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 상단 후계자의 황금 독점

3화: 버려진 공방의 파동
루미엔 하층 지구로 내려가는 계단은 해가 지기도 전에 어두워졌다.
레온은 외투 안쪽의 가죽 주머니를 확인했다. 잔향석 다섯 개가 서로 부딪힐 때마다 손바닥에 가느다란 떨림이 전해졌다. 마리안은 은화 다섯 닢이 든 주머니를 품에 넣고 있었고 로웬은 계단 위쪽을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이쪽 길은 마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장부에 운송비를 적지 않겠지.”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은화 다섯 닢은 내일 아침 급료 일부입니다.”
“전부 쓰지 않는다. 카일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부터 본다.”
하층 지구는 버려진 공방과 임시 천막이 뒤섞여 있었다. 젖은 석탄 냄새 사이로 식은 마력등의 쇠 냄새가 났다. 벽에는 전매국의 철거 표식이 남아 있었고 그 위에 누군가 붉은 분필로 출입 금지라고 덧칠해 두었다.
로웬이 좁은 골목 끝을 가리켰다.
“저기입니다. 간판은 떼었지만 문짝에 화상 자국이 남아 있군요.”
공방 문에는 자물쇠가 세 개나 걸려 있었다. 레온이 두드리자 안쪽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돌아가시오.”
“카일 로데릭인가?”
“그 이름을 아는 상인은 모두 물건을 싸게 사려 했소. 이번에는 누구요?”
“하렌 상단의 레온이다.”
안에서 짧은 웃음이 터졌다.
“하렌이라면 더더욱 돌아가시오. 내 공방을 팔아넘긴 이름이오.”
로웬의 손이 허리춤으로 내려갔다. 레온은 팔을 들어 그를 막았다.
“공방을 팔아넘긴 사람이 나인지 확인하고 화를 내도 늦지 않다.”
“당신이 내 연구를 사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더 수상하군.”
“연구를 사러 온 게 아니다. 잔향석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문 안쪽이 조용해졌다. 잠시 뒤 작은 구멍의 덮개가 열리고 한쪽 눈이 나타났다. 창백한 얼굴과 흐트러진 은발이 어둠 속에서 드러났다.
“표본을 보여 주시오.”
레온은 문틈에 돌 하나를 내밀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를 열어 다섯 개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먼저 당신이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지 듣겠다.”
“상인이 질문을 하는군.”
“돈을 내기 전에 품질을 확인하는 건 상인의 기본이다.”
카일의 시선이 돌 위에서 움직였다. 그는 구멍을 닫더니 안쪽에서 빗장을 하나 풀었다.
“한 사람만 들어오시오.”
“셋이 들어간다.”
“그럼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겠소.”
마리안이 레온의 옆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공방 주인이 조건을 걸었습니다.”
“조건은 들었다.”
레온은 문을 향해 말했다.
“나와 회계사 그리고 창고장이 들어간다. 대신 표본은 내가 보는 앞에서만 만져라.”
“감시까지 하겠다는 거요?”
“서로 감시해야 거래가 된다.”
자물쇠 하나가 더 풀렸다. 문이 열리자 탄 냄새와 기름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나왔다.
공방 안에는 부서진 렌즈와 뒤틀린 구리선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천장에는 검게 그을린 원형 고리가 매달려 있었고 벽면의 책장에는 책 대신 빈 틀만 남아 있었다.
카일은 레온의 손에서 표본 하나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화상 자국이 남은 장갑을 낀 손가락이 돌의 표면을 훑었다.
“같은 산지의 돌이군. 그런데 이건 보관 상태가 다르오.”
“어떻게 알지?”
“표면의 균열이 아니라 내부 잔향이 끊기는 지점을 느끼는 거요.”
카일은 돌을 낡은 철판 위에 올렸다. 철판에는 작은 바늘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카일이 손가락으로 철판을 두드리자 바늘이 흔들렸다.
“이 장치는 진동을 읽는 겁니까?” 마리안이 물었다.
“읽는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소. 남은 흔적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들 뿐이지.”
카일은 다른 돌을 집어 철판 옆에 붙였다. 바늘은 잠깐 움직이다가 멈췄다.
“둘 사이의 거리를 줄여야 합니다.”
레온은 공방의 천장을 살폈다. 남은 마력선은 세 가닥뿐이었고 그중 하나는 녹이 슨 고리에 끊겨 있었다.
“수리하려면 얼마가 필요하지?”
“금화 열 닢.”
“지금 가진 돈은 은화 다섯 닢이다.”
“그럼 문을 나가시오.”
카일이 돌을 내려놓았다.
“상인들은 언제나 가장 싼 값을 부르고 내 장치가 움직이면 가장 비싼 값을 받으려 하오. 나는 그런 거래를 다시 하지 않소.”
레온은 공방 안쪽의 빈 책장을 보았다. 책이 빠져나간 자리에 얇은 먼지 선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최근까지 이곳에서 서류를 꺼내 갔다.
“금화 열 닢을 주면 성공한다는 보장은 있나?”
“없소.”
“그럼 당신도 내가 사기꾼인지 판단할 근거가 없군.”
카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슨 거래를 원하오?”
“오늘은 장치를 완성하지 않는다. 기존 부품으로 신호가 남는지 확인한다. 성공하면 은화 두 닢을 지급하고 표본 두 개를 연구용으로 맡긴다. 실패하면 표본은 돌려받고 은화는 지급하지 않는다.”
마리안이 바로 끼어들었다.
“은화 두 닢도 내일 급료에서 빠집니다.”
“실패하면 빠지지 않는다.”
“성공해도 재고가 팔린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전부 걸지 않는 거다.”
카일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바닥에서 구리선 한 묶음을 주워 들었다.
“실패하면 당신이 표본을 가져가고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오.”
“당신은 이미 실패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오늘 얻는 건 검증된 기록이다.”
“기록은 배를 채우지 못하오.”
“하지만 다음 거래에서 값을 정하게 해 준다.”
카일의 손가락이 구리선을 천천히 말았다.
“좋소. 대신 내가 장치를 멈추라고 하면 즉시 멈추시오. 이 원형기는 한 번 불탄 적이 있소.”
로웬이 고리를 올려다보았다.
“누가 태웠습니까?”
“전매국 감정관들이 내 스승의 연구실을 뒤진 날이오.”
카일은 대답을 마치고 고리 뒤쪽의 나무판을 열었다. 안쪽에는 뜯겨 나간 종이 조각과 검은 봉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레온은 손을 대지 않고 눈으로만 흔적을 확인했다. 전매국의 봉인과 비슷했지만 같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카일은 구리선을 철판 아래에 연결했다. 마리안은 은화 두 닢을 따로 장부에 적었고 로웬은 흔들리는 탁자를 붙잡았다.
“신호를 무엇으로 만들 겁니까?” 레온이 물었다.
“사람 목소리는 안 되오. 너무 많은 변수가 생기지. 같은 간격으로 철판을 세 번 두드리겠소.”
카일이 손가락을 들었다.
셋.
철판이 울렸다. 잔향석 표면에서 가느다란 빛이 떨렸다. 곧 옆에 붙여 둔 두 번째 돌의 바늘이 한 칸 움직였다.
마리안이 숨을 삼켰다.
“반응이 있었어요.”
“반응과 성공은 다르오.”
카일은 곧바로 구리선을 끊었다. 빛은 꺼졌지만 바늘은 한동안 떨렸다.
레온은 바늘의 움직임을 세었다. 처음보다 약해졌지만 세 번 더 흔들렸다.
“남아 있다.”
“진동의 일부가 저장된 거요. 출력은 형편없지만 반복 간격은 보존됐소.”
카일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떨렸다. 그는 철판보다 돌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팔 생각이오?”
“아직 팔지 않는다. 먼저 창고와 본점 사이에서 재고 위치를 부르는 데 쓴다.”
“거리는?”
“마차 한 대가 하루에 오갈 수 있는 거리 안쪽.”
카일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대륙을 잇는 통신을 말하던 상인이 갑자기 창고를 부르겠다고?”
“창고 하나를 제때 찾지 못해도 상단은 무너진다. 먼 곳의 이야기는 가까운 실패를 고친 뒤에 한다.”
마리안은 레온을 바라보았다. 레온은 성공한 장치가 아니라 아직 불안정한 바늘을 보고 있었다.
“시제품에 필요한 부품을 적어.”
“구리선과 안정된 철판에 은화 열두 닢이 필요하오. 그리고 두 명의 조수가 필요하오.”
“현금은 열두 닢이 아니다. 부품 대금은 판매 후 정산한다.”
“또 외상이오?”
“아니다. 하렌 상단의 잔향석 열 상자를 담보로 맡긴다. 대신 장치 소유권은 당신에게 남긴다. 우리는 창고 호출 기능을 일정 기간 사용할 권리만 가진다.”
카일의 표정이 굳었다.
“상인치고 이상한 말을 하오. 보통은 설계를 빼앗고 특허라 부르지.”
“설계가 있어도 당신이 없으면 부품 하나 제대로 연결하지 못한다. 기술자를 빼앗으면 계약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순간 바깥에서 금속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로웬이 즉시 고리 아래로 몸을 낮췄다.
“사람이 셋 이상입니다.”
문틈 아래로 붉은 봉인의 빛이 번졌다.
“카일 로데릭. 채무 집행이다. 문을 열고 장치를 인도하라.”
마리안의 얼굴이 굳었다.
“내일 정오가 아니었습니까?”
“하렌 상단의 압류 명령과 별개다.”
레온은 문 아래로 밀려온 종이를 주워 들었다. 카일의 공방 주소와 함께 잔향석 표본 다섯 개라는 수량이 적혀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카일이 낮게 말했다.
“당신이 놈들을 데려왔소.”
“아니. 놈들은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차이가 있소?”
“있다. 문을 열면 장치를 빼앗긴다. 문을 닫아도 내일 본점이 봉인된다.”
레온은 원형기와 표본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이 장치를 들고 달아나면 카일의 연구는 끝난다. 두고 가면 누군가 이 가능성을 먼저 차지할 수 있었다.
“카일. 오늘 이 장치의 소유권은 당신에게 남긴다.”
“집행인에게 넘기자는 말이오?”
“아니. 계약서를 쓴다. 시제품 제작에 성공할 때까지 하렌 상단은 사용권만 가진다. 장치는 당신이 보관하고 연구 기록도 당신이 관리한다.”
레온은 마리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계약 용지.”
마리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가방에서 한 장을 꺼냈다. 레온은 짧은 문장으로 조건을 적었다. 성공 대가는 은화 두 닢과 잔향석 표본 두 개. 실패하면 표본 반환. 설계와 원형기는 카일의 소유. 하렌 상단은 창고용 시제품의 한시적 사용권만 갖는다.
카일은 문밖의 두드림을 들으며 계약서를 읽었다. 그의 시선이 소유권 조항에 오래 머물렀다.
“전매국은 이 조항을 인정하지 않을 거요.”
“그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서명한 사실은 남는다.”
카일은 한참 동안 계약서를 내려다보다가 화상 자국이 남은 장갑을 벗었다. 손등 곳곳에 작은 화상 흉터가 드러났다. 그는 마력 인장을 찍기 전 레온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조건을 더하오. 내 연구 기록을 훔치려는 자가 나타나면 상단의 이름으로 막아야 하오.”
“상단이 아직 살아 있다면.”
레온은 자신의 인장을 계약서 끝에 눌렀다.
“살아 있게 만들 거다.”
카일의 인장이 그 옆에 겹쳤다. 미약한 푸른빛이 두 서명을 잇고 사라졌다.
로웬이 뒷벽을 두드렸다.
“뒤쪽에 빠지는 문이 있습니다. 다만 골목이 막혀 있을 겁니다.”
“마리안. 계약서를 챙겨.”
“장치는요?”
“카일이 가져간다. 우리는 기록과 표본만 챙긴다.”
문밖에서 쇠망치가 한 번 울렸다. 원형기의 바늘이 다시 떨렸다. 이번에는 아무도 철판을 두드리지 않았다.
카일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방금 신호는 내가 낸 게 아니오.”
레온은 바늘이 가리킨 방향을 보았다. 공방 벽 너머였다. 누군가 밖에서 같은 파동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군.”
두 번째 쇠망치 소리가 울렸다.
내일 정오까지 남은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레온에게는 압류를 막아야 할 상단과 지켜야 할 공명 장치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