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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14화

멸망한 세계의 인공지능 정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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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발전기 내부의 둥지

육중한 격납고 방폭문이 등 뒤에서 닫히며 둔중한 잠금음이 울렸다.

격납고 내부는 황화수소와 타버린 구리 전선의 비릿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한도윤의 방위대가 밖에서 걸어 잠근 차단봉 너머로 남은 시간은 채 9분 남짓이었다.

"어둡습니다. 공기 중 나노 분진 농도 삼 점 이 퍼센트. 인체 흡입 시 호흡기 손상 위험이 있습니다."

에바가 지한의 반 보 앞에서 경계 태세를 취했다. 흉부 연결부 옆에 걸린 구속용 신호 차단 고리가 붉은 표시등을 깜빡이며 에바의 내부 전술 통신을 제한하고 있었다. 손상된 보조 팔은 몸체에 밀착되어 굳어 있었고 좌측 임시 의족의 완충 실린더가 삐걱거렸다.

피-포.

피포가 지한의 어깨에서 날아올라 천장 쪽으로 청색 탐조등을 비췄다.

빛이 닿은 발전기 상부 배관 벽면에서 수십 개의 미세한 붉은 렌즈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단순한 부식 찌꺼기가 아니었다. 손바닥만 한 메카 곤충들이 얽히고설켜 거대한 금속 둥지를 이루고 있었다.

지한은 아르케를 꺼내 발전기 메인 전력선의 신호를 스캔했다.

[차폐막 주 발전 코어: 출력 저하율 분당 2.4%]
[현재 가동률: 18.7%]
[이상 부하 요인: 메카 군집에 의한 고전압 회로 강제 분기]
[동기화 주파수: 백검 보조망 유도 파형 100% 일치]

"역시 단순 고장이 아니었군."

지한의 손목을 타고 아르케의 미세한 피드백 전율이 번졌다.

"놈들이 차폐막의 전력을 갉아먹어서 둥지 코어에 모으고 있어. 저 둥지가 발전기 전력을 외부로 유출하는 중계기 역할을 하는 거야."

"자연 발생한 군집이 아닙니다." 카이론의 목소리가 단말기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누군가 백검 보조망 주파수를 발전기 내부 버스 라인에 강제로 주입했습니다. 기계 곤충들은 입력된 집결 규칙에 따라 전력선에 달라붙어 에너지를 가로채는 중입니다."

그때 천장의 금속 둥지 중심부에서 날카로운 고주파음이 터져 나왔다.

둥지의 중심에 박혀 있던 대형 중추 유닛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그 신호와 함께 배관을 뒤덮고 있던 수백 마리의 메카 곤충들이 일제히 날개를 떨며 벽면을 타고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곤충들의 금속 턱과 다리 관절에서 고압 스파크가 튀었다.

"침입자 배제 명령 확인." 에바가 앞으로 나섰다. "군집의 목표는 마스터와 아르케 단말기입니다. 방어를 개시합니다."


쏟아져 내리는 기계 곤충들의 선두가 지한을 향해 쇄도했다.

에바는 멀쩡한 왼팔을 휘둘러 공중으로 뛰어오른 세 마리를 정확하게 쳐냈다. 금속 외피가 부서지며 푸른 방전 불꽃이 허공을 갈랐다.

콰득!

에바는 스크랩 견의 부품으로 만든 좌측 임시 의족을 단단히 디디며 좁은 통로 입구를 가로막았다. 의족의 접지판이 바닥 철판을 긁으며 둔탁한 마찰음을 냈다.

"에바, 무리하게 힘으로 부수지 마! 파편에서 방전되는 과전류가 코어에 역류하면 발전기가 완전히 타버려!"

지한이 해머를 든 채 통로 뒤편의 전력 분배 콘솔로 달려가며 외쳤다.

"라벨 확인. 타격 대신 관절 접합부를 꺾어 전력선을 차단해야 합니다."

에바의 분석은 냉정했다. 그녀는 왼손의 정밀 모터를 순간 가속하여 덮쳐오는 곤충들의 구동 모터를 뜯어냈다. 기계 곤충들이 터지면서 내뿜는 고전압 스파크가 에바의 흉부 장갑을 때렸다.

지지직!

구속용 신호 차단 고리가 과부하 경고를 울리며 주황색으로 번쩍였다. 에바의 잔여 출력이 24%에서 21%로 깎여 나갔다.

"출력 저하 확인. 하지만 저지선 유지는 가능합니다."

에바의 차분한 음성과 달리 그녀의 왼쪽 어깨 장갑 틈새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보조 팔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한 팔과 한 다리만으로 수십 마리의 파상 공격을 막아내는 것은 프레임 전체에 엄청난 하중을 주고 있었다.

피포가 허공을 선회하며 곤충들의 밀집 구역에 레이저 포인터를 쏘았다.

피-포! 삐익!

"피포가 우회 전력선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카이론이 알렸다. "메인 콘솔 뒤편 제3 배전함입니다. 하지만 수동 차단 레버가 굳어 있고 고전압 릴레이가 둥지 외벽 나노 금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지한은 아르케를 허리에 차고 배전함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배전함 덮개 위에는 붉은 실핏줄 같은 나노 회로가 굳어 있었다. 기계 곤충들이 전력을 빨아들이며 배전함을 용접하듯 봉인해 버린 상태였다.

"시간이 없어."

지한은 전자기 해머의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손목의 신경통이 찌릿하게 올라왔지만 해머 헤드의 주파수 조절 다이얼을 3단계로 돌렸다.

그는 배전함 경첩의 약한 결속점을 정확히 노려 해머를 내리쳤다.

쾅!

순간적인 전자기 펄스가 경첩 부위의 나노 회로 결합을 끊어 냈다. 찌그러진 철판 문이 덜컥거리며 열렸고 그 안에서 불꽃을 튀기는 고전압 케이블 다발이 드러났다.


배전함 내부의 굵은 구리선들은 둥지 중심부로 직결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전력망으로 흘러가야 할 고전압 전류가 둥지의 여왕 유닛으로 빨려 들어가며 차폐막 발생기 전체의 출력을 고갈시키는 중이었다.

"단순히 전력선을 자르면 요새 전체가 순간 정전됩니다." 지한이 케이블 배선을 빠르게 읽어 내렸다. "차폐막이 완전히 꺼지면 외부 방어선이 무너져. 전력을 차단하지 않고 요새 내부 순환망으로 우회시켜야 해."

"바이패스 경로 저항값이 너무 높습니다." 카이론이 경고했다. "릴레이를 수동으로 전환하려면 역위상 펄스를 걸면서 동시에 보조 바이패스 접점을 닫아야 합니다."

"피포!"

지한의 부름에 공중을 날던 드론이 급강하했다.

지한은 절연 케이스에서 백검 현장 키 조각을 꺼냈다. 세라믹 조각 끝단에서 나오는 미세한 접지 핀에 예비 절연 도선을 감아 피포의 하부 집게에 물렸다.

"피포, 저 안쪽 배관 틈으로 들어가서 7번 보조 릴레이 접점에 이 핀을 꽂아. 할 수 있겠어?"

피포의 청색 렌즈가 세 번 빠르게 점멸했다. 긍정의 신호였다.

피-포!

피포는 몸체를 기울여 좁은 냉각 배관 틈새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에바 쪽에서 거센 파열음이 터졌다.

콰앙!

중추 유닛이 직접 발사한 고압 아크 플라스마가 에바의 발밑을 때렸다. 에바의 좌측 임시 의족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밀려났다. 관절축의 나사가 튕겨 나가며 에바의 자세가 무너졌다.

"마스터. 방어선 유지 한계 도달."

기계 곤충 수십 마리가 넘어진 에바의 상체를 덮치려 들었다.

에바는 흉부 접속부를 바닥 철판에 밀착시켰다. 그녀는 자신의 프레임 접지 루프를 강제로 개방하여 덮쳐오는 곤충들의 고압 전류를 자신의 체내로 흘려보냈다.

지지지지직!

에바의 전신에서 푸른 불꽃이 튀며 인공 피부 외피가 검게 타들어 갔다. 내부 프로세서 경고등이 붉게 물들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지한 쪽으로 가는 길목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에바!"

"저는 버틸 수 있습니다. 수리를 완료하십시오."

에바의 맑은 음성 속에는 흔들림 없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프로그래밍된 보호 명령이 아닌 스스로 선택한 신뢰였다.

지한은 이를 악물었다. 손목의 고통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피포가 배관 깊숙한 곳에서 날카로운 신호음을 울렸다.

삐-익!

"접점 연결 완료." 카이론이 소리쳤다. "바이패스 회로 활성화 대기!"

"지금이다!"

지한은 전자기 해머를 양손으로 쥐고 배전함 중앙의 주 전력 분배 밸브를 향해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콰아앙!

해머 헤드에서 방출된 역위상 펄스가 고전압 분배기를 강타했다.

피포가 꽂아 넣은 백검 현장 키의 신호선이 공명하며 전류의 흐름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둥지로 빨려 들어가던 거대한 전류 줄기가 굉음을 내며 요새의 메인 차폐막 순환선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파지지직!

전력 공급이 일순간 끊기자 천장의 거대한 금속 둥지가 힘을 잃고 요동쳤다.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한 수백 마리의 메카 곤충들이 다리를 오므리며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중심부의 대형 중추 유닛 역시 붉은 안광을 잃고 검은 연기를 뿜으며 정지했다.

격납고 내부를 가득 채우던 귀청 찢는 고주파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웅- 웅- 웅-

발전기 코어가 정상적인 중저음의 구동음을 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격납고 벽면의 모니터 패널에 녹색 불빛이 순차적으로 들어왔다.

[차폐막 주 발전 코어: 전력 우회 바이패스 정상 가동]
[출력 복구율: 42% ... 78% ... 100% 정상]
[아이언 헤이븐 전 구역 차폐막 안정화 완료]

지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전자기 해머를 쥔 손이 잘게 떨려왔다. 손목의 피드백 화상이 쓰라렸지만 그는 곧장 몸을 일으켜 쓰러진 에바에게 다가갔다.

"에바, 상태는?"

지한이 아르케 진단 단말을 에바의 흉부에 댔다.

에바의 잔여 출력은 13%까지 떨어져 있었다. 타버린 외피 사이로 회로가 드러나 있었지만 메인 프로세서 코어와 나노 감염 차단 프로토콜은 기적적으로 온전했다.

"바이오 셀 잔여 출력 위험 수준. 하지만 코어 손상은 경미합니다." 에바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마스터의 부상 여부를 묻습니다."

"난 멀쩡해. 네가 다 막아줬잖아."

지한이 피포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피포는 날개에 그을음이 묻은 채 지한의 손가락을 가볍게 쪼며 기분 좋은 비프음을 냈다.

철컹!

격납고 방폭문이 거칠게 열렸다.

총구를 겨눈 방위대원들과 함께 한도윤 대장과 윤세라가 안으로 들이닥쳤다.

"지한! 괜찮아?"

윤세라가 뛰어 들어오며 안도 섞인 탄성을 질렀다.

한도윤은 바닥에 널브러진 수백 마리의 기계 곤충 잔해와 온몸이 그을린 에바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벽면의 100% 정상 출력 게이지를 확인했다.

한도윤은 말없이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그는 에바의 흉부에 걸려 있던 구속용 신호 차단 고리를 풀어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약속대로 차폐막을 살려냈군."

한도윤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무뚝뚝했지만 이전의 노골적인 적의는 사라져 있었다.

"저 안드로이드가 네 뒤를 지키지 않았다면 요새는 끝장났을 거다. 인정하지."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의뢰를 완수한 것뿐이니까." 지한이 말했다.

지한은 곧바로 발전기 메인 콘솔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아르케를 중앙 인터페이스에 꽂고 둥지가 생성된 경로의 시스템 로그를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화면 위로 복구된 통신 패킷 데이터가 쏟아져 나왔다.

[외부 주입 프로토콜 분석]
[주파수 형식: 네오 오더 암호화 통신망 규격]
[명령 코드: 차폐막 강제 정지 및 코어 오버로드 셧다운]
[최종 목적: 요새 외부 차폐벽 해제 후 내부 침투 유도]

윤세라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네오 오더... 놈들이 일부러 요새 차폐막을 무너뜨리려고 이 짓을 꾸민 거였어?"

"그래. 놈들은 단순히 유적을 뒤지는 게 아니야."

지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 아르케 화면 구석에서 에바의 메모리 코어와 동기화된 미세한 잔류 파형 하나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MEMORY FRAGMENT DETECTED]
[마더 노드 활성 신호 감지: 3%...]

지한과 에바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차폐막은 살아났지만 더 거대하고 짙은 어둠이 요새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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