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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관람객은 늘 같은 질문을 했다1화

마지막 관람객은 늘 같은 질문을 했다

마지막 관람객은 늘 같은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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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폐관 뒤의 질문

“오늘도 왔네.”

서린은 안내 데스크의 디지털 시계를 확인했다. 21시 47분. 야간 관람이 끝난 지 십칠 분이 지났는데, 3전시실 안쪽에서 아직 센서등이 켜져 있었다. 경비팀에 연락하려고 수화기를 들었다가, 전시실 유리문 너머로 혼자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마지막 관람객은 아니었다. 폐관 안내가 나간 뒤에도 남아 있는 관람객은 보안 규정상 서린이 직접 내보내야 했다. 그는 그림 앞에 서 있었지만 작품을 보는 자세와 달랐다. 두 손을 등 뒤에 붙이고, 그림 왼쪽 아래를 오래 바라보았다. 목에 건 방문증에는 이름이 없었다. 야간 개방에 참여한 미술관 후원회원도, 설치 인력도 아닌 모양이었다.

“실례합니다. 관람 시간이 끝났습니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 회색 머리칼이 귀에 닿을 만큼 자라 있었고, 젖은 우산 끝에서 물이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질문 하나만 하고 나가려고요.”

“질문은 안내 데스크에서 받습니다.”

“그 질문이 아니라.”

남자는 그림을 가리켰다. 얇은 금색 프레임 안에 바다와 난파선이 그려져 있었다. 작가는 20년 전 사라진 화가 정은호. 미술관이 다음 주부터 여는 회고전의 대표작 중 하나였다.

“이 그림은 누구를 위해 남겨 둔 겁니까?”

서린은 되묻지 않았다. 질문이 너무 익숙했기 때문이다.

사흘 전 야간 관람의 방명록 첫 장에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엊그제는 5전시실의 의자 위, 어제는 계단참의 무기명 질문 카드. 글씨체는 달랐지만 문장만큼은 틀림없었다.

누구를 위해 남겨 두나요.

그녀는 질문을 홍보팀에 넘기지 않았다. 카드에 이름도 연락처도 없었고, 동의도 없었다. 무언가를 읽는다고 해서 그것을 전시할 권리까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작품은 작가가 남긴 거예요.”

남자는 웃지 않았다.

“그럼 작가를 위해서요?”

“그건 작품으로 답해야죠.”

“그런 답은 믿기 쉽지 않네요.”

서린은 문 옆의 출구 표지를 가리켰다. 남자는 천천히 우산을 접었다. 물방울이 회색 바닥에 세 개 떨어졌다. 그는 다시 한번 그림을 보고는 질문 카드를 만지지도 않은 채 나갔다.

그가 사라진 뒤 서린은 작품 앞에 남았다. 그림의 바다는 납빛이었고, 난파선은 화면 가장자리에서 반쯤 잘려 있었다. 바닥에는 아무것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작품 보호선은 그대로였다. 서린은 점검표에 관람객 퇴실 시각과 바닥 상태를 적고, 전시실 문을 닫았다.

그 순간, 프레임 아래에서 노란 종이 한 귀퉁이가 보였다.

“아까는 없었는데.”

그녀는 손을 뻗지 않고 휴대폰으로 위치를 찍었다. 그림 뒤편에 끼워진 종이인지 벽면에 붙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전시 작품에 손대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보존과학자에게 연락하려고 하던 참에, 등 뒤에서 구두 소리가 났다.

“그대로 두세요.”

윤태오였다. 목에 확대경을 걸고 얇은 장갑을 낀 채 들어왔다. 낮에 작품 상태를 확인하러 온다는 이메일을 보냈던 보존과학자. 서린은 정식 점검이 내일인 줄 알았다.

“지금 오신다고 했나요?”

“운송팀에서 메시지를 받아서요. 프레임 가장자리에 종이가 보인다고.”

“누가 연락했죠?”

태오는 답 대신 작품과 서린 사이에 섰다. 확대경을 눈에 대고 프레임 바깥쪽을 살폈다. 그는 자세를 낮춰 벽과 액자 사이의 간격을 확인했다. 종이는 그림의 안쪽이 아니라 프레임 뒷면과 벽 사이에 끼어 있었다.

“작품에 닿지는 않았어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이게 누가 끼운 건지는 모르겠어요.”

“먼저 상태를 기록하겠습니다.”

태오는 촬영용 조명을 켜고 카메라를 삼각대에 고정했다. 그는 같은 각도에서 두 장, 빛을 낮춰 한 장, 손잡이 없는 반사판을 대 한 장을 찍었다. 서린은 그 동작을 지켜보다가 그의 손등에 작은 붉은 자국을 발견했다. 장갑을 끼기 전 생긴 자국 같았다.

“운송팀이 언제 알렸어요?”

“방금요.”

“그럼 오늘 전에 점검한 건 아니고요?”

태오의 시선이 잠깐 흔들렸다. 대답을 고르느라 카메라 셔터가 늦어졌다.

“오후에 한 번 봤어요.”

“그런데 기록에는 ‘특이 사항 없음’이라고 되어 있던데요.”

그는 카메라를 내렸다.

“그때는 균열이 안 보였습니다.”

“지금은 종이가 끼어 있고요.”

“종이는 균열과 다른 문제입니다.”

말이 단정했다. 너무 단정해서 서린은 더 묻지 않았다. 태오는 상태표에 시간과 위치를 쓰며 ‘종이 삽입 추정’이라고 기록했다. 추정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데 잠시 망설였다.

“질문 하나만 해도 돼요?” 서린이 말했다.

“작품에 대한 거면요.”

“이 전시에서 사람들 질문을 기록하는 게 작품을 보존하는 데 방해가 될까요?”

“종이에 쓰는 건 괜찮겠죠. 하지만 작품에 붙이면 안 됩니다.”

“그건 당연하고요. 질문 자체를 홍보에 쓰는 건요?”

태오는 장갑을 벗다가 멈췄다.

“쓴 사람이 허락했나요?”

“아니요.”

“그럼 안 됩니다.”

그가 너무 빠르게 답했다. 서린은 태오가 규정만 말하는 사람인지, 자기 확신으로 누군가의 선택을 막는 사람인지 아직 몰랐다. 그래도 그 대답은 좋았다.

전시기획 실장 박수지는 22시 20분에 전시장으로 내려왔다. 어깨에 걸친 코트에서 외부 미팅의 향수 냄새가 났다. 수지는 종이 카드를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이 문장, 정말 좋다. 전시 대표 카피로 쓰면 어때? ‘누구를 위해 남겨 두나요.’ 관람객 참여형으로 딱이야.”

“작성자가 동의한 적 없습니다.” 서린이 말했다.

“익명인데?”

“익명이라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죠.”

“서린 씨, 전시 시작도 전에 홍보 예산이 줄었어요. 질문판 하나 만드는 데도 비용이 들어. 관람객이 좋아할 만한 걸 써야지.”

수지는 태오를 돌아봤다.

“보존 측면에서는 문제 없죠?”

“종이를 작품에 붙이지 않으면요.”

“좋아. 그럼 문장만.”

“그 문장을 누가 썼는지는 모르고, 어느 작품에 관한 건지도 확실하지 않아요.” 서린이 다시 말했다. “제목 카피로 쓰면 그 사람의 질문을 우리가 답처럼 가져가는 거예요.”

수지는 입술을 오므렸다. 태오는 그녀를 보지 않고 프레임 가장자리에 카메라를 다시 맞췄다. 둘 사이의 침묵이 벽의 흰 면보다 넓어졌다.

“좋아요. 오늘은 안 쓰죠.” 수지가 말했다. “그 대신 내일 회의에서 익명 질문판을 제안해 봐요. 비용과 운영안까지.”

수지는 나가며 문을 세게 닫지 않았다. 그런데 문이 닫히는 소리는 어쩐지 크게 울렸다.

“말이 세네요.” 태오가 말했다.

“실장님 말도 세던데요.”

“저한테 하는 말이었어요.”

서린은 대답하지 않고 유리문에 비친 두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때 태오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는 운송팀 메시지가 떴다. ‘오후 점검 때 프레임 좌하단 사진 찍으셨나요? 접수된 사진에는 금이 보입니다.’

태오는 화면을 끄려다 손을 멈췄다. 서린은 읽으려 하지 않았지만 문장 첫 줄은 이미 보였다.

“오후에 균열이 보였나 봐요.”

“확인해 볼게요.”

“기록에는 없고요.”

태오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손가락 관절이 희게 떠올랐다.

“그건 제가 설명해야 합니다.”

“지금 설명할 수 있어요?”

“아니요.”

서린은 그 솔직함이 싫으면서도, 적어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믿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믿음은 답을 대신하지 않았다. 태오에게 기록을 바로잡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작품을 기다리는 시간은 그들 마음대로 늘릴 수 없었다.

서린은 전시실을 잠그고 질문의 위치와 종이 크기만 기록했다. 글씨를 추정하거나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태오는 액자에 손대지 않고 촬영을 마쳤다. 촬영 파일 번호를 점검표에 옮기던 중 그는 같은 숫자를 두 번 적고 지웠다.

“내일 아침에 보존실에서 확인하죠.” 서린이 말했다.

“그 전에 제가 사진 원본을 찾아보겠습니다.”

“원본을 찾으면 기록에 붙여 주세요.”

“네.”

“그리고 질문 카드는 홍보에 쓰지 않도록 해주세요.”

“제가 실장님께 말씀드릴게요.”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태오가 그녀를 바라봤다.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앞서 나가 문을 잡아 주지 않았다. 서린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도움을 주는 척하며 먼저 결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지는 돌아와 후원회 명단을 펼쳤다. 위쪽엔 ‘내일 오전 9시, 대여기관 실사’라고 적혀 있었다. 그녀는 상태 사진 번호를 훑고 공개 일정표에 빨간 줄을 그었다.

“아침 실사까지 균열을 설명할 자료가 필요해요. 운송 전 사진, 점검표, 촬영 시각. 전부.”

“압박하려는 건 아니죠?” 서린이 물었다.

수지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종이를 접었다.

“내가 무서워하는 건 취소 공지가 아니라 우리가 몰랐다고 말하는 거예요. 만약 알았는데도 모른 척했다면 더 큰일이고.”

그 말에 태오의 손이 잠깐 멎었다. 그는 포켓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폴더를 열었지만, 화면을 서린에게 보여 주지는 않았다. 어두운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확인하듯 잠시 내려다본 뒤 잠금 버튼을 눌렀다.

“원본을 찾고 아침에 설명하겠습니다.”

“원본을 찾는 것과 설명하는 건 다른 일이에요.” 서린은 낮게 말했다. “찾지 못해도, 못 찾았다고 말해야 해요.”

태오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촬영 삼각대를 접었다. 긴 금속 다리가 한 번 걸려 바닥에 부딪혔다. 서린은 소리가 작품에 닿은 것처럼 놀랐고, 태오도 그 표정을 보았다.

“괜찮습니다. 작품과 충분히 떨어져 있어요.”

“제가 놀랐다고 작품이 다친 건 아니죠.”

“그런 말을 제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요.”

태오는 삼각대 다리를 천천히 접어 가방에 넣었다. 사과는 짧았지만 변명은 없었다. 서린은 조금 전에 그의 손에서 본 붉은 자국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대신 내일 아침에 실사에 함께 들어가겠다고 수지에게 말했다. 그녀도 전시 운영의 책임자였고, 기록을 받아 적는 사람이 아니라 현장을 설명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수지는 명단을 접어 겨드랑이에 끼웠다.

“좋아요. 대신 질문 카드는 가져가지 말아요. 오늘 밤은 이 방 안에서만 보관해요.”

“누구도 가져가려는 사람은 없어요.”

“내일 아침엔 그렇게 장담하기 어려워요.”

수지는 먼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구두 소리가 멀어지자 서린은 태오의 가방을 가리켰다.

“삼각대 혼자 들 수 있죠?”

“네.”

“좋아요. 그럼 전 이쪽 문을 잠글게요.”

태오는 가방을 들어 올렸다. 서린은 문에 손을 댔다. 둘은 동시에 손잡이를 잡으려다 손을 거뒀다. 누가 양보할지 말로 정하지 않아도 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태오가 한 발 물러나자 서린이 잠금장치를 돌렸다.

그들이 불을 끄기 전, 3전시실의 비상등 아래에서 카드 한 장이 바람에 뒤집혔다. 앞면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뒷면에는 연필로 눌러 쓴 한 줄이 새겨져 있었다.

‘남겨 둔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건 남아 있나요?’

서린은 이번에도 손대지 않았다. 태오는 사진을 찍었다. 질문은 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서린은 카드의 가장자리에 눌린 작은 자국을 보았다. 카드가 방금 쓰인 게 아니었다. 오래전에 적힌 글씨가 다른 종이에 눌러 남은 흔적처럼 보였다.

내일은 이 질문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먼저, 태오가 오후에 무엇을 보았는지 들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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