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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35화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내 눈에만 배우들의 스탯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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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권한은 흔적을 남긴다

화요일 오전 8시 20분 픽스온 본사 보안 감사실.

강시우는 유리벽 너머 서버실의 점멸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날 폐쇄 병원 세트에서 발견한 무선 전송 장치는 봉인됐지만 무엇을 훔치려 했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감사 권한이 열렸습니다.”

박지은이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픽스온 콘텐츠계약팀 명의로 발행된 긴급 감사 승인서였다.

“외주 촬영관리 협력사까지 로그를 제출하기로 했어요. 사내 보안팀은 이번 일을 내부 사고로만 정리하고 싶어 합니다.”

“내부 사고로 정리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윤서연이 원본 콜시트와 새벽 배포본을 나란히 띄웠다. 수정본에는 지하 연결 통로뿐 아니라 다음 촬영일의 강변 화물역 주소가 조회된 기록도 붙어 있었다.

“주소 조회 시각은 오전 5시 2분입니다. 정식 촬영관리팀 누구도 다음 로케이션을 열람할 이유가 없던 시간입니다.”

오기태가 저장장치를 연결했다.

“임시 권한은 오전 4시 47분에 생성됐습니다. 계정명은 촬영관리-외주3. 발급자는 필드링크 운영 담당 문태성입니다.”

시우의 시야에 푸른 창이 떠올랐다.

[접근권한 연쇄 대조]
- 임시 계정 생성: 04:47
- 다음 촬영지 주소 조회: 05:02
- 첫 장면 프록시 파일 열람: 05:06
- 안전 고지서 초안 다운로드: 05:09
- 외부 서버 전송: 05:11
- 현장 전송 장치 테스트 패킷: 05:14

“문태성의 단말 등록 기록도 보겠습니다.”

오기태가 화면을 넘겼다. 문태성의 노트북은 나흘 전 새로 등록됐다. 등록 승인자는 필드링크 보안팀이었고 그 전날 문태성은 신성 엔터 해외사업팀 직원과 만났다.

“접촉 기록은 정황입니다. 이걸로 최종 지시자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우는 화면의 시각을 짚었다.

“그래서 단정하지 않습니다. 누가 권한을 만들었고 어떤 파일을 열었으며 어디로 보냈는지만 확정하죠.”

박지은이 보안팀을 향해 말했다.

“필드링크의 전체 접근권한을 잠그세요. 로그 사본부터 보존하십시오.”

곧바로 필드링크 운영이사 조명석의 반박 공문이 도착했다.

‘문태성 개인의 규정 위반은 인정하나 사고 원인은 루미너스가 현장 장비를 통제하지 못한 데 있음. 촬영 지연 및 협력사 손실에 대한 책임 협의 요청.’

윤서연이 헛웃음을 흘렸다.

“장비를 설치한 업체가 아니라 장비를 발견한 공동 제작사에 책임을 묻네요.”

“시간을 벌면서 책임 주체를 바꾸려는 겁니다.”

시우가 자료를 넘겼다. 현장 전송 장치가 처음 켜진 시각은 오전 5시 14분이었다. 하지만 프록시 파일은 5시 6분에 이미 열렸다.

“루미너스 장비에서 파일이 빠져나간 게 아닙니다. 픽스온 협력사 계정이 서버에서 먼저 가져갔어요.”

윤서연이 다운로드 목록을 띄웠다. 촬영본보다 먼저 ‘배우 보호 조항 변경안’과 ‘안전 고지서 초안’이 있었다.

“전송처는 노스윈 리스크라는 외부 서버입니다.”

조명석의 얼굴이 굳었다.

“해외 공동 프로모션 사전 리스크를 검토하는 업체입니다. 필드링크는 그 업무를 요청받았을 뿐입니다.”

“누구에게 요청받았습니까?”

그가 대답을 미루는 사이 문이 열렸다. 문태성이 창백한 얼굴로 들어왔다.

“제가 요청서를 받았습니다.”

조명석이 그를 노려보았다.

“문태성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해외 공동 프로모션 사전 리스크 검토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다음 촬영지와 배우 보호 조항을 확인하라는 지시였어요. 필드링크 양식처럼 보였지만 회신 주소는 노스윈이었습니다.”

“원본은 어디에 있습니까?”

“메일 첨부파일로 받았습니다. 열어 본 뒤 삭제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시우가 박지은에게 고개를 돌렸다.

“원본 메일을 보안 저장소에 복제하세요. 문태성 씨의 단말도 보존하고요.”

문태성이 작게 고개를 숙였다.

“협조하겠습니다.”

박지은은 즉시 필드링크 접근권한 전면 정지를 승인했다. 조명석은 아무 말 없이 통화 화면을 껐다.

시우는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누군가는 촬영본보다 먼저 책임의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오후 1시 10분 강변 화물역 세트.

윤서연은 베이스캠프에 놓인 안전 도면부터 걷어 갔다. 도면에는 배우 대기실 뒤편 비상구가 폐쇄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원본과 다릅니다. 이 비상구는 오전 점검에서도 정상으로 확인됐어요.”

한이준 감독이 도면을 받아 들었다.

“동선도 바뀌었습니다. 원래 계단실에서 마주치는 장면이 적재 통로를 지나도록 되어 있어요.”

시우는 도면 아래 문구를 읽었다.

‘배우 보호를 위해 비상 대피로를 단일화함.’

전날 노스윈 서버에서 확인한 안전 고지서 초안과 같은 문장이었다.

“이 도면은 쓰지 않습니다. 원본과 정식 안전팀 확인본으로 동선을 다시 짭니다.”

한이준 감독의 표정이 굳었다.

“촬영을 멈추면 오늘 일정은 통째로 밀립니다. 픽스온에서 공동 제작사 관리 능력을 문제 삼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멈추지 않습니다. 잘못된 도면만 멈춥니다.”

윤서연은 출력본의 QR코드와 전자 서명 시각을 대조했다. QR코드는 오전 11시 52분에 발행됐지만 정식 안전 담당자의 승인은 12시 18분이었다. 승인 전에 배포된 조작본이었다.

유나린이 원본 도면의 계단실을 가리켰다.

“계단실을 그대로 쓰면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순간이 더 선명해져요. 문을 열기 전에 발소리가 먼저 겹치니까요.”

최지환도 대본을 접었다.

“윤설은 통로가 좁아서 멈추는 사람이 아니에요. 상대가 도망갈 길을 먼저 확인합니다. 난간을 한 번 잡고 비상구 잠금 상태를 보면 습관처럼 보일 겁니다.”

한이준 감독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습니다. 카메라는 계단 아래에서 올라옵니다. 두 분은 중간참에서 마주치죠.”

신우진은 현장 보조 인력과 함께 비상구 쪽으로 갔다.

“이 문 앞에 박스를 쌓으면 안 됩니다. 통로를 비워 두고 무전 채널도 하나 추가하죠.”

그가 직접 적재 상자를 옮기자 스태프들이 움직였다. 윤서연은 새 동선 확인서를 정식 안전팀과 감독에게 동시에 받았다.

시우가 모니터 뒤에 서자 유나린과 최지환이 계단실로 들어갔다.

유나린은 계단 위에서 아래를 보지 않았다. 손에 쥔 낡은 열쇠를 천천히 돌리며 벽 너머의 기척을 기다렸다. 최지환은 계단 중간에서 난간을 잡았다. 손끝은 먼지를 느꼈고 시선은 비상구 잠금 상태를 확인했다.

“윤설은 문을 열기 전에 길부터 확인합니다.”

“한서윤은 그걸 보고도 모른 척하죠.”

두 사람의 낮은 목소리가 계단실에 겹쳤다.

“레디.”

카메라가 계단을 올랐다. 유나린의 열쇠가 멈추고 최지환의 손이 난간에서 떨어졌다. 두 사람 사이에 한 층의 높이가 있었지만 숨소리는 같은 공간에 있었다.

“컷.”

한이준 감독이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선을 바꾼 게 아니라 장면의 관계가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때 오기태가 무전기를 두드렸다.

“상공에 드론 하나가 들어왔습니다. 촬영 허가 목록에는 없습니다.”

검은 드론이 세트 외곽을 돌고 있었다.

“추격하지 마세요. 위치와 시간을 기록하고 신고부터 하죠.”

오기태는 비행 경로와 촬영 각도를 연속으로 찍었다. 드론은 계단실 창을 향해 세 번 선회한 뒤 강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테이크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유나린이 문고리를 놓지 않았다. 최지환은 계단 아래를 확인한 뒤 몸을 틀어 그녀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

촬영은 해가 기울 무렵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밤 9시 40분 루미너스 501호 대표실.

시우는 픽스온 보안 저장소에서 복제한 노스윈 서버 자료를 보고 있었다. 오기태가 복구한 문서 목록의 시각이 이상하게 뒤섞여 있었다.

“사고 발생 시나리오가 자동 생성된 시각은 오후 6시 12분입니다.”

윤서연이 파일 속성을 확인했다.

“오늘 촬영 종료는 6시 38분이에요. 그런데 문서에는 배우가 대피로를 이탈했고 루미너스가 안전 지시를 무시했다는 내용이 이미 작성돼 있습니다.”

시우의 시야에 푸른 창이 열렸다.

[외부 문서 생성 기록]
- 문서명: 투명한 그림자 현장 사고 보고 초안
- 생성 시각: 18:12
- 실제 촬영 종료: 18:38
- 참조 자료: 조작된 안전 도면, 배우 보호 조항 변경안
- 예상 활용: 공동 제작사 책임 재검토

시우는 창을 닫았다. 촬영본 일부를 훔치는 것보다 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문서를 먼저 만드는 편이 루미너스를 더 쉽게 몰아붙일 수 있었다.

박지은과의 화상 연결이 열렸다.

“필드링크 권한 정지는 완료됐습니다. 픽스온은 오늘 촬영이 정상 진행됐다는 확인서를 발행하겠습니다. 노스윈의 의뢰인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어요.”

“문태성 씨가 받은 요청서 원본은 보존했습니까?”

“보안 저장소에 넣었습니다. 발신 도메인은 노스윈이지만 결재란은 비어 있습니다.”

오기태가 새로운 화면을 띄웠다.

“노스윈 서버에 예약 파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업로드 예정 시각은 목요일 새벽 2시 30분입니다.”

파일명은 짧았다.

루미너스_공동제작지분_재검토안_v1

윤서연의 얼굴이 굳었다.

“영상이 아니라 지분 문서예요.”

“픽스온 투자심의가 금요일 오전입니다.”

박지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심의 전에 퍼지면 루미너스의 30퍼센트 제작 지분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부터 만들 수 있습니다.”

시우는 창밖의 불이 꺼진 역삼동 거리를 바라보았다. 배우들의 동선을 바꾸려던 손은 이제 회사의 권한표까지 만지고 있었다.

“노스윈의 의뢰인을 찾습니다. 이름부터 공개하지는 마세요.”

“문서가 사라질까 봐서요?”

“예약 업로드가 실행되기 전에 원본 작성자와 결재선을 같이 잡아야 합니다.”

오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스윈 서버의 접속 계정과 예약 파일 작성 이력을 추적하겠습니다.”

“서연 팀장님은 오늘 확보한 원본 도면과 배우 보호 조항을 금고형 저장소에 옮겨 주세요. 픽스온과 한성 캐피탈에는 정상 촬영 확인서만 먼저 공유합니다.”

윤서연이 태블릿을 닫았다.

“내일 아침부터 투자 심의 자료까지 전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시우는 문서 목록의 마지막 줄을 다시 읽었다. 화면 아래에는 작성자의 이름 대신 빈칸이 남아 있었다.

권한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지우기 전에 누군가는 루미너스의 이름으로 회사를 흔들 문서를 완성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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