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17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AD
스폰서 광고

17화: 멈추지 않는 악장

청음 기록실의 세 기록석이 동시에 붉은 빛을 토했다.

하진이 천 위에 내려놓은 흑요석 피리에서 검은 파동이 피어올랐다. 파동은 피리를 둘러싼 은빛 차폐선을 두드리더니 가까운 기록석을 향해 뱀처럼 고개를 틀었다.

"손대지 마라."

제라드 교수가 기록봉으로 차폐선을 한 겹 더 그었다.

검은 파동이 은빛 벽에 부딪쳐 반 박자 늦은 피리 소리를 냈다. 기록석 표면에 새겨지던 파형이 순간 비틀렸다.

하진은 피리 취구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가리켰다.

"역탐침에 맞은 사용자의 피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저희가 아는 사람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혈흔 감정은 치유학부에 맡기겠다. 그 전에 누가 무엇을 만졌는지부터 말하게."

제라드는 들뜬 질문도 섣부른 단정도 하지 않았다.

루카스가 피리를 천으로 집어 든 과정부터 구관 통행증을 발견한 위치까지 차례로 진술했다. 엘레나는 역탐침을 맞은 자가 비상 통로로 달아났고 바닥에 피가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제라드는 두 사람의 진술을 기록석에 봉인한 뒤 피리와 통행증을 납으로 안을 댄 검은 상자에 넣었다.

딸깍.

상자가 닫히자 불쾌한 피리 소리도 끊겼다.

"불협화음 제3계통 하위 표식."

제라드가 피리의 문양을 옮겨 그린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개인의 장난이라면 계통과 위계를 표시할 이유가 없다. 같은 기능의 도구를 여럿에게 나눠 주는 조직이라는 뜻이지."

[증거 파형 기록 완료]
[흑요석 조율 피리: 제3계통 규격 장비]
[구관 통행증 인장: 반 박자 지연 배음 잔류]

하진은 시스템 기록을 저장했다.

"학생회 인장이 찍힌 통행증은요?"

루카스의 질문에 제라드는 대답 대신 호출패 세 개를 차례로 눌렀다.

"제3공명실과 구관 배관망을 즉시 봉쇄한다. 학생회 서무계의 인장 사용 장부도 학사위원회 입회 전까지 열람 금지다."

마지막 호출패에서 낮은 종소리가 울렸다.

"저 인장만으로 마르쿠스를 범인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가 찍었든 서무계의 권한이 범행에 쓰였다. 이제부터는 숨길수록 기록이 남을 거다."

문밖에서 여러 사람의 발걸음이 멈췄다.

붉은 학생회 배지를 단 마르쿠스가 봉쇄 담당 교직원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이 검은 상자에 꽂혔다.

"학생회 장부를 봉쇄하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 통행증 때문입니까?"

"그래."

제라드가 짧게 답했다.

마르쿠스는 입술을 굳힌 채 양피지 한 장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같은 공명 배관망에 연결된 시설도 전부 사용 정지입니다. 오늘 아침 서무계 공식 인장으로 발급한 명령서입니다. 하진의 자율 연구실도 예외가 아닙니다. 오염 경로를 조사하는 동안 안에 있는 악기와 악보를 반출할 수 없습니다."

루카스가 눈을 크게 떴다.

"본선이 코앞인데 악보까지 묶겠다고?"

"증거를 지키자고 한 건 너희다."

마르쿠스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자기 연구실만 조사에서 빼 달라고 할 생각은 아니겠지."

하진은 사용 정지서 아래의 붉은 밀랍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봉쇄하세요. 대신 지금 들고 있는 악보와 악기는 조사 대상이 아닙니다."

"복도에서 합주라도 하겠다는 건가?"

"필요하다면요."


자율 연구실 문에 붉은 봉인끈이 걸렸다.

나디아는 문 앞에 세워 둔 첼로를 끌어안았고 오스카는 금이 간 호른을 내려다보았다. 페르가 북채로 허벅지를 두드릴 때마다 조급한 두 박이 울렸다.

"대형 공명실은 전부 같은 배관을 씁니다."

엘레나가 봉쇄 목록을 접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실내 합주는 불가능해. 광장은 허가를 새로 받아야 하고."

"허가서는 학생회 서무계가 내주잖아요."

이반이 헛웃음을 흘렸다.

루카스는 악기 더미 사이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감쌌다.

"연구실 안에 바퀴 달린 공명대가 있는데 꺼내지도 못해. 이 많은 걸 어떻게 옮겨?"

하진은 악보를 펼쳤다.

2악장 도입부의 긴 저음 위로 아직 비어 있는 3악장 첫 마디가 보였다. 2악장은 넓은 수면처럼 공명을 펼쳤지만 연주자 사이의 간격이 달라지면 가장자리부터 무너졌다. 3악장은 강한 행진 리듬을 가졌으나 고정된 무대에서는 속도를 끌어올리는 역할뿐이었다.

하진은 빈 마디에 짧은 음표 네 개를 적었다.

"연습실을 찾지 않습니다. 연주가 움직이게 만들 겁니다."

엘레나가 악보를 받아 들었다.

"2악장의 방어장을 유지한 채 3악장으로 걸음을 맞추겠다는 건가?"

"고정된 돔은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얇아집니다. 중심을 연주자들과 함께 옮기면 돼요."

나디아가 자신의 첼로를 내려다보았다.

"저는 걸으면서 켤 수 없어요. 저음이 끊기면 바닥도 사라질 텐데요."

"그래서 네 자리는 움직이지 않아도 돼. 네 바닥을 움직일 거야."

하진이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루카스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복도 한쪽의 낡은 악보 운반 수레를 보았다.

"바퀴 축을 낮추고 진동 완충판을 얹으면 첼로 받침으로 쓸 수 있어. 오르간 모듈도 뒤에 묶고. 단 십 분은 줘."

"일곱 분. 봉쇄 담당이 이 복도까지 비우기 전에 출발해야 해."

"사람을 연금술 시계처럼 부리지 마!"

루카스는 투덜거리면서도 이미 공구를 꺼내 들었다.

페르의 북은 허리끈에 고정됐다. 오스카는 이반과 두 걸음 간격을 맞췄고 에릭은 행렬 뒤쪽에서 저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자리를 잡았다. 클로에는 회랑 모서리 너머까지 신호가 닿도록 가장 바깥쪽에 섰다.

엘레나가 지휘봉을 들었다.

"첫 목표는 중앙 분수 광장이다. 누구든 내 손이 보이지 않으면 앞사람의 어깨가 아니라 소리를 따라가라."


하진의 오르간 모듈이 수레 위에서 낮은 두 성부를 교차시켰다.

나디아의 활이 이어지자 은빛 공명이 회랑 바닥에 얇게 깔렸다. 고정된 방에서처럼 매끈한 원은 아니었다. 돌 틈을 더듬는 물처럼 울퉁불퉁한 빛이 발밑을 따라 흘렀다.

쿵. 딱. 쿵. 딱.

페르가 강박 사이의 빈 곳을 두드렸다.

단원들의 발이 약박에 맞춰 앞으로 나아갔다. 이반의 바이올린이 행진 선율의 첫 주제를 열고 오스카의 호른이 두 박 뒤에서 짧은 잔향을 붙였다.

은빛 바닥의 가장자리가 천천히 올라왔다.

"되고 있어!"

수레를 밀던 루카스가 외쳤다.

첫 번째 모서리를 도는 순간 엘레나의 모습이 절반쯤 가려졌다.

클로에의 플루트가 흔들렸다. 이반이 걸음을 늦추자 뒤따르던 에릭과의 간격이 좁아졌다. 반구를 이루던 은빛 막이 회랑 기둥에 걸린 천처럼 길게 찢어졌다.

"멈추지 마라!"

엘레나의 외침이 모서리 너머에서 들렸다.

하진은 찢어진 공명의 양끝을 보았다. 모두 같은 선율을 붙잡으려 하니 거리가 벌어진 순간 가운데가 비었다.

같은 음을 낼 필요가 없었다.

"이반은 질문만 남겨요! 클로에는 모서리 너머에서 대답합니다."

이반의 활이 상승하는 세 음을 날렸다.

보이지 않는 회랑 너머에서 플루트의 하강 선율이 답했다. 두 소리는 떨어져 있었지만 서로의 빈 마디를 향해 뻗었다.

"오스카. 클로에의 마지막 음을 받아서 지휘 신호를 뒤로 넘겨요!"

호른의 둥근 잔향이 벽을 타고 돌아왔다. 엘레나의 지휘봉이 보이지 않아도 다음 박이 언제인지 알 수 있었다.

페르가 호른의 끝을 약박으로 찍었다.

나디아의 저음이 수레 바퀴 아래에서 크게 부풀었다. 에릭의 트롬본이 뒤쪽 기둥을 세우자 찢어졌던 공명막 양쪽이 회랑 모서리를 감싸며 다시 붙었다.

촤아악!

은빛 결계가 길게 휘어진 통로 전체를 덮었다.

[중위 공명 구조 변형 감지]
[제1번 심포니 2악장 방어장 + 3악장 행진 리듬]
[공간 분산형 이동 결계 안정도: 71.8%]
[보정 제안: 응답 성부 간 지연 0.12초 단축]

하진은 시스템이 표시한 붉은 선을 보며 악보의 연결음을 고쳤다.

"다시 갑니다. 이번에는 광장까지 한 번도 멈추지 않아요."

나디아가 활을 고쳐 쥐었다.

"제 저음 위에서 모두 걷는 거죠?"

"네. 흔들려도 바닥은 당신이 정합니다."

페르가 씩 웃으며 북채를 들었다.

"그럼 빈 박은 제가 길로 만들게요."

행진이 다시 시작됐다.

이번에는 모서리가 나와도 누구도 당황하지 않았다. 바이올린이 길을 물으면 플루트가 방향을 답했고 호른은 보이지 않는 지휘봉의 궤적을 잔향으로 옮겼다. 첼로와 트롬본이 앞뒤의 바닥을 받쳤다.

은빛 반구가 단원들과 함께 걸었다.


중앙 분수 광장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길을 비켰다.

움직이는 은빛 결계가 작곡동 회랑을 빠져나와 햇빛 아래 펼쳐졌다. 여덟 성부의 소리는 발걸음마다 자리를 바꾸면서도 무너지지 않았다.

엘레나의 지휘봉이 마지막 큰 원을 그렸다.

쾅!

에릭의 저음과 페르의 약박이 맞물리자 반구형 결계가 광장 절반을 덮었다. 분수에서 튄 물방울이 은빛 막에 닿아 작은 별처럼 흩어졌다.

[공간 분산형 이동 결계 안정도: 91.3%]
[3악장 행진부 임시 변환 성공]
[대기 에테르 자율 유도율 변화 없음]

박수가 터지려는 순간 붉은 학생회 제복이 행렬 앞을 막았다.

마르쿠스였다.

"연구 시설 봉쇄를 복도 점거로 피해 가는군. 당장 연주를 중지해라."

하진은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오염된 배관도 쓰지 않았고 봉쇄된 장비도 반출하지 않았습니다."

"중앙 광장 합주에는 통행 승인이 필요하다."

마르쿠스가 아침에 발급한 사용 정지서를 다시 펼쳤다. 아래쪽에는 학생회 서무계의 붉은 인장이 선명했다.

그 순간 하진은 이상한 차이를 들었다.

구관에서 주운 통행증의 밀랍은 손가락이 닿을 때 낮은 배음을 남겼다. 마르쿠스가 내민 정지서의 인장은 아무 소리 없이 단단했다.

"그 서류를 결계 안으로 넣어 보세요."

"무슨 수작이지?"

"두 인장이 같은지 확인하는 겁니다."

마르쿠스가 정지서를 내밀었다.

종이 끝이 은빛 막을 통과했다. 붉은 밀랍 주변으로 깨끗한 원형 파문이 한 번 퍼진 뒤 즉시 사라졌다.

하진은 시스템에 저장한 통행증의 잔류 파형을 불러냈다. 반투명한 두 파형이 정지서 위에서 겹쳤다. 원의 형태는 같았지만 저장된 파형 끝에는 반 박자 늦은 낮은 음이 붙어 있었다.

불협 피리와 같은 지연이었다.

"구관 통행증의 인장은 진짜가 아닙니다."

마르쿠스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형태를 복제한 뒤 불협화음의 공명으로 밀랍을 굳혔어요. 누군가 학생회 권한을 빌린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겁니다."

"불가능하다. 인장 원형은 서무계 철제함에 보관한다. 나와 담당 서기만 열 수 있어. 아침에 내가 직접 확인했다."

"그렇다면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멀리 학생회관 방향에서 다급한 종이 세 번 울렸다.

잠시 뒤 서무계 학생 하나가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마르쿠스 앞에 멈췄다.

"로엔 님! 인장 보관함이 열려 있습니다."

마르쿠스의 눈동자가 굳었다.

"인장은?"

"없습니다. 서무계 공식 인장 원형이 사라졌습니다."

마르쿠스가 정지서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번 분노는 하진이 아니라 학생회관을 향하고 있었다.

은빛 결계 아래에서 행진곡의 박동이 계속 울렸다.

적은 소리만 훔친 것이 아니었다.

아카데미의 문을 여는 권한까지 손에 넣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