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19화

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

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

AD
스폰서 광고

19화: 격리선 너머

아이언 브루트의 몸체에서 아직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지한은 초소 안쪽 차폐 격벽에 손을 얹었다. 두꺼운 문 너머에서 낮은 팬 소리가 났다. 죽은 시설인 줄 알았던 센트럴 코어 진입로가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들어간다면 누가 여기 남지?"

한도윤이 장갑이 갈라진 불워크 파수꾼을 가리켰다.

"저 녀석은 흉부가 반쯤 뜯겼어. 놈들이 두 번째 수송선을 보내면?"

"그래서 쫓아가는 명령부터 뺍니다."

지한은 파수꾼의 점검 슬롯에 아르케를 대고 초소 방어 경계선을 손가락으로 그었다. 파수꾼이 협곡을 벗어나 적을 추격하는 분기를 잠갔다. 흉부 산탄포는 피포의 레이저가 없어도 사전 지정된 협곡 구역에만 발사되도록 제한했다.

"문 앞을 지키는 데 필요한 만큼만 움직여요. 전면 장갑이 45% 손상됐으니 돌파 병기와 정면으로 다시 부딪치게 하지 마십시오."

지한은 파수꾼의 등 뒤 수동 정지 레버를 열어 보였다. 한도윤이 그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손잡이를 당겨 시험했다. 푸른 광학 센서가 꺼졌다가 레버를 놓자 다시 켜졌다.

"내가 멈출 수 있군."

"대장님이 판단하십시오. 녀석도 완전하지 않아요."

한도윤은 에바를 바라봤다. 에바는 수송선이 사라진 하늘이 아니라 안쪽 격벽을 보고 있었다.

"너도 무리하면 끊고 나와라. 요새를 지키는 데 네가 필요하다."

"작전 중단 기준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결정하겠습니다."

한도윤이 짧게 웃었다.

윤세라의 무전이 들어왔다.

"보급조가 북문 방벽에 자재를 내려놓았어. 야적장 쪽 열원이 한곳으로 모이는 중이야. 아직 규모는 몰라."

"접근 징후가 생기면 즉시 알려 줘."

지한은 초소 정비 랙에서 세라믹 여과 패드와 새 가스켓 두 개를 꺼내 가방에 넣었다. 격벽 앞의 낡은 공조등이 불규칙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안쪽은 밀폐 구역입니다. 외문이 닫히면 무선 연결도 약해집니다." 카이론이 말했다.

"정비용 유선 채널을 살려 놔. 도윤 대장과는 그 선으로 연락할게."

지한은 결합된 백검 현장 키를 문 옆 슬롯에 꽂았다. 1단계와 2단계 세라믹 접점에 푸른 불이 흘렀다. 문이 열리자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폭의 전실이 드러났다.

그 안쪽 벽에는 경고가 떠 있었다.

격리 압력 불일치 / 내문 잠금 유지

피포가 먼저 들어갔다. 지한과 에바가 뒤따르자 외문이 닫혔다. 도윤의 모습은 차폐 유리 너머로 흐려졌지만 유선 채널의 녹색 불은 살아 있었다.


전실 바닥에는 백 년 묵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내문 옆의 금속 이음새만은 새로 덧칠한 것처럼 검었다. 미세한 실핏줄이 잠금선에서 공조 덕트까지 번져 있었다.

피포가 덕트 입구를 맴돌다 짧게 두 번 울었다. 청색 렌즈의 점이 안쪽에서 꿈틀대는 작은 바퀴를 비췄다.

"자동 복구기 세 대. 아직 움직여."

지한이 아르케 탐침을 덕트 정비 포트에 댔다. 화면이 정상 회로와 검은 변조 회로를 다른 색으로 나눴다.

원래 임무: 누출 부위 밀봉 / 내부 격리 유지
추가 규칙: 개문 시 포집물 외부 배출

"문을 열면 저 안에 쌓인 나노 먼지가 초소로 날아가겠군."

카이론이 답했다.

"전실 환기팬과 외부 차폐문은 같은 저압 제어 분기입니다. 전원을 내리면 복구기는 멈추지만 초소 방어문도 잠깁니다. 협곡의 고압 트랩은 별도 분기로 살아 있습니다. 훌륭한 이지선다입니다. 인간에게 특히 인기 있는 방식이죠."

"선은 둘이지. 접지는 하나가 아니야."

지한은 덕트 아래 점검 판을 뜯었다. 배선들이 검은 나노 막으로 붙어 있었다. 아르케가 안쪽 신호를 읽는 동안 화상 입은 손목에 뜨거운 바늘이 박히는 듯했다.

그가 손을 떼자 그래프가 흔들렸다.

"접속 시간이 길어지면 신경 피드백이 누적됩니다." 에바가 말했다.

"봤어. 피포, 가장 얇은 접지선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봐 줘."

피포가 덕트 안으로 들어갔다. 모터 소리가 바짝 다가오자 녀석은 몸을 틀어 복구기의 밑면으로 미끄러졌다. 레이저 점이 벽 뒤의 작은 차단 나사에 고정됐다.

삐!

"거기군. 에바, 밸브를 잡아. 열리면 먼지가 이쪽으로 온다."

에바가 신형 전술 합금 손으로 배기 밸브의 손잡이를 쥐었다. 검은 실이 손가락을 타고 기어오르려 하자 그녀는 차단 파형 대신 손잡이의 절연 외피를 조여 금속 접촉면을 봉했다.

"밸브 고정. 제 팔의 기계식 잠금으로 유지합니다."

지한은 아르케를 잠깐만 접속해 정상 밀봉 명령의 전력선과 추가 배출 규칙의 접지선을 확인했다. 그리고 절연판을 두 선 사이에 밀어 넣었다. 피포가 가리킨 나사를 전자기 해머 끝으로 눌러 분리했다.

딸깍.

검은 실핏줄이 수축했다. 복구기 세 대가 제자리에서 빙글 돌더니 자신들이 막아야 할 균열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전실 바깥 문 표시등은 계속 녹색이었다.

"외부 배출 루프 차단. 원래 밀봉 임무 복원." 카이론이 알렸다.

지한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내문 위에 다른 문장이 떴다.

수동 배기 검증 실패 / 차압 0

팬은 소리만 냈다. 공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한은 정비 덮개를 열었다. 원통형 배기 팬의 축은 붉은 결정에 물려 움직이지 않았다. 금속 여과망은 나노 가루로 굳었고 가장자리 접합부가 이미 갈라져 있었다.

"팬만 돌리면 필터가 찢어집니다." 카이론이 말했다. "외부 배출 회로를 차단해도 물리적 누출은 남습니다."

"그럼 팬부터 돌리지 않는다."

지한은 가져온 세라믹 패드와 가스켓을 꺼냈다. 외문 너머에서는 도윤이 방위대원들과 함께 파수꾼 뒤편 차폐판의 고정 볼트를 조이고 있었다. 아직 문을 다시 열 수는 없었다.

에바가 팬 축의 무게를 받쳤다.

"새 프레임의 토크라면 강제 회전이 가능합니다."

"베어링부터 비우자. 너까지 힘으로 밀어붙일 필요 없어."

에바는 손가락을 멈췄다. 그녀의 붉은 눈이 필터의 찢어진 가장자리로 향했다.

"먼저 고쳐야 할 것이 따로 있군요."

"그래. 넌 축을 고정해 줘."

지한은 베어링 고정핀을 뽑았다. 붉은 결정이 축과 하우징 사이에 소금처럼 끼어 있었다. 칼날로 긁어내자 결정 밑에 검은 나노 막이 드러났다.

그는 밀폐 수거통 뚜껑을 열고 오염 가루를 밀어 넣은 뒤 봉인을 눌렀다. 에바가 마찰면을 조금씩 돌려 숨은 결정을 드러냈다. 자칫 손가락이 미끄러지면 여과망을 찢을 거리였다.

피포가 갈라진 접합부에 레이저를 고정했다. 지한은 가스켓으로 여과망의 약한 가장자리를 감싸고 패드를 균열 위에 덧댔다. 압력 테스트를 위해 공기 펌프를 아주 낮은 출력으로 켰다.

낡은 여과망이 가볍게 떨렸다. 미세한 먼지가 패드에 걸려 멈췄다.

"그렇지. 아직 쓸 수 있어."

아르케 화면에 두 갈래 경로가 떴다. 하나는 결합된 현장 키로 현장 장치를 상위 지휘망에서 떼는 명령이었다. 다른 하나는 심층 봉인 해제 요청이었다. 두 번째 줄은 회색으로 잠겨 있었다.

현장 키 권한: 오염 지휘망 차단 및 자율 방어 인계
심층 봉인 해제: 권한 없음

"열쇠 하나로 전부 여는 구조는 아니었군." 지한이 말했다.

카이론이 덧붙였다.

"그래서 네오 오더가 두 키를 탈취해도 다음 문 앞에서는 누군가의 추가 승인이 필요했을 겁니다. 현시점에서 그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지한은 상위 지휘망 재접속 금지를 로컬 장치에 적용했다. 규정 44조의 원본 서명이 초록색으로 확인됐다. 에바가 축을 천천히 돌렸다. 처음에는 긁히는 소리가 났다가 팬 날개가 한 바퀴를 온전히 돌며 소리가 가라앉았다.

차압 정상 / 포집물 내부 밀봉 / 내문 개방 허가

전실 내문이 손가락 폭만큼 열렸다. 지한은 여과망과 배기 통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검은 가루는 밀폐 수거통 안에 남았고 바깥쪽 압력계는 안정됐다.

문 너머 좁은 정비 통로에는 사람 손으로 돌리는 차단핀이 줄지어 있었다. 맨 앞 핀에는 오래된 공구 자국과 흰 페인트가 남아 있었다. 벽면 작업표의 마지막 줄이 겨우 읽혔다.

화이트 소드 현장조 / 내측 격리 수동 폐쇄

에바가 그 글자를 한참 바라봤다.

"누군가 안에서 문을 닫았습니다."

"기록은 그래. 왜 그랬는지는 더 봐야 해."

지한이 작업표 뒤쪽을 넘겼지만 그 아래는 타서 사라져 있었다. 에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팬 축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통로 끝에서 두꺼운 문이 길을 막았다. 문의 왼편에는 수동 승인 단말이 있었다. 오른편에서는 작동 중인 적 없는 작은 송신기가 붉은 점을 찍었다.

카이론이 두 신호를 나란히 띄웠다.

원본 요청: E.V.A.-004 / 현장 자율 방어 인계 / 로컬 승인
추가 요청: E.V.A.-004 / 즉시 응답 / 외부 경로
자동 연결 대기: 00:00:20

"두 번째는 어디서 왔지?" 지한이 물었다.

"이 구간의 배선도에는 없는 송신선입니다. 대기 시간이 끝나면 로컬 판독 창에 자동 연결됩니다. 그 뒤 승인 신호를 받으면 복제해 밖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에바가 단말 앞으로 갔다. 문 표면에서 낮은 기계음이 울렸다. 그녀의 식별자가 자동으로 읽히려는 순간 에바는 한 걸음 물러났다.

"전체 응답은 허가하지 않습니다. 제 식별자의 로컬 판독만 승인합니다."

송신기의 붉은 점이 빠르게 깜박였다. 아르케 화면에 동일한 식별자를 요구하는 두 개의 승인 창이 겹쳐졌다.

초소와 연결한 유선 채널로 한도윤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지한. 야적장 쪽 열원이 움직인다. 아직 초소로 오진 않았지만 오래 기다릴 수는 없어."

지한은 단말의 낡은 수동 커넥터를 살폈다. 붉은 송신선의 끝은 벽 안으로 사라졌다.

"알겠습니다. 다만 이걸 그대로 받으면 문보다 놈들이 먼저 에바를 찾습니다."

에바는 지한 옆에 섰다. 그가 차단하라고 명령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제 신호의 범위는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문 위의 두 승인 창이 동시에 카운트를 시작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