. 불씨조차 못 지키는 토마스 옆에서 자신의 수치를 문제 삼고 싶지 않았다. 보고서에는 분명 검지가 굳었다고 적었지만 교실에서 그 고백을 다시 읽히고 싶지도 않았다.

“붉은 점은 무엇입니까?”

엘리안의 목소리가 책상 위로 떨어졌다.

“기구의 잡음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재면 되겠지.”

아델린은 손목을 대었다. 같은 위치에 같은 점이 찍혔다. 그녀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선을 곧게 누르려 했다. 측정석 가장자리에 가는 금이 번졌다.

“손을 떼.”

엘리안의 짧은 지시에 아델린이 손을 뗐다. 금은 더 번지지 않았다. 엘리안은 측정석을 치우고 금이 간 부분을 시엘에게 보여 주었다.

“흐름이 돌아오는데 누르면 그 힘이 갈 곳은 여기뿐이다. 내 손이 닿기 전에 네가 먼저 멈췄어야 했다.”

아델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뒤편의 학생들도 금을 보았다.

“제가 압력을 너무 세게 준 듯합니다.”

“그 가능성은 기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역류가 없다고 썼군.”

엘리안의 손가락이 첫 줄을 가리켰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시엘은 제출함 앞에 서서 빈 점수표를 펼쳤다. 아델린은 붉은 펜을 쥔 그 손을 바라보았다.

토마스가 자기 종이를 밀어 보여 주었다. 끊긴 선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저는 또 실패했어요. 그래도 지우지 말라셨습니다.”

아델린은 자기가 쓴 ‘역류 없음’을 내려다보았다. 금이 간 돌보다 그 네 글자가 더 눈에 거슬렸다.

“제가 고치겠습니다.”

“무엇을?”

“기록을요. 두 번 모두 오른쪽 손목에서 역류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제가 손가락으로 눌렀습니다.”

“원인은?”

“아직 모릅니다. 압력이 원인인지 결과인지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말하고 나니 창피했다. 그러나 엘리안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엘이 수정 시각을 적도록 작은 칸을 가리켰다. 아델린은 원래 문장에 한 줄만 긋고 바로 아래에 실제로 본 것을 썼다. 제출함 뚜껑은 아직 열려 있었다.

레온이 옆자리에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도 처음엔 손목을 누르면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더 세게 되돌아왔어요.”

“당신도요?”

“오랫동안요. 셋째 숨이 끝날 때 힘을 빼 보세요. 값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는 겁니다.”

아델린은 손가락을 폈다. 새 측정석에 손목을 대고 셋째 숨 끝에 힘을 늦췄다. 붉은 점이 작아졌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건 아직 남았는데요.”

“그러니 다음 시간까지 봐야 한다.”

엘리안은 기록지 오른쪽 위에 작은 표시를 남겼다.

“관찰 과제 감점. 안전 지시를 듣고 멈췄으며 제출 전 네 손으로 고쳤다. 오늘 낙제는 아니다.”

아델린은 가슴에 걸렸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엘리안은 그녀만 바라보지 않았다. 교실의 측정석을 차례로 살폈다.

“결과가 아름다워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와 같아야 한다.”


수업이 끝난 뒤 시엘은 서른 장의 기록지를 명부와 맞췄다. 출석 서른 명. 측정 기록 서른 장. 재측정 신청 다섯 명. 토마스는 세 번째 실패 아래에 ‘숨을 멈춘 것은 내 선택’이라고 덧썼다.

아델린도 나가다가 돌아왔다. 자기 기록지 뒷면에 ‘오른손 검지 경직’을 추가했다.

“왜 남겨 두는 거죠?”

토마스가 물었다.

“다음번에 또 잡음이라고 우길까 봐.”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기록한 끊어진 선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복도에서 누가 자기 이름을 비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제 종이를 숨기지는 않았다.

엘리안은 칠판에 다음 수업까지의 과제를 적었다.

‘마력 흐름을 세 번 관찰할 것. 결과가 다르면 이유를 가정하고 다시 측정할 것.’

“첫 주에 지각하거나 남의 기록을 베끼거나 보이는 결함을 감추는 학생은 즉시 F다. 이의가 있으면 지금 말해라.”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엘리안은 아델린의 수정된 기록을 돌려주었다. 그가 다음 시간에 확인하려는 것은 붉은 점의 크기보다도 그 점을 다시 적어 올 용기였다.

시엘은 서른 명의 서명이 든 출석 명부에 봉인표를 붙였다. 그날 오후 교무처를 통해 별도 서류가 도착했다. 전공 대항전 참가 명단 요청서였다. 교양 101 수강생 전원의 이름을 요구하고 있었다.

시엘은 아직 마르지 않은 봉인을 손으로 가린 채 발신인을 확인했다. 마법학부 수석교수실.

“교수님. 방금 확정한 명부를 요구합니다.”

엘리안은 요청서의 날짜부터 읽었다. 대항전까지 한 달.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르친 흐름을 익힐 시간은 있었다. 누군가 그 시간을 빼앗으려 하고 있었다.

“원본은 여기 둬.”

그는 봉인된 명부를 시엘에게 돌려주었다.

“요청한 사람이 직접 이유를 적어 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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