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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23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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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빈 박자의 증명

막이 완전히 오르자 객석의 숨소리까지 들렸다.

수천 명이 앉아 있는데도 대음악당은 기이할 만큼 조용했다. 맨 앞의 황실 심사위원들이 계측석을 열었고 그 옆에서 제라드 교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진은 오르간 모듈의 건반에 손을 얹었다.

커튼 안쪽에서 보던 객석과는 크기가 달랐다. 층층이 늘어선 얼굴들 너머로 문장 휘장이 흔들렸다. 하진의 총보 표지에는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제 누구의 뒤에 서서 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밤을 지새운 손가락 마디가 욱신거렸다. 무대 아래의 청동 도관 열두 개는 깨끗하게 빛났다. 엘레나가 은빛 지휘봉을 들자 이반의 활 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무대 음향 전도율: 124.8%]
[제1악장 진입 전 성부 위상 편차: 0.7%]

밤새 빈 객석에서 연습할 때라면 묻혔을 작은 흔들림이었다. 지금은 한 올의 떨림도 돔을 지나 객석 끝까지 닿는다. 하진은 이반을 보지 않았다. 눈길 하나가 수천 명의 시선을 그의 활로 끌어올 수 있었다.

그는 악보 첫머리의 쉼표를 손끝으로 눌렀다. 엘레나가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지휘봉이 내려왔다.

첫 박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페르의 북채가 팀파니 위에서 멈추고 나디아의 활도 현에 닿기 직전에서 기다렸다. 그 한 박 동안 이반의 어깨가 내려갔다. 두 번째 박에 첼로의 낮은 C음이 바닥에 닻을 내렸다.

둥.

세 번째 박. 오르간이 그 위에 화음을 얹었다. 이반의 바이올린이 주제를 잇고 클로에의 플루트가 얇은 빛처럼 그 곁을 돌았다.

객석에서 누군가 숨을 들이켰다. 음표의 길을 따라 무대 바닥의 청동 도관에 은빛 선이 켜졌다. 에테르는 연주자의 몸이 아니라 천장과 객석 사이의 빈 공간에서 모여들었다.

엘레나는 첫 번째 고조에서 지휘봉을 크게 휘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손목을 좁혔다. 도관이 이미 충분히 울리는 것을 들은 것이다. 에릭의 트롬본이 지나치게 앞으로 나서려는 찰나 오스카의 호른이 부드러운 완전5도로 그 소리를 받쳤다.

하진은 악보에서 고개를 들었다. 열두 도관의 빛이 서로 다른 높이에서 맥박쳤다. 단 한 개도 뒤처지지 않았다.

첫 악장의 종지가 맺혔다. 박수가 터질 듯 객석이 움직였으나 엘레나는 손을 내리지 않았다. 공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악장은 낮고 길게 시작했다.

나디아가 첼로의 활을 눌러 깊은 경계선을 그었다. 그 선에서 엷은 은빛 막이 올라 객석 첫 줄로 천천히 번졌다. 관객 몇 명이 눈앞에 떠오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황실 심사석의 계측석이 흰 눈금을 올렸다. 방어 공명이었다. 일반적인 결계는 연주자가 자기 마력을 쏟아 막을 세운다. 하진의 악보는 이미 공기 중에 있는 에테르가 각 성부의 간격을 따라 자리를 찾도록 했다.

계측석의 왼쪽 바늘은 대기 에테르 유입량을 가리켰다. 쉴 새 없이 올라가는 그 바늘과 달리 체내 마력 유입량을 재는 오른쪽 바늘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심사위원 한 명이 눈금을 확인하려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러나 은빛 막이 객석 벽에 닿는 순간 문제가 생겼다. 반사된 잔향이 무대로 되돌아왔다. 클로에의 플루트가 내는 가느다란 음이 두터운 반사음에 잠겼다.

[객석 측면 반사음 증가]
[목관 성부 마찰 위험]

하진은 오르간의 중음 스톱 하나를 닫았다. 화음 한가운데 빈 길이 생겼다. 반사된 에테르가 그 길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도관이 너무 잘 울렸다.

"엘레나. 크레셴도는 접어 주세요."

그녀가 즉시 왼손을 아래로 눌렀다. 단원들의 소리가 반 걸음 물러섰다. 제일 큰 마법을 보여 줘야 하는 경연 무대에서 소리를 낮추는 결정이었다.

클로에가 되찾은 음을 길게 뽑았다. 날카로워지려던 결계 가장자리가 둥글게 접혔다. 나디아의 저음은 벽이 아니라 바닥을 받치는 기둥이 되었다. 객석 위의 은빛 막은 관객의 머리를 누르지 않고 그 위로 돔을 이루었다.

심사석에서 한 노심사위원이 손바닥을 들어 빛의 표면을 만졌다. 그의 손을 따라 얇은 잔물결이 퍼지고 곧 원래의 곡면으로 돌아갔다. 그는 계측석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바로 뒤에 앉은 어린 관객은 결계 밖으로 손을 뻗었다가 다시 안으로 들였다. 손등을 스치는 공기의 온도는 같았지만 안쪽에서 들리는 음악은 조금 더 또렷했다. 아이가 옆 사람에게 작은 목소리로 그 차이를 말하자 그도 손을 들었다.

하진은 손목의 떨림을 감추며 숨을 골랐다. 큰 소리를 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필요한 자리에서 멈추는 쪽이 훨씬 어려웠다.

엘레나의 지휘봉이 결계의 가장자리를 따라 작은 원을 그렸다. 클로에가 그 원을 따라 마지막 음을 닫았고 결계는 부드럽게 사라졌다. 빈자리에 3악장의 리듬이 들어왔다.


페르의 팀파니가 약박을 두드렸다. 나디아의 첼로가 그 앞에서 길을 열고 이반의 바이올린이 짧은 선율로 뒤를 따라붙었다. 3악장의 행진 리듬이 무대에서 객석으로 밀려갔다.

객석 통로마다 가느다란 은빛 선이 뻗었다. 막이 아닌 길이었다. 한 구역에서 일어난 공명은 다음 구역으로 옮겨 가되 어느 한곳에도 쌓이지 않았다. 무대 전체가 움직이는 악보처럼 보였다.

그때 페르의 북채가 약박보다 조금 늦게 내려왔다.

둥.

짧은 지연이었다. 밤새 북채를 쥔 손목이 더는 처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바로잡으려고 급하게 다음 박을 치면 행진 리듬이 무너질 터였다. 에릭의 입술에도 피로가 드리워졌다. 트롬본의 다음 진입이 조급해졌다.

하진의 눈앞에 오차 표시가 떠올랐다. 시스템은 지연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단원들의 호흡까지 대신 맞춰 주지는 못했다.

하진이 페르와 엘레나를 번갈아 봤다. 그리고 총보의 쉼표를 손가락으로 두 번 짚었다.

엘레나가 지휘봉을 수평으로 눕혔다. 전원이 이미 연습한 그 신호를 알아봤다. 소리를 밀어 넣지 않고 다음 마디의 비어 있는 박을 그대로 통과시키라는 뜻이었다.

한 박 동안 무대가 조용해졌다. 관객 중 몇 사람이 공연이 끊긴 줄 알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무대 측면 장비석에서 루카스가 오르간 모듈과 연결된 완충 나사를 반 바퀴 돌렸다. 조금 전 빠른 패시지에서 흔들린 건반틀이 고정됐다. 페르는 북채를 급히 올리지 않았다.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손목을 천천히 펴고 에릭은 그 옆에서 짧게 숨을 들이켰다.

다음 박에 북채가 정확히 떨어졌다.

둥!

페르가 자기 귀로 되찾은 박이었다. 엘레나는 그 한 번을 기다렸다는 듯 지휘봉의 끝을 선명하게 세웠다. 금관도 그제야 들어왔다.

이반과 클로에의 선율이 동시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은빛 선들이 객석 통로를 따라 하나의 원으로 이어졌다. 끊긴 것처럼 보였던 한 박이 전체를 다시 묶는 매듭이 되었다.

엘레나의 입가에 아주 옅은 미소가 스쳤다. 하진도 건반을 누른 손에 힘을 되찾았다.

무대 옆 대기석에서 에드릭 로웰이 팔짱을 풀었다. 그는 은빛 공명이 지나간 자리와 하진의 손을 번갈아 보았다. 자신의 팀이 곧 이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네 번째 악장의 첫 주제가 금관에서 터졌다.

에릭의 트롬본이 앞을 열고 오스카의 호른이 잔향을 뒤에서 받았다. 페르의 팀파니가 박을 세우자 열두 도관이 차례로 은빛 고리를 뿜었다. 객석의 머리 위로 떠오른 고리들이 서로 포개지며 높은 천장에 거대한 악보를 그렸다.

황실 심사석의 계측석에 수치가 빠르게 올랐다. 어떤 심사위원은 펜을 든 채 기록을 잊었다. 관객은 그들이 보는 수치를 몰랐지만 몸으로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숨쉬기 편한 공기가 대음악당을 채우고 어깨를 짓누르던 아침의 피로가 잠깐 가벼워졌다.

하진은 마지막 코다를 앞두고 엘레나를 봤다. 그녀도 이미 그를 보고 있었다. 밤에 도관을 정화했을 때는 비어 있는 객석을 향해 전력을 쏟았다. 이제는 사람들 위에 소리를 놓아야 했다.

엘레나가 지휘봉 끝을 아주 조금 낮췄다. 최대 음량을 요구하는 악보의 끝에서 그녀는 단원들에게 서로의 소리를 들으라고 명령했다.

나디아가 마지막 저음을 받쳤다. 이반과 클로에가 같은 높이에서 선율을 만나고 금관이 그 위에 찬란한 종지 화음을 세웠다.

콰아아앙!

도관 열두 개가 동시에 울렸다. 은빛 파동이 객석 위를 한 바퀴 돌았다. 박수라도 치면 깨질 듯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잔향이 천장에 닿아 되돌아오며 두 겹으로 겹치기 시작했다.

하진은 오르간의 저음을 붙든 채 기다렸다. 엘레나의 왼손이 금관을 먼저 닫았다. 그다음 목관과 현악이 차례로 빠져나왔다. 마지막에 하진이 건반에서 손을 떼자 뒤늦게 남아 있던 저음의 길도 열렸다.

겹치려던 잔향이 탁해지기 전에 열두 갈래로 갈라져 사라졌다.

정적.

공연이 끝났다는 것을 아무도 곧바로 믿지 못했다. 가장 높은 발코니에서 늦게 도착한 마지막 울림마저 사라진 뒤에야 객석 앞줄의 한 사람이 무릎 위에 놓았던 손을 들었다.

심사석의 계측석이 느리게 숫자를 새겼다.

[대기 에테르 유도 공명 확인]
[연주자 체내 마력 유입량: 검출 한계 미만]
[객석 방어 공명 안정성: 정상]

황실 심사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석의 박수가 그보다 반 박 늦게 터졌다. 뒤이어 대음악당 전체가 흔들릴 만큼 큰 환호가 쏟아졌다.

하진은 단원들을 돌아보았다. 페르는 북채를 내려놓고 손목을 감쌌다. 이반은 활을 든 채 고개를 숙였고 클로에는 웃다가 눈을 훔쳤다. 엘레나는 두 손을 내린 뒤에야 단원들과 함께 객석을 향해 인사했다.

심사위원장이 손을 들자 환호가 잦아들었다.

"공식 평가는 모든 팀의 연주가 끝난 뒤 발표하겠습니다. 다만 대기 에테르 유입량과 체내 마력 유입량이 서로 맞지 않는군요. 이 공명의 경로를 확인해야 합니다. 작곡가의 원본 총보를 제출해 주십시오."

하진은 오르간 옆에 놓아 둔 총보를 집었다. 표지에는 한 사람의 이름이 또렷했다.

작곡, 하진.

그는 처음으로 그 이름을 가리지 않고 수천 명 앞에서 심사석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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