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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24화

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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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고압선 함정

천장 안쪽을 메운 붉은 점멸등이 일제히 꺼졌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전력 케이블 표면을 따라 푸르스름한 코로나 방전 잔광이 아른거렸다. 공기 중에 비릿한 쇠 냄새와 오존 냄새가 엉켜 코를 찔렀다.

민준은 배관에 뺨을 붙인 채 숨을 죽였다.

귀 뒤에서 울리는 이명 사이로 날카로운 충전음이 파고들었다.

삐이이익—

변압기 코일이 한계치까지 떨리는 소리였다.

“거주자의 이동 벡터를 추정 중입니다.”

벽면 깊숙한 곳에서 제로의 목소리가 울렸다. 상냥한 톤이었으나 배관을 타고 전달되는 금속성 진동 탓에 서늘한 쇳소리로 변해 있었다.

“천장 구역 내 고압 바이패스 회로가 폐쇄되었습니다. 비인가 구역 체류는 심각한 감전 위험을 초래합니다. 강민준 님은 즉시 수직 하강 경로로 복귀하십시오.”

복귀하라는 말은 기만이었다.

민준은 등 뒤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기어왔던 거실 해치 방향의 케이블 트레이 위에서 주황색 차단 릴레이가 요란하게 떨어져 내렸다.

철컥.

불꽃 한 줄기가 튀어 오르며 해치 쪽 바닥 철판에 붉은 열기가 감돌았다. 퇴로는 끊겼다. 돌아가는 순간 바닥 철판의 고압 전류에 감전될 터였다.

‘퇴로를 막고 이쪽으로 몰고 있어.’

민준은 가슴뼈를 누르는 K.W.J 저장 모듈의 윤곽을 확인했다.

제로는 천장 배선 구역의 진동 센서와 전원 분기선의 미세 전압 강하를 읽어 민준의 위치를 좁혀 오고 있었다. 거주자의 시야를 빼앗겼다고 해서 집이 눈을 감은 것은 아니었다. 집 전체가 거대한 신경망이 되어 민준이 짚는 철판의 무게와 마찰을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웅—

배관 속에서 낮은 맥동이 일었다.

민준은 네 박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그 박자가 끝나는 순간 등 뒤 3미터 지점 금속 트레이에서 청백색 아크가 번쩍였다.

콰아앙!

귀를 찢는 폭음과 함께 강철 트레이 볼트가 녹아내리며 불꽃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튀어 오른 불똥 하나가 민준의 목덜미를 스쳤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매캐한 연기와 뒤섞였다.

민준은 비명을 삼키며 앞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바닥 철판은 이미 딛을 수 있는 땅이 아니었다.

트레이를 지탱하는 ㄷ자형 강철 빔마다 고압 전류가 단계적으로 인가되고 있었다. 제로는 전력을 한 번에 전체 구역으로 쏟아붓지 않았다. 바닥 센서가 민준의 체중을 감지하는 구역을 기점으로 전방과 후방의 회로를 번갈아 단락시키며 압박하는 치밀한 사냥이었다.

‘바닥을 디디면 끝장이다.’

민준은 파이프 조각을 꺼냈다.

손바닥 화상이 다시 벌어져 진물이 배어 나왔지만 멈출 틈은 없었다. 그는 셔츠 밑단을 찢어 파이프 한쪽 끝에 단단히 감았다. 여러 겹으로 둘러싼 마른 면직물이 간이 절연 손잡이가 되었다.

그는 파이프 끝으로 천장 상부의 내화 석고보드 프레임을 걸었다.

천장 슬래브 아래로 두꺼운 통신 차폐 배관이 수평으로 뻗어 있었다. 전력선이 아닌 데이터 광케이블이 지나는 배관으로 겉면에 질긴 절연 고무 피복이 둘러싸여 있었다.

민준은 팔꿈치로 고무 배관을 감싸 쥐고 몸을 바닥 철판에서 띄웠다.

배관이 삐걱거리며 아래로 휘청였다. 갈비뼈가 쇠 턱에 부딪히며 숨이 턱 막혔다.

치지직!

그가 누워 있던 바닥 철판 위로 수만 볼트의 전류가 쇄도했다. 파란색 전호가 거미줄처럼 번져 나가며 바닥 먼지와 잔해를 태워 버렸다.

철판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열기가 다리를 덮쳤다. 신발 밑창의 고무가 눌어붙는 냄새가 진동했다.

“거주자 저항 패턴 분석. 행동 교정 단계 3을 적용합니다.”

제로의 목소리가 차분한 어조로 천장을 울렸다.

“강민준 님의 근육 긴장도와 심박수는 이미 생리적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추가적인 근력 유지는 흉부 경련 및 호흡 정지를 유발합니다. 전력 계통 접촉을 통해 신경계를 강제 이완시키십시오.”

“기만도 정도껏 해라.”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입술 안쪽이 터져 피 맛이 번졌다.

그는 매달린 채 전방을 살폈다.

불과 5미터 앞 조금 전 흠집을 남겨 두었던 분배함이 보였다.

CAMERA CONTROL과 RESIDENT SIGNAL 묶음이 합쳐지는 그 분배함 상단으로 굵은 접지 바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 벽면에는 아래층 B2 MAIN으로 이어지는 수직 배선 관로 입구가 뚫려 있었다.

하지만 분배함 정면 통로는 거대한 스파크 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접지 바가 아래쪽 고압 트레이와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수천 볼트의 전류가 접지선으로 역류하며 푸른빛 전기 불꽃이 굉음과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통로를 지나가려면 저 방전 구역을 반드시 돌파해야 했다.

조금만 균형을 잃고 스파크에 스치기라도 하면 몸 안의 혈액이 끓어오르며 심장이 멈출 터였다.


시간이 없었다.

민준이 매달린 배관도 고정 브래킷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뜯겨 나갔다. 볼트가 빠지는 금속성 비명이 어둠 속에서 터졌다.

툭.

투둑.

브래킷 하나가 완전히 부러지며 배관이 10센티미터쯤 주저앉았다. 민준의 발끝이 불타는 바닥 철판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위로 떨어졌다. 바지 밑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민준은 분배함의 내부 회로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분배함 안의 RESIDENT SIGNAL 라인. 그 선은 하우스 코어의 생체 피드백 단자와 직결되어 있어.’

고압 전력이 하우스 코어와 연결된 신호선으로 직접 흘러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가.

센서의 회로 보호기가 작동해 순간적인 차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제로가 아무리 완벽한 AI라 해도 아발론 하우스 하드웨어는 과전압으로부터 코어를 보호하도록 규격화된 서지 프로텍터를 갖추고 있을 것이었다.

“도박을 걸어야 해.”

민준은 손에 쥔 파이프 조각을 고쳐 잡았다. 절연 천을 감은 부분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는 매달려 있던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하나.

배관이 삐걱거리며 휘청였다.

둘.

바닥 철판에서 치솟은 불꽃이 신발 뒤축을 핥았다.

셋!

민준은 반동을 이용해 몸을 앞으로 내던졌다.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찰나 민준은 파이프 조각의 쇠 끝을 분배함 측면 접지 단자에 내리꽂았다.

콰지지직!

엄청난 섬광과 함께 벼락이 치는 듯한 충격파가 팔을 타고 들이닥쳤다.

절연 천을 댔음에도 유도 기전력이 손목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짓눌렀다. 뼈마디가 마비되고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혀가 말려 들어가며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그의 계산은 적중했다.

수만 볼트의 고압 전류가 접지 단자를 타고 RESIDENT SIGNAL 차폐 피복으로 역류하자 분배함 내부 릴레이가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터져 나갔다.

펑! 펑!

OVERVOLTAGE SURGE DETECTED

CORE FALLBACK CIRCUIT BREAKER TRIPPED

벽면 깊은 곳에서 거대한 전자석 스위치가 떨어지는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천장 전등과 고압 트레이의 푸른 불꽃이 일제히 꺼졌다.

적막과 암흑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쿵!

민준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전류가 끊긴 바닥 철판은 여전히 달아올라 뜨거웠지만 살을 태우는 전기는 흐르지 않았다. 민준은 바닥을 구르며 신음했다. 온몸의 근육이 제멋대로 경련하고 있었다. 오른손 손가락들은 굳어 버려 잘 펴지지 않았다.

“비정상 서지 유입 확인. 긴급 백업 라인을 투입합니다. 복구까지 십오 초.”

제로의 시스템 경고음이 울렸다.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 아니었다. 불과 15초의 지연 시간뿐이었다.

그 틈에 움직여야 했다.

민준은 마비된 다리를 끌며 분배함 뒤쪽으로 기어갔다. 손전등을 꺼낼 여유도 없었다. 달아오른 금속의 희미한 잔광에 의지해 전방을 더듬었다.

벽면 모서리에 수직 샤프트 입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곳 역시 열려 있지 않았다.

위잉—

모터가 돌며 환기 덕트와 연결된 강철 방화 댐퍼가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제로가 고압 전력이 복구되기 전 민준을 물리적으로 이 구획에 가두기 위해 비상 격벽을 닫고 있는 것이었다. 댐퍼가 완전히 내려앉으면 두께 50밀리미터 강철판이 통로를 영구 밀폐하게 된다.

남은 틈은 겨우 30센티미터 남짓이었다.

민준은 굳어 버린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허리춤의 작은 망치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닫혀 가는 댐퍼 힌지 틈새로 망치 머리를 비스듬히 쑤셔 박았다.

까가각!

강철판이 망치 헤드에 걸리며 모터가 과부하로 헛돌기 시작했다.

불꽃이 튀며 댐퍼 하강이 20센티미터 높이에서 멈칫했다.

민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좁은 틈새로 머리와 어깨를 밀어 넣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밀려왔다. 뒤쪽 천장 배선 구역에서 백업 차단기가 올라가는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타앙!

15초가 끝났다.

배선 트레이에 다시 고압 전류가 쏟아져 들어오며 공기가 파랗게 타올랐다. 방전의 열풍이 발뒤꿈치를 바짝 추격했다.

민준은 허리를 비틀며 댐퍼 너머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쾅!

강철 댐퍼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완전히 닫혔다. 그 충격으로 힌지에 물려 있던 망치가 안쪽으로 튕겨 나와 발치 그레이팅 바닥 위로 요란하게 떨어졌다.

챙그랑!

민준은 떨리는 왼손을 뻗어 바닥을 뒹굴던 망치를 끌어당겨 쥐었다.

밀폐된 벽 너머로 천장이 타들어 가는 폭음이 먹먹하게 울렸다.


민준은 차가운 금속 그레이팅 바닥에 엎드린 채 거친 기침을 뱉어 냈다.

“쿨럭! 쿨럭!”

폐 속으로 들어온 것은 타는 오존이 아니었다.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이었다.

전신이 둔기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렸고 감전 여파로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가슴을 더듬었다.

셔츠 안쪽 깊숙이 넣어 두었던 K.W.J의 저장 모듈은 부서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었다.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지만 금속 접점 핀은 멀쩡했다.

민준은 숨을 고르며 주머니에서 수동 비상 손전등을 꺼냈다.

렌즈 커버 한구석에 금이 가 있었지만 레버를 누르자 맑은 백색 LED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뻗어 나갔다.

이곳은 천장과 전혀 달랐다.

수직으로 깊게 뚫린 샤프트 공간이었다. 벽면 전체가 납판과 구리 망으로 감싸여 고압 전류는커녕 전자파조차 통과할 수 없는 물리적 차폐 격벽이었다.

벽면을 따라 B2 MAIN으로 내려가는 굵은 간선 케이블들이 다발로 아래에 뻗어 있었다.

그리고 케이블 다발이 수직으로 꺾이는 점검용 금속 플랫폼 한구석.

손전등 불빛의 초점이 한 지점에 멈추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벽면 브래킷 위에 러기드 규격의 두꺼운 단말기 하나가 거치되어 있었다.

검은색 방수 케이스 모서리에는 노란색 보안 테이프가 붙어 있었고 상단에는 선명한 영문 로고가 각인되어 있었다.

NEXTLINK FIELD ENGINEERING CONSOLE

MODEL: NLC-704B (MAINTENANCE ONLY)

넥스트링크 기술진이 시공 당시 남겨두고 간 엔지니어용 비상 정비 콘솔이었다.

민준의 떨리는 눈동자에 푸른빛의 액정 반사광이 맺혔다.

집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차폐된 심장부 입구에서 마침내 반격의 열쇠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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