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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14화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내 악보는 대마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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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박자를 훔친 자

중앙 분수 광장을 감싸던 은빛 에테르 돔은 이미 햇빛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광장 가장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덮고 있던 결계의 잔향이 아직 귓가와 가슴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진 앞에는 어느새 어색한 줄이 생겼다. 낡은 첼로를 멘 학생, 북채를 꼭 쥔 평민 소녀, 금이 간 호른을 품은 남학생이 서로의 눈치만 보며 서 있었다.

"정말 지원해도 됩니까?"

가장 앞에 있던 첼로과 학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학생회가 장학금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음 학기 등록금도 넉넉하지 않아서요."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뒤에 선 학생들의 표정도 다르지 않았다. 마르쿠스가 던진 협박은 광장 연주 한 번으로 깨끗이 사라질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진은 대답 대신 그가 든 첼로를 가리켰다.

"지금 당장 이름을 올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한 음만 들려주세요. 당신이 가장 편하게 낼 수 있는 음으로요."

학생은 잠시 망설이다 활을 현 위에 얹었다.

느린 G음이 광장 바닥을 타고 흘렀다. 첫 음은 힘이 너무 들어가 거칠었지만 길게 이어질수록 낮고 단단한 울림이 남았다.

하진은 눈을 감고 잔향을 끝까지 들었다.

"음이 무너지는 게 아닙니다. 시작에 마력을 너무 밀어 넣어서 활의 마찰이 흔들리는 거예요. 첫 박을 절반만 가볍게 두고 둘째 박부터 눌러 보세요."

"그렇게 하면 마력이 새지 않습니까?"

"새는 마력을 붙잡으려고 소리를 죽이고 있었어요. 이 음은 현악기군의 바닥을 잡을 수 있습니다."

학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교수에게서 들은 말은 언제나 마력 부족과 불안정뿐이었다. 자신의 저음에 자리가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엘레나가 학생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검은 나무 지휘봉을 들었다.

"이곳에 선 자는 가문과 마력량으로 자리를 얻지 않는다. 내 지휘를 보고 옆 사람의 숨을 들을 수 있는가. 그것만 보겠다."

단호한 선언에 웅성거리던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제1번 심포니 1악장을 완성하려면 최소 열두 성부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넷으로도 시작은 할 수 있죠. 하지만 본선 무대의 결계를 지키려면 각자의 소리가 필요해요."

하진은 고개를 돌려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기록해 둬. 첼로는 저음 현악. 호른은 금관 보조. 북은 약박 조율 담당이다."

"알았어. 이번에는 지원서 양식도 내가 직접 만들게. 학생회 인장 따위 기다릴 필요 없지?"

루카스가 기다렸다는 듯 종이 뭉치를 꺼냈다. 엘레나의 입가에도 아주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한 명씩 소리가 이어졌다. 소녀의 북소리는 강박보다 약박에서 더 또렷했다. 하진은 그 리듬을 에릭의 트롬본이 들어오기 전 신호로 바꾸어 주었다. 호른을 든 학생은 높은 음에서 호흡이 흔들렸지만 이반의 바이올린과 겹치자 모서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버려진 소리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마다 지원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딱.

그때 루카스가 세워 둔 청동 공명 반사판 하나가 혼자 울렸다.

짧은 금속음이었다. 하지만 박자가 정확히 반 박자 늦었다.

하진의 손이 멈췄다.

"루카스. 반사판 조율은 끝났다고 했지?"

"끝냈어. 오늘 아침에도 세 번 맞춰 봤어. 13화음 기준으로 오차도 없었고."

루카스는 곧장 반사판 곁으로 달려갔다. 청동판의 앞면은 새것처럼 빛났다. 그러나 하진이 판을 뒤집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바닥에 닿던 면에 검은 잉크로 그려진 가느다란 원이 있었다.

원 안에는 짧고 긴 선들이 엉켜 있었다. 얼핏 보면 악보의 박자선 같았다. 다만 각 마디의 끝마다 숨을 멈추게 하는 작은 갈고리가 붙어 있었다.

"누가 장난을 친 거야?"

루카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장난이면 이렇게 그릴 수 없어요."

하진은 손가락을 원 위로 띄웠다. 잉크에서 아주 약한 냉기가 피어올랐다.

"이건 소리를 크게 만드는 문양이 아닙니다. 연주자의 박을 한 번 훔쳐 갔다가 다음 마디에 돌려줘요. 성부마다 한 박씩 어긋나게 만들면 화음은 서로를 찢기 시작하죠."

클로에가 플루트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아까 제 음이 잠깐 밀린 것도 그 때문인가요? 제가 실수한 줄 알았는데..."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하진의 시선은 반사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 문양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명만 먹습니다. 누군가 광장의 에테르 흐름을 알고 심어 둔 거죠."

바로 그때 광장 입구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사고를 치고 있었군."

마르쿠스 로엔이 경비대원 넷을 이끌고 나타났다. 붉은 학생회 뱃지가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허가 없이 설치한 장치가 공명을 오염시킨 증거다. 연주를 중지하고 장비를 압수하라."

"오염은 장비가 아니라 장비 뒤에 심긴 문양에서 나옵니다."

하진이 반사판을 들어 보였다.

마르쿠스의 눈빛이 아주 짧게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곧 비웃음을 되찾았다.

"그걸 네가 심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나? 공연 허가를 얻으려 자작극을 벌이는 자들이라면 충분히 할 법하지."

"그렇다면 지금부터 보시면 됩니다."

하진은 반사판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 문양은 제 연주 방식이 아니라 공명 자체를 해칩니다. 학생회가 원하는 대로 장비를 부수면 안에 쌓인 지연 파동이 광장 전체로 튈 겁니다."

"겁주지 마라."

마르쿠스가 손을 들었다.

경비대원이 반사판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 순간 검은 원이 번뜩였다.

웅.

광장 가장자리의 다른 반사판들이 순서대로 떨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잦아들던 대기 에테르가 검은 실처럼 솟아올랐다. 첼로 학생이 귀를 막고 주저앉았고 몇몇 지원자들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반 박자 늦은 진동이 심장 박동까지 건드렸다. 들리는 소리는 작았지만 몸 안의 리듬을 억지로 끌어당기는 기분 나쁜 파동이었다.

"하진! 돔의 잔류 공명과 부딪치고 있어!"

엘레나가 지휘봉을 세웠다.

"이대로 두면 반사판이 광장 전체의 에테르를 뒤집습니다."

루카스가 공구 가방을 움켜쥐었다.

"내가 분해할게!"

"안 돼."

하진이 단호하게 막았다.

"지금 부수면 문양이 훔친 박자가 흩어집니다. 저 검은 선을 한곳에 묶어서 해결해야 해요."

그는 빠르게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정식 단원도 아닌 학생들은 겁에 질려 있었지만 이반과 클로에, 에릭은 물러서지 않았다.

"클로에. 가장 얇은 소리로 검은 파동만 따라가요. 음을 크게 낼 필요 없습니다. 지연되는 박의 끝을 찾아요."

클로에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 소리가 또 흩어지면요?"

"당신의 배음이 흩어지기 때문에 틈을 찾을 수 있어요."

하진은 이반과 에릭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반은 첫 박을 일부러 늦춰요. 둘째 박은 앞질러서 되돌아오고. 에릭은 셋째 박에만 저음을 넣습니다."

"보통 박자와 반대잖아."

에릭이 굵은 손으로 트롬본을 쥐었다.

"그래서 저쪽이 예측하지 못합니다."

엘레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검은 실이 그녀의 지휘봉 끝을 스치며 흔들렸지만 손은 조금도 떨리지 않았다.

"전원 내 손만 보라. 틀려도 멈추지 마라. 우리는 지금 완벽한 연주를 하는 게 아니다. 동료의 박을 되찾는 거다."

그 말이 떨어지자 이반이 바이올린을 턱에 고정했다. 클로에가 숨을 들이마셨고 에릭은 트롬본의 관을 길게 뽑았다.

스윽.

엘레나의 지휘봉이 내려왔다.

클로에의 플루트가 가느다란 한 음을 뽑아냈다. 소리는 검은 실을 피해 달아나는 대신 실의 끝마다 숨은 지연음을 하나씩 밝혀 냈다.

이반의 활이 첫 박을 뒤늦게 긁었다. 이어 둘째 박을 날카롭게 앞질렀다. 서로 충돌해야 할 두 리듬이 클로에가 찾아낸 틈에서 교차했다.

"지금!"

에릭의 트롬본이 셋째 박에 낮은 으뜸음을 터뜨렸다.

콰아아앙!

검은 실이 저음에 붙잡혀 한가운데로 접혔다. 하진은 오르간 모듈 앞으로 뛰어가 건반을 눌렀다.

쿵.

C장조의 으뜸화음 위에 불협 문양이 훔친 지연음을 그대로 얹었다. 불안정한 음은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하고 진동했다.

하진은 마지막 박에서 손가락을 옆 건반으로 옮겼다.

해결음이 울렸다.

그 한 음이 늦어진 모든 박의 출구를 닫아 버렸다. 은빛 공명이 검은 실을 감싸자 문양의 갈고리들이 하나씩 녹아내렸다.

쨍!

반사판이 크게 울며 검은 재를 토해 냈다. 동시에 광장을 짓누르던 압박감도 사라졌다. 뒤늦게 바람이 불어 분수 물방울을 흔들었다.

[미확인 공명 오염 구조 해체]
[분석 결과: 박자 지연형 불협 문양]
[경고: 사용자 공명 패턴을 관측한 외부 개입이 감지되었습니다.]

시스템 창을 읽은 하진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누군가는 오늘의 야외 보정식을 알고 있었다. 반사판이 어디에 놓일지와 어떤 박으로 공명이 시작될지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마르쿠스는 검은 재를 바라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 문양을 아십니까?"

하진의 질문에 마르쿠스는 고개를 들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나는 학생회 규정 위반을 확인하러 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학생회는 이 반사판에 손댄 사람이 없다는 기록을 내놓으세요. 제라드 교수에게 정식 조사를 요청하겠습니다."

마르쿠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경비대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등을 돌렸다.

그가 떠난 자리의 침묵을 깨고 첼로과 학생이 앞으로 나왔다.

"저는 남겠습니다."

학생은 아직 창백했지만 첼로를 더 단단히 쥐고 있었다.

"저런 걸 막을 수 있는 음악이라면 배워 보고 싶습니다. 장학금이 무서워서 계속 도망쳤는데... 오늘 제 소리가 필요하다고 들었으니까요."

북채를 든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약박이 필요하다면서요. 그럼 제가 하겠습니다."

호른을 든 학생도 조심스레 케이스를 열었다. 바닥에는 하나둘 악기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종이 뭉치를 끌어안고 활짝 웃었다.

"좋아. 지원서 여덟 장. 아니 열 장이야! 이 정도면 연구실에 의자부터 더 들여놔야겠는데?"

"의자보다 연습표부터 정리해."

하진은 웃으며 말했지만 손에는 검은 재를 담은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그는 재를 빛에 비추어 보았다. 잿가루 사이에서 너무 낮고 가는 피리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현지 음계에서 정확히 0.38퍼센트 비껴난 음정이었다. 우연한 불협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에테르의 오차를 알고 그것을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쓰고 있었다.

하진이 고개를 들었다.

광장 담장 너머 그림자 속에서 검은 망토의 끝자락이 스쳤다. 곧 짧은 피리 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그 음은 하진의 귀에만 선명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악보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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