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서 추방당한 명예교수가 되었다

013화 [흐르는 손]
에신은 아침이 되자마자 강의동 문을 다시 잠갔다.
철컥.
"오늘도 잠그시는군요."
루나가 관찰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어제 효과가 있었으니까."
"청강생이 어제보다 많아졌는데요."
"그러니까 잠그는 거다."
문밖에서는 벌써 여러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 최소 작동식의 원본을 보여 달라는 마학과 학생부터 하리의 보호막을 직접 보고 싶다는 귀족 학생까지 복도에 모여 있었다.
에신은 잠금장치 위에 손을 얹은 채 눈을 감았다. 문 하나로 막을 수 있는 소음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셀레네 바이스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또렷하게 들려왔다.
"루드윅 명예교수님. 정식 검토 요청서를 가져왔습니다."
에신은 눈을 뜨지 않았다.
"문틈으로 밀어 넣어라."
"서명과 원본 수식 확인이 필요합니다."
"서명은 헤르만에게 받아. 원본은 없다."
루나의 깃펜이 멈췄다. 그녀는 품 안의 작은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전날 태워진 점화 스크롤의 잔해와 수식 일부가 봉투 안에 들어 있었다.
"원본이 없다는 뜻은 그 수식이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뜻입니까?"
"내가 버린 종이다. 그러니 원본이 없는 게 맞다."
문밖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루나는 그 말을 적으려다가 손을 멈췄다.
"마학부는 결과보다 재현 가능한 과정을 중시합니다. 남은 기록과 조건이라도 확인해야겠습니다."
"좋은 원칙이군. 그럼 학생들이 고른 조건에서 확인해."
"학생들에게 검증을 맡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만든 게 아니니까."
에신은 대답을 끝내고 돌아섰다. 문밖의 구두 소리는 물러나지 않았다.
하리는 실습대 앞에서 손을 펼쳤다. 손바닥 위에 작은 빛이 떠올랐다.
"저는 오늘 보호막을 세 번만 바꿔 볼게요."
"보여 주려고 하지 마."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제 조건을 확인하는 겁니다."
하리는 문을 보지 않고 대답했다.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첫 번째 보호막이 손끝에서 펼쳐졌다. 얇은 빛의 막은 두 호흡을 버티다가 가장자리가 흔들렸다. 하리는 마력을 밀어 넣지 않았다. 손가락을 접자 막은 조용히 꺼졌다.
남은 마력 줄기가 두 번째 고리로 옮겨 갔다. 이번에는 막의 크기가 더 작았다. 빛은 오래 버티지 못했지만 무너질 때 주변으로 튀지 않았다.
루나는 조용히 기록했다.
"첫 번째 막을 해제한 뒤 잔류 흐름이 어제보다 덜 흔들려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하리가 손을 내리자 복도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로젠가의 후계자가 저런 조그만 막이나 세우고 있네."
"폭주만 안 하면 대단한 거지."
하리의 눈동자에 빛이 스쳤다. 손끝에 남은 마력이 다시 부풀었다.
에신은 긴 의자에 누운 채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에 마력 쓰지 마."
하리는 숨을 멈췄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손끝의 빛이 가늘어졌다.
그때 복도 끝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비켜! 잠깐만 비켜 줘!"
한 학생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뛰어왔다. 마학과 표식이 달린 외투는 땀에 젖어 있었고 오른손에는 붉은 불꽃이 불안하게 맺혀 있었다.
"이벨? 실습실에서 왜 여기까지..."
헤르만의 목소리가 굳었다.
"실습실에서 실패한 뒤 청강생들이 계속 시켜서 따라온 모양입니다."
루나가 이벨의 뒤를 보며 말했다. 뒤쪽 학생들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이벨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벨은 멈추려 했지만 발밑의 불꽃이 먼저 튀었다. 작은 불씨 하나가 복도 바닥에 떨어지자 주변의 마력이 한꺼번에 빨려 들어갔다.
쾅!
불꽃이 벽을 타고 솟구쳤다. 복도에 모여 있던 청강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이벨의 오른팔은 붉게 달아올랐고 손가락 사이로 불꽃 줄기가 사방으로 뻗었다.
"멈춰! 마력을 끊어!"
누군가 외쳤다.
"끊을 수가 없어!"
이벨이 울먹이며 손을 흔들었다. 그 움직임을 따라 불꽃이 더 크게 부풀었다. 가장 가까운 학생의 망토 자락에 불이 옮겨붙었다.
카이드가 곧장 달려들어 학생을 뒤로 끌어냈다. 그러나 불꽃의 열기가 너무 강해 목검을 꺼내 들 수도 없었다.
루나는 주변을 살피며 소리쳤다.
"왼쪽 벽면의 마력 압력이 높아요! 오른쪽은 비어 있습니다!"
불꽃은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벽과 사람에게 부딪히며 다시 이벨의 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억지로 막으면 더 튄다.
하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마력이 정교하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이벨의 불꽃이 한 걸음 뒤에 있던 루나 쪽으로 튀었다. 하리는 생각할 틈도 없이 앞으로 나섰다.
자신이 또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 사람이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이 먼저 보였다.
손바닥 위에 보호막이 생겼다. 처음에는 넓고 둥근 막이었다. 불꽃을 전부 막아 내기에는 턱없이 작았다.
하리는 막의 가장자리를 일부러 열었다.
불꽃 일부가 열린 틈으로 빠져나가며 오른쪽 벽과 반대 방향으로 휘었다. 그러나 나머지 불길은 여전히 복도 한가운데에 남았다.
이벨이 비명을 질렀다.
"더 막아 줘! 내 손이 말을 안 들어!"
하리는 자신의 손끝도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크게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마력을 한꺼번에 끌어올려 불꽃을 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막도 함께 터진다.
하리는 첫 번째 막을 완전히 없애지 않았다. 가장자리 한 조각만 더 열고 손목을 돌렸다.
작은 얼음 잎이 허공에 생겼다. 얼음 잎은 불꽃을 막지 않고 그 옆을 스쳤다. 차가운 마력이 불길의 중심을 건드리자 뜨거운 공기가 오른쪽으로 밀려났다.
"오른쪽 길을 비워 주세요!"
카이드는 즉시 주변 사람들을 벽 쪽으로 밀어 붙였다. 루나는 바닥에 종이 표식을 세 장 떨어뜨렸다.
"방향이 바뀌었어요. 하리 학생이 열어 둔 곳으로 흐릅니다!"
하리는 두 번째 고리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보호막이 손바닥 앞에 생기지 않았다. 첫 번째 막에서 빠져나온 마력 줄기 중 일부가 바닥 가까이 내려가 얇은 고리 모양으로 번졌다.
불꽃의 끝이 그 고리에 닿았다.
화염이 고리를 따라 움직였다. 복도 바닥을 태우지 않고 이미 비어 있는 석재 틈으로 흘러 들어갔다.
하리는 마력을 더 밀어 넣으려 했다. 불꽃을 완전히 꺼야 한다는 조급함이 다시 올라왔다.
그 순간 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늘려."
짧은 말이었다.
하리는 손가락을 접었다. 더 큰 고리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이미 만들어진 두 흐름을 그대로 두고 세 번째 막만 아주 작게 세웠다.
불꽃은 마지막으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이벨의 팔이 앞으로 튀었고 붉은 불길이 하리의 얼굴을 향했다.
하리는 세 번째 막의 한쪽을 열었다.
불꽃은 하리의 옆을 스쳐 지나가 바닥의 빈 틈으로 쏟아졌다.
치이익.
복도를 가득 채우던 열기가 사라졌다.
이벨은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손가락 사이에 남은 작은 불씨가 꺼지고 창백한 손목만 남았다.
하리의 무릎이 떨렸다. 손바닥 위의 세 번째 막은 한 호흡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헤르만이 가장 먼저 이벨에게 달려갔다.
"화상은? 손목을 보여 주게."
"괜찮아요. 조금 뜨겁기만..."
헤르만은 이벨을 벽 쪽으로 앉히고 손목의 붉은 자국을 확인했다. 큰 화상은 없었다. 카이드는 주변 학생들의 옷자락에 붙은 불씨까지 털어 냈고 루나는 바닥 표식이 움직인 순서를 확인했다.
이벨은 하리를 올려다보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를 막지 않았어요."
하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막은 것은 불꽃이 아니라 불꽃이 갈 곳을 잃는 상황이었다.
하리는 이벨의 손목 가까이에 아주 작은 얼음 고리를 만들었다. 고리는 피부에 닿지 않고 손목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남은 열기와 뒤엉킨 마력 한 줄기가 고리를 따라 바닥의 빈 틈으로 흘러갔다.
얼음 고리가 금세 부서졌다.
하리는 곧 손을 내렸다.
"이제 더 하지 마세요. 손이 다시 움직이지 않으면 밀어붙이지 말고 멈춰야 해요."
그 말은 이벨보다 하리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복도 뒤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게 그 폭주하는 로젠가의 보호막이야?"
"방향을 바꾼 건 하리 학생이잖아."
"사람 하나도 안 다쳤어."
하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 뒤에 붙던 말은 폭주와 실패뿐이었다.
처음으로 다른 말이 따라붙었다.
"사람을 지켰다고?"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헤르만은 바닥에 남은 얼음 조각과 세 장의 종이 표식을 번갈아 보며 기록했다.
"하리 학생은 화염의 중심을 억제하지 않고 분기시켰습니다. 마력 압력을 외부 회로로 전환했고..."
"그렇게 쓰지 마세요."
루나가 헤르만의 종이를 가리켰다.
"전환됐다는 건 해석이에요. 지금 확인된 건 세 번째 막의 일부 해제 뒤 불꽃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사실뿐이에요."
헤르만은 잠시 펜을 멈췄다. 곧 고개를 끄덕이고 문장을 고쳐 썼다.
셀레네가 사람들 사이를 지나왔다. 그녀는 이벨의 손목을 먼저 확인하고 하리의 손바닥을 보았다.
"두 학생 모두 큰 손상은 없군요."
하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완전히 멈추지는 못했어요. 마지막 불꽃은 운이 좋았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기록과 재현이 필요합니다."
셀레네는 차갑게 말했지만 목소리에는 이전과 다른 무게가 있었다.
"막을 네 번 열고 닫는 동안 불꽃의 방향이 네 번 달라졌습니다. 우연이라고 부르기에는 선택이 지나치게 정확했어요."
셀레네는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내일 마학부 검증실로 오십시오. 최소 작동식의 잔여 원본과 오늘의 보호막 해제 과정을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에신은 잠긴 문 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내일도 쉬는 날인데."
"이번에는 문을 잠가도 검증 요청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셀레네가 대답했다.
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리는 손바닥에 남은 얼음 가루를 털어 냈다. 이벨은 여전히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해. 인정받고 싶어서..."
"다음에는 사람 없는 곳에서 먼저 해 봐요."
하리가 말했다.
"그리고 손이 말을 안 들으면 더 세게 밀지 말고 멈춰야 해요."
이벨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신은 문 안쪽에서 눈을 감았다.
불은 벽에 부딪히면 더 시끄럽다. 길을 하나 내 주면 조용해진다.
그는 그저 복도가 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뜻으로 중얼거리려 했다.
"불은 벽에 부딪히면 더 시끄럽다. 길을 하나 내 주면 조용해져."
하리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루나의 펜 끝도 멈췄다.
"흐름을 막는 게 아니라 소음이 생기는 지점을 없애는 것..."
하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게 유체 마법의 핵심이군요."
에신은 문 안쪽에서 이마를 짚었다.
'그냥 복도 벽이 무너질까 봐 한 말인데.'
문밖의 사람들은 이미 하리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폭주하는 로젠가가 아니라 사람을 지킨 학생이라고.
에신은 잠금장치를 다시 확인했다.
내일은 마학부 검증실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루나가 주워 온 쓰레기 양피지까지 들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의 휴식은 이미 끝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