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마법어를 독해하는 천재 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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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읽는 즉시 죽는 문자
돌벽에 새겨진 한 줄을 읽는 순간 사람이 죽는다는 소문은 루멘의 광부들 사이에서 아주 오래 살아남았다.
한도윤은 그 소문이 적힌 조사 보고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종이에는 짧고 단정한 문장이 있었다.
‘1서클 금기 문자에 시선을 두지 말 것. 음가를 추정하지 말 것. 접촉자는 즉시 격리할 것.’
도윤은 검은 장갑을 고쳐 끼고 폐광 유적의 벽면으로 몸을 기울였다.
“읽다가 죽었다면 무엇을 읽었는지부터 남겨야지.”
말이 허공에 퍼지기도 전에 천장에서 모래가 쏟아졌다. 도윤은 몸을 틀어 낙석을 피했다. 발치에 떨어진 석편이 조사용 잉크병을 깨뜨렸다. 푸른 잉크가 흙먼지 사이로 번졌다.
도윤은 무릎을 꿇었다. 잉크가 번진 자리 너머로 평소에는 갈라진 틈처럼 보이던 획 하나가 드러났다.
도윤은 붓끝으로 흙을 걷어 냈다.
벽에는 세 겹의 기호가 있었다. 가장 바깥에는 넓은 곡선이 새겨졌고 그 안쪽에 짧은 쐐기 두 개가 붙어 있었다. 아래쪽에는 다른 기호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유독 마지막 표식만 반대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왕립문자원의 번역본은 이 전체를 ‘죽음을 명하는 문장’이라고 옮겼다. 도윤은 보고서의 문장을 떠올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죽음을 명한다면 명령의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벽에는 주어에 해당할 만한 반복 표식이 없었다. 대상 표식처럼 보이는 쐐기는 문장 중간이 아니라 끝마다 나타났다.
“이건 동사가 아니라 종결 표식에 가깝다.”
도윤은 수첩에 기호를 옮겨 그렸다. 하나는 벽에서 본 모양 그대로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배운 하린 고어의 조사 배열에 맞춘 형태였다.
하린 고어에서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가 문장 끝에 남았다. 낮춰 부르는 종결어미와 기다림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는 소리 하나가 달랐지만 문장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같았다.
이 기호도 그랬다. 같은 자리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도윤은 손가락으로 획을 따라가려다 멈췄다. 장갑 위로도 차가운 진동이 느껴졌다. 문자의 표면에서 희미한 마력이 솟았다가 손끝 근처에서 꺼졌다.
소리 내어 읽으면 안 된다. 그 사실만은 확실했다.
허리 안쪽 가죽 주머니에는 정확히 해독한 어근 세 개를 새긴 금속편이 있었다. 인장들은 문장 전체를 대신해 준 적이 없었고 도윤은 새 문자에 함부로 대입하지 않았다.
문자 오른쪽의 필체가 눈에 걸렸다. 굵은 획 뒤에 짧은 점을 남기는 버릇이 아버지 한세진의 연구 노트와 닮아 있었다. 실종된 사람의 흔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지만 도윤의 손은 잠시 더디게 움직였다.
그는 벽에 귀를 가까이 대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갱도 안쪽에는 사람의 발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검은 밀랍 가루가 돌 틈마다 박혀 있었다. 왕립문자원의 봉인용 밀랍과 비슷했지만 문양은 달랐다.
그때 유적 깊은 곳에서 둔탁한 울림이 들렸다. 한 번, 두 번. 벽 전체가 숨을 쉬듯 미세하게 수축했다.
도윤은 수첩을 덮었다. 학자는 느낌으로 문장을 확정하지 않는다.
“확정이 아니라 가설입니다.”
스스로에게 선을 긋고 그는 석실 입구를 향했다.
입구 앞의 바닥은 멀쩡해 보였지만 도윤이 한 발을 내딛자 작은 돌들이 아래로 굴러갔다. 바닥 아래가 비어 있었다.
“거기서 더 가면 발목부터 사라져요.”
어둠 속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도윤이 돌아보자 갈색 곱슬머리의 여자가 로프를 어깨에 걸친 채 서 있었다. 낡은 가죽 조끼와 진흙 묻은 장화. 목에 건 나침반이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가볍게 흔들렸다.
“누구십니까?”
“당신을 살려 줄 사람. 돈은 나중에 받죠.”
“고용한 적이 없는데요.”
“그래서 선금이 아니라 생존비예요.”
여자는 로프 끝에 쇠갈고리를 묶어 벽의 돌기 뒤로 던졌다. 갈고리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바닥의 빈 부분을 훌쩍 건너 도윤 앞에 섰다.
“세라 벨크. 이 유적의 길을 압니다. 당신은 길보다 벽을 더 오래 보네요.”
“벽이 길을 결정하니까요.”
“길이 무너지면 벽도 같이 무너져요.”
세라는 도윤의 수첩을 흘끗 보았다. 도윤은 수첩을 닫아 품 안에 넣었다.
“금기 문자에 손댄 건 아니죠?”
“아직 소리 내지 않았습니다.”
“아직이라니. 소리 내면 죽는다는 글이에요.”
“그건 공식 번역입니다.”
“죽은 사람 셋이 공식 번역을 반박하진 못했겠죠.”
세라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은 벽면의 문자를 피한 채 석실 안쪽을 확인했다.
“저 안에 들어갔다가 돌아온 사람은 없어요. 당신이 첫 번째가 되려면 제 말을 들어요.”
“검은 밀랍을 본 적 있습니까?”
세라의 손이 로프를 잡은 채 굳었다.
“왜요?”
“누군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봉인 자국이 최근에 부서졌어요.”
세라는 한숨처럼 짧게 웃었다.
“이 동네에서 검은 옷 입은 서기관을 못 본 사람이 더 드물어요.”
그녀는 나침반을 꺼내 석문 쪽으로 내밀었다.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지 않고 빠르게 떨렸다. 도윤은 눈을 좁혔다.
“그건 어디서 났습니까?”
“안내 장비예요.”
“자기장이 아니라 문자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안내인은 장비가 무엇에 반응하는지까지 손님에게 설명하지 않아요.”
세라는 나침반을 재빨리 목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벽면의 쐐기 표식 하나가 희미하게 빛났다.
도윤은 빛이 사라지기 전에 무릎을 굽혔다. 바닥의 얕은 발자국은 석문 앞에서 끝나지 않고 안쪽으로 이어졌다.
“안내해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부탁은 공짜가 아니에요.”
“문자 표본의 판독 결과를 공유하죠.”
“당신들이 문자를 독점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요.”
“그래서 더 제안하는 겁니다.”
세라는 도윤을 한참 바라보다 로프를 당겨 팽팽하게 만들었다.
“살아서 나오면 결과의 절반. 죽으면 선금은 없던 일.”
“합리적이네요.”
세라가 먼저 석문으로 다가갔다. 나침반 안쪽에서 작은 금속음이 났다.
석문 앞에 닿기도 전에 바깥에서 쇠뿔 나팔 소리가 울렸다.
세라가 고개를 들었다.
“감찰국이네요.”
“제가 호출한 적은 없습니다.”
“당신이 안 불러도 유적은 신고를 잘하나 봐요.”
횃불 세 개가 갱도 끝에서 흔들렸다. 은빛 갑옷을 입은 남자가 선두에 섰다. 은발 단발과 회색 눈. 오른팔을 감싼 검은 천 아래로 봉인 문양의 붉은 선이 잠깐 드러났다.
“한도윤.”
남자는 이름부터 확인했다.
“황실 유적감찰국 소속 라온 카르딘이다. 왕립문자원에서 발급한 현장 접근 허가를 제시하라.”
도윤은 품에서 허가서를 꺼냈다. 라온은 종이를 받지 않고 봉인 인장만 확인했다.
“허가는 표본 주변 삼십 보까지다. 석문 앞은 범위 밖이다.”
“석문에 금기 문자가 있습니다. 관찰하려면 접근해야 합니다.”
“규정상 접근을 중지하고 표본을 회수한다.”
“회수 전에 문법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라온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금기 문자에 문법이 있다는 말인가?”
“모든 문자는 문법을 가집니다.”
“사람을 죽인 문자도?”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이 정확하다면 문장에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이 표본에는 그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라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석실 위쪽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세라가 욕설을 삼키며 로프를 잡았다.
“토론은 밖에서 해요. 지금 여기서 천장이 내려옵니다.”
돌 한 덩이가 떨어졌다. 라온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오른팔을 들었다. 봉인 문양이 번쩍이자 공중에 얇은 회색 선이 생겼다. 선은 천장 균열을 가로질러 돌의 무게를 잠시 붙잡았다.
라온의 얼굴이 굳었다. 팔에 부담이 큰 모양이었다.
“이 틈이 닫히기 전에 모두 후퇴한다.”
그때 석문 안쪽에서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도윤은 고개를 돌렸다. 문자의 마지막 표식이 방금 전과 다른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누군가 안에서 문장을 이어 쓴 것처럼 보였다.
“잠깐.”
“한도윤.”
“저 안에 누군가 있습니다.”
“발자국은 확인했다. 생존자라는 뜻은 아니다.”
“문장이 반응하고 있습니다.”
라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문자와 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화는 아닙니다. 상대를 지정하는 문법이 남아 있습니다.”
도윤은 석문에 손을 대지 않고 획을 쫓았다. 공식 번역은 마지막 부분을 ‘죽음에 이르게 하라’고 옮겼지만 대상이 없었다. 후대 번역자가 ‘사람’을 보충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문장 끝의 표식은 하린 고어에서 기다림을 나타내는 종결어미와 자리와 방향이 비슷했다. 발음은 달랐다. 확정할 수 없었다.
“가설입니다.”
도윤은 짧게 말했다.
“이 문자는 죽음을 명령하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뜻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라가 그를 보았다.
“그럼 안에 있는 게 사람을 기다리는 건가요?”
“그것도 아직 모릅니다.”
천장을 붙잡은 회색 선이 흔들렸다. 라온의 숨이 거칠어졌다.
“확인할 시간은 오 초다.”
도윤은 석문 아래쪽의 기호를 다시 살폈다. 같은 어근이 세 번 반복되어 있었다. 한 번은 벽을 향하고 한 번은 바깥을 향했다. 세 번째는 방향이 닳아 알아볼 수 없었다.
누가 말하는가. 누구를 향하는가. 약속은 이미 맺어졌는가.
그 네 가지가 맞지 않으면 마법은 뜻과 다르게 움직인다.
도윤은 문장 전체를 읽지 않기로 했다. 대신 확실히 비교할 수 있는 어근 하나만 골랐다.
“세라. 등불을 석문 왼쪽 홈에 세워 주세요. 빛이 안쪽 표식을 가리지 않게.”
“왜 내가?”
“당신이 바닥의 빈 곳을 알고 있으니까요.”
세라는 잠시 망설이다 등불을 옮겼다. 나침반이 다시 떨렸다.
“라온 경은 균열을 세 걸음만 버텨 주세요.”
“명령인가?”
“부탁입니다.”
라온은 짧게 숨을 내쉬고 팔을 더 세웠다.
도윤은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어근의 첫 음절만 발음했다.
“에르.”
소리가 끝나자 석실 안의 먼지가 아래로 가라앉았다. 천장 균열을 붙잡은 라온의 봉인선이 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석문 표면에는 먹빛 선 하나가 도윤의 손등을 향해 번졌다.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기존 어근 인장 세 개와 다른 선이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글자를 몸에 새긴 듯 선명했다.
도윤이 숨을 삼키자 석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기록……관…….”
단어의 앞과 뒤가 깨져 정확한 음가는 들리지 않았다. 도윤은 뜻을 확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목소리가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석문이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큼 열렸다. 안쪽의 어둠 너머로 푸른빛이 깜빡였다. 누군가의 눈인지 마력의 잔광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라가 등불을 움켜쥐었다.
“저 안에 뭐가 있어요?”
“모릅니다.”
라온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런데도 들어갈 건가?”
도윤은 손등에 남은 네 번째 먹빛 선을 내려다보았다. 가설이 실제 흔적으로 남은 순간이었다. 문자는 죽음을 약속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문 안쪽에서 같은 음절이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더 분명했다.
“읽어라.”
도윤은 문장 전체를 읽지 않았다. 대신 열리는 어둠과 두 동료의 숨소리를 차례로 확인했다.
그리고 아직 자신이 모르는 문장 앞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