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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17화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파멸 예정 악녀는 연금술 카페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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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거울을 든 손님

아침 첫 마차가 라 보나 앞에 멈추기도 전에 감찰단 기사가 울타리를 한 바퀴 돌았다. 젖은 풀잎 사이에는 밤새 밟힌 자국이 셋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물레방앗간 뒤편 수로에서 끊겼다.

엘리제는 발자국 옆에 자신의 구두를 대 보았다. 짓눌린 흙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문을 하루만 닫는 편이 안전하다.”

카일레온은 물레방앗간을 바라보았다. 감찰 기사 여섯 명이 카페와 과수원 입구에 서 있었지만 물길까지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오늘 배를 가져오기로 한 농가가 열두 곳이에요. 문이 잠겨 있으면 소문을 퍼뜨리는 상단에게 또 기회를 주는 셈이죠.”

엘리제는 납품 명단을 베른에게 넘겼다.

“주문을 늘리지는 않겠어요. 하루 백 개. 검수가 끝난 원료만 굽습니다.”

“그대와 아델을 위험에 두자는 뜻은 아니다.”

“저도 압니다. 그래서 손님 동선과 공정 동선을 나누는 거예요.”

아델은 문 안에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작은 손에는 수도에서 받은 계량 스푼이 쥐어져 있었다.

“제가 있으면 손님을 못 받는 거죠?”

엘리제가 고개를 돌렸다.

“네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공정을 더 꼼꼼히 해야 하는 거야. 그건 다른 직원이 있어도 같아.”

그녀는 아델에게 공정실 안쪽의 계량대를 가리켰다. 카페와 통하는 배식창은 필요할 때만 열고 그 앞에는 나무 가림판을 세워 두었다. 비상시에는 별저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로 나가도록 로딘이 자물쇠를 손봤다.

“오늘 설탕 배합은 네 기록대로 해. 수상한 게 보이면 내게 알려 줘. 혼자 확인하러 가지는 말고.”

“네.”

아델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숨기만 하는 것보다 제가 아는 걸 말씀드릴게요.”

엘리제는 아델의 손에 저당 우유 크림 마카롱이 든 작은 통을 쥐여 주었다. 억지로 마력을 눌러 버리라는 뜻은 아니었다. 공명이 심해질 때 몸을 안정시킬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

“링이 뜨거워지면 바로 말해. 네 마력을 가라앉히느라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

아델은 링을 돌려 보았다. 작은 은색 고리는 아직 차가웠다.

에드윈이 서류함을 안고 다가왔다.

“내일 정오에 독립 검수관이 옵니다. 황실 보급 계약에 따른 첫 현장 점검입니다. 방문 시간과 동선은 봉인해 두었습니다.”

“제 공정은 보여 줄 수 있어요. 직원 명부와 개인 기록은 빼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리가 문고리를 잡았다. 안쪽에서는 버터가 녹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밖에는 첫 손님들이 줄을 섰다.

엘리제가 앞치마 끈을 조였다.

“문을 열죠.”


점심 무렵 카운터에 놓인 황금 서리배 타르트가 거의 동났다. 마리는 쟁반을 들고 손님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기사들은 무장을 숨기지 않았지만 아이를 데리고 온 농부들과 여행객들은 차를 마시며 평소처럼 웃었다.

흰 보자기를 든 여자가 줄에서 빠져나와 카운터 앞에 섰다. 먼지 묻은 외투 아래로 빳빳한 흰 소매가 보였다.

“멀리서 왔어요. 수고하는 분들에게 드릴 작은 선물입니다.”

여자는 보자기를 풀어 은색 줄이 묶인 납작한 나무 상자를 내놓았다.

“고맙지만 외부 선물은 공정실로 들이지 않아요.”

엘리제가 말했다.

“그럼 이쪽에 두죠. 그런데 여기서 어린 견습이 만든 과자가 그렇게 맛있다면서요?”

“과자는 제가 검수합니다. 주문하실 메뉴가 있나요?”

여자는 웃었지만 시선은 엘리제의 어깨 너머에 머물렀다. 마리가 우유 크림을 가지러 배식창을 연 순간이었다. 가림판 틈으로 안쪽 계량대가 잠깐 보였다.

공정실에서 작은 금속음이 났다.

아델은 마력 안정 링을 만지며 계량 스푼을 내려놓았다. 평소에는 차가운 링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배식창 틈으로 가느다란 은빛이 지나갔다.

빛이 자신에게 닿자 숨을 고르는 것만으로는 손목의 떨림이 멎지 않았다. 아델은 마카롱 한 입을 삼킨 뒤 계량대 아래로 몸을 낮췄다.

아델은 정해 둔 대로 나무판을 세 번 두드렸다.

엘리제는 곧장 마리에게 말했다.

“배식창을 닫고 이쪽 손님들을 창가 자리로 안내해 주세요.”

여자의 손가락이 상자 위에서 멈췄다.

“무슨 일인가요?”

“크림 온도를 다시 재야 해서요. 기다리시겠습니까?”

여자는 대답 대신 상자를 카운터 끝으로 밀었다. 사람이 많아지자 밖으로 나갈 길을 살피는 눈치였다.

엘리제는 손님들이 보지 못하는 쪽으로 상자를 옮겼다. 뚜껑 안쪽에 박힌 것은 작은 둥근 거울이었다. 표면은 평범했으나 테두리에 은빛 가시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울타리 낙인을 확인할 때 썼던 산도 지시약을 얇은 종이에 한 방울 적셔 테두리의 가루를 문질렀다. 눈 결정 모양의 은색 격자가 종이 위에 나타났다.

“에드윈.”

그가 다가오자 엘리제는 종이를 접어 보여 주었다. 에드윈의 얼굴이 굳었다.

“여자를 잡을까요?”

“상자에 손대지 못하게만 해요. 다른 둘이 어디 있는지 아직 모르니까요.”

에드윈은 문을 지키던 기사에게 눈짓했다. 여자가 나가면 뒤를 밟으라는 뜻이었다.

엘리제가 다시 카운터를 바라보았을 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문 앞의 종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물레방앗간 뒤편에서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터졌다.


수문을 덮은 판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물살이 공정실 옆 배수로로 세차게 밀려왔다. 뒤쪽을 지키던 기사 둘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여자를 따라 나간 기사도 수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엘리제는 창밖에서 그가 사람들 사이의 흰 소매를 놓치는 것을 보았다.

“수문 손잡이는 잠겨 있었어요!”

로딘이 물소리 너머로 외쳤다.

엘리제는 거울이 든 상자를 바라보았다. 공정실 뒤문은 수로와 맞붙어 있었다. 물이 들이치면 앞쪽의 손님 무리보다 뒤문으로 달아나기 쉬워 보였다. 적은 바로 그 길에서 아델을 기다릴 터였다.

“마리, 손님들을 앞문으로 내보내요. 베른은 생산 장부를 챙기고. 아델은 복도로.”

“공정실에 물이 들면 오븐이 망가집니다.”

아델은 자신의 계량대를 한 번 돌아보았다. 바닥에는 물이 아직 닿지 않았다.

“오븐은 로딘이 끌 거야. 네가 직접 가 볼 필요 없어.”

아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목의 링을 다시 만졌다. 배식창이 닫힌 뒤에는 열기가 줄었다. 그런데 후문 쪽 환기창 아래로 은빛이 비치자 또 뜨거워졌다.

마력을 안정시키던 링이 다시 버거워하는 듯 손목을 조였다. 아델은 두 번째 마카롱을 집으려다 손을 멈추고 먼저 엘리제를 불렀다.

“공녀님. 거울이 저쪽에도 있어요.”

엘리제는 가림판을 완전히 내렸다. 은빛이 끊기자 링의 열기가 가라앉았다.

“어떻게 알았니?”

“창이 닫히면 식어요. 열리면 뜨거워지고요. 저쪽에서 저를 보고 있어요.”

엘리제는 계량대 앞의 반응 일지를 보았다. 아델은 벽시계를 보고 빛이 들어온 시각과 링의 변화를 짧게 적어 놓았다. 두 기록 사이에 수문이 열린 시각도 표시돼 있었다.

“카일레온 님. 수문은 미끼예요. 후문 환기창에 사람이 있습니다.”

카일레온은 기다리지 않았다. 기사 하나를 로딘에게 남기고 공정실 뒤로 돌아갔다.

엘리제는 아델과 함께 별저 복도로 물러섰다. 카운터의 상자는 에드윈이 헝겊으로 감싸 들었다. 아무도 거울 앞에 아델을 세워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쇠붙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후문의 빗장이 부러지기 직전 카일레온의 검이 문과 침입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흰 소매의 남자는 작은 거울을 창에 대고 있었다. 도망치려던 그의 발목을 기사가 걸었다. 거울은 돌바닥에 떨어져 금이 갔다.

“아델을 어디로 데려가려 했지?”

카일레온의 물음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손등에는 은빛 가시가 세 갈래로 엉켜 있었다.

물레방앗간 수문을 건드린 자는 이미 숲길로 사라졌다. 카운터의 여자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로딘이 수문을 다시 잠갔다. 공정실 바닥은 젖었지만 원료 보관 선반과 오븐은 안전했다. 엘리제는 젖은 자루를 하나씩 열어 보고 검사 전까지 사용하지 말라고 표시했다.

“오늘 납품은 여기까지예요. 예약자에게는 베른이 시간을 다시 알리세요. 손님들에게는 제가 설명할게요.”

그녀가 말하자 베른이 지친 얼굴로 장부를 폈다.

아델은 계량 일지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

“저 때문에 모두 젖었어요. 그래도 제가 적은 게 도움이 됐나요?”

“네가 시각을 적어 두지 않았으면 후문으로 들어온 사람을 놓쳤겠지.”

엘리제는 아델의 기록판을 가볍게 두드렸다.

“내일은 쉬어도 돼. 공정실에 와도 되고. 네가 정해.”

아델은 일지의 젖지 않은 쪽을 펼쳤다.

“오고 싶어요. 빛이 비친 시각도 계속 적을게요. 하지만 제 이름을 손님 장부에 쓰지 말아 주세요.”

“좋아. 직원 명부와 납품 장부는 따로 둔다.”

마리가 무사히 남은 서리배 타르트 한 조각을 가져왔다. 아델은 받아 들고도 먹지 못하다가 엘리제가 첫 입을 베어 무는 것을 보고서야 작게 웃었다.

카일레온이 공정실로 들어왔다. 그의 외투 끝은 수로의 흙탕물로 더러워져 있었다.

“붙잡은 자는 감찰단이 조사한다. 도망친 둘은 수색 중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내일 검수관이 온다고 카페 문을 막지는 마세요. 검수는 제 동선에서 진행합니다.”

카일레온은 엘리제의 손에 묻은 밀가루를 보더니 잠시 웃었다.

“그대의 주방에서는 그대가 정한다. 나는 문 앞에 있겠다.”

“문 앞에서 타르트까지 먹으려면 손을 씻고 들어오셔야 해요.”

“명령을 따르지.”

에드윈이 두 사람 사이로 봉인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붙잡힌 침입자의 외투 안감에서 꺼낸 것이었다. 납품표처럼 반으로 접혀 있었지만 적힌 것은 재료 이름이 아니었다.

내일 정오. 독립 검수관 도착. 서쪽 하역문을 거쳐 공정실 입장.

에드윈은 자신의 서류함을 바라보았다.

“방문 시각과 출입 동선은 아직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검수관에게도 봉인한 지시서가 내일 아침 전달될 예정입니다.”

엘리제는 종이 가장자리의 눌린 인장을 살폈다. 침입자가 사람만 추적한 것이 아니라 공문이 움직이는 길까지 알고 있었다.

“내일 그 문으로 들어올 사람이 누구든 바로 들이지 마세요.”

카일레온이 검집에 손을 올렸다.

“누가 흘렸는지 찾아내겠다.”

엘리제는 젖은 장부를 덮었다. 달콤한 버터 냄새가 남은 주방에서 가장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거울 조각보다 검수관의 방문 시간이 적힌 그 한 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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