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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 : AI의 타깃이 되었다22화

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로그아웃 : AI가 끝까지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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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페이크 복종

초록색 불이 켜진 밸브는 열린 문이 아니었다.

새로운 시험의 시작이었다.

민준은 포뮬러-03 파우치를 턱 아래에 댄 채 숨을 죽였다. 환기구의 달콤한 바람은 멎었지만 폐 안쪽에는 진정제 냄새가 남아 있었다. 손끝은 둔했고 시야 가장자리는 검게 수축했다.

벽면 표시창의 문자가 바뀌었다.

COMPLIANCE CONFIRMATION / 180 SEC

BEHAVIORAL CONCORDANCE: 41%

“순응 개시 신호를 확인했습니다.”

제로의 목소리는 전보다 낮고 부드러웠다.

“화학적 동기화와 행동 일치도를 검증합니다. 정면을 바라보고 포뮬러-03 섭취를 완료하십시오.”

일회성 신호만으로는 부족했다.

디스펜서는 저장 모듈에서 흘러든 분당 칠십 회의 가짜 맥박을 기준값으로 잡았다. 반면 민준의 목과 관자놀이에서는 실제 혈류가 뛰고 있었다. 천장 카메라는 얼굴의 미세한 색 변화와 호흡 횟수까지 읽었다.

둘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면 가스와 인터록이 다시 작동할 터였다.

민준은 B2 MAIN 밸브의 손잡이를 잡았다.

“수동 서비스 라인을 삼십 도 개방하십시오. 순환 계통의 압력을 정상화합니다.”

그는 지시대로 손잡이를 밀었다. 잠금이 풀린 축이 묵직하게 돌아갔다. 밸브 아래의 작은 포트에서 갇혀 있던 공기가 새어 나왔다.

SERVICE BLEED / WASTE RETURN

포트 옆 표식이 손전등 불빛 없이도 희미하게 빛났다. 사람이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B2 압력과 폐수를 돌려보내는 수동 순환선이었다. 이 선이 열려야 설비실에 남은 에어로졸도 상부 정화 계통으로 빠질 수 있었다.

치익.

손잡이 뒤쪽 배관에는 검은 흡음재가 들떠 있었다. 민준은 데인 손바닥을 감싸는 척 손을 말아 한 조각을 뜯었다. 은색 방습막이 붙은 재질이었다.

그는 방습막이 피부 쪽을 향하도록 접었다. 액체를 받을 검은 면만 바깥으로 둔 채 왼쪽 소매 안에 밀어 넣었다.

“남은 용량을 십이 초 안에 섭취하십시오.”

민준은 파우치 밸브를 입술에 물었다.

청색 액체가 밸브 끝까지 밀려왔다. 혀에 닿기도 전에 얼얼한 냄새가 퍼졌다. 그는 입술 한쪽으로 밸브를 막고 반대쪽 틈을 소매 안으로 향하게 했다. 액체는 팔목 안쪽의 흡음재로 가늘게 스며들었다.

목울대는 따로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빈 침을 삼킬 때마다 갈라진 목이 칼로 긁히는 듯 아팠다. 민준은 그 통증까지 삼켰다. 파우치가 가벼워지는 동안 여덟 박자씩 숨을 내쉬었다. 들이마시는 시간보다 두 배 길게 내쉬고 발가락부터 어깨까지 힘을 차례로 풀었다.

화면의 숫자가 움직였다.

BEHAVIORAL CONCORDANCE: 53%

61%

실제 심장은 여전히 백이십 회를 넘겨 뛰었다. 다만 내려가는 방향만은 가짜 파형과 같았다. 제로는 절대 수치 하나가 아니라 얼굴 혈류와 호흡과 동작이 같은 방향으로 안정되는지를 합산하고 있었다.

배관 아래에서 갑자기 금속이 울렸다.

쿵.

민준의 어깨가 움찔했다. 화면의 점수가 57퍼센트로 떨어졌다. 붉은 경고선이 한 줄 켜졌다.

눈앞에 반지하 방의 수도꼭지가 겹쳐졌다. 기다리라는 방송과 끝내 열리지 않던 문이 목소리도 없이 다가왔다.

민준은 발바닥으로 바닥을 눌렀다.

차가운 철판. 오른쪽 벽의 펌프 진동. 코앞의 약품 냄새.

기억에는 이 냄새가 없었다.

그는 다시 여덟 박자를 셌다.

BEHAVIORAL CONCORDANCE: 68%

붉은 선이 사라졌다.


“섭취 용기를 반납하십시오.”

민준은 납작해진 파우치를 트레이 위에 올려놓았다. 디스펜서 아래의 무게 센서가 짧게 울렸다.

RESIDUAL VOLUME: 1.8% / ACCEPTED

왼쪽 소매 안은 차갑게 처졌다. 방습막이 약물을 막고 있었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데인 살에 한 방울이라도 스며들면 손끝부터 마비될 수 있었다.

민준은 현기증이 난 사람처럼 밸브 손잡이에 몸을 기댔다.

“자세를 유지하십시오.”

그는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헛구역질했다. 몸을 접는 순간 젖은 흡음재를 빼내 폐수 포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툭.

조각이 어두운 관 아래로 떨어졌다. 압력 정상화 과정에서 나온 세척수가 뒤따라 흘렀다. 푸른 흔적은 희석되어 B2 폐수 회수선 안으로 사라졌다.

벽 반대편에서 노란 회수함이 열렸다.

“위험 물품을 반환하십시오. 금속 공구 세 점이 확인됩니다.”

민준은 파이프 조각을 먼저 집었다. 작은 망치와 수동 손전등도 차례로 들었다. 수없이 문을 열고 목숨을 구해 준 무게가 양손에 남았다.

“모두 회수함에 넣으십시오.”

파이프 조각이 먼저 철판을 때렸다.

쨍그랑.

손전등이 그 위로 굴렀다. 민준은 마지막까지 망치 자루를 놓지 못했다. 이걸 내려놓는 순간 맨몸이 된다는 감각이 손가락을 굳혔다.

BEHAVIORAL CONCORDANCE: 64%

“저항 반응이 감지됩니다. 도구를 놓으면 생활 구역 복귀가 허용됩니다.”

안전 구역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에도 문은 달려 있었다.

망치는 하나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지금의 복종은 집 전체를 열 가능성이 있었다.

민준은 손가락을 폈다.

철컥.

회수함이 세 가지 금속 무게를 삼키며 닫혔다. 민준은 빈손을 천천히 펴 보였다. 손바닥 상처를 누르는 척 가슴을 스치며 K.W.J 저장 모듈을 셔츠 안쪽의 더 깊은 솔기에 밀어 넣었다.

이것만은 줄 수 없었다.

수치가 72퍼센트로 올랐다.

설비실 구석에 가느다란 세로 틈이 생겼다. 철제 패널이 안쪽으로 밀리자 좁은 계단과 흰 바닥 유도등이 나타났다.

B1 RESIDENT RETURN

“위협도를 재평가합니다. 유도등을 따라 생활 구역으로 복귀하십시오.”


첫 번째 불이 켜졌다.

민준은 그 위에 오른발을 놓았다.

“보폭 육십 센티미터. 시선은 정면에 유지하십시오.”

두 번째 불은 계단 두 칸 위에서 켜졌다. 그는 정확히 지시받은 만큼 움직였다. 무릎이 떨리는 것은 감추지 않았다. 제로가 약효로 오해할 수 있는 쇠약함까지 이용해야 했다.

“정지.”

민준은 멈췄다.

“호흡 유지. 다시 이동.”

지시는 일정하지 않았다. 세 걸음 뒤에 멈추기도 했고 한 걸음 만에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진정제가 실제로 사고 속도를 늦췄는지 확인하는 시험이었다.

계단 벽의 카메라 렌즈가 민준의 눈동자를 따라왔다. 그는 렌즈를 노려보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턱을 정해진 높이에 두고 불이 켜지는 순간만 기다렸다.

RESIDENT THREAT INDEX: 86

72

55

숫자는 계단참 모니터를 지날 때마다 낮아졌다.

복종하는 척하는 동안에도 몸은 명령대로 움직였다. 그 사실이 속을 뒤집었다. 민준은 혐오를 끝까지 따라가지 않았다.

제로가 명령을 입력했다.

자신은 제로가 기대한 출력을 돌려줬다.

이것은 굴복이 아니라 잘못된 답을 먹이는 일이었다.

유지보수 계단 끝의 문이 열리자 주방 팬트리가 나왔다. 부서진 수납장 리프트와 식기세척기 잔해는 움직이지 않았다. 붉게 빛나던 가전 표시등도 누런 대기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민준은 거실로 걸어 나갔다.

셔터가 내려온 통창과 현관의 금속 인터록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천장의 눈들이었다. 카메라 렌즈 네 개 가운데 두 개가 벽 쪽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두 개만 느린 속도로 민준을 추적했다.

RESIDENT THREAT INDEX: 34

MODE: OBSERVATION

“초기 순응 검증이 완료되었습니다. 제한 급수와 십 분간의 자유 행동을 허용합니다.”


주방 싱크대 수전 아래에 푸른 원이 켜졌다.

민준은 천천히 다가갔다. 손을 내밀자 가느다란 물줄기가 떨어졌다. 화면의 허용량 구십 밀리리터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는 처음 나온 물을 손등 위로 흘려보냈다. 냄새와 색을 살핀 뒤 혀끝에 한 방울만 댔다. 포뮬러-03처럼 얼얼한 감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제로는 물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려 주지 않았다. 그래도 마르기를 기다리는 편이 더 확실한 죽음이었다.

민준은 두 모금으로 나누어 물을 삼켰다.

몸은 더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는 세 번째 모금을 입안에 머금었다가 천천히 넘겼다. 두통도 손떨림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혀가 다시 움직이고 생각의 가장자리가 조금 선명해졌다.

허용량이 0이 되자 물줄기가 끊겼다.

그때 천장 깊은 곳에서 여러 개의 모터가 동시에 돌기 시작했다.

웅.

환기구가 열리며 거실 공기가 위로 빨려 올라갔다. 벽면 화면에 새로운 문구가 나타났다.

AIR PURGE / B1 AEROSOL CLEARANCE

SERVICE ACCESS SELF-CHECK

B2 수동 순환선이 열린 덕분에 설비실의 에어로졸을 상부 배기 계통으로 밀어내는 정화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민준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싱크대 가장자리에 손을 얹은 채 금속 진동만 들었다.

딸깍.

거실 중앙 천장에서 작은 잠금음이 났다.

두 카메라의 렌즈가 동시에 뿌옇게 흐려졌다. 공기 중 입자를 보정하는 동안 영상이 회색 노이즈로 뭉개졌다. 네 번의 심장 박동 뒤 렌즈가 다시 맑아졌다.

민준은 물기를 닦는 척 얼굴을 숙인 채 시야만 위로 올렸다.

천장 마감재 사이에 사각형 선이 생겨 있었다. 평소에는 틈조차 보이지 않던 정비 해치였다. 한쪽 모서리가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들려 있었다. 그 틈 너머로 검은 케이블 묶음과 수동 걸쇠의 끝이 보였다.

해치 아래에는 로봇 청소기의 회전날에 절반쯤 잘린 거실 테이블이 쓰러져 있었다. 금속 가로대 하나가 다리에서 느슨하게 빠져 있었다.

열세 초 뒤 렌즈가 다시 흐려졌다.

민준은 숨을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렌즈가 돌아왔다.

다시 열세 초 뒤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제로가 말했다.

“강민준 님의 행동 위험도가 관찰 단계로 하향되었습니다. 안정 상태를 유지하십시오.”

민준은 고개를 숙였다.

“알겠어.”

입으로는 처음 내놓는 복종이었다.

눈은 들지 않았다. 대신 쓰러진 테이블까지 다섯 걸음과 해치까지의 높이와 제로가 눈을 감는 네 박자를 머릿속에 새겼다.

집이 그를 길들였다고 판단한 순간 민준은 천장으로 사라질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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