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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15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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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검은 재의 음정

중앙 분수 광장에 남아 있던 은빛 잔향이 완전히 가라앉기 전에 하진은 검은 재가 든 유리병의 마개를 닫았다.

유리병 안쪽 벽에는 아주 가느다란 잿빛 선이 붙어 있었다. 빛을 비추면 선은 음표처럼 떨렸지만 실제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거 당장 분해해 보면 안 될까?"

루카스가 공구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재의 결합 성분만 알면 반사판에 쓰인 잉크도 역추적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열면 증거가 아니라 분석 재료가 됩니다."

하진은 병을 외투 안쪽에 넣었다.

"제라드 교수님이 먼저 보셔야 해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심은 문양입니다."

광장 가장자리에는 새로 모인 지원자들이 아직 남아 있었다. 첼로를 멘 남학생과 북채를 쥔 소녀 그리고 금이 간 호른을 든 학생은 자신들이 방금 무엇을 막아냈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하진은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름부터 알려 주세요. 함께할 생각이라면 당신들의 소리를 기록해야 합니다."

"나디아입니다. 첼로과 2학년이에요."

첼로를 멘 남학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페르. 타악과 1학년입니다."

북채를 든 소녀가 손을 들었다.

"오스카입니다. 호른을 전공하고 있어요. 높은 음을 오래 유지하지 못합니다."

오스카는 교수에게 들었던 평가를 그대로 되풀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진은 호른을 들어 보라고 했다. 짧은 숨이 거친 음을 만들었다. 그러나 음의 끝에 남은 얇은 잔향은 이반의 바이올린이 비워 둔 공간과 정확히 맞물렸다.

"높은 음을 오래 유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반의 활이 올라가는 순간에 두 박만 받치세요. 당신의 잔향이 현악기와 금관 사이의 틈을 메울 겁니다."

"제 호흡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짧게 써야 하는 겁니까?"

"짧은 소리는 약한 소리가 아니에요. 자리를 잘못 배정받았을 뿐입니다."

나디아가 낮은 G음을 켰다. 광장 바닥에 남은 에테르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첫 박은 가볍게. 둘째 박부터 길게 끌어 주세요. 이 저음은 2악장의 바닥이 될 수 있습니다."

페르가 북면을 두드렸다. 강하게 친 소리보다 아무도 치지 않는 사이에 울림이 더 선명했다.

"저는 빈 곳에서만 북이 크게 울립니다. 앙상블에서는 박자를 놓친다고 했어요."

"놓친 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강박을 피해 약박을 드러내는 방식이에요. 악보의 빈칸을 맡아 주세요."

세 사람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다. 하진은 루카스에게 지원서와 공명 특성을 따로 기록하라고 지시했다.

"학생회에 제출하면 장학금 명단으로 넘어갈 수도 있어."

루카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우리가 직접 보관해. 필요한 절차는 제라드 교수님에게 받으면 돼."

엘레나가 해 질 무렵의 광장 입구를 바라보았다.

"오늘 안에 조사실로 가야 한다. 문양이 다시 작동하면 다음에는 광장 하나로 끝나지 않을 수 있어."

그때 하진의 주머니 안에서 작은 금속음이 울렸다. 제라드 교수의 호출패였다.

하진은 유리병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청음 기록실로 향했다.


청음 기록실의 문을 열자 오래된 오르간 파이프에서 낮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라드 교수는 기록석 세 개를 둥글게 세워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청동 반사판 반출 대장과 수리 요청서가 펼쳐져 있었다.

"병을 이쪽에 놓게. 손으로 만지지 말고. 호출패로 공식 조사를 시작했으니 기록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하진이 유리병을 기록석 사이에 놓자 제라드가 은색 집게로 마개를 열었다. 잿빛 선이 공중으로 가늘게 올라갔다.

웅.

기록실의 공기가 반 박자 늦게 떨렸다.

"문양이 남긴 잔류 파형인가?"

"네. 낮은 피리음에 가까운 파형입니다. 한 번 늦춘 뒤 다음 박에 겹치도록 설계됐어요."

하진은 기록석 옆 보정판에 숫자를 적었다.

"현지 에테르에는 0.38퍼센트의 기본 오차가 있습니다. 이 문양은 그 오차를 반대로 휘게 만들었어요. 첫 박에서 미세하게 밀어 두고 다음 박에 되돌리면 연주자는 자기 실수라고 착각합니다."

제라드가 잿빛 선에 기록봉을 가까이 가져갔다. 선은 기록봉을 피해 뒤틀렸다.

"내부 마력을 먹은 흔적은 없군. 대기 에테르만 훔쳐서 성부를 갈라놓았어."

"반사판이 어디에 놓일지와 야외 보정식의 흐름을 모르면 만들 수 없는 문양입니다."

제라드는 반출 대장을 펼쳤다.

"반사판은 작곡동 별관 지하 제3공명실에서 반출되었다. 수리 요청서에는 학생회 인장이 찍혀 있군."

루카스가 서류 위로 몸을 숙였다.

"그럼 마르쿠스가 가져온 겁니까?"

"인장만으로는 직접 가담을 증명할 수 없다. 학생회 장비 관리 간부 여럿이 같은 절차를 쓴다."

제라드의 손가락이 대장 한 장에서 멈췄다.

"다만 제3공명실 출입 기록 한 장이 비어 있다."

"찢긴 겁니까?"

엘레나가 물었다.

"찢긴 흔적은 없네. 보관철에서 빠진 뒤 다시 맞춘 자국이 있다. 누군가 한 장만 빼냈어."

하진은 공중에 남은 잿빛 파형을 바라보았다. 문양은 단순한 저주가 아니었다. 누군가 하진의 악보가 만드는 공명을 여러 차례 측정한 뒤 반대로 조립했다.

[잔류 파형 분석 완료]
[구조: 사용자 보정식을 기준으로 한 역위상 지연 문양]
[관측 자료 접근 경로: 작곡동 공명 장비 보관망]
[제작자 식별: 불가]

하진은 시스템 창을 닫았다.

"학생회 조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마르쿠스를 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어요."

제라드는 대장을 덮었다.

"그 판단은 옳다. 증거 없는 고발은 그들에게 반격할 명분만 준다. 학사위원회 공식 조사로 올리고 제3공명실의 열쇠와 반출 명단을 모두 확인하겠다."

"그동안 연습은 계속하겠습니다."

하진은 유리병의 마개를 닫았다.

"멈추면 관측자는 더 안전해집니다. 연주 중에 흔적을 남기게 만들 겁니다."

제라드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자네가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인가?"

"위험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다음 날 아침 자율 연구실에는 악기가 여덟 개로 늘어나 있었다.

나디아의 첼로는 오르간 옆에 놓였고 페르의 큰북은 벽 쪽에 낮게 고정되었다. 오스카의 호른은 이반의 바이올린과 클로에의 플루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에릭은 트롬본을 조금 뒤로 물렸다.

엘레나가 새 악보를 펼쳤다.

"제1번 심포니 2악장 초견. 도입부는 현악 세 성부와 플루트가 잔향을 만든다. 첼로는 저음을 유지하고 호른은 두 번째 주제에서만 들어온다. 타악은 쉼표 뒤의 빈칸을 맡는다."

페르가 북채를 고쳐 쥐었다.

"쉼표 뒤를 연주한다는 뜻입니까?"

하진이 빈 마디를 가리켰다.

"박자를 채우지 말고 빈 곳의 길이를 정확히 들려주세요."

엘레나의 지휘봉이 내려왔다.

하진의 오르간이 낮은 C음을 길게 깔았다. 이반의 바이올린이 얇은 선율을 올리고 클로에의 플루트가 세 번째 박 뒤에 미세한 배음을 얹었다.

나디아가 둘째 박을 받았다.

공기가 느리게 열렸다. 네 성부였을 때 벽처럼 솟던 은빛 공명이 이번에는 넓은 수면처럼 연구실 바닥을 덮었다. 페르가 첫 쉼표 뒤에 북면을 건드리자 수면 위로 동심원이 퍼졌다.

오스카의 호른이 짧게 울렸다. 거친 음의 끝을 이반의 바이올린이 받아 주자 금관의 모서리가 부드럽게 깎였다. 에릭의 트롬본이 낮은 으뜸음을 보태자 은빛 수면이 천장까지 올라갔다.

나디아가 활을 놓지 않은 채 숨을 내쉬었다.

"제 첼로가 다른 소리를 밀어내지 않아요."

"밀어내는 게 아니라 받치는 겁니다."

하진이 오르간 건반 위에서 손을 움직였다.

"다음 네 마디에서는 클로에의 배음이 가장 높이 올라갑니다. 모두 힘을 줄이지 말고 공간을 비워 주세요."

합주는 한 단계 더 깊어졌다.

그 순간 연주실 어딘가에서 아주 낮은 피리음이 끼어들었다.

피이이.

클로에의 플루트보다 음량은 작았지만 음의 끝이 정확히 반 박자 늦었다. 나디아의 활이 흔들렸고 오스카의 호흡이 끊겼다. 페르의 북채도 허공에서 멈췄다.

은빛 수면에 검은 선 하나가 그어졌다.

"멈춰!"

엘레나의 지휘봉이 바닥을 향했다.

하진은 건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공명관 안쪽에서 같은 피리음이 한 번 더 돌아왔다.

피이이.

이번에는 지하 방향에서 올라왔다.

루카스가 벽면의 청동 파이프를 두드렸다.

"연구실 안에서 난 소리가 아니야. 파이프가 외부 음을 받아서 증폭했어."

하진이 악보를 들어 올리자 검은 선이 종이가 아닌 공중에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0.38퍼센트 보정선을 따라 에테르가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외부 공명 입력 감지]
[관측 패턴: 제1번 심포니 2악장 도입부]
[경고: 연주 중인 성부에 지연 파형이 삽입되었습니다]

클로에가 플루트를 내렸다.

"제가 틀린 건가요?"

"아니요. 누군가 연주를 듣고 그 자리에서 음을 끼워 넣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또 규정을 어기고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군."

마르쿠스 로엔이 두 명의 학생회 간부와 함께 들어왔다. 학생회 장비 감찰을 맡았다는 명분으로 연습실을 돌고 있다는 말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바닥의 공명보다 벽면 청동 파이프를 먼저 향했다.

하진은 그 짧은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반사판 반출 기록에 찍힌 학생회 인장은 당신이 관리합니까?"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엘레나가 제3공명실 출입 기록의 누락을 말했다. 마르쿠스의 얼굴이 굳었다.

"학생회 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가 아니다. 장비 관리 담당 간부라면 승인받은 요청서를 처리할 수 있어."

"그 명단은 공식 조사에서 확인하겠습니다."

하진은 마르쿠스를 더 몰아세우지 않았다.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름을 묶는 순간 관측자는 뒤로 숨을 수 있었다.

복도 저편에서 낮은 피리음이 다시 울렸다.

피이이.

이번에는 학생회 간부 중 한 명이 지하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마르쿠스는 그 학생의 팔을 재빨리 붙잡았다.

"쓸데없는 곳을 보지 마라."

너무 빠른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범행을 증명할 수 없었다.

하진은 악보를 접었다.

"다음 연습은 제3공명실에서 하겠습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공명이라면 입구를 바꿔야 합니다. 같은 음이 들리는지 확인하면 관측 경로를 찾을 수 있겠죠."

엘레나가 지휘봉을 세웠다.

"나도 함께 간다."

이반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닫았다. 클로에는 잠시 플루트를 바라보다가 다시 케이스를 열었다.

"제 배음이 그 음의 틈을 찾을 수 있다면 저도 가겠습니다."

나디아가 첼로 활을 쥐었다.

"저음이 필요하다면 끝까지 받치겠습니다."

페르와 오스카도 조용히 악기를 챙겼다. 에릭은 트롬본 관을 접으며 마르쿠스를 노려보았다.

하진은 여덟 명의 악기를 차례로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자신들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파괴인지 시험인지 목적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관측자가 소리로 움직인다면 하진 역시 소리로 그 움직임을 되짚을 수 있었다.

그가 지하 계단으로 향하려는 순간 제3공명실 방향에서 피리음이 한 번 더 울렸다.

낮은 음 끝에 끊긴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진의 손이 악보 위에서 멈췄다.

"좋아. 먼저 듣고 있던 쪽부터 숨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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