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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서 평화로운 지구로 출퇴근합니다18화

아포칼립스에서 평화로운 지구로 출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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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빈 지뢰가 만든 퇴각로

관제실의 경보음이 정비실 문을 떨게 했다.

민혁은 5번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소희에게 손을 내밀었다.

"경보는 안에서만 들리게 해 주세요. 주민들 깨우면 출입문부터 붐빕니다."

소희가 음량을 내렸다. 붉은 사각형 둘은 화면 속에서 나란히 움직이다가 폐주유소 탱크 잔해 앞에서 멈췄다. 볼트 커터를 멘 사내가 철망을 가리켰고 소총을 든 놈은 고가도로 쪽을 훑었다.

"지금 잡으면 되지 않느냐?" 태우가 물었다.

"그럼 바깥에 몇 명이 있는지 놈들도 바로 압니다. 총성이 나면 안개 속 변종까지 몰려와요. 철망에 손을 대기 직전에 돌려보내겠습니다."

민혁은 화면을 확대했다. 소총 든 사내가 부서진 주유기 기둥에 손가락만 한 흰 천 조각을 묶었다. 밤에도 보이는 진입 표시였다. 단순히 식량을 훔칠 두 사람이 아니었다. 뒤따를 차량의 길을 고르는 중이었다.

커터 든 사내는 걸음을 멈출 때마다 손바닥으로 땅을 짚었다. 진흙 아래 묻힌 콘크리트의 단단함을 확인하는 듯했다. 사람만 넘을 생각이라면 굳이 바닥을 고를 이유가 없었다.

민혁이 지도에 주유소와 철망 사이의 좁은 직선을 그었다. 그 길 끝에는 방위대가 밤새 쌓은 폐철판이 있었다. 차가 곧장 밀고 들어오기에는 불편하지만 철망만 열리면 선두의 두세 명이 바리케이드 측면에 달라붙을 수 있었다.

"소희 씨, 5번을 계속 잡고 6번 센서가 울리면 저한테만 알려 주세요. 7번도 봐 주세요. 다른 쪽에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열원은 둘뿐이에요. 그래도 화면 밖까지 단정하면 안 되겠죠."

태우가 무전기를 들었다. 민혁이 잠깐 그 손목을 잡았다.

"남쪽 방위대만 움직이죠. 불은 켜지 말고요."

태우가 짧게 대답했다. "기석이를 철판 뒤로 보내마."

민혁은 지도에서 5번 카메라와 남쪽 철망 사이의 좁은 틈을 눌렀다. 낮에 방위대가 바리케이드를 쌓을 때 그는 그 안쪽에 납작한 금속 상자를 매달아 두었다. 폐훈련장에서 주워 온 크레모아 모형이었다. 탄약도 신관도 없었고 안쪽에는 먼지만 남아 있었다. 지워진 경고 문구와 빗살무늬 덕에 먼발치에서는 군용 지뢰처럼 보였다. 가까이 와서 오래 살피면 빈 깡통인 것이 들통날 물건이었다.

"놈들이 철망에 닿으면 저걸 보여 줍니다."

태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 하나 더 생겼다고 빈 상자까지 무기가 되는군."


남쪽 통로는 보일러 배관을 따라 따뜻했다. 방폭문을 열자 바깥의 찬 기운이 방독 마스크 틈으로 파고들었다.

민혁과 태우는 폐철판 바리케이드 뒤에 몸을 낮췄다. 기석과 방위대원 둘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석의 손에는 배터리로 돌아가는 낡은 현장 경보기가 들려 있었다. 평소에는 환기탑 점검 때 쓰던 물건이었다.

기석은 배급소에서 쓰던 두꺼운 앞치마 위에 방탄 조끼를 급히 걸친 상태였다. 출입문을 닫고 주민들을 물린 뒤 남쪽 방위대를 돕겠다고 자원했다. 그의 호흡은 거칠었지만 경보기 손잡이는 놓지 않았다.

"밖에는 둘입니다. 소총 하나, 절단기 하나. 우린 총을 먼저 쏘지 않습니다."

기석이 경보기의 스위치를 엄지로 감쌌다.

"울리면 바로 뛰어나갑니까?"

"아니요. 철판 뒤에서 위치만 외치세요. 적이 우리 머릿수를 알아내게 할 필요 없어요."

"경보는 몇 초만 울리겠습니다. 소리가 길어지면 변종들이 듣습니다. 소희 씨가 센서 신호를 확인한 뒤 제가 신호를 줄 때 누르세요."

기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선 센서가 관제실에 보내는 경고와 그의 손에 든 경보기는 별개의 물건이었다. 한 번의 무전이 없으면 이곳의 싸움은 눈먼 사람들의 싸움으로 되돌아갔다.

민혁은 무전기의 작은 이어폰을 눌렀다.

― 5번에서 하나가 떨어졌어요. 소총 든 쪽은 주유기 기둥에 남고 커터 든 쪽이 동쪽으로 우회해요.

소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그녀의 손끝이 관제 화면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6번은요?"

― 아직 반응 없어요. 7번에도 새 열원은 없어요. 잠깐, 커터 든 놈이 기둥 뒤에 뭔가 붙였습니다. 흰 표시예요.

민혁은 바리케이드 틈으로 눈을 가져갔다. 안개 속은 온통 붉고 흐렸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저 표식을 찾아낼 수도 없었다.

그는 모형을 가린 천을 조금 걷어 냈다. 녹슨 철망 뒤로 빗살무늬만 드러나게 했다. 적은 철망 앞까지 와야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민혁은 모형 아래에 고인 빗물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젖은 금속이 희미한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바로 앞에서 보면 나사 구멍이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내들이 자세히 살피기 전에 놀라 뒤로 물러나도록 경보 타이밍을 기다렸다.

"저게 진짜였으면 좋겠군." 기석이 속삭였다.

"진짜면 우리도 이 가까이에 못 서 있죠. 오늘은 겁만 먹이면 됩니다."

태우가 기석에게 손짓했다. 방위대원들은 철판 양끝으로 흩어졌다. 사선은 겹치지 않았고 퇴로는 열려 있었다. 민혁은 이들이 달아날 길을 일부러 막지 않았다. 두목에게 쓸데없는 피의 빚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

― 접근 속도 느려졌어요. 커터 든 쪽이 땅을 만집니다.

소희가 무전 너머로 침을 삼켰다.

민혁의 장갑 안쪽에도 땀이 찼다. 빈 상자가 첫눈에 들통나면 저 둘은 철망을 끊을 것이다. 총을 들이대고 막을 수는 있었지만 그러면 방위대의 위치가 그대로 드러난다.

― 6번 감지선에 들어왔어요. 5번 영상에 보이는 표지판 기준으로 철망까지 열두 걸음쯤 남았어요.

"기석 씨, 아직입니다."


철컥.

안개 속에서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볼트 커터의 날이 철망에 닿았다.

"지금."

기석이 스위치를 눌렀다. 낡은 경보기의 붉은 등과 경고음이 철판 아래에서 동시에 터졌다. 관제실에서도 6번 센서 경보가 짧게 울렸다.

컹! 컹! 컹!

좁은 철판 통로가 소리를 키워 주었다. 커터 든 사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철망 바로 뒤의 빗살무늬를 본 순간 몸을 뒤로 젖혔다.

민혁이 손가락 세 개를 접기도 전에 기석은 경보기를 껐다. 울림은 끊겼지만 여운이 철판 사이에 남았다. 안개 너머에서 멀리 움직이는 변종의 울음은 들리지 않았다. 그 몇 초가 값비싼 틈이었다.

"지뢰야! 물러서!"

주유기 옆에서 엄호하던 사내가 총구를 들었다. 민혁은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태우가 다른 방향의 철판 뒤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커터 든 놈, 손 떼라. 주유기 기둥 뒤의 소총도 보인다."

두 사내가 동시에 멈췄다. 정확한 위치를 찍힌 것이 지뢰보다 더 무서운 듯했다.

태우는 커터 든 사내에게는 왼쪽 철판에서 말했고 소총 든 사내에게는 오른쪽 대원이 쇳조각을 한 번 울리게 했다. 어둠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숨어 있는지 적은 셀 수 없었다. 기석도 더는 떨지 않고 소총 든 사내의 움직임을 좇았다.

"철망에 또 손대면 다음에는 경보로 끝나지 않는다."

민혁의 목소리가 바리케이드 아래로 흘렀다. 그는 적이 도망칠 쪽의 철판만 일부러 두드렸다. 다른 쪽은 비워 두었다.

소총 든 사내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기석의 어깨가 굳었다. 민혁은 손바닥을 내려 보였다. 쏘지 말라는 신호였다.

"카메라?" 사내가 안개 위쪽을 힐끔 보았다.

민혁의 심장이 잠깐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시선은 곧 철망 뒤의 상자로 떨어졌다. 소총 든 사내가 동료의 옷깃을 잡아채자 커터가 자갈 위에 떨어졌다.

"꺼져! 저놈들 매설해 놨어!"

두 사내가 오던 길을 버리고 서쪽의 낮은 배수로로 뛰었다. 태우가 쫓으려 하자 민혁이 고개를 저었다.

커터 든 사내는 한 번 넘어졌다가 기어올랐다. 소총 든 동료가 팔을 잡아 당겼다. 그들의 뒤를 쫓는 총알은 없었다. 민혁은 저들이 멀어지는 동안에도 철망 옆 그림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둘이 미끼이고 셋째가 다른 쪽에 숨었을 가능성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철망부터 보겠습니다. 쫓다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위치 이점이 사라져요."

무전에서 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 5번에서 벗어났어요. 4번 화면으로 넘어갑니다. 두 명 모두 서쪽 배수관 쪽으로 움직여요.

민혁은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경보가 꺼지자 마치 한동안 참았던 바람 소리가 한꺼번에 돌아온 것 같았다.

소희는 두 열원이 4번 카메라의 가장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화면을 놓지 않았다. 다른 감지선에서 새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철망으로 되돌아온 사람도 없었다.


태우가 철망을 살폈다. 잘린 고리는 하나도 없었다. 바닥에는 볼트 커터와 흰 천 조각이 남았다.

방위대원 하나가 장갑을 끼고 절단기 끝을 들어 보였다. 날에는 철망의 붉은 녹만 묻어 있었다. 첫 고리조차 끊기 전에 막아 낸 셈이었다. 그제야 기석이 경보기 손잡이에서 힘을 풀었다.

"빈 상자에 겁을 먹고 도망가다니." 기석이 웃었다.

"카메라 없었으면 우리도 저놈들 뒤통수만 봤을 겁니다." 민혁이 말했다.

"놈들은 카메라가 아니라 지뢰를 본 거겠지." 태우가 커터를 주워 들었다. "적어도 오늘 밤은 이 선으로 다시 오지 않겠군."

민혁은 대답을 아꼈다. 모형의 겁은 한 번이면 끝이었다. 두목이 부하의 말을 믿지 않거나 모형을 알아보면 같은 수법은 통하지 않는다.

쉘터로 돌아온 셋은 관제실 모니터 앞에 섰다. 소희가 녹화된 영상을 되감았다. 도주한 두 사람은 4번 카메라 아래 배수로에서 잠시 멈춰 뒤를 돌아봤다. 그 옆 흙탕물에는 넓은 타이어 자국이 어렴풋했다.

"6번 신호가 들어온 순간을 따로 저장해 뒀어요. 다음에는 어느 틈으로 오든 움직임을 비교할 수 있을 거예요."

소희가 재생 구간을 잘랐다. 붉게 충혈된 눈으로도 손가락은 정확했다. 처음 경보를 들었을 때 그녀가 확인한 것은 기계의 성능이었지만 지금 화면에 남은 것은 사람 둘의 퇴각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사람 둘이 남긴 흔적은 아니에요." 소희가 화면을 가리켰다.

"차량이 자주 다닌 길일 수 있겠네요. 지금 본대가 거기 있다는 뜻은 아니고요."

민혁이 지도에 배수로와 고가도로 사이의 연결선을 그었다. 태우가 대원들의 교대 시간을 앞당기고 그쪽 철판을 두 장 더 세우겠다고 했다. 25명과 개조 차량 앞에서는 오늘의 속임수가 방벽이 될 수 없었다.

그때 중앙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몰려왔다. 경보 소리를 들은 주민들이 뒤늦게 깬 모양이었다. 기석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밖은 괜찮다고 알리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묻습니다. 그 새 장비를 민혁 씨가 어디서 구했냐고요."

소희의 표정이 굳었다. 태우는 모니터의 배수로 화면을 응시한 채 입술을 다물었다.

민혁은 꺼진 경보기와 녹화 기록을 차례로 보았다. 바깥의 철망은 지켰다. 안쪽에서는 다른 선을 지켜야 했다.

"우선 침입부터 막았다고 전해 주세요. 물건 얘기는 제가 직접 듣겠습니다."

민혁이 관제실 문을 열었다. 좁은 복도 끝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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