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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칼립스에서 평화로운 지구로 출퇴근합니다12화

아포칼립스에서 평화로운 지구로 출퇴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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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세 개의 심장

배수로 입구에서 발톱이 콘크리트를 긁었다.

한 번 긁고 멈췄다가 다시 긁었다. 울프들이 냄새를 확인하는 소리였다.

민혁은 서비스동 보안문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차가운 금속 안쪽에서 낮은 전류음이 올라왔다. 문 너머의 전기는 아직 살아 있었다.

태우가 손가락으로 물었다.

‘열 수 있나?’

민혁은 카드 패널과 문 아래를 번갈아 비췄다. 카드 패널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반면 문 가장자리를 막은 용접선은 녹이 슬어 있었다. 누군가 카드 패널만 닦고 문은 밖에서 봉쇄했다.

그는 라이트를 바닥 가까이 붙였다. 문 하단에 작은 사각 덮개가 있었다. 덮개 모서리에는 희미한 글자가 남아 있었다.

‘정전 시 수동 개방.’

민혁은 태우의 팔을 잡고 덮개를 가리켰다. 태우가 단도 끝을 틈에 밀어 넣었다. 금속이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민혁과 경호가 덮개를 눌렀다.

금속판은 작은 신음만 남기고 열렸다. 안쪽에는 레버와 수동 케이블이 있었다. 레버를 누른 채 케이블을 두 번 당겨야 잠금축이 풀리는 구조였다.

태우가 레버를 눌렀고 민혁이 케이블을 당겼다.

철제 잠금축이 안에서 밀려났다.

그 순간 배수로 입구에서 울프가 낮게 울었다. 검은 발이 모퉁이를 넘어왔다.

"기석부터."

태우의 입술이 움직였다.

경호가 기석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었다. 유라가 안쪽에서 그의 어깨를 잡았다. 기석은 아픈 다리를 끌며 좁은 정비 통로로 몸을 밀어 넣었다.

민혁은 마지막으로 들어가 문을 당겼다. 문짝이 닫히는 순간 울프가 몸을 부딪쳤다.

쾅.

문 전체가 울렸지만 잠금축은 버텼다. 곧이어 천장의 제염 노즐이 깨어났다. 희뿌연 분사액이 바닥의 붉은 포자를 녹이며 거품을 만들었다. 방독면 안쪽으로 식초 같은 냄새가 스며들었다.

제염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고서야 분사가 멎었다. 서비스동 내부는 푸른 비상등 아래 잠겨 있었다.

태우가 보안문을 돌아봤다. 바깥에서는 울프들이 계속 문을 긁고 있었다.

"이제 안쪽으로 간다. 총은 끝까지 쓰지 마."

민혁은 라이트를 발밑으로 내렸다. 젖은 바닥 위에 팀의 군화와 다른 발자국이 보였다. 밑창 무늬가 촘촘한 고무 신발이었다. 옆에는 은색 금속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누군가 최근 이곳에서 무언가를 잘라냈다.

"문을 용접한 사람과 같은 흔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우의 눈빛이 굳었다. 바깥의 울프가 문을 부수기 전에 지하로 내려가야 했다.


복도 끝 통제실의 모니터는 대부분 꺼져 있었다. 한 화면만 붉은 숫자를 띄우고 있었다.

민혁이 문손잡이를 돌리자 잠금이 풀렸다. 태우가 산탄총을 겨누는 사이 민혁은 출입 기록을 확인했다.

‘03:17. 서비스동 외부 출입.’

‘03:19. B2 보관 구역. 외부 권한 우회.’

그 아래 기록은 검은 줄로 지워져 있었다. 삭제된 흔적만 남아 있었다.

도윤이 뒤쪽을 가리켰다. 서비스동 보안문이 다시 울렸다.

민혁은 시간을 머릿속에 새겼다. 연구 일지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생겼다. 누가 이곳에 들어와 무엇을 가져갔는지 알아야 했다.

통제실 벽의 배치도에는 지하 화물 승강기로 이어지는 파란 선이 남아 있었다. 태우가 손짓했다.

"기석은 가운데. 경호는 옆에 붙어. 민혁이 선두다."

기석이 낮게 말했다.

"나 때문에 늦어지면 두고 가."

민혁은 그를 돌아봤다.

"그 판단은 제가 합니다."

화물 승강기 문은 반쯤 열린 채 멈춰 있었다. 민혁은 벽의 차단함에서 B2 수동 해제 레버를 찾아 올렸다. 승강기가 덜컥 흔들리더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차가워졌다. 포자 냄새 대신 금속과 오래된 소독약 냄새가 났다.

B2 표지판 아래에는 깨진 카드와 얇은 검은 장갑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민혁은 그것을 건드리지 않고 보관고로 향했다.


기밀 보관고 안쪽의 냉각 표시등은 노란색이었다. 숫자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태우가 보관함을 바라봤다.

"전력이 끊기기 직전이야."

민혁은 문에 귀를 붙였다. 안쪽에서 규칙적인 진동이 느껴졌다. 냉각 장치가 마지막 힘으로 돌아가는 소리였다.

그는 손잡이 옆 압력계를 확인했다. 빨간 눈금 바로 아래였다. 압력 밸브를 조금씩 돌리자 차가운 공기가 빠져나왔다.

태우가 수동 잠금 레버를 당겼다. 보관함의 잠금쇠가 풀렸다.

안쪽에는 검은 완충재에 싸인 금속 상자 세 개와 방수 가죽 표지의 연구 일지가 있었다. 상자 사이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맥박쳤다.

민혁은 연구 일지를 먼저 집었다. 표지에는 ‘스포어 재난 초기 관찰 기록’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었다. 첫 장의 날짜는 발생 1년 차 겨울이었다.

‘포자는 숙주의 조직만 바꾸는 것이 아니다. 마력 코어의 공명 주파수에 반응해 증식 속도가 달라진다.’

다음 줄에는 더 굵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코어를 전력원으로만 취급하면 안 된다. 정화 반응을 안정시키는 중추다. 군사 전용 전환은 금지해야 한다.’

마지막 장의 아랫부분은 찢겨 있었다. 연구 책임자의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태우가 일지를 훑었다.

"쓸 만한 내용이냐?"

"정화기에 응용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록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민혁은 일지를 방수 주머니에 넣었다. 먼저 소희가 읽어야 했다.

경호가 금속 상자 하나를 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결정이 완충재에 박혀 있었다. 푸른빛이 결정 중심에서 한 번씩 번졌다.

"이게 마력 코어인가?"

"상자째 옮기십시오. 직접 만지지 마세요."

세 코어는 각각 다른 상자에 들어 있었다. 태우와 경호가 하나씩 들고 민혁이 마지막 상자를 배낭 안쪽에 고정했다. 상자는 생각보다 가벼웠지만 안쪽에서 전해지는 진동은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그때 보관고 천장의 냉각등이 꺼졌다.

"보관 구역 냉각 정지. 비상 봉쇄를 시작합니다."

철제 셔터가 승강기 방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도윤과 유라가 먼저 뛰었다. 기석도 상자를 들고 뒤따르려 했지만 다친 발목이 꺾였다.

상자가 바닥에 부딪혔다.

민혁이 기석을 받쳤다.

"코어를 놓고 가면 빨라집니다."

기석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니까 놓고 가."

민혁은 도윤을 불렀다.

"네 상자와 기석 상자를 같이 묶어. 경호는 기석을 부축하고 내가 뒤를 봅니다."

태우의 목소리가 낮게 날아왔다.

"시간이 없다."

"그래서 전부 들고 갑니다."

민혁은 로프를 풀어 두 상자를 하나로 묶었다. 도윤이 어깨에 걸치자 기석의 빈손이 생겼다. 경호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셔터가 허리 높이까지 내려왔다. 태우가 반대편에서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도윤과 기석이 먼저 기어서 빠져나갔다. 민혁은 마지막까지 뒤에 남았다.

셔터 너머에서 붉은 렌즈가 켜졌다. 자동 보안 드론이었다.

민혁이 라이트를 렌즈에 집중시키자 드론이 흔들렸다. 태우가 개머리판으로 센서를 내리쳤다. 경고음이 끊겼다.


승강기는 올라가는 도중 몇 번이나 멈췄다. 기석의 발목에서 피가 다시 번졌다. 유라가 붕대를 갈아 묶는 동안 민혁은 배낭에서 압박 붕대를 꺼내 건넸다.

마침내 서비스동 복도가 나타났다. 보안문 밖에서는 울프들이 일제히 울부짖었다.

민혁은 벽의 소화수 밸브를 발견하고 끝까지 돌렸다. 오래된 관이 터지며 차가운 물이 복도로 쏟아졌다. 붉은 물이 배수로로 흐르자 울프들의 냄새가 씻겨 나갔다.

태우가 서비스문을 열었다. 탐색대는 배수로 안으로 차례로 몸을 낮췄다.

울프 한 마리가 문틈에 앞발을 밀어 넣었지만 유라가 기석을 먼저 밀어 넣었다. 태우가 문을 당기자 검은 발톱이 금속을 긁으며 사라졌다.

온실 쪽에서는 민혁이 남겨 둔 반사판이 빛을 튕기고 있었다. 울프 한 마리가 골목으로 뛰어들었고 나머지도 그 뒤를 따랐다.

팀은 반대쪽 벽에 붙어 발소리가 멀어지기를 기다렸다.

기석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나까지 데려왔지?"

민혁은 코어 상자를 묶은 로프를 확인했다.

"사람 하나를 버리고 얻은 물자는 언젠가 우리를 버립니다."

태우가 민혁을 바라봤다. 잠시 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면 네 이름을 정식 탐색대 명단에 올린다."

셔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쪽 경비대가 신호를 받고 문을 열었다.

붉은 안개가 등 뒤로 밀려났다. 기석이 쉘터 바닥에 주저앉자 유라가 그를 붙잡았다. 태우와 경호는 코어 상자를 작업대 위에 내려놓았다.

한소희가 보일러실에서 달려 나왔다. 그녀의 눈은 코어보다 먼저 민혁의 방독면과 기석의 피 묻은 바지를 훑었다.

"다친 사람부터 치료해. 물자는 안 도망가."

소희가 기석에게 다가가는 동안 민혁은 배낭에서 연구 일지를 꺼냈다. 세 번째 상자의 뚜껑도 열었다.

푸른 결정이 보일러실의 희미한 등 아래에서 맥박쳤다.

소희의 손이 멈췄다.

"이걸 어디서……."

"바이오 연구소 지하 2층입니다. 연구 일지도 찾았습니다."

민혁은 일지를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소희는 표지보다 찢긴 마지막 장을 먼저 바라봤다.

"이 기록은…… 내가 아는 연구 방식이야."

민혁은 더 묻지 않았다. 코어 세 개는 쉘터의 정화기를 한 달 넘게 돌릴 자원이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정확히 확인하려면 현대 서울의 이진우에게 감정을 맡겨야 했다.

청동 문고리는 아직 단단히 잠겨 있었다. 민혁은 다음 이동이 열리는 순간까지 코어와 연구 일지를 지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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